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252)
회귀해서 건물주-252화(252/740)
252
“요리 노트.”
“요리 노트?”
“응, 새해 들어서 다시 정리하고 있었어. 초등학교 때부터 정리했던 거라 내용이 많이 부실하더라고. 그래서 요즘 수정하면서 새 노트에 옮겨 적는 중이야.”
“봐도 돼?”
김일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성은 노트를 펼쳐 보기 시작했다.
샤락.
첫 장을 넘기자 맨 앞장에는 한문으로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 信義
현성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건 뭐냐?”
“요즘 내가 생각하는 말 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라 적었어. 어느 날부턴가 그 말이 이상하게 끌리더라고.”
“좋은 말이지.”
“살면서 그런 신의를 지킬 수 있는 친구 하나라도 있으면 그 사람은 성공한 삶이라고 하잖아?”
“그만큼 신의를 지킨다는 게 어렵다는 말일 거야.”
그건 사실이다.
전생에서 50년을 넘게 살면서 절실하게 느꼈던 말이다.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많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마음 같아서는 평생 갈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정작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락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행여나 부담은 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부담감에 연락을 한다는 자체가 어려웠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했다. 살아 보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절실히 알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런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바로 이정우다.
기쁠 때나 슬플 때, 그리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그런 친구. 이정우가 바로 그런 친구였다.
피식.
그때 김일수가 혼자 웃었다.
“뭐야? 그 웃음은?”
“나는 이미 인생을 성공한 거 같아서 말이야.”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신의를 지킬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성공한 삶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이미 그런 친구가 있거든. 그러니까 난 이미 성공한 거지. 안 그래?”
김일수는 현성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자 현성이 물었다.
“누구?”
“누군 누구야 바로 너지. 물론 사람이 말을 앞세워서는 안 되지만 내 생각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야. 죽을 때까지 너에 대한 믿음과 의리는 지킬 거다. 그리고 고마움도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자식, 그렇다고 사람 면전에서 그렇게 대놓고 고백을 하냐? 사람 무안하게…….”
“하하……, 뭐 고백?”
김일수는 기분 좋다는 듯 웃었다.
그러자 현성도 김일수를 따라 웃고 말았다.
잠시 후.
김일수가 정리한 노트를 보던 현성이 말했다.
“여기 음식들은 할머니가 다 가르쳐 준 거야?”
“물론 할머니가 가르쳐 준 것도 있지만 요즘은 거의 TV를 보고 정리하고 있어.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은 아무래도 한정될 수밖에 없잖아.”
“그렇겠지. 어쨌거나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 보니까 보기 좋다.”
“이게 다 누구 덕분인데? 사실 난 너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야. 지금처럼 이렇게 꿈을 꿀 수 있는 거 자체가 어떻게 보면 나에겐 행운이야.”
김일수는 현성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러자 현성은 김일수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나도 널 만난 게 행운이야.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 열심히 해서 각자의 꿈을 꼭 이루자. 알았지?”
“물론이지. 파이팅.”
김일수는 자신의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그런 김일수를 보며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아침.
따르릉.
“여보세요.”
– 오빠, 나야.
“어, 지연아. 이렇게 이른 시간에 어쩐 일이야?”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동생 김지연이었다.
– 내일부터는 학교에 가야 하니까 오늘 전화한 거야.
“그나저나 방은 어때?”
– 보일러도 따뜻하고 7층이라 전망도 너무 좋아. 나 혼자 이렇게 좋은 데 있어서 미안할 정도야.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그런 생각 하지 마. 네가 잘 지내는 게 이 오빠를 도와주는 거야.”
– 하여간 오빠 덕분에 내가 호강하고 있어. 정말 고마워.
“별소릴 다한다. 그건 그렇고 먹을 건 준비했어?”
– 물론이지. 쌀도 사 왔고 반찬들도 다 사 왔어. 아무 걱정 안 해도 돼.
“응, 알았어. 아무튼, 밥 굶지 말고 잘 챙겨 먹어.”
– 사돈 남 말하고 있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오빠나 잘 챙겨 먹어. 그나저나 내일부턴 개학하니까 바빠지겠네?
“아무래도 그렇겠지.”
– 아무리 바빠도 밥 잘 챙겨 먹고 아프면 안 돼.
“알았어. 이렇게 전화 줘서 고맙다. 잘 지내고 학교생활 잘하고 있어. 그럼 나중에 보자.”
– 응, 오빠도 수고하고…….
“안녕!”
뚝.
전화를 끊은 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전생에선 지금 이 시간쯤이면 남양주에서 혼자 우울하게 있었을 김지연이다. 항상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마음으로 남아있던 동생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 생에서만큼은 이렇게라도 챙겨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이유였다.
전화를 끊고 잠깐 있을 때였다.
딸랑.
가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야,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야?”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이정우였다.
“이거 먼저 받아.”
이정우는 현성 앞으로 음료수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그건 바로 박카스였다.
현성은 바로 물었다.
“갑자기 웬 박카스야?”
“내일부터 저쪽 삼거리에 있는 라면 가게 오픈하는 거 맞지? 그래서 이거라도 먹고 힘내라고.”
“그래서 이 시간에 일부러 이걸 가지고 온 거야?”
“응,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더라고. 미안해.”
이정우는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이 말했다.
“야,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그리고 왜 그런 생각을 해? 네가 어때서?”
“솔직히 그렇잖아. 이 상황에서도 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너 혹시 무슨 일 있었어?”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평상시의 이정우가 보여주던 당당한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정우가 말했다.
“무슨 일은 아니고 이럴 땐 이런 나 자신이 너무 싫어서.”
“야, 이정우. 너 진짜 왜 그래? 지금까지 당당했던 네 모습은 어디 간 거야? 너 원래 이런 녀석 아니잖아.”
“휴우. 그러게 말이다. 오늘 갑자기 집을 나오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친구가 어려운 상황에 닥쳤는데도 겨우 할 수 있는 건 박카스만 달랑 사다 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한 거야.”
현성은 이정우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인마, 네가 나한텐 얼마나 소중한 친군데 그런 소리를 해? 그리고 한심하긴 뭐가 한심해? 너같이 열심히 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거야 네가 많이 도와줘서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었던 거고.”
“그건 아니야. 내가 아무리 도와준다고 해도 네 정신이 썩어 있으면 그건 불가능해. 내가 볼 땐 네 정신력은 누구보다도 강해. 그러니까 지금까지 누구보다도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거야 살아야 하니까…….”
이정우는 현성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본 현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바로 그거야. 중요한 건 앞으로도 살아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그 시간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도 훨씬 많이 남았다는 거지.”
“…….”
“지금 네가 이렇게 너 자신을 비관해봤자 너 자신한테는 아무런 도움도 안 돼. 그럴수록 힘든 건 너 자신뿐이라고. 인정할 건 인정하고 독해져야 남은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거야. 네 말처럼 살아야 하니까 말이야.”
“…….”
이정우는 말없이 현성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냉정한지 알아?”
“…….”
“네 몸이 불편하다고 세상 사람들이 그걸 봐줄 거 같아? 절대 아니야. 오히려 그 불편함을 이용해 앞서려고 할걸.”
“그렇겠지…….”
“그러니까 더 독해져야 하는 거야. 남들 한 시간 노력할 때 너는 두 시간 노력하고 남들이 8시간 잘 때 너는 4시간 자면서 악착같이 살아야 그 사람들을 따라갈 수 있는 거야. 오늘처럼 이런 나약한 모습은 절대 안 되는 거야.”
“휴우!”
이정우는 현성의 말이 끝나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정우, 미안하지만 말 나온 김에 내가 한마디만 할게.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라.”
“…… 응.”
“오늘 네가 무슨 마음으로 이런 약한 모습을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을 갖는 자체가 지금으로선 사치라고 생각해.”
“사치?”
“응,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괜찮아.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거야. 너의 그 약한 모습은 연민이 아니라 오히려 너의 약점이 된다는 거지.”
“음…….”
이정우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게 현실이야. 그래서 더 독해지라는 거야.”
“무섭구나.”
“당연하지. 세상은 약육강식이거든. 약하면 보살핌을 받는 게 아니라 잡아먹히는 거야.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평상시 너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잖아.”
“사실은 조금 전에 집에서 나오다가 웬 꼬맹이를 만났어.”
“꼬맹이를?”
현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자 이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그런데 그 녀석이 나를 놀리는 거야.”
“뭐라고?”
“절름발이라고.”
“뭐? 어떤 새끼가!”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이정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뭘 그렇다고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 어차피 사실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떤 싸가지 없는 새끼가 그런 말을 해? 그 새끼 몇 살이야?”
“하하…….”
이정우는 대답 대신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현성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정우를 바라봤다.
“이 상황에 웃음이 나와?”
“그게…….”
“그게 뭐?”
“다섯 살쯤이나 됐으려나 싶거든.”
“허…….”
현성은 어이가 없어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이정우가 말했다.
“지금은 웃음이 나오는데 아까 그 순간에는 진짜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 죽고 심은 심정이었어.”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꼬맹이 때문에…….”
“꼬맹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놀린다는 게 참기 힘들더라고. 남들 눈에는 내 모습이 놀림감이 되는구나 싶어서 그게 싫었던 거야. 그런데 좀 전에 네가 ‘사치’라고 말하는 걸 듣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
“음…….”
현성이 말이 없자 이정우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지금까지는 장애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그게 나만의 고집이었다는 걸 오늘 알았어. 네 말을 듣고 나니까 이제야 내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
“차라리 장애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까 마음속에서 독기가 올라온다. 지금까지는 숨기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어. 네 말처럼 남들보다 덜 자고 더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여기서 생긴다.”
이정우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런 이정우를 보며 현성은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