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91)
회귀해서 건물주-191화(191/740)
191
박희철과 헤어진 현성은 가게로 향했다.
골목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누구지?”
누군가 가게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었다.
현성이 다가가자 그중 한 사람이 현성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불렀다.
“선배님!”
“야, 너희들이 이 시간에 웬일이야?”
현성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한명수와 김태진이었다.
“어디 다녀오십니까?”
“응, 일산에 볼일이 있어서. 그건 그렇고 여기서 얼마나 기다린 거야?”
“두 시간 조금 넘었습니다.”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마냥 기다려?”
“뭐 그냥 기다리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오늘 꼭 드릴 말씀이 있었거든요.”
현성은 한명수를 바라봤다.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눈빛이 빛날 정도였다. 그 옆에 있는 김태진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이들이 말하고 싶은 건 이번에 끝난 중간고사 결과일 것이다.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정도라면 그 결과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고.
만약 나빴다면 두 시간 이상씩이나 기다리지는 않았을 거라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저녁은 먹었어?”
“아직 못 먹었습니다.”
“일단 들어가자. 라면 끓여줄 테니까.”
가게로 들어온 현성은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라면을 들고 나온 현성.
“자, 어서들 먹어. 두 개씩 끓였으니까 모자라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부족한 사람은 밥 있으니까 밥 말아 먹고.”
“네, 선배님.”
두 사람은 정신없이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꽤나 배가 고팠던 듯 라면을 먹는 동안에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두 사람이 라면을 다 먹자 현성이 물었다.
“그렇게 배가 고팠냐?”
“배가 고픈 것도 있지만 이 씬라면이 정말 맛있습니다. 특히 이 얼큰한 맛은 집에서 고춧가루를 넣어도 이 맛이 안 나더라고요.”
“당연하지, 그게 일반 고춧가루가 아니잖아. 그리고 단순하게 고춧가루만으로는 그 맛이 안 나. 다른 양념이 들어가야 그 맛이 나는 거야.”
“아아, 어쩐지…….”
김태진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나한테 할 말이라는 게 뭐야?”
“아, 그거요. 바로 이겁니다.”
김태진이 현성 앞으로 하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뭐냐?”
“보시면 압니다.”
현성은 김태진이 내민 하얀 종이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대로 이번에 시험 본 중간고사 결과였다.
학년별로 이름이 적혀있었고, 이름 옆에는 1학기 기말고사 성적, 그리고 바로 그 옆에는 이번에 시험 본 2학기 중간고사 성적이 적혀있었다.
현성의 조건은 전체 인원이 지난번 시험보다 5등씩 올리는 조건이었다. 단, 한명수는 10등을 그리고 김태진은 반에서 10등 안에 드는 것이었다.
현성의 시선이 두 사람의 이름으로 향하는 건 당연했다.
‘음?’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맨 위에 적혀있는 한명수였다.
< 한명수, 1학기 기말고사 58, 2학기 중간고사 45 >
현성은 한명수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야, 한명수, 너 나를 기다린 이유가 이거지?”
“헤헤, 보셨습니까?”
“58등에서 45등으로 13등이나 올랐네.”
“진짜 악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그렇게 올라갈 줄은 몰랐습니다. 오죽했으면 담임이 칭찬을 다 하더라고요.”
솔직히 기대는 없었다. 귀찮아서 떼어낼 목적으로 조건을 걸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보란 듯이 그 조건을 충족한 것이다.
현성은 한명수를 보며 물었다.
“기분이 어때?”
“다른 얘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는데 솔직히 기분이 묘합니다. 뭐라고 할까 자꾸 웃음이 나고 여기가 두근거립니다.”
한명수는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현성은 이번엔 김태진의 이름이 적힌 곳을 응시했다.
< 김태진, 1학기 기말고사 25, 2학기 중간고사 12 >
현성은 빙긋 웃으며 김태진을 바라봤다.
그러자 김태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는 실패했습니다.”
김태진의 경우는 반에서 10등 안에 드는 것이 현성이 요구한 조건이었다.
한명수와 요구 조건이 차이가 났던 이유는 김태진의 아이큐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김태진의 아이큐는 148이었다. 물론 학교에서 검사를 하다 보니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전혀 엉터리는 아닐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목표치를 좀 더 높게 잡았던 것이다.
“열심히 한 거 맞아?”
“그게…….”
“뭐야? 제대로 안 했다는 거야?”
“하기는 했는데 제가 끈기가 없더라고요. 책상에 두 시간 이상을 못 앉아 있는 겁니다. 저도 제가 이렇게 끈기가 없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김태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그 일이 끝날 때까지 파고드는 사람, 즉 한 우물만 파는 사람.
반면, 또 하나는 일을 하되 한 가지 일을 꾸준히 못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주의가 산만하고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는 사람이다.
현성은 김태진을 보며 물었다.
“두 시간이 한계라고?”
“네, 근데 그 두 시간도 집중하는 시간은 한 시간쯤이나 될까 싶습니다.”
“산만하다는 얘기네?”
“그런 거 같아요. 지금까지는 솔직히 공부를 안 해봐서 몰랐는데, 이번에 하다 보니까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싫증도 금방 낼 테고?”
“어? 어떻게 알았어요?”
현성은 피식 웃고 말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현성 자신도 김태진과 비슷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전생에서 학창 시절에 그것 때문에 나름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다. 집중력이 떨어지다 보니 남들은 두세 시간이면 될 것을 현성의 경우엔 대여섯 시간은 투자해야 간신히 남들과 비슷할 정도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금은 세월이 지나다 보니 그 산만함이 덜하기는 하지만 아직도 그 버릇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나도 너랑 비슷했거든.”
“네? 선배님이요?”
“근데 그것도 자꾸 노력하면 요령도 생기고 어느 정도는 고쳐지니까 너무 낙심하지 마.”
“정말입니까?”
“대신 남들보다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을 거야. 그나마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조금만 더 노력하면 10등이 아니라 1등도 충분히 가능할 거고.”
아이큐가 120만 넘어도 천재 범위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런데 김태진의 경우는 무려 148이다. 지금 저 수치가 사실이라면 상위 2% 아이큐 보유자 모임인 멘사(Mensa)에도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정도다.
현성은 김태진을 보며 물었다.
“혹시 담임이 아이큐에 대해서 뭐라 안 그래?”
“그렇지 않아도 시간 되면 전문 기관에 가서 검사받으라고 하더라고요.”
“부모님한테 말씀은 드렸고?”
풉.
김태진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황당한 건 현성이었다.
“뭐야? 그 웃음은?”
“아, 미안해요, 선배님. 갑자기 웃음이 나와서. 다름이 아니라 우리 엄마 때문에…….”
“어머니가 뭐라 하셨는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해주는 밥 잘 먹고 학교나 잘 다니라고요.”
“…….”
할 말이 없는 현성이었다.
원석을 몰라주는 김태진의 어머니가 딱할 뿐이었다.
현성은 이번엔 나머지 학생들의 성적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명수와 김태진을 제외한 나머지 28명 중에서 5명을 뺀 나머지 23명이 현성이 제시한 조건을 충족한 상태였다. 개중에는 10등 이상이나 오른 녀석들도 세 명이나 있었다.
결론적으로 총 30명 중에서 24명이 조건을 충족한 것이다. 비율로 따진다면 80%다. 게다가 나머지 5명도 성적이 오른 것은 분명했다.
기대 이상이다.
이 정도로 열심히 할 줄은 몰랐다. 처음엔 그저 잔디파라는 조직이 귀찮아서 어떡하든 떼어낼 목적으로 무리한 조건을 내걸었었다. 그런데 막상 이런 결과를 보니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이런 식이라면 누군가 방향만 제대로 잡아준다면 이 녀석들의 미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한두 명도 아니고 자그마치 30명이다.
30명의 미래라…….
‘음…….’
이 상황에서 고민이 안 된다면 현성이 아니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현성이 한명수를 보며 말했다.
“어땠어?”
“네? 뭐가 말입니까?”
“중간고사 준비를 하면서 어떤 마음이었냐고?”
빙긋.
한명수는 대답 대신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처음이다.
지금까지 한명수를 지켜봤지만 저런 웃음을 짓는 건.
뭐지?
저 웃음의 의미는.
그때 한명수의 말이 이어졌다.
“행복했습니다.”
“행복……?”
행복이란 말에 현성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한명수의 말이 이어졌다.
“처음엔 오기로 시작했습니다.”
“오기?”
“네, 선배님이 저희를 무시한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현성으로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공부라는 조건을 내세우면서 생각했던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할 테면 얼마든지 해봐라, 그 식이었으니까.
“인정한다. 그래서?”
“막상 시작을 하니까 그다음엔 주위로부터 놀림이 시작되더군요. 심지어는 담임한테까지도 놀림을 받았습니다.”
“담임이?”
“네, 쥐약이라도 먹었냐고 하더군요. 그땐 진짜……, 무슨 선생이 이런 인간이 있나 싶었습니다.”
현성이 생각해도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뭐라 해도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 사람이 어찌…….
“그건 좀……, 그래서?”
“무시했습니다. 어차피 거기서 다른 말을 해봤자 놀림감밖에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쉽지 않았을 텐데.”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그런 판단은 빠르거든요.”
명분보다는 철저히 실리를 중시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명분보다는 실리라 이건가?”
“어차피 한번 결정한 이상 뭐가 중요한지는 아니까요. 그리고 거기서 맞선다고 해서 우리의 자존심이 세워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거든요.”
의외였다.
현성이 지금까지 알던 한명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냥 어리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한명수였다.
“결국, 결과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거네?”
“맞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시작한 지 20일쯤 지나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한 일? 그게 뭐야?”
“하루는 담임이 저를 부르더라고요.”
“담임이?”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한명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학교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각 학년별로 1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자는 분위기로 바뀌니까 전체적인 수업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칭찬을 하는 겁니다.”
“담임도 잔디파를 알고 있었다는 얘기네?”
“그 정도는 이미 파악을 하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우리가 큰 사고를 치는 건 아니니까 그냥 지켜만 보고 있는 거고요.”
“그래서 결론은 칭찬을 받아서 행복했다는 거야?”
“처음이었거든요. 학교 다니면서 선생한테 칭찬을 받은 게.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끝이 아니라고?”
순간 현성의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당연히 한명수의 다음 말이 기다려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한명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 달쯤 지나자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이상한 일?”
“네, 그게……, 히히.”
한명수는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뭐야?”
그때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태민이 끼어들었다.
“글쎄, 가입 문의가 늘어나는 겁니다.”
“가입 문의?”
“네, 잔디파에 가입하고 싶다는 겁니다. 예상 문제집이 우리한테만 있었거든요.”
“예상 문제집은 또 뭐야?”
“선배님 동생, 지연이 작품입니다. 그게 돌면서 애들이 난리가 난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굽니까? 잔디파 외에는 절대 안 보여줬거든요.”
“허…….”
할 말이 없는 현성이었다.
그제야 한명수가 왜 행복했다는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그 중심에 자신의 여동생인 김지연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현성은 한명수를 보며 말했다.
“잔디파로 애들이 몰리니까 행복하더냐?”
“그동안 우리를 무시만 했던 놈들이거든요. 이번 기회에 우리 잔디파의 위상이 확실히 올라갔다는 거 아닙니까?”
“물론 가입은 안 받아줬을 것이고?”
“당연하지요. 우리는 오로지 학년별로 베스트 텐으로 구성된 조직이거든요. 그 이상은 희소성이 떨어져서 안 받습니다.”
피식.
현성은 웃고 말았다.
그리곤 잠시 후 말을 이었다.
“혹시 말이야…….”
“네, 말씀만 하십시오.”
“그 베스트 조직원들 지금 모이라면 모을 수 있냐?”
“전체 다 말입니까?”
“물론.”
한명수는 현성을 바라봤다. 그리곤 생각했다. 현성이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잠시 후, 생각을 끝낸 한명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잔디파를 맡아주시려는 겁니까?”
“글쎄다, 그건 더 고민해볼 문제고, 오늘은 일단 이 형이 너희들 고생했다고 라면 파티를 열어줄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네? 그게 정말입니까?”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명수와 김태진은 서로 얼굴을 마주 바라보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을 열었다.
“넵, 당연히 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가게 문을 박차고 나갔다.
한두 명도 아니고 자그마치 30명이다. 어떤 식으로든 방향을 잡아주고 싶은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