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215)
회귀해서 건물주-215화(215/740)
215
잠시 후.
현성은 부엌에서 냄비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선생님도 저녁 안 드셨지요?”
“안 먹기는 했는데…….”
“라면 넉넉히 끓였으니까 같이 드세요.”
“그럴까 그럼.”
네 사람은 라면을 가운데 놓고 먹기 시작했다.
현성이 이진우를 보며 말했다.
“진우야, 많이 먹어. 많이 먹고 감기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
“형, 고마워요.”
“고맙긴 뭘, 배고플 텐데 어서 먹어.”
현성의 말이 떨어지자 이진우는 정신없이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라면을 거의 다 먹었을 때였다.
현성이 이민우를 보며 말했다.
“앞으로 어떡할 거야?”
“글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진우를 봐서라도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내 능력으론 방법이 안 보여.”
“혹시 반장님은 뭐래?”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왔다 가셨는데 행정상으론 해줄 게 없다고 안타깝다고만 하시더라고.”
이제 조금 있으면 겨울이다. 더군다나 강원도 시골이지 않은가. 적어도 다음 주부터는 난방을 해야 할 것이다.
현성은 다시 물었다.
“아까 부엌에 보니까 연탄도 없던데…….”
“그러게 말이다. 작년 같으면 벌써 연탄을 들여야 했는데 올해는 지원금이 없다 보니까 아직 못 들였어. 다음 주부터는 추워진다고 하는데 걱정이야.”
“최소한 하루에 두 장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물론 그러면 좋은데 우리 처지에 그렇게까지 땔 수는 없고 이틀에 세 장 정도만 있으면 돼. 불구멍만 잘 조절하면 가능하더라고.”
현성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고작 고등학교 2학년짜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치고는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신민호가 말했다.
“혹시 친척분들은 안 계시니?”
“작은아버지가 계시기는 한데 아버지하고 사이가 안 좋았던 터라 오시질 않더라고요. 저희도 아빠 장례식 때 한 번 봤어요.”
“그래도 조카들인데…….”
신민호는 말을 하다 말았다. 어차피 이 정도로 방치하는 상황에서 친척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아…….”
갑갑한지 신민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이민우가 말했다.
“그래서 신문이라도 돌려볼까 하고 알아봤는데 그것도 자리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신문을 돌린다고 하더라도 그 금액으로는 한 달 생활이 힘들 텐데…….”
“그렇기는 한데, 어쩔 수가 없어서……. 근데 그것조차 자리가 없다고 하니…….”
이민우가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진우가 말했다.
“형, 그럼 우리 어떡해?”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거 같은 이진우였다.
절망.
그 눈빛에서 느낄 수 있는 건 절망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의 고민도 깊어졌다.
문제는 임시로 한두 달 도와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정상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현성은 이민우를 바라봤다.
고개를 숙인 그의 모습에선 어떤 희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느낄 수 있는 건 두려움뿐이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
한참 고민을 하던 현성이 이민우를 불렀다.
“민우야.”
“어?”
“혹시 말이야, 학교 수업 끝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할 거야?”
“그거야 당연하지. 그런데 이 시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이민우는 간절한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했다.
“우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어때? 학교 수업 끝나고 저녁 7시까진데 할 수 있겠어?”
“그게 정말이야?”
“지금 일수가 하고 있기는 한데 한 사람 정도 더 필요하기는 하거든.”
“그렇게만 된다면 나야 더 이상 바랄 게 없지.”
이민우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월급은 한 달에 6만 원이야.”
“6만 원? 그렇게나 많이 줘?”
“일하는 일수에 비해서는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하지만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어.”
“그 정도면 많은 거지.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기껏해야 2, 3시간 정도밖에 안 되잖아. 더군다나 일요일은 쉬잖아.”
“그렇기야 하지만 한 달을 기준으로는 적은 금액이지. 대신에 보너스로 2만 원 정도 나갈 거야.”
이민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월급이 6만 원인데 보너스가 2만 원이라니 얼핏 들어도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물론 고정은 아니야. 매출에 비례해서 보너스를 주고 있는데, 지난달에 보니까 월 2만 원은 줄 수 있겠더라고.”
“결국, 다 합치면 8만 원은 된다는 얘기잖아.”
“그렇지.”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민우가 다시 말했다.
“8만 원이면 나하고 진우 생활비로는 충분하고도 남아. 지금까지 3만 원 가지고도 생활했는데 그 정도면 겨울 연탄까지도 걱정 없지.”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때 두 사람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이진우가 현성을 보며 말했다.
“형이 그 형이에요?”
“그 형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우리 반에서 형 얘기가 많이 떠돌았거든요.”
현성은 피식 웃으며 이진우를 바라봤다. 무슨 말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자 이진우가 바로 말을 이었다.
“우리 반 애들이 형을 보고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나를 뭐라고 부르는데?”
“괴물이라고 불러요.”
“괴물?”
현성은 처음 듣는 소리라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이진우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게 나쁜 뜻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괴물이라면서?”
“히히, 괴물은 괴물인데 능력자라는 뜻이에요. 형이 지난 중간고사에서 1등 했다는 소리를 듣고 애들이 형을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괴물이 그런 뜻이었어?”
현성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이진우가 신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잖아요. 장사도 이 동네에서 제일 잘되고 이젠 거기다 공부까지 1등을 하니까 그런 별명이 붙은 거예요. 그리고 참, 잔디파까지도 형이 접수했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이에요?”
“뭐? 잔디파?”
“네, 서명 중학교에 잔디파요. 걔들이 옛날에는 나쁜 짓만 골라서 하던 애들이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형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어쩌다 보니…….”
“역시 그 말이 사실이었군요?”
현성을 바라보는 이진우의 눈빛이 아까와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웃긴 건 이진우의 태도였다.
어느새 현성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현성이 물었다.
“갑자기 왜 무릎은 꿇고 그래?”
“저도 잔디파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뭐라고?”
“형이 거기 대장이니까 저도 들어가게 해주세요.”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바뀐 대화에 난감한 건 현성이었다.
현성이 난감해하자 이민우가 나섰다.
“야, 너 지금 갑자기 뭐 하는 거야?”
“형, 나 거기 들어가고 싶어서 그래. 형이 여기 형한테 얘기 좀 잘해주면 안 될까?”
어이없기는 이민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윽박지를 수는 없었다.
“도대체 거기는 왜 들어가고 싶은 건데?”
“요즘 제일 잘 나가거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옛날처럼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도 엄청 열심히 하고 게다가 요즘은 봉사활동도 하고 하여간 학교 내에서는 최고야.”
이민우는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물론 잔디파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불량써클로 소문이 자자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모임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런데 그 중심에 현성이 있는지는 몰랐다.
“야, 이진우. 그렇다고 이렇게 떼를 쓰면 어떡해?”
“여기 형이 대장이니까 그러는 거지.”
이민우는 어쩔 수 없이 현성을 바라봤다.
“현성아, 네가 뭐라고 말 좀 해야겠다.”
“나한테 얘기해도 소용없어. 어차피 거기 운영은 명수가 알아서 아는 거니까.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은 더 이상 사람을 뽑지 않는다는 거야.”
“이진우, 들었지?”
이민우는 이진우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이진우가 현성을 보며 다시 말했다.
“형 백으로도 안 되는 겁니까?”
“미안하다, 진우야.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형이 대장이라면서요?”
“그것도 사실과 다르고, 그리고 굳이 그런데 들어갈 필요 없어. 그냥 학교생활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 안 그래?”
“그래도…….”
끝까지 아쉽다는 듯 미련을 못 버리는 이진우였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물었다.
“진우 공부는 잘하니?”
“……아니요.”
“몇 등이나 하는데?”
“……그게 뒤에서 10등 정도요.”
이진우는 창피한 듯 간신히 말했다.
그러자 현성은 피식 웃었다.
“이거 어쩌나, 뒤에서 10등이면 형이 얘기해주고 싶어도 못 해주는데…….”
“그 말씀은 공부 잘하면 얘기해 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원래는 안 되지. 하지만 친구 동생이라 생각을 해볼까 했는데 이건 도저히 안 되겠는데. 너도 들어서 알 거 아니야? 요즘 잔디파 애들이 공부 열심히 한다는 거.”
“물론이죠. 그럼 몇 등이나 해야 얘기해 줄 수 있나요?”
나름 심각한 이진우였다.
그 모습을 보며 현성이 말했다.
“뒤에서 10등이 아니라 앞에서 10등, 그 정도는 돼야 이 형이 힘을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앞에서 10등이요?”
“왜, 힘들 거 같아?”
“아, 그게 좀…….”
이진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민우가 현성을 보며 눈짓을 하더니 말했다.
“진우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무리겠지?”
“형, 잠깐만 생각해보고…….”
이진우는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생각하는 듯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러기를 잠깐.
결심이라도 한 듯 이진우가 현성을 빤히 쳐다봤다.
“형, 약속은 틀림없이 지킬 거죠?”
“물론이지, 진우가 10등 안에만 들면 이 형이 어떡하든 힘을 써볼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저는 형만 믿어요.”
“알았다니까.”
“알았어요. 그럼 저 오늘부터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지금부터 열심히 하다 보면 올해는 힘들어도 내년이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이진우의 눈빛이 유난히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민우가 씩 웃으며 현성의 어깨를 툭 쳤다.
“고맙다, 아무쪼록 우리 진우 잘 부탁한다.”
“알았어. 그건 그렇고 너도 내일부터 바로 일할 수 있는 거지?”
“물론이지. 그런데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냐?”
“열심히 하면 돼. 그리고 내일 한 달 치 가불해 줄 테니까 먹을 거하고 연탄이랑 바로 들여놓도록 해.”
“일도 안 하고 염치없이 이렇게 받아도 되냐?”
이민우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미리 주는 것뿐인데 뭐. 그리고 이렇게라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 다행이다. 처음엔 진짜 앞이 캄캄하더라.”
“나야말로 진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네 덕분에 우리 두 형제가 살았다. 고맙다, 친구야.”
이민우는 현성의 손을 꼭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