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24)
회귀해서 건물주-24화(24/740)
최미연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뭐야, 김현성?”
“왜요?”
“방학 동안 사람이 이상해졌어. 원래는 말도 별로 없었잖아.”
“그랬나요?”
현성은 그냥 모른 체했다.
최미연 선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안다. 굳이 그렇다고 뭐라 설명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필요성도 없으니 말이다.
어차피 현성 자신의 예전 모습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건 앞으로 문제 될 게 없다. 중요한 건 앞으로니까 말이다.
그때 최미연 선생이 현성을 보며 다시 물었다.
“김현성, 내가 아까 많이 놀랐던 거 알아?”
“그렇겠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얘기하는 거 아닌데…….”
“네? 그럼 뭐 다른 게 있습니까?”
최미연 선생은 잠깐 시간을 둔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아까 대합실에서 어떻게 그렇게 바로 뛰어나갈 수가 있어? 그러다 그놈들한테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아, 저는 또 무슨 소린가 했습니다. 선생님이니까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다름 아닌 최미연 선생님이니까요. 이유는 그거 하나뿐입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저도 모른 체했을 겁니다.”
현성의 대답을 들은 최미연 선생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 녀석 뭐야?’
설마?
최미연 선생은 괜히 뭐라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 고2, 어쩌면 한창 예민할 시기다.
헐!
그런데 갑자기 얼굴에서 열감이 느껴지는 건 또 뭔지?
미쳤나 보다.
쪼록쪼록.
최미연 선생은 목이 타는지 사이다를 쪽쪽 빨아먹기 시작했다.
그때 현성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죠? 혹시 제가 선생님을 어쩌고저쩌고 뭐 그런 거 말입니다.”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데 왜 얼굴이 빨개져요?”
“내가 언제?”
최미연 선생의 강한 부정이 더 어색해 보였다.
피식.
현성은 웃으며 다음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이미 마누라가 있는 몸입니다.”
“뭐? 뭐가 있어?”
“이름은 윤지수, 나이는 저보다 7살 연상, 비가 오는 날이면 김치전 해줄 사람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현성은 아내 윤지수가 더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직 그녀를 만나려면 최소한 15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현성의 엉뚱한 말에 최미연 선생은 황당하기만 했다. 어느 정도 말이 돼야 대꾸를 하든 말든 할 텐데, 이건 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도 유분수지…….
최미연 선생이 아무 말이 없자 현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헛소리가 좀 심했죠?”
“난 무슨 소린지…….”
“그죠! 잠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들었네요.”
말도 안 되는 소리도 헛소리도 아니다. 어쩌다 어른이 아니라 어쩌다 회귀를 했는데 그걸 설명할 방법이 없을 뿐이다.
현성의 헛소리에 잠깐 말이 없던 최미연 선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아까 하던 얘기 마주 해봐. 왜 나니까 당연했는지?”
최미연은 궁금했다.
분명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현성은 망설임 없이 바로 뛰어나가는 걸 분명히 두 눈으로 직접 봤다.
사람은 위험 앞에선 누구나 움츠리게 된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그 얘기는 뭔가 있다는 얘기다.
최미연 선생은 지금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것이다.
현성은 최미연 선생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선생님은 달랐습니다. 저는 그걸로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혹시 기억하십니까? 아주 오래전에…….”
현성은 최미연 선생한테 오래전 기억 하나를 끄집어내 말해 주었다.
아마도 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고 며칠 지났을 때였다. 현성이 많이 아픈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학교를 일주일 동안 가지를 못 했었다.
그때 집으로 전화해줬던 사람이 있었다. 딱 한 사람, 그게 바로 최미연 수학 선생이었다. 심지어 담임도 연락이 없었다.
물론 별건 아니다. 의무사항도 아니니 말이다.
누구를 원망하고 싶지도 않다.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는 상황이니 뭐라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기억하는 것 또한 현성의 자유다. 고마웠으니까 말이다.
현성은 다시 말을 이었다.
“선생님만 유일하게 연락 주셨거든요.”
“그거야 선생으로서 걱정이 되니까…….”
“그러니까요. 그때 걱정해 주신 분이 한 분뿐이었거든요. 그래서 고맙다는 겁니다.”
“그런 걸 뭘 그렇게까지 기억하고 그래? 그리고 담임 선생님도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거로 아는데…….”
“다 지난 일입니다.”
최미연 선생도 현성이 얘기하니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학생 주임한테 물어보니 부모님으로부터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때 현성의 담임은 집안에 일이 있다고 학교에 없었다.
그때 현성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호의는 받은 사람이 기억하는 겁니다.”
“받은 사람이 기억한다?”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베푸는 사람이야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경우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거든요.”
“그럴 수도 있긴 하지.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 밥 한 그릇의 가치가 같을 수는 없을 테니까.”
최미연 선생도 고개를 끄덕이며 현성의 말에 동조했다.
그러자 현성이 말을 다시 이었다.
“그렇죠. 특히 사람이 아플 때는 더 그렇더라고요. 참! 그러고 보니 그때는 쑥스러워 감사하다는 말씀도 못 드렸네요. 늦었지만 정말 고마웠습니다.”
“호호, 참 별소릴 다 하네. 그런데 내가 알던 김현성 맞는 거지?”
최미연 선생은 눈앞에서 보면서도 꼭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전의 김현성이 아니다. 그때는 못 했는데 지금은 한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래 봐야 몇 개월이나 차이가 난다고…….
현성이 회귀한 줄 모르는 최미연 선생으로선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때 현성이 다시 말했다.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뭐가?”
“수학 공부요.”
“아하, 그랬구나.”
최미연 선생은 그제야 현성의 수학 점수가 잘 나온 이유를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어쩐지 조금은 이상하다 싶었다. 수업 태도는 기본이고 시험 점수도 눈에 띌 정도로 좋았었다.
“그땐 그게 저의 표현 방법이었습니다.”
“그랬구나….”
“이제부턴 말로 표현하면서 살려고요. 고마우면 고맙다, 서운하면 서운하다. 뭐 이렇게요. 그래야 상대방이 알더라고요.”
현성은 씩 웃으며 최미연 선생을 바라봤다. 그러자 최미연 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 현성 자신도 모르게 장난기가 발동했다.
찡긋.
현성은 한쪽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자 최미연 선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너어?”
현성은 갑자기 그 순간에 여배우 김하늘이 생각났다.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한때 꽤나 유행했던 말이다. 물론 한참 후에나 있을 일이지만…….
킥킥.
현성은 혼자 웃었다.
그때 서명 들어가는 막차가 터미널로 막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연 씨 갑시다.”
“너 자꾸 …….”
현성이 앞장서고 최미연 선생이 그 뒤를 따랐다. 어쨌거나 현성은 밀린 숙제를 하나 해결한 듯하여 발걸음이 가벼웠다.
***
두 시간쯤 지나자 버스는 서명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최미연 선생을 먼저 보내고 현성은 정육점에 들렸다가 집으로 향했다.
“다녀왔습니다.”
현성의 목소리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방문을 열며 뛰어나왔다. 하루 종일 얼마나 기다렸을지 안 봐도 눈에 선했다. 아마도 하루가 참으로 길었을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현성을 보며 거의 동시에 말했다.
“저녁은?”
“배고프겠구나.”
의외였다.
당연히 서울에 간 결과부터 물어볼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자식 저녁부터 챙기는 부모님을 보며 현성은 새삼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역시! 부모의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은 끝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현성이 또 누구인가.
어쨌거나 50줄 넘게 살았던 현성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궁금해할 걸 뻔히 알면서 밥부터 먼저 먹을 철없는 얘도 아니지 않은가.
현성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이쪽으로 먼저 앉아보세요.”
현성은 아버지 어머니한테 서울에 갔던 결과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입이 떡 벌어졌다.
역시 어머니의 반응이 빨랐다.
“정말이야?”
“어머니, 정말입니다. 제가 설마 헛소리를 하겠습니까?”
현성은 봉투 하나와 농협 통장을 두 사람 앞에 내려놓았다. 봉투에는 사채업자 박희철한테 갚을 현금이고 나머지 금액은 통장에 입금한 그대로였다.
솔직히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농협과 박희철의 빚을 정리하고 나면 남는 금액은 2백 정도가 된다.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다. 그렇다고 또 뭘 하기에는 애매한 금액이다.
그리고 어쨌거나 지금은 고등학생, 제약도 너무 많다.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 부모님께 드리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나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그때부터 시작해도 충분하리라는 생각이었다.
현성이 내민 봉투와 통장을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쳐다볼 뿐, 선뜻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 마음을 모르겠는가.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입장, 그리고 부모로서의 자책감 등등.
아마도 여러 가지 생각이 있을 것이다.
이건 고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못나거나 게을러서도 아니다. 가난이 죄는 아니지 않은가.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봉투는 박 씨 아저씨한테 갚을 거고, 통장엔 나머지 금액 전부입니다.”
“이걸 어떻게 내가 …….”
아버지는 여전히 양손만 만지작거릴 뿐, 조금 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잠시 그렇게 말이 없던 아버지가 어렵게 입을 뗐다.
“아비가 못나서 미안하구나.”
“아버지,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버지 열심히 사신 거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그런 말씀 마시고 기분 좋게 받아주세요.”
그때 옆에 있던 어머니가 망설이다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그래요, 여보. 현성이가 고생해서 만들어 온 건데 고맙게 받아요. 그래야 현성이도 보람 있고 기분 좋지 않겠어요?”
“당신까지…….”
아버진 여전히 손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현성은 생각했다.
아버지 성격상 저걸 그냥 받는다는 건 힘들 것이다. 이대로 시간을 더 끈다는 것은 정말 아버지한테 오히려 죄를 짓는 것이다.
현성 자신도 잘나서도 아니고 그저 회귀한 덕분에 얻은 것뿐이다.
그렇다면 이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잠시 생각하던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현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 어머니 갑시다!”
현성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두 사람은 현성을 빤히 쳐다봤다. 어디를 가자는 건지 묻는 것이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했다.
“박 씨 아저씨네 갑시다.”
그제야 두 사람은 현성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챘다.
이번엔 아버지가 결심이라도 한 듯 당차게 현성의 말을 받았다.
“그래! 그러자꾸나. 이렇게 된 거 기분 좋게 빚부터 정리하자.”
“역시 우리 아버집니다.”
“미안하다 아들아. 자식 앞에서 못난 아비가 쓸데없이 자존심만 내세웠구나. 결국 이렇게 받을 거면서 말이다.”
아버지는 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웠다.
염치가 없었다.
어린 자식한테 벌써 이게 뭔 짓인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문제는 욕심이었다.
말은 못 했지만, 저것만 있으면 이 지긋지긋한 빚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흔들린 건 사실 이었다.
그래도 꼴에 마지막 양심이었을까.
끝까지 통장은 차마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때, 어머니가 분위기에 한 손 거들었다.
“현성아, 앞장서라.”
“넵. 어머니!”
현성은 일부러 힘차게 대답을 하고는 앞장섰다.
그러자 바로 어머니가 현성을 뒤따랐고, 아버지도 곧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잠시 걷던 어머니가 아버지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여보!”
“왜?”
“어깨 펴고 이렇게 당당하게, 알죠?”
“그려…….”
짧은 대화였지만, 두 사람의 지금 심정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현성은 못 들은 척 발걸음을 조금 빨리하는 거로 마음을 대신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마음이었다.
잠시 후.
“형님 계시오?”
아버지가 사채업자 박희철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큰소리로 불렀다. 항상 박희철 앞에선 움츠려있던 아버지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어디에서도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방 안에 있던 박희철은 무슨 일인가 싶었다.
“누구여? ……아니, 동생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볼 일이 있어서요. 잠깐 나와 봐요.”
마루로 나온 박희철은 어머니와 현성까지 보이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제수씨도 오셨네요. 현성이도 왔냐?”
“네.”
“아니 이렇게 온 식구가 어쩐 일이신가?”
박희철은 현성이네 식구를 다시 한 번 둘러보며 여전히 뚱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주 전에 현성한테 당했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잠시.
박희철은 현성을 보며 빙긋 웃었다.
여유?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조소였다.
그 웃음의 의미를 모를 리 없는 현성.
피식.
현성은 가볍게 웃어 넘겼다.
오히려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봐야 이제 며칠 남지도 않은 인생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쯧쯧…….”
현성은 혀까지 찼다.
그러자 박희철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뭐가 그리 안타까운가?”
“아저씨요.”
“나? 내가 왜?”
“그런 게 있습니다. 한숨밖에 안 나오네요.”
사실이었다. 초상이 나도 사람이 없어 상여도 가족들이 메고 나갈 모습을 생각하니 더 뭐라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