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25)
회귀해서 건물주-25화(25/740)
그때 아버지가 박희철을 보며 말했다.
“빚 갚으러 왔습니다!”
“……빚?”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평상시와 다르게 강한 힘이 느껴졌다.
반면 박희철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 현성이 한 말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데, 그 애비라는 작자까지 이상한 소리를 해대니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박희철은 혹시나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지금 빚을 정리한다고 했나? 그러니까 갚겠다는 거지?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박희철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자 이번엔 어머니가 갑갑하다는 듯 박희철을 보며 말했다.
“아니, 사람이 왜 말귀를 한 번에 못 알아들으세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습 펀치였다.
“헉! 제수씨 무슨 그런…….”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일격에 박희철은 어이가 없어 어머니를 빤히 쳐다봤다. 놀란 건 박희철뿐만이 아니었다.
풉.
현성은 얼른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다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질질 새는 웃음을 막기 위해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흠흠…….”
박희철이라고 그것을 모르겠는가. 불쾌한 감정을 헛기침으로 대신했다.
그때 아버지가 다시 나섰다.
“형님, 얼른 끝내죠.”
“어? 그, 그래. 잠깐만……, 아니 밖에서 이러지 말고 방으로 들어가지.”
아버지는 현성을 바라봤다.
절레절레.
현성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말도 섞기 싫은 인간하고 좁은 방안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쉬워서 돈 쓴 거는 인정한다. 하지만 한동네에 살면서 박희철의 악질적 행태는 결코 용납이 안 되는 부분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해선 안 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러자 아버지가 알았다는 듯 말했다.
“아무래도 이 사람들이 다 들어가는 건 좀 아닌 거 같네요.”
“알았네.”
박희철은 짧게 대답한 후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온 박희철은 문 쪽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현성도 현성이지지만 현성 의 어머니 행동이 아주 괘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뭐라 말할 수도 없고, 뭐라 한마디라도 했다가는 입 다물고 있는 현성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저번에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차라리 빌미를 주지 않은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박희철은 장부를 들고 방을 나왔다.
아버지는 꼼꼼히 장부의 내용을 확인 후, 현성을 슬쩍 쳐다봤다.
한 번 보라는 얘기다. 틀림이야 없겠지만 현성의 도움으로 청산하는 것이기에 어쩌면 고마움에 대한 마음의 표시라 생각되었다.
현성이 장부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는 봉투를 박희철한테 내밀었다.
“형님, 여기요.”
박희철은 봉투 안에 금액을 확인 후 아버지를 빤히 바라봤다. 금액이 안 맞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현성이 입을 열었다.
“아저씨, 이자는 제가 적당히 계산해서 넣었습니다. 그게 맘에 안 들면 법대로 하시던가요.”
“뭐 법?”
누가 봐도 도발이었다.
박희철은 현성을 힐끔 쳐다봤다. 현성도 그런 박희철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잠깐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이자? 금액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인간한테만큼은 단 1원도 더 주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전생에서 당한 서러움을 이렇게라도 해서 되돌려주고 싶었다. 비록 성에는 안 차지만 지금으로선 이렇게라도 해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
끄응!
박희철의 하얀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다.
‘이놈 뭐냐?’
도대체 감이 잡히질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는 사람을 꼼짝 못 하게 만든다. 조금 전에 이자만 해도 그렇다. 당연히 장부에 보다시피 쌍방 간에 합의한 내용이다.
그런데 그걸 싹 무시했다. 그래놓고는 법대로 하란다.
이놈은 지금 상대가 어찌 나올지 뻔히 알고 있다. 즉,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도대체…….
그때 아버지가 박희철을 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는 가보겠습니다.”
“어? 그, 그래.”
아버지가 막 떠나려하자 그 옆에 있던 어머니가 박희철을 보며 말했다.
“그거 주세요.”
“네? 제수씨. 뭘 말인가요?”
“차용증이요.”
“차용증이요? 여기에 보면 변제했다고 적혀있는데, 굳이 그걸 가져가실 필요가…….”
박희철은 황당했다. 지금까지 차용증을 달라는 사람은 없었다. 간혹 영수증을 요구하는 사람은 있어서 써준 적은 있었다.
차용증은 항상 자신이 보관하고 있었다. 나중에 대출시 참고하기 위함이었다.
급한 마음에 박희철이 바로 말을 다시 이었다.
“저기 영수증 적어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이건 제가 보관하는 것이라…….”
“아니요, 그걸로 주세요. 흔적 남기기 싫어서 그러는 거니까 차용증 그냥 주세요. 우리 현성이 아버지가 그거 때문에 얼마나……, 됐고요, 빨리 그거 그냥 주세요.”
“아, ……네.”
박희철은 어쩔 수 없이 장부에서 차용증을 빼 현성이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툭!
그러자 어머니는 차용증을 낚아채듯 받아서는 아버지에게 바로 건넸다.
“당신이 가져가세요.”
“그려, 내가 잊지 않고…….”
“아니요, 잊으세요. 집에 가서 태워버립시다. 갑시다, 여보.”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를 보여주는 어머니였다.
잊으라는 그 말 한마디가 아버지한테는 더욱 쓰라리게 들리겠지만 현성으로서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현성은 돌아서기 전 박희철을 한 번 더 바라봤다.
주섬주섬.
그 와중에도 봉투를 챙기고 있는 박희철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따라 그 모습이 더욱 안쓰러워 보였다.
어차피 저 돈은 쓰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쯧쯧…….”
박희철을 바라보던 현성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혀 차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러자 지금까지 참고 있던 박희철이 현성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안타까워서 그렇습니다.”
“안타까워? 뭐가? 말을 해봐!”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합니까? 써 보지도 못할 텐데…….”
현성은 그 말을 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안타까움의 표시였다.
박희철은 어이가 없었다.
‘써 보지도 못 한다?’
지금 이 얘기는 자신이 금방이라도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지…….
박희철의 목소리가 이번엔 더 커졌다.
“야! 이 미친놈아. 한밤중에 기어와서 어디서 헛소리야?”
“미친놈이요?”
“멀쩡한 사람을 보고 죽는다는데, 그럼 그게 제정신이야?”
당연한 반응이다. 열이면 열, 곧 죽는다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때 현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며칠 후 관광 가실 거죠?”
정확히는 모레 일요일이다. 여름 방학이 끝나던 마지막 날이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지만, 그 사고만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아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다. 일반적인 관광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郡) 내에서 그나마도 유지들만 가는 특수한 관광이었다.
비용?
당연히 없다. 오히려 끝나고 나면 봉투를 하나씩 받아올 정도의 특수한 경우였다. 흔히 얘기하는 국회의원의 지역구 관리. 그거다.
그렇다 보니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다녀오곤 했었다.
그런데…….
박희철은 현성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이 한 마디를 더했다.
“관광 가지 마시라고요. 그나마 더 살고 싶으면……, 처음이자 마지막 충고입니다.”
사람으로서의 마지막 양심이었다. 아무리 미웠지만 그래도 산 사람의 목숨이 아닌가 말이다.
현성은 발길을 돌렸다.
어차피 선택은 박희철의 몫이다.
“아버지, 어머니 갑시다. 가서 밥이나 먹읍시다.”
“그, 그래.”
현성이 막 마당을 빠져나가려 할 때였다.
“잠깐!”
박희철이 현성을 잡았다. 그리곤 물었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책임이요?”
“그래, 만약 그게 헛소리면 책임을 져야지.”
“그 반대일 경우에는 어쩌시려고요?”
현성은 반대일 경우를 물었다. 즉, 박희철이 죽었을 경우엔 어쩌겠냐고 묻는 것이다.
“반대?”
“네, 아저씨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경우를 묻는 겁니다.”
“그 그건…….”
박희철이 생각해도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말이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현성의 말처럼 죽기라도 한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박희철이 더 말을 못하자 현성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박희철의 집을 나왔다.
쾅!
박희철은 현성이네 식구가 나가자 장부를 마룻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이런 미친 새끼가…….”
뭐가 어째, 관광을 가지 말라고?
매년 있는 행사(?)다. 여기서 빠진다면 분명 최 의원은 섭섭하다고 할 것이다. 핑계야 만들면 되겠지만, 그런다고 결과가 바뀔 건 별로 없다.
내년엔 명단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될 것이다.
그런 인간이다.
단순하게 관광이 문제가 아니다. 인간관계 때문이다.
가야 한다.
어차피 미친놈이 떠들었을 뿐이다. 제까짓 게 미래를 보는 것도 아니고 이건 말이 안 된다.
“그래! 가는 거다.”
박희철은 역시나 현성을 미친놈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반면, 신나게 걷고 있는 세 사람.
아버지가 갑자기 현성 옆으로 슬쩍 붙었다.
“나는?”
“네?”
“나는 언제 죽냐고?”
아버지는 현성이 박희철한테 하는 행동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진짜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멀쩡한 사람을 보고 죽는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당연히 박희철이 미워서 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넘기기에는 또 어딘가 찝찝한 부분이 있기는 했다.
그건 관광문제다.
박희철이 불건전한 관광을 간다는 건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다. 하지만 그 시기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조금 전 말하는 것을 보면 현성은 분명 알고 있었다.
산삼도 그렇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오늘 박희철 건도 그렇고 요즘 들어 예전의 현성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자신의 죽음을 현성한테 물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대답을 원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그저 하도 어이가 없어 그냥 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성의 생각은 아버지와 달랐다. 혼자 심각했다.
“잠깐만요…….”
현성은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퍼억!
“에라!”
“아버지!”
“왜 이 녀석아, 이젠 아비까지 죽일 셈이냐?”
“물어볼 땐 언제고? 아, 진짜 …….”
현성은 억울했다. 물으니 답변을 생각했을 뿐이다.
물론 장난기가 전혀 없었다고는 말 못 한다. 그런데 장난친 거에 비해 뒤통수의 고통이 너무 컸다.
현성은 뒤통수를 비비며 원망 섞인 눈초리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픈데 나이는 역시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때였다.
현성의 옆구리로 뭐가 쏙 들어왔다.
갸름한 손, 그 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현성의 팔짱을 낀 어머니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무언가를 강렬하게 원하고 있었다. 무엇을 원하는 지는 말 안 해도 뻔한 거고.
하지만 현성은 모른 체 그냥 앞만 보고 걸었다. 아버지로 한 번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또 맞기는 싫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현성의 팔을 당기며 재촉했다.
“어서…….”
“뭘요?”
“진짜 이럴 거지?”
“때리기 없습니다. 누구처럼 치사하게…….”
어머니는 아버지를 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재빨리 끄덕였다.
그러자 현성은 조금 전과 같이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우리 어머니가…….”
꿀꺽!
어머니는 현성을 지켜보며 마른침까지 삼켰다.
한참을 계산하던 현성이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우와! 우리 어머니 90까지는 끄떡없는데요.”
현성은 7년을 늘려 얘기했다. 실제로는 83세에 돌아가셨다.
그 시기만 해도 80넘기는 사람은 마을에 한두 사람이 있을까 말까 했다.
그래서였을까.
어머니의 목소리가 무지 밝았다.
“정말?”
“그럼요. 저는 거짓말 같은 거 못합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 옆으로 착 붙었다.
“여보! 나 90까지는 끄떡없데요.”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어이가 없는지 어머니와 현성을 번갈아 쳐다봤다. 애가 그런다고 좋아하는 사람이나, 그렇게 말하는 녀석이나 둘 다 이상해 보였다.
“좋아? 오래 산다니까?”
“좋지요. 그럼.”
“좋겠네. 오래 살아서…….”
“그래도 혼자는 싫어요. 당신이랑 같이 살아야지요.”
어머니는 즐거웠고, 아버지는 다시 궁금해졌다.
‘어쩌지?’
다시 물어보기가 좀 민망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꾸 궁금해졌다.
“흠흠.”
아버지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현성을 바라봤다. 봐달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바람인 거고.
홱!
현성은 고개를 바로 돌렸다. 그리곤 모른 체했다. 아직도 뒤통수가 얼얼한 데 그리 호락호락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러자 아버지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현성 쪽으로 향했다.
“김현성, 위치로!”
“아! 왜요?”
“다시 묻겠다. 나는?”
“두 번은 저도 안 당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버지의 진지한 표정에 마냥 버틸 수는 없었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다. 어차피 사실대로 말할 것도 아니니 말이다.
아버지는 64세에 가족 곁을 떠났다.
하지만 현성은 다시 심각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야 아버지도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착한 거짓말을 하기 위해 현성의 손가락이 아주 바삐 움직였다.
현성의 손가락이 멈추자 아버지의 눈은 어느새 현성의 입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버지 100살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쓰는 김에 팍팍 썼다.
짝짝짝.
현성은 그 말끝에 손뼉까지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뭐, 내가 100살?”
“네 아주 건강하게 100살까지 끄떡없습니다. 참고로 저는 거짓말 그런 거 못 합니다.”
“오케이! 100살이라…….”
현성의 대답을 들은 아버지는 신이 나서 어머니한테 달려갔다.
“들었지? 난 100살이래.”
“그래서요?”
“100살이라니까 뭐가 그래서야? 조금 전에는 당신도 현성이 말 듣고 오래 산다고 좋아했잖아?”
“당신은 그 말을 믿어요?”
어머니는 아버지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황당한 건 아버지였다. 분명 조금 전엔 90까지 산다며 좋아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현성의 말은 믿느냐고 묻는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아버지는 어머니를 보며 조용히 다시 물었다.
“아니 좀 전엔 당신도 좋아했었잖아?”
“순진하기는?”
“……뭐?”
“이래서 남자들이란…….”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버지의 팔짱을 꼈다.
“우리 순진 씨, 빨리 가서 저녁이나 먹읍시다.”“뭐가 어째?”
“까칠하기는?”
“허! 이제는 까칠까지? 내가 참…… 허, 허허….”
현성은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지만,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 그 자체로 좋았다.
예전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기에 절로 얼굴에 미소가 가득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