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212)
회귀해서 건물주-212화(212/740)
212
“…… 못 하겠어요.”
“아니, 명순 씨, 그게 뭐 힘들다고…….”
박희철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신명순을 바라봤다.
그러자 신명순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다시 말했다.
“회장님, 저는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부르면 안 될까요? 그리고 그 호칭이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도저히 안 되겠습니까?”
“네, 저는 도저히…….”
신명순은 고개를 다시 한번 저었다.
그러자 박희철은 짧게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더 이상은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명순 씨 말처럼 그깟 호칭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래요, 불편한 건 딱 질색입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괜히 무리한 부탁을 했군요.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이젠 그 굳은 표정 좀 푸세요.”
박희철은 신명순을 보며 슬쩍 웃었다.
그러자 신명순도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 알았어요. 그나저나 어떻게 여기 경포까지 오실 생각을 하셨어요? 저는 그저 동네에서 밥이나 한 끼 먹을 줄 알았는데…….”
“아, 그거요? 김 사장한테 코치 좀 받았습니다.”
“김 사장이라면 우리 사장님 말인가요?”
“네, 김 사장이 어젯밤에 찾아왔더라고요. 근데 김 사장이 뭘 사 왔는지 아십니까?”
“네? 뭘 사 오다니요?”
신명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박희철이 얼굴에 웃음기를 띈 채로 말을 이었다.
“아, 글쎄 내복을 사 왔지 뭡니까?”
“내복이요?”
“어제 한 달 정산을 했다고 하면서 일부러 내복을 사 들고 찾아온 겁니다.”
“아니,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신명순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박희철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하여간 아무리 봐도 보통 녀석은 아닙니다.”
“그러게요. 아무리 봐도 우리 사장님 보면 볼수록 진국이라니까요.”
“인정합니다. 나이만 어렸지 하는 행동을 보면 어른보다도 훨씬 생각이 깊습니다.”
박희철의 말에 신명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도 이번에 많이 놀랐습니다.”
“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보너스를 자그마치 15만 원을 받았거든요.”
“네? 그게 말이 됩니까?”
박희철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금액이면 보통 한 사람의 월급이기 때문이다.
신명순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월급이 15만 원입니다. 그런데 보너스를 15만 원 받은 겁니다. 물론 처음에 약속을 하기는 했었습니다.”
“약속이요?”
“네, 수익금을 나눠주겠다고 했었거든요. 하지만 솔직히 기대는 없었어요. 어떤 사장이 종업원한테 수익금을 나눠줍니까? 당연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약속을 지킨 겁니까?”
신명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희철이 다시 물었다.
“혹시 다른 직원들한테도 똑같이 줬습니까?”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지숙이 같은 경우는 5만 원을 줬더라고요. 그러니까 저한테만 10만 원을 더 준겁니다.”
“결국은 처음 약속대로 수익금을 나눠 드린 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그게 말이 쉽지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걸 우리 사장님이 하시더라고요.”
“역시 대단한 녀석입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동시에 끄덕였다.
신명순이 다시 물었다.
“참, 아까 우리 사장님이 코치를 했다는 말은 무슨 말이에요?”
“아, 그거요. 글쎄, 그 녀석이 동네에서 밥 먹지 말고 이왕이면 멀리 떠나라는 겁니다. 명순 씨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쳤을 테니 바람 좀 쐬라고 하더군요.”
“호호, 우리 사장님이 그런 말을 했어요?”
“네, 그렇지 않아도 어디로 갈까 고민 중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바다가 생각나지 뭡니까? 그래서 이렇게 바다로 왔는데, 마음에 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좋아요. 모처럼 회도 먹고 이렇게 바다도 보고 제대로 바람을 쐰 거 같아요. 사실 그동안 조금 갑갑하기는 했었거든요.”
신명순은 바다를 향해 서서는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희철이 신명순을 보며 말했다.
“명순 씨, 앞으로 갑갑하면 말해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운전기사 노릇은 언제든지 할 테니까요.”
“저는 단순히 운전기사는 싫어요.”
“네? 그 말씀은…….”
“오늘처럼 이렇게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한 겁니다.”
박희철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분명 지금 친구라고 했다. 그 말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박희철은 바로 물었다.
“명순 씨, 그 말이 사실입니까?”
“혹시 지난번에 저한테 칼국수 사주시던 날 기억하세요?”
“네, 기억합니다. 그날 명순 씨가 울고 있던 날이었죠.”
“맞아요, 그날 가게 때문에 속상해서 울고 있었어요. 그런데 회장님이 김치 칼국수를 두 그릇 주문한 후에 저에게도 한 그릇 먹으라고 했었지요.”
“그날은 뭐라고 위로의 말씀도 못 드렸습니다. 대신 얼큰한 칼국수를 드시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요.”
“그날 저는 느꼈어요.”
“네?”
“회장님이 따뜻한 분이란 걸 말입니다.”
박희철은 신명순을 바라봤다.
“명순 씨!”
“이제야 말이지만, 사실 그전까지는 회장님에 대한 소문이 많이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 경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소문이 바뀌기 시작하는 겁니다.”
박희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가 아마 현성을 만난 후였을 것이다. 사채 이자를 은행 이자로 바꿔주면서 사람들의 평가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할 때였다.
“그러셨군요. 솔직히 제가 그전에는 나쁜 짓을 좀 많이 저지르긴 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가요? 사람이 갑자기 변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게 그러니까…….”
박희철은 현성과 있었던 일에 관해 간단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박희철의 설명이 끝나자 신명순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러니까 결국은 회장님을 바꿔 놓은 사람이 우리 사장님이라는 말씀이네요?”
“맞습니다. 제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은 셈이죠. 아마도 김 사장이 없었다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게 예지몽이라는 꿈 때문이었다는 거고요?”
“네, 그렇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제가 산 증인이니까요.”
신명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의 예지몽에 대해서만큼은 신명순 자신 또한 믿을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자신이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라면 가게 자리를 자신에게 처음으로 권했던 사람이 현성이다.
이유는 그 자리가 대박이 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그런데 황당한 건 그 근거였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꿈에서 미리 봤다는 것이다. 즉, 자신은 예지몽을 꾼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느 누가 예지몽을 꾼다는데 그 말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말이다.
당연히 라면 가게 자리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현성은 그 자리에 자신이 직접 라면 가게를 오픈하고 말았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마치 그 예지몽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라면 가게가 대박이 난 것이다.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상권이었다. 2년이나 가게 문이 닫혀있었고 더군다나 골목 안쪽에 위치한 터라 사람의 접근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박이 난 것이다.
현성은 자신 스스로 보란 듯이 그 예지몽을 증명한 셈이 된 것이다.
신명순이 말했다.
“그런 이유가 있으셨군요.”
“사람이 죽음을 한 번 맛보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이더군요. 그때부터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 네…….”
신명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박희철이 갑자기 변한 이유를 알 듯싶었다. 어쩐지 사람이 너무 갑자기 변한다 싶었다. 역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박희철이 신명순을 바라봤다.
“명순 씨.”
“네?”
“많은 거 원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갑갑할 때면 함께 바다도 구경하고 가끔은 밥도 같이 먹고 또 때로는 소주도 한잔하면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되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친구요?”
“네!”
박희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신명순이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박희철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회장님, 지금 친구라고 하셨어요?”
“네, 명순 씨.”
“저는 그런 친구 싫은데요.”
“네?”
박희철은 깜짝 놀랐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조금 전 신명순이 보여줬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때 신명순의 말이 이어졌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아니, 그게…….”
“회장님도 참……, 굳이 그렇게 말을 돌릴 필요가 있나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박희철은 신명순이 무슨 말은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신명순이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회장님, 오늘이 첫날입니다.”
“네? 그 말씀은…….”
“정식으로 만나보자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젊은 것도 아니고 이 나이 먹고 굳이 서로의 감정을 속일 필요가 있을까요? 사실 오늘 강릉까지 회장님 따라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설마 제가 아무 생각도 없이 이렇게 멀리까지 따라왔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하셨겠지요?”
“그, 그거야…….”
박희철은 너무 당황스러워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인가.
혹시라도 부담스러워할까 봐 에둘러 말했다. 그런데 오히려 감정을 속일 필요가 없다니.
그 말은 신명순도 자신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감정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박희철은 신명순을 다시 바라봤다.
“명순 씨!”
“대신 조건이 있어요.”“조건이요? 뭐든 말씀만 하세요.”
“천천히 가요. 너무 서두르지 말고, 제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네! 명순 씨!”
박희철은 눈물이 나올 듯싶었다. 어젯밤 현성으로부터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라는 충고에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어렵게 친구가 되어 달라고 고백을 했다. 그런데 오히려 신명순은 굳이 감정을 속일 필요가 없다면서 정식으로 만남을 제안하고 있지 않은가.
‘설마 꿈은 아니겠지?’
박희철은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프다.
그렇다면 최소한 꿈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때 신명순이 말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명순 씨, 혹시 지금 이게 꿈은 아니죠?”
“네, 회장님.”
“어떻게 저한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죠?”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박희철이었다.
그때였다.
박희철의 옆구리로 뭔가 쏙 들어왔다.
신명순의 손이었다.
“어?”
“오빠, 우리 커피 마시러 가요.”
“오, 오빠요?”
“저도 부끄러우니까 모른 척 넘어가요.”
“하하, 하하하…….”
박희철은 갑자기 세상을 다 얻은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나란히 경포 해변을 빠져나와 커피숍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