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237)
회귀해서 건물주-237화(237/740)
237
며칠 후.
현성은 복덕방으로 향했다. 박인수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기 때문이다.
드르륵.
현성이 복덕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박인수 사장이 반갑게 맞았다.
“김 사장, 어서 오게.”
“네, 식당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고요?”
“일단 이쪽으로 앉게.”
현성이 자리에 앉자 박인수 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가게를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기는 했는데 그게 문제가 좀 있네.”
“문제라니요?”
“보증금이 부족하다는구먼.”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얼핏 들어도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보통 일반적으로 가게를 시작하려면 임대조건이 있다.
그 기본이 보증금과 월세다. 그 기본적인 조건조차 갖추지 못하고 가게를 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현성이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거야 기본인데…….”
“그렇지 않아도 그 사람한테 그 소리를 했었네. 그런데 그 사람이 자네를 만나서 꼭 할 말이 있다는구먼. 그래서 자네를 부른 거네.”
“혹시 제가 아는 사람입니까?”
“글쎄, 그거야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조금 있다가 온다고 했으니까 잠깐만 기다려 보게.”
현성으로선 쉽게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지만 일단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후.
드르륵.
가게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왔다.
현성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남자에게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그 남자는 현성을 보자마자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인사를 했다. 그러자 현성도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다.
“네, 안녕하세요. 혹시 저를 보겠다고 하신 분이…….”
“네, 그렇습니다. 바로 접니다.”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사람은 현성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현성이 물었다.
“혹시 저를 아십니까?”
“물론입니다. 사장님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신지…….”
“우선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
그 남자는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신영훈, 나이는 25세, 군대를 제대한 지 1년이 지났다고 했다. 그리고 요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식당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신영훈의 간단한 자기소개가 끝나자 현성이 물었다.
“생각보다 젊으시군요?”
현성은 그 말은 물으면서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런 말을 묻기에는 자신의 나이가 상대적으로 너무 어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처음 식당을 한다고 했을 때 최소한 30대 중반은 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영훈이 현성을 보며 말했다.
“제가 이렇게 일찍 시작한 건 사장님 때문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현성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신영훈을 본 건 오늘 이 자리가 처음이다. 그런데 식당을 하게 된 동기가 현성 자신이라고 말을 하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영훈의 말이 이어졌다.
“TV에서 봤거든요.”
“TV요?”
“네, 사실은 앞으로 3년 뒤에나 식당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TV에 나오는 것을 보고 제 계획을 수정한 겁니다.”
“저로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갑니다만…….”
“물론 그러실 겁니다. 하지만 저에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장사를 한다는 자체가 제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TV에 나올 정도로 성공했다는 겁니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쪽 분야에 관심이 없었다면 얼마든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가기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영훈이 바로 후자의 경우라는 얘기다.
현성이 물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저 때문에 3년을 일찍 시작하기로 하셨다는 말씀인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요?”
“네, 바로 돈입니다. 3년을 앞당기다 보니 돈이 턱없이 부족한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사장님을 뵙자고 한 겁니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그러셨군요?”
“지금까지 제 설명을 들으셨으니 굳이 더 말씀을 안 드려도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아실 겁니다.”
“…….”
난감한 건 현성이었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말이다.
현성이 아무 말이 없자 신영훈이 바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건 100만 원이 답니다. 그나마 이것도 제대하고 지난 1년 동안 번 겁니다.”
“…….”
“보증금이 150만 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보증금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100만 원 중에서 보증금으로 드릴 돈은 전혀 없다는 겁니다.”
“…….”
현성은 대답 대신 신영훈을 바라봤다.
그러자 신영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보증금으로 드릴 수 없는 이유는 그 돈으로 영업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료도 사야 되고 시설도 갖추어야 하니까요.”
“그 말은 결국 보증금 없이 시작을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염치없지만 그렇습니다. 대신 월세를 5만 원에서 7만5천 원으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1년 뒤에는 보증금 전액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경우가…….”
물론 아무리 사정이 딱하지만 현성으로선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영훈이 말했다.
“물론 말도 안 된다는 거 저 자신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장님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지난번 방송에서 사장님이 하신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네? 제가 무슨 말을 했기에…….”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히 방송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났기 때문이다.
신영훈이 말을 이었다.
“기억 안 나십니까?”
“솔직히 기억이 안 납니다.”
“음식은 열정으로 만드는 거라고 하신 말씀, 기억 안 나십니까?”
“아, 그 말이요?”
현성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
리포터가 물었을 때 분명히 그런 말을 했었다.
신영훈의 말이 이어졌다.
“사장님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거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자리를 물색하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에 터미널 옆에 식당 자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또 공교롭게도 사장님의 건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아, 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계획을 3년이나 앞당기다 보니 돈이 턱없이 부족한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포기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겁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이렇게 용기를 내서 달려왔습니다.”
신영훈은 자신의 말이 끝나자 현성 앞으로 노트 한 권을 내밀었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물었다.
“이게 뭡니까?”
“제 열정입니다.”
“열정이요?”
“네, 지금으로선 제가 사장님께 보여드릴 게 그거밖에 없습니다. 제가 비록 돈은 없지만 열정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니 그거라도 보시고 판단해 주십시오.”
신영훈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샤락.
현성은 노트 첫 장을 넘겼다.
‘어?’
노트를 바라보는 현성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신영훈이 내민 노트에는 사업계획서와 시장조사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중에 현성의 시선이 끌리는 건 시장조사 내용이었다. 거기에는 열흘 동안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시간대별로 유동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성별과 연령대별로 상세하게 적혀있다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음식의 종류도 선호도에 따라 정리돼 있었다.
노트의 내용을 전부 확인한 현성은 신영훈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걸 다 혼자 직접 하신 겁니까?”
“네, 열흘 동안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컵라면 먹으면서 직접 작성한 겁니다.”
“하루에 15시간씩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 시간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저에겐 그 시간이 바로 희망이었거든요.”
“아, 네…….”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추운 겨울날 하루에 15시간씩이나 밖에서 시장조사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자그마치 열흘씩이나 말이다.
그런데도 그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는 건 그만큼 열정이 넘쳐난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신영훈의 입장이 그만큼 절박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열정과 절박함, 신영훈이 보여준 모습이었다.
현성은 신영훈을 보며 말했다.
“대단하시네요.”
“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을 위해서라도…….”
“그 말은…….”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한 분 계시는데 좀 편찮으십니다. 그렇다 보니 제가 가장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아, 그러셨군요.”
현성은 그제야 신영훈이 왜 그토록 절박한 심정이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현성은 다시 물었다.
“조금 전에 노트를 보니까 음식들이 적혀 있던데 그건 뭡니까?”
“무엇을 팔 건지 선택하기 위해서 설문을 한 겁니다.”
“그래서 결론은…….”
“제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칼국수입니다. 여러 가지를 놓고 설문을 해봤는데 그중 많은 사람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칼국수였습니다. 그리고 다행인 건 이 동네에서 칼국수를 파는 곳이 없다는 겁니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까지 칼국수를 팔던 곳은 오상철이 운영하던 상미식당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이 동네를 떠났으니 더 이상 칼국수를 파는 곳은 없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신영훈이 칼국수를 선택한 것은 잘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그 칼국수 하나로 가게가 운영이 될 것인지 그것이 문제일 것이다.
현성이 물었다.
“칼국수 하나로 운영이 되겠습니까?”
“제가 분석한 결과로는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물론 그건 터미널이 있기에 가능한 거고요. 만약 터미널이 없었다면 당연히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렇겠지요.”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작은 시골 마을이라지만 터미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클 것이기 때문이다.
신영훈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사장님의 결정만을 기다리겠습니다.”
“…….”
현성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잠시 후.
현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네!”
신영훈의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만큼 긴장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의 그 열정 끝까지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제 이름 석 자를 걸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 열정을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그 말씀은…….”
신영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신 사장님의 그 열정을 보증금으로 대체하겠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월세도 그냥 5만 원으로 하겠습니다. 부디 장사 잘하시고 보증금은 1년 뒤에 받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대신, 그 열정 식으시면 절대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을 두고 잊지 않겠습니다.”
신영훈은 현성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때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인수 사장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계약은 처음 보네. 보증금 대신 열정이라니……, 허허!”
현성은 그런 박인수 사장을 보며 말했다.
“열정이 어찌 돈보다 못하겠습니까?”
“허허, 알겠네. 나는 계약서나 준비하겠네.”
잠시 후.
현성은 계약서 한 장을 신영훈에게 내밀며 말했다.
“멋지게 꼭 성공하십시오.”
“네, 사장님의 그 판단이 옳았다는 걸 꼭 증명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현성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신영훈은 현성의 손을 덥석 잡았다.
두 사람의 인연이 새롭게 시작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