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247)
회귀해서 건물주-247화(247/740)
247
시간은 흘러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저녁.
딸랑.
가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어? 선생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담임 신민호였다.
“잘 있었냐?”
“네, 그런데 언제 내려오신 겁니까?”
“다음 주가 개학이라 짐 좀 정리할 게 있어서 왔다가 들렀다.”
“짐이요?”
현성은 짐이란 말을 듣는 순간 뭔가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담임 신민호의 전근(轉勤)이었다.
전생에서 신민호는 새 학기를 맞아 다른 학교로 전근을 하게 된다. 그동안 그 사실을 잊고 있었는데 짐이란 말을 듣는 순간 바로 생각난 것이다.
현성이 바로 물었다.
“전근을 가시는 거죠?”
“어? 어떻게 알았어?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는데…….”
“조금 전에 짐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전근이 아니라면 굳이 짐을 정리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허허,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건가.”
신민호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영월.”
“멀리 가시네요. 그럼 봄방학이 시작되면 바로 가시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사실은 그래서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오늘 여기 온 거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한테는 미리 얘기는 해야 할 거 같아서 말이야.”
이별.
전생에서 많은 종류의 이별을 경험했지만 무뎌지지 않는 감정 중의 하나가 이별의 슬픔이다. 물론 전생에서는 신민호와의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 그저 학생과 선생이라는 형식적인 관계일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안 보이기에 다른 곳으로 간 줄 알 정도로 무관심했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선 다르다.
많은 대화를 나눴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신민호가 직접 찾아온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관계가 특별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현성은 신민호를 보며 말했다.
“나가시죠.”
“응? 어디로?”
“저녁 한 끼라도 제대로 대접해 드려야죠. 여기서 선생님과 이렇게 마무리를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은 가게를 나와 미소식당으로 향했다.
미소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은 두 사람.
현성이 먼저 물었다.
“등심 괜찮으시죠? 참, 혹시나 해서 미리 말씀드리는데 계산하실 생각은 마십시오. 오늘은 어디까지나 제가 준비한 자리입니다.”
“그건 아니지. 그래도 내가 선생인데…….”
“그런 말씀 마십시오. 오늘은 제가 아쉬운 마음에 모시는 자립니다. 부디 영월에 가시더라도 건강하시고 학교생활 잘하시라고 말입니다.”
“그래, 알았다. 하여간 말하는 거 보면 애늙은이가 따로 없다니까.”
“애늙은이요? 하하…….”
현성은 웃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아무리 겉으로는 학생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신민호보다 20년은 더 살았으니 말이다.
주문이 끝나자 신민호가 현성을 보며 말했다.
“사실은 떠나기 전에 너한테 꼭 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다.”
“혹시 뭐 제가 서운하게 한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사과할 일이 있어서…….”
“사과요?”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얼핏 생각해도 신민호가 자신한테 사과할 일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신민호가 바로 말을 이었다.
“수혁이가 아파서 병원에 실려 가던 날 기억하지?”
“물론이죠.”
“너는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내가 네 앞에서 큰 실수를 했다.”
“실수요? 무슨 실수요?”
현성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신민호가 바로 말했다.
“내가 네 앞을 가로막았잖아?”
“그거야 선생님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잖아요. 그게 무슨 실수예요?”
“혹시 그때 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현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그땐 하도 정신이 없던 상황이라 무슨 말씀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요.”
“혹시라도 수혁이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너보고 책임지라고 했었는데, 기억 안 난단 말이지?”
“물론이죠. 그 상황에 그게 생각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죠. 그런데 그게 어떻다는 겁니까?”
“그게 선생으로서 학생한테 할 말이냐?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알게 됐어.”
신민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일부러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까 유일하게 양심에 걸리는 게 그거더라고. 어떻게 선생이 그 상황에 너한테 책임을 떠넘길 생각을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더라고. 그래서 떠나기 전에 그 말에 대해서만큼은 꼭 사과를 하고 싶었어.”
“저는 기억도 못 하는데…….”
“아니, 기억하고 못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생이란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현성아, 그땐 정말 미안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용서를 구하마.”
신민호는 현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지금 신민호는 누군가에게 용서를 빌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일 것이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 양심의 고백처럼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성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일 것이다.
현성은 신민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자격이 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그 말씀 받아들이겠습니다.”
“용서를 해주겠다는 거지?”
“네, 선생님. 그러니까 이제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동안 충분히 마음고생 하셨습니다.”
“…….”
신민호는 말이 없었다.
그러기를 잠깐.
신민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맙다. 이제야 내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구나. 사실 그동안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혼자만 속앓이를 했었다.”
“그러셨군요.”
“몇 번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게 또 뭐라고 용기가 나지 않더구나. 하지만 이젠 떠난다고 생각하니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오늘 이렇게 찾아오게 됐다.”
“잘하셨습니다. 이제라도 마음의 짐을 덜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때였다.
드르륵.
문이 열리면서 권오영 사장이 주문한 고기를 들고 들어왔다.
현성이 권오영 사장을 보며 말했다.
“사장님, 오늘 고기가 좋아 보입니다.”
“허허, 특별히 신경 좀 썼네.”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현성은 바로 등심을 불판에 올렸다.
치이익.
등심은 소리를 내며 익기 시작했다.
현성은 신민호를 보며 말했다.
“선생님, 한잔 받으십시오.”
“그래, 그러고 보니 현성이 따라주는 술도 오늘이 마지막이로구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영월에 가시더라도 부디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많이 생기시기 바랍니다.”
“고맙다. 그동안 네 덕분에 2학년 2반 담임하면서 즐거웠다. 앞으로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하는 사업도 잘되길 바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빙긋 웃었다.
전생에서는 그저 스쳐 갔던 인연이었지만 이번 생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두 사람이었다.
신민호와 헤어진 후 가게로 향하던 현성.
복덕방 앞을 막 지날 때였다.
박인수 사장이 지나가던 현성을 불렀다.
“김 사장, 잠깐만.”
“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잠깐 들어오게. 자네한테 할 말이 있네.”
현성은 복덕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바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혹시 민두식이란 사람을 아는가?”
“민두식이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런데 그 사람이 왜요?”
“그 사람이 낮에 왔다 갔는데 자네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민두식이란 사람의 기억은 없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신의 얘기를 했다고 하니 현성으로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현성이 물었다.
“주로 무슨 얘기를 하던가요?”
“라면 가게 얘기를 주로 하더군. 장사는 잘되느냐, 맛은 어떠냐 등등.”
“이 동네 사람인가요?”
“그건 아닌 거 같더라고. 자기 말로는 몇 개월 전에 자네를 만났었다고 하던데.”
“글쎄요, 이름만 들어서는 모르겠는데요. 그나저나 그 사람은 이 동네에 왜 왔대요?”
“상가를 하나 보고 갔네.”
현성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했다. 상가를 봤단 얘기는 장사를 하겠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가진단 말인가.
현성으로선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상가요? 그 말은 가게를 할 생각이 있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렇겠지.”
“그렇다면 어느 상가를 봤다는 얘깁니까?”
“삼거리에 있는 옷가게였네. 얼마 전에 옷가게 사장님이 가게를 내놨거든.”
“옷가게요? 그럼 그 사람도 옷가게를 한다는 말인가요?”
“그건 아닌 거 같더라고. 그런데 이상한 건 자네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물었다는 거네. 그래서 내 생각엔 혹시 음식점을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자네를 부른 거네.”
찝찝한 건 현성도 마찬가지다.
삼거리일 경우 현성의 가게와 불과 5분 거리밖에 안 된다. 만약 음식점이라도 들어온다면 현성의 가게와 상권이 겹칠 수밖에 없다.
물론 일반 식당이라면 현성과는 별 상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라면 가게라도 들어오게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같은 상권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손님은 나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성이 물었다.
“그 가게가 몇 평이죠?”
“40평.”
“가게가 생각보다 크네요?”
“이 동네에서는 아마 제일 클 거야. 그리고 그 자리가 삼거리라 장사가 곧잘 됐었거든. 근데 그 여사장이 2년 전에 홍천 읍내에다가 가게를 하나 더 내면서 여기 가게가 죽기 시작했거든. 양쪽 가게를 관리하다 보니 아무래도 가게에 소홀하게 되면서 손님이 점점 줄기 시작하더니 결국 지난달에 가게를 내놓더라고.”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가게를 늘린 게 패착이었군요?”
“그런 셈이지. 그래서 자고로 사업을 확장할 때는 조심해야 하는 거야.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모든 장사가 사장이 있는 거 하고 종업원이 있는 거하고는 차이가 나는 법이거든.”
“그건 그렇고 월세도 만만치 않을 거 같은데요.”
“보증금 200에 15만 원이야. 거기다 상권이 괜찮다 보니 권리금까지 있거든.”
“권리금은 얼마나……?”
“100만 원.”
피식.
현성은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100만 원이요? 이 한겨울에 시골에서 그 돈 주고 그 가게를 얻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건 또 모르는 거거든.”
“물론 그렇겠죠. 그런데 아까 그 사람은 뭐라고 하고 갔어요?”
“생각해 본다고 하더군. 자기 말로는 뭐를 더 확인할 게 있다고 하더라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확인이 끝나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네.”
“전혀 생각이 없는 건 아니라는 얘기네요?”
“그런 거 같네. 근데 궁금한 건 과연 그 자리에서 그 비싼 월세를 내면서 장사할 수 있는 업종이 있겠냐는 것이지.”
그건 현성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상권이 좋다고는 하지만 시골이라는 특성상 그만한 월세를 감당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두고 보면 알겠죠. 어쨌거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려, 혹시나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그리고 설사 누가 들어오더라도 김 사장은 문제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동종 업종이 들어온다면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누군가 들어오면 경쟁을 할 수밖에요. 일단 지켜보자고요.”
현성은 인사를 한 후 복덕방을 나와 가게로 향했다.
현성이 골목으로 막 들어섰을 때였다.
‘누구지?’
어떤 남자가 현성을 기다리는 듯 라면 가게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현성이 가까이 가자 그 남자는 현성을 보며 씩 웃었다.
“오랜만이군.”
“아니, 당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