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88)
회귀해서 건물주-188화(188/740)
188
중간고사 마지막 날.
새벽 4시.
현성은 잠깐 휴식을 위해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새벽이라 그런지 기온이 제법 쌀쌀했다.
“후우!”
길게 심호흡을 한 번 하자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뭐해?”
이수혁이었다. 어느새 현성의 뒤를 따라 나온 것이다.
현성이 말했다.
“응, 좀 쉬었다 하려고……, 그나저나 공부는 잘돼?”
“솔직히 처음엔 혼자 공부하다가 여럿이 같이하려니까 집중도 잘 안 되고 그랬는데 이젠 적응이 됐는지 아무 상관 없어.”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수혁이 처음 같이 공부하겠다고 찾아왔을 때만 해도 걱정이 앞섰던 건 사실이다. 사람이 뭐를 하든 습관처럼 무서운 게 없기 때문이다.
늘 혼자 공부하던 이수혁이었다. 그런 그가 단 며칠 만에 적응을 했다는 자체가 쉽게 이해가 안 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어려운 일을 이수혁이 해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또한 그것도 그의 능력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이수혁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근데, 쟤들 말이야. 너무 신기하지 않냐?”
“일수랑 정우 말이지?”
“응, 난 솔직히 쟤들이 저렇게 열심히 공부를 한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현성은 피식 웃었다.
이수혁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알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아마도 김일수와 이정우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 때문일 것이다.
현성은 빙긋 웃으며 물었다.
“왜, 신기하냐?”
“당연하지. 너도 알다시피 쟤들이 누구야? 우리 반에서 꼴찌 하던 얘들이잖아. 그런데 갑자기 저렇게 열심히 공부한다는 게 너무 신기하잖아.”
“그게 뭐가 어때서?”
현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었다.
그러자 이수혁이 다시 말했다.
“말이 안 되잖아. 사람이 저렇게 갑자기 변할 수 있는 거야?”
“왜, 갑자기라고 생각해?”
“어? 그, 그게…….”
“네가 볼 땐 갑자기 변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쟤들은 쟤들 나름대로 그동안 심경의 변화가 있지 않았겠냐?”
현성의 대답에 이수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얼핏 생각해도 현성의 말이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사람이고 어떤 식으로든 변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깨달음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나만 그동안 그것을 몰랐다는 거네.”
“너뿐만이 아니고 우리 반 대부분의 아이들이 두 사람의 변화를 아직은 모를 거야. 특별히 관심이 갖지 않으면 어차피 서로 모르는 거니까.”
“결국, 관심의 문제라는 얘기네.”
“내 생각은 그래. 어차피 관심을 안 가지면 아무리 같은 공간에 있어도 모르는 게 우리들 아니겠냐? 그렇다고 그게 나쁘거나 잘못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지.”
이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같은 반 친구들이라 하더라도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상은 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에 있어서 어떤 변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알아챈다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
결국, 그 사람의 변화를 알아채기 위해서는 관심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얘기다.
이수혁이 말했다.
“역시 관심이 답이었구나.”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지켜봐 줘. 내가 볼 땐 저 녀석들 많은 변화가 있을 거야. 특히 이번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면 말이야.”
“하긴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안 오를 수가 없겠지.”
“내 생각엔 아마 최소한 20등 이상은 올라가리라 봐.”
“20등씩이나…….”
현성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러자 이수혁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쟤들은 그렇다 치고 난 네가 더 신기해.”
“내가 뭘?”
“쟤들을 저렇게 만든 게 너잖아. 안 그래?”
“그거야…….”
현성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수혁의 말처럼 김일수와 이정우를 저렇게 만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입으로 공치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현성이 말이 없자 이수혁이 다시 말했다.
“그건 그거고, 나 너한테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나한테?”
“응, 그날 말이야……, 내가 학교 안 간다고 하던 그 날.”
“그 날이 왜?”
“어떻게 그렇게 쉽게 같이 학교 안 가겠다고 바로 결정할 수 있었어? 시간이 지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가서 말이야.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잖아.”
“나도 쉽지는 않았어.”
현성은 바로 답했다.
그러자 이수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그날 느끼기에는 현성이 별 고민 없이 바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수혁이 다시 물었다.
“아니라고?”
“난들 왜 고민이 안 됐겠냐? 나름대로는 고민을 했지.”
“그럼 그날은 내가 착각한 건가?”
“대신 고민하는 시간이 짧긴 했어. 이제야 말이지만 사실 그 전부터 네가 신경이 쓰이긴 했었거든.”
“그 전부터?”
이수혁은 또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성의 말대로라면 그 전에 이미 자신의 행동에 이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수혁은 다시 물었다.
“그 전부터라면 그때가 언제야?”
“아마도 너 수술 끝나고 3주쯤 지나고 난 다음일 거야. 어느 날부턴가 친구들하고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만 있더라. 그리고 도시락도 혼자 먹고.”
“아, 그때…….”
이수혁도 기억이 났다. 수술 끝나고 몸이 좀 회복될 때였다. 문제는 과외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과외 시간을 두 시간을 늘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평상시 과외만으로도 지친 상태였는데 두 시간을 더 늘리자 몸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모든 게 싫었다. 학교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죄 없는 친구들조차 보기 싫었다.
그러면서 조금 친해지던 친구들조차 멀리하고 예전처럼 혼자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현성이 말했다.
“불안해 보였어. 그리고 안타까웠고.”
“그 말은 그런 나를 항상 지켜봤다는 거네.”
“신경이 쓰였으니까. 너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병문안 갔을 때 네가 나한테 그랬거든. 정우가 부럽다고.”
“아, 그 말…….”
이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기억한다. 현성이 병문안 왔을 때 자신이 분명히 했던 말이다. 친구를 위해서 싸워주는 친구, 그리고 그 친구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그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다.
이수혁이 말했다.
“그 말을 기억했다고?”
“당연하지. 너로서는 진심으로 한 말인데…….”
“그래서 내가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니까 같이 안 가겠다고 한 거고?”
“그 순간엔 어떤 말보다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수혁은 빙긋 웃으며 현성을 바라봤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역시, 정답은 관심이었다는 얘기네.”
“인간관계의 시작이라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일수와 정우 지켜봐 줘. 앞으로 공부하는 데 있어서 너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거야. 특히 내년 고3이 되면 더더욱.”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내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도 최선을 다할게.”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약속이라도 한 듯 주먹을 맞댔다.
***
“자, 시간 다 됐다. 맨 뒷사람 답안지 걷어오고…….”
드디어 중간고사가 끝났다.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휴우.”
현성의 입에서도 한숨 소리가 길게 나왔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시험은 시험이었다. 그때 이정우가 급하게 다가왔다.
“야, 마지막 문제 정답이 뭐야?”
“난 2번으로 체크했는데.”
“야호!”
손을 흔들며 좋아하는 이정우.
그런 이정우를 보며 현성이 물었다.
“시험은 잘 봤어?”
“히히, 아마도 밤샘한 보람은 있을 거 같다.”
“수고했어. 이따 8시까지 가게로 와. 그동안 밤샘하느라 고생했는데 뒤풀이라도 해야지.”
“정말? 오늘 한잔하는 거야?”
이정우는 손으로 술 마시는 흉내를 내며 좋아했다.
종례 시간.
담임 신민호가 말했다.
“다들 시험 보느라 고생들 했다. 끝나고 모여서 헛짓거리들 하지 말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도록. 그리고 정확한 결과는 내일 나와 봐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이번에 놀라운 일이 벌어질 거 같다.”
“놀라운 일이란 게 뭡니까?”
반장 이영민이 물었다.
그러자 신민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1등이 바뀔 거 같다. 그리고 꼴찌도 마찬가지고.”
신민호의 말이 끝나자 대부분의 시선이 우종규와 김일수한테 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명실공히 반의 1등은 우종규였고 꼴찌는 김일수였기 때문이다.
이영민이 다시 물었다.
“1등은 누굽니까?”
“그건 말해줄 수 없다. 아직까지는 채점이 끝나봐야 안다. 결과는 내일 아침 조회 시간에 말해주겠다.”
신민호는 그 후로 몇 마디를 더 하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이영민이 이수혁을 보며 말했다.
“너야?”
“나도 모르지. 담임이 채점을 해봐야 안다잖아.”
“너밖에 없는데…….”
이영민은 혼자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수혁이 항상 2등을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바뀐다면 확률적으로 이수혁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이영민이 이번엔 김일수를 보며 말했다.
“미리 축하한다. 꼴찌 탈출한 거.”
“자식, 싱겁기는…….”
김일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날 저녁.
현성의 가게에 다시 모인 김일수와 이정우 그리고 이수혁과 현성.
한결같이 네 사람의 얼굴은 밝았다.
이정우가 먼저 이수혁을 보며 물었다.
“담임이 말한 사람이 너 맞지?”
“나도 모르지. 내일 점수 나와 보면 알겠지.”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밖에 없어. 우리 반에서 1등 할 사람이 너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그건 그렇고 아까 현성이 그러는데 너도 시험 잘 봤다며?”
“히히, 그냥 조금…….”
이정우는 부끄러운 듯 웃고 말았다.
그러자 이수혁이 이번엔 김일수를 보며 물었다.
“너는 어때?”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중요한 건 시험 끝나고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건 처음이라는 거지. 생각할수록 신기하기도 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옆에 있던 이정우가 김일수의 말에 동조했다.
그때 현성이 말했다.
“다들 시험 보느라 고생들 했고 다행인 건 결과야 내일 나와 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밤샘한 보람이 있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현성의 말이 끝나자 김일수가 말했다.
“이게 다 현성이 네 덕분이다. 네가 없었으면 우리가 같이 공부도 할 수 없었을 거고 오늘 이렇게 웃으면서 같이 있을 수도 없었을 거야.”
“그건 맞아. 내가 공부를 시작한 것도 따지고 보면 너 때문이었으니까.”
이정우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그러자 이번엔 이수혁이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너 아니었으면 이렇게 친구들하고 같이 공부도 못 했을 거고,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하고 예전처럼 집에서 혼자서 웅크리고 있었을 거야. 현성아 고맙다.”
“자식들, 사람 부끄럽게 왜 이래? 어쨌든 중요한 건 우리의 지금 모습이 예전하고는 달라졌다는 거야. 일수나 정우는 공부를 시작했고 수혁이는 혼자가 아닌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됐다는 거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니까 스스로가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일 결과도 좋게 나왔으면 좋겠고.”
“자식, 말이 청산유수네. 그런 의미에서 비록 사이다지만 건배사나 멋지게 한번 해봐라.”
이수혁의 제안이었다.
그러자 김일수와 이정우도 앞에 놓인 사이다병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현성.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이다병을 번쩍 들어 올렸다.
“자, 막걸리가 아니라서 아쉽지만 우리 건배하자. 우리의 미래와, 우리의 우정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세 사람은 큰소리로 동시에 ‘위하여’를 외쳤다.
다음 날.
조회 시간을 애타게 기다리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이수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만큼은 꼭 1등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드르륵.
교실 앞문이 열리면서 담임 신민호가 들어왔다.
“어제도 내가 얼핏 얘기했지만 이번 시험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1등이 바뀌었고 꼴찌가 바뀌었다.”
신민호의 말이 끝나자 모든 시선은 두 사람한테로 향했다.
그 대상은 바로 이수혁과 김일수였다.
신민호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1등을 발표하기 전에 칭찬해주고 싶은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다. 지난번 55등에서 이번에 15등으로 올라온 이정우다.”
“…….”
이수혁과 김일수를 향했던 시선이 이번엔 이정우한테로 쏠렸다.
놀란 건 이정우 본인이었다. 물론 가채점 결과 성적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자, 이정우를 위하여 박수!”
짝짝짝…….
이정우는 부끄럽다는 듯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신민호가 다시 말했다.
“그럼 이번엔 1등을 발표하겠다. 1등은 바로…….”
신민호는 뜸을 들였다.
꿀꺽.
그러자 기다리던 학생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 신민호의 입이 다시 열렸다.
“1등은……, 두 명이다. 그 두 명은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