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96)
회귀해서 건물주-196화(196/740)
196
며칠 후.
토요일 저녁.
“어머니!”
집에 도착한 현성은 마당에 들어서며 어머니를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러자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시던 어머니가 현성을 반갑게 맞았다.
“우리 아들 어서 와!”
“어? 우리 어머니 지난번보다 더 예뻐지신 거 같은데요.”
“호호, 그런가. 우리 아들이 사준 영양 크림을 발라서 그런지 내가 만져도 얼굴이 보들보들한 게 느낌이 좋아.”
“그래요? 그렇지 않아도 여기 한 개 더 사 왔으니까 아끼지 마시고 많이 바르세요. 특히 요즘같이 건조한 날씨에는 듬뿍 발라줘야 되는 거 아시죠?”
“아니, 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또 사 왔다고?”
“제가 매일 집에 못 오니까 미리 사 온 거예요. 아마 이거면 올겨울까지는 문제없을 겁니다.”
현성은 가방에서 영양 크림을 꺼내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손에 묻은 물기를 옷에 닦은 후 현성이 내민 영양 크림을 받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아들 덕분에 이 어미가 요즘 호강하는구나.”
“어머니도 참, 영양크림 하나에 무슨 호강입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우리 동네에서 영양 크림 바르는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어. 요 며칠 전에 반상회 갔더니 나보고 사람들이 피부 좋아졌다고 다들 난리였다니까. 그래서 내가 우리 아들이 사준 영양 크림 때문이라고 했더니, 다들 부럽다고 했다니까.”
그런 시대였다.
어쩌면 강원도 시골이라 더 했는지도 모른다.
최우선은 먹고사는 게 문제였다.
논이 귀하니 쌀이 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비라도 오는 날에는 주로 면 음식을 먹었다. 그때는 늘 그렇게 하기에 그게 당연한 줄로 알았는데 나중에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먹을 쌀이 부족해 그것을 아끼기 위해서 밀가루를 먹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나마 환경이 나아진 건 88올림픽이 끝나고 난 후였다. 그때 논 경지 정리 사업이 끝났기 때문이다. 밭이 논으로 바뀌고 나서야 쌀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어머니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우리 아들 배고프지? 그렇지 않아도 시간에 맞춰 밥해놨으니까 얼른 들어가라. 어서 밥 먹자.”
“아버지는 어디 가셨어요?”
“앞 논에 나가셨으니까 금방 들어오실 거다.”
그때였다.
“현성이 왔냐?”
돌아보니 아버지였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그래, 오느라고 수고했다. 별일은 없는 거지?”
“그럼요, 아버지도 별일 없으셨지요?”
“나야 늘 그렇지 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 밥 먹어야지.”
“네, 그런데 지연이는 어디 갔어요?”
집에 있었다면 벌써 뛰어나왔을 텐데 동생 김지연이 보이지 않았다.
“아까 뒷집 친구네 집에 숙제하러 간다고 하더니 아직 안 왔나 보다.”
“아, 그래요?”
그때였다.
타다닥.
누군가 집으로 뛰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동생 김지연이었다.
“지연아.”
“오빠, 언제 왔어?”
“조금 전에.”
“미안, 오빠 온다고 해서 빨리 오려고 했는데 남은 숙제를 마저 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된 줄 몰랐어.”
현성은 그런 김지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전생에서 지금쯤이면 김지연은 가장 힘들어할 때였다.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스스로 남양주에 있는 실업고등학교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실을 안 것도 나중이었다. 그만큼 그땐 서로 대화 자체가 없었다. 부족했던 현성 자신의 모습이었다.
방으로 들어온 네 사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 김지연까지 밥상에 둘러앉았다.
한 가정의 평범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젠 그 평범한 모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알고 있는 현성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머니가 그런 현성을 보며 물었다.
“우리 아들 무슨 좋은 일 있어?”
“네? 아, 네. 그냥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서 밥 먹으니 좋아서요.”
“하긴 혼자 밥 먹으려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힘들지?”
“헤헤, 아무래도 좀…….”
현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혼자 나가 있다 보니 가장 힘든 게 혼자 밥 먹는 거였다. 그럴 때면 솔직히 아내 윤지수가 제일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어머니가 말했다.
“이것 좀 먹어보렴.”
“어? 이거 닭볶음탕이잖아요?”
“모처럼 아들 온다고 네 아버지가 닭 한 마리 잡았다. 그러니까 많이 먹고 힘내.”
현성은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러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아버지의 표현 방법이다. 많은 말보다 한 번 바라보는 눈빛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 잘 먹겠습니다.”
“그래, 천천히 많이 먹어. 지연이도 많이 먹고…….”
“네, 아빠. 아빠도 많이 드세요.”
김지연이 웃으며 말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김지연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오빠, 요즘 해장 라면이 대세라며?”
“원래는 어른들 해장국 대용으로 만든 건데, 어느 날부터 여학생들이 더 찾더라고?”
사실이다.
물론 대부분의 어른들은 일반 라면보다는 해장 라면을 확실히 선호한다. 그렇다 보니 어른들 손님이 좀 더 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부턴가 여학생들이 해장 라면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그 첫 번째가 콩나물은 칼로리가 적고 단백질이 풍부하여 다이어트에 좋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콩나물에는 비타민 C 성분과 함께 비타민 E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그 성분들이 피부미용과 피부세포의 노화를 막아 항산화 작용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피부에 민감한 여학생들이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현성으로선 즐거운 비명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해장 라면이 뭐야?”
“엄마, 그게 뭐냐 하면 이번에 오빠가 신메뉴로 만든 건데 씬라면에 콩나물을 넣고 끓이는 거야. 그런데 그게 피부미용과 다이어트에 그렇게 좋다잖아. 그래서 우리 반 애들이 요즘 환장을 하더라고.”
“콩나물에 그런 성분이 있다는 건 또 처음 들어보네.”
“우리 과학 선생님이 그랬거든. 어찌 됐건 중요한 건 오빠는 그 덕분에 요즘 바쁘다는 거야. 내 말이 맞지? 오빠.”
현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지연이 다시 말했다.
“오빠, 그 해장 라면 우리도 끓여주면 안 돼?”
“당연히 되지. 그러지 말고 내일 다 같이 가게로 가자.”“가게로?”
“응, 어차피 난 내일 아버지랑 목욕탕 갈 거거든. 그러니까 어머니랑 너도 같이 목욕탕 가자. 그리고서 가게에서 해장 라면 끓여 먹으면 되지.”
잠깐 생각하던 김지연이 어머니를 보며 물었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그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나도 그 해장 라면이 궁금하긴 하구나.”
“음……, 그럼 내일 다 같이 목욕탕 갔다가 오빠 가게로 가서 해장 라면 먹으면 되겠네.”
아버지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그럼 오늘 한잔해야겠네?”
“네?”
“내일 해장 라면 먹으려면 오늘 한잔해야지. 안 그래요? 여보?”
어머니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러자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술을 먹어서 해장 라면을 먹는 게 아니라 해장 라면을 먹기 위해 술을 먹자는 거야?”
“순서가 뭐가 중요해요?”
“허……, 이 사람이.”
아버지는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때 현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아버지가 현성을 바라봤다. 그리곤 물었다.
“설마 아니지?”
“설마가 맞는데요. 오늘은 어머니 말씀이 맞는 거 같습니다. 순서가 뭐가 중요합니까? 어차피 안주도 있고 해장 라면도 기다리고 있고 그렇다면 마셔야지요.”
“호호, 우리 아들 최고!”
옆에 있던 어머니가 현성을 보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잠시 후.
소주잔 네 개와 소주를 들고나온 현성.
그 모습을 바라본 김지연이 웃으며 말했다.
“오빠, 나도 마셔도 돼?”
“어차피 나중에 크면 먹을 거잖아.”
“뭐야? 또 순서 타령이야?”
“틀린 말도 아니잖아. 안 그래?”
“내가 말을 말아야지. 좋아 대신 나 술 먹고 주정해도 몰라.”
그때 아버지가 조용히 닭 날개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여보, 술도 안 마시고 안주부터 드시면 어떡해요?”
그러자 아버지가 씩 웃으며 말했다.
“순서가 뭐가……, 하하, 하하하…….”
아버지는 차마 뒷말은 다 하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그 모습을 바라본 어머니도 어이가 없는지 웃고 말았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김지연도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킥킥…….”
결국, 현성의 입에서도 참았던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녁을 다 먹은 현성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딸깍.
전등을 켜자 한눈에 방안이 들어왔다.
언제 봐도 아늑한 공간이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역시나 아버지가 중학교 입학 선물로 만들어준 나무 침대였다.
현성은 침대에 누웠다.
“좋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까지, 모처럼 즐거운 시간이었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웃으며 소주도 마셨다. 첫 잔에 볼이 발그레 변하는 동생의 모습도 사랑스러웠다.
가족!
예전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같이 있으면서도 고마운 줄 몰랐다. 그저 모든 게 영원할 줄만 알았다.
때로는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잘못됐음을 알았다.
그땐 이미 사과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후였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곁에 있는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사람이 영원하지 않으리란 것도.
그리고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상처는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아플 수밖에 없다.
사랑하면서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들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는 법. 이제는 그런 똑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였다.
안방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나왔다.
아버지였다.
“뭐 하냐?”
“그냥 잠도 안 오고 해서 나왔어요.”
“요즘 힘든 건 없고?”
“없어요. 근데 아버지는 왜 안 주무시고 나오셨어요?”
“오늘은 왠지 잠이 안 오는구나.”
“무슨 걱정 있으세요?”
보통 9시면 주무시는 아버지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기분이 좋아서.”
“네?”
기분이 좋다는 말에 현성은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리곤 바로 물었다.
“우리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기분이 좋으실까요?”
“그게 아무래도…….”
아버지는 현성을 바라봤다. 그리곤 피식 웃었다.
“뭔데요?”
“그게 아무래도 너 때문에…….”
“저 때문에요?”
“네가 오니까 왠지 여기가 꽉 찬 느낌이구나.”
아버지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
현성은 아버지를 바라봤다.
항상 말이 없던 아버지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 바로 눈앞에서 고백을 한 것이다.
“아버지!”
“고맙다. 네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아버지, 저도 아버지가 계셔서 참으로 좋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전생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