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23)
회귀해서 건물주-23화(23/740)
헉!
자주색 추리닝의 손에는 어느새 잭나이프가 들려 있었다.
휙.
그가 오른손을 슬쩍 허공에 날리자 15cm정도 되는 칼날이 튀어 나왔다.
쉭쉭.
제법 손놀림이 예리하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다. 실제로 이런 걸 볼 줄이야…….
이런 건 딱 질색이다.
하지만 어쩌랴. 살아남아야 하니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현성은 눈에 힘을 바짝 줬다.
그러자 자주색 추리닝이 자세를 잡았다. 그런데 자세가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큭.
현성은 일부러 웃었다. 어떡하든 관심을 끌 목적이었다.
그러자 자주색 추리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상황에 웃어?”
“너, 초짜지?”
“뭐? 이 미친 새끼가 뒈질라고.”
자주색 추리닝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론 뜨끔했다. 현성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때려치우고 어쩌다 보니 이 짓거리를 하기는 하는데, 칼까지 써본 적은 없었다. 그저 지갑만 털면 그만이었다.
그렇다 보니 작업 대상자를 물색하는데도 신중을 기했었다. 행여나 쫒아오기라도 하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장장 4시간을 기다린 끝에 선택한 목표물이었다. 혼자이고 여자, 그리고 하이힐까지. 최상의 조건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갑자기 누군가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무서운 속도로.
어쨌거나 일은 벌어졌고 마무리는 해야 했다.
자주색 추리닝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엔 좀 더 신경 썼다.
현성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진짜 선수였다면 벌써 사달이 나도 났을 것이다. 이제 어떡하든 조금만 더 버티면 될 듯싶었다.
‘뭐로 시간을 끈다?’
어차피 이놈들의 목적은 돈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생각을 정리한 현성이 입을 열었다.
“어이, 10만 원 줄게.”
일단 세게 불렀다. 그래야 약발이 먹힐 거란 계산이었다. 물론 정말 줄 마음은 1도 없다. 단지 시간을 버는 게 목적이었다.
역시 돈이 좋긴 좋은가 보다.
상대의 눈빛이 흔들렸다.
현성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로 치고 들어갔다.
“10만 원 줄 테니까, 우리 선생님 지갑 주고 조용히 끝내자. 어때?”
“어쭈! 이 새끼, 대가리 굴리는 거 봐라. 누굴 바보로 알아?”
“왜? 없을 거 같아?”
툭툭.
현성은 자신 있게 배낭을 손으로 두드렸다.
그러자 자주색 추리닝이 말했다.
“지, 진짜야?”
역시 먹혔다.
단순한 놈이다. 이 정도라면 무난히 잘 마무리 할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쓰나미로 밀려왔다.
현성이 조금 전보다는 여유 있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일단 그 칼부터 치워라. 너나 나나 이런 식으로 인생 조질 수는 없지 않겠냐?”
“돈부터 확인하고.”
“아니, 칼부터 치우고.”
“돈 먼저!”
“칼부터!”
어차피 이미 전의를 상실한 놈이다. 아무리 세게 나온들 허세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럴 땐 살아온 세월이 유리했다.
스윽.
자존심은 있는지 자주색 추리닝은 어정쩡한 자세만 풀었다. 칼은 오른손에 여전히 쥐고 있었다.
현성은 다시 말했다.
“10만 원이 싫어?”
“아, 알았다. 약속은 지켜라.”
븅신. 약속이란다. 언제 봤다고…….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 마무리가 제일 중요하듯 현성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현성은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찌익.
타다닥.
그때 멀리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최소한 두 사람이 뛰어오는 소리, 아니 세 사람이다. 아마도 최미연 선생은 거리를 두고 뛰어오는 것일 테고.
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찌익.
현성은 다시 지퍼를 닫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세 사람. 자주색, 노란색, 그리고 현성한테 침을 뱉었던 파란색 추리닝까지.
그들의 얼굴 표정이 삽시간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때 자주색 추리닝이 현성을 보며 원망하듯 물었다.
“왜?”
“…….”
“야! 내 말 안 들려?”
자주색 추리닝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10만 원이 수중에 들어오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당분간은 이 일도 쉴 수가 있다. 아무래도 요즘 터미널 쪽 분위기가 별로 안 좋다. 그래서 오늘 이후로는 근신하려 했었다.
몇 달 작업을 했더니 소문이 돈 듯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현성이 없던 일이라도 되는 양 지퍼를 닫아 버리니 눈이 튀어 나올 판이었다.
반면, 현성은 그 반대였다.
피식.
현성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저 소리 안 들리냐?”
“무, 무슨 소리?”
자주색 추리닝의 귀에도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다.
순간 깨달았다.
“뭐야? 쇼였어?”
자주색 추리닝은 누군가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챘다.
“이런 개새끼가 어디서….”
지금까지 현성의 행동이 어떡하든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아챈 자주색 추리닝이다.
그러자 자주색 추리닝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이 개새끼! 사람을 가지고 놀았어?”
그 말을 끝으로 자주색 추리닝이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그의 오른손엔 칼이 들려있었다.
달려드는 자주색 추리닝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현성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좆됐다!”
마지막 순간 긴장을 너무 빨리 풀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미 늦었다.
쇄액.
자주색 추리닝의 칼이 현성의 오른쪽 옆구리를 향해 쇄도했다.
헉!
예상 박의 공격에 현성은 피할 수도 없었다. 당연한 거였다. 알고도 못 막을 텐데, 무방비 상태에서야 오죽하겠는가.
그 순간.
찌릿!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리고 그때 현성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닿았다. 바로 상대의 칼끝이었다.
“어?”
보였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칼끝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걸 막을 수 있을 거 같았다.
툭.
어깨를 틀며 오른손으로 상대의 손목을 가볍게 쳐냈다.
쨍그랑.
칼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현성이 이번엔 왼손으로 중심을 잃은 자주색 추리닝의 턱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빠각.
턱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짧은 단말마가 막다른 골목에 퍼져 나갔다.
“으악!”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 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파란색과 노란색 추리닝이다.
하지만 정작 더 놀란 건 현성이었다.
‘설마……, 나도 능력자?’
현성은 순간적으로 판타지에서 봤던 내용이 생각났다.
그때였다.
삑! 삑!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찰 두 명이 골목 안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물론 그 뒤에는 최미연 선생이 뛰어오고 있었다.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됐다.
초짜들이라 경찰을 보자 도망갈 궁리도 못 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경찰이 세 명을 추궁하는 사이 최미연 선생은 현성을 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현성아, 괜찮니?”
“왜 이렇게 늦었어요?”
“그게 말이야 …….”
신고는 바로 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디 있는지 모르니 골목마다 다 뒤졌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이 이곳이라고.
그래서인지 최미연 선생의 얼굴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때 경찰 한 명이 최미연 선생한테 지갑을 내밀며 말했다.
“이거 맞으시죠? 안에 내용물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혹시 없어진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최미연 선생은 지갑을 열자마자 뭔가를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지갑을 가슴에 품었다.
경찰이 이번엔 현성을 보면서 물었다.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골치 아팠는데 감사합니다.”
“혹시 쟤들 상습범입니까?”
하는 짓을 봐서는 초짜 같은데, 나름 치밀하게 작업을 한 걸 보면 그렇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현성은 물었다.
“자세한 거야 조사를 해보면 나올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터미널 주변에서 소매치기 때문에 골치가 아팠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수고가 많으십니다.”
“아, 그리고 몇 가지만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에 이름하고…….”
경찰은 현성한테 이것저것 묻더니 간단한 인적사항을 메모한 후, 세 녀석을 데리고 골목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현성이 그때 경찰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잠깐만요.”
“무슨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여기 파란 추리닝한테요.”
“아, 그래요?”
경찰이 수갑을 찬 파란 추리닝을 현성 앞으로 세웠다.
그러자 파란 추리닝이 현성을 째려보며 말했다.
“여우 같은 새끼! 나중에 보자.”
“…….”
어차피 의미 없는 얘기라 현성은 대답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대신 현성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카악.
퉤!
“침은 이렇게 뱉는 거야, 새캬!”
파란 추리닝의 눈알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듯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현성은 고개를 돌려 최미연 선생 곁으로 걸어갔다.
***
현성은 머리에 묻은 파란색 추리닝의 타액 때문에 여전히 찝찝했지만, 그나마 똥 씹은 얼굴로 사라지는 파란 추리닝을 보며 위안을 삼았다.
터미널 대합실로 들어온 현성은 버스 시간표부터 확인했다. 다행히도 막차가 출발하기까지는 30여 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매점에서 사이다 두 병을 샀다.
회귀하니 병 사이다를 다 마셔보고, 이런 맛도 쏠쏠했다. 마치 추억의 먹거리를 체험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현성은 빨대를 꽂아 최미연 선생한테 사이다를 내밀며 말했다.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최미연 선생님?”
“어머? 내가 사줘야 하는데……, 그런데 무슨 말투가 꼭 교장 선생님같이 그게 뭐야?”
“하하, 그런가요. 어쨌건 반갑습니다.”
“그래, 반갑다. 그리고 너무 고마웠어.”
최미연 선생은 지갑을 들어 보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물었다.
“지갑에 돈이 많이 들었었나 봅니다.”
“돈? 아, 난 또 뭔 소리라고, 돈 때문은 아니고 사진 때문에…….”
“사진이요?”
현성은 사진이라는 말에 조금은 의외였다. 그저 단순하게 지갑에 돈이 많았을 것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잠깐 생각하던 최미연 선생이 입술을 달싹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
“아빠 사진이야. 지난겨울에 돌아가셨거든.”
“아! 그러셨군요. 아버님이 아주 미남이셨죠?”
“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요? 선생님 얼굴이 이렇게 예쁜데, 딱 보면 척 아니겠습니까?”
현성은 사실이기도 했지만, 조금 전 최미연 선생이 얘기할 때 아주 잠깐이지만 흔들리는 눈빛을 봤기 때문이다.
지난겨울이라고 했다. 그 얘기는 최미연 선생의 아버지가 명을 달리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최미연 선생의 나이가 정확히는 몰라도 지금쯤이면 아마 30대 초반일 것이다.
많이 생각나고 그리울 것이다.
겪어보니 알겠더라.
불러도 대답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사람들은 보통 처음엔 자꾸 잊으려고만 한다. 그런데 그게 부질없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억지로 잊는다고 해서 잊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차라리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슬퍼하고 아파하고 소리쳐 울다 보면, 언젠가부터 아주 조금씩 그 정도가 약해진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