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269)
회귀해서 건물주-269화(269/740)
269
“친구가 있었어.”
“친구요?”
“응, 그것도 제일 친한 친구였지. 그런데 그 녀석이 3년 전에 그만 교통사고로…….”
“…….”
현성은 할 말이 없었다.
말이 없기는 김명식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건 김명식이었다.
“그 후론 고향에 못 갔어.”
“혹시 사고 난 지역이 서명인가요?”
“……응.”
김명식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은 그제야 김명식이 조금 전에 홍천에 있으면서도 왜 ‘타지’라는 말을 썼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현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친구분 때문에 고향에 못 가는 건가요?”
“차마 그 녀석이 사고 난 지역에 갈 자신이 없었어. 아니, 자신이 아니라 겁이 나.”
“겁이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그 녀석 사고가 꼭 나 때문에 난 거 같아서 말이야.”
현성으로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를 만나고 가던 길이었거든.”
“아…….”
현성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순간적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현성은 김명식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이미 이채가 서려 있었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김명식이 말을 이었다.
“그때부터였어.”
“고향에 못 가신 거군요.”
“그렇지. 그러던 와중에 몇 달 전에 고향의 모습이 TV에 나오더라고. 그날은 정말 꿈을 꾸는 줄 알았어.”
현성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김명식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날 너를 TV에서 본 거야. 그러니 당연히 너를 잊을 수가 없었지. 이름도 마찬가지고.”
“아, 네…….”
“그런데 아까 네가 딱 나타난 거야. 그러니 내가 얼마나 반가웠겠냐?”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다는 게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분의 사고는 그냥 사고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무슨 선배님의 탓이겠습니까?”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물론 상황이 그렇게 됐으니 김명식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거다.
사고는 말 그대로 그냥 사고인 거다. 누구의 책임으로 돌린다는 건 도저히 말이 안 된다.
현성은 김명식을 바라봤다.
그러자 김명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아, 나도. 그런데 그게 말처럼 잘 안 된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자꾸 그날 내가 그 녀석을 만나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거란 생각이 자꾸만 드는 거야.”
“…….”
현성은 할 말이 없었다.
그때였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현성은 종업원을 보며 말했다.
“여기 고량주 한 병 부탁합니다.”
“네? 아, 네…….”
종업원은 현성이 학생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한 번 힐긋 보고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같아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겠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술에 관해서 만큼은 관대한 시절이라 가능한 얘기였다.
잠시 후.
띠륵.
현성은 고량주의 뚜껑을 돌려 딴 다음 김명식을 보며 말했다.
“선배님, 제가 뭐라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그냥 이 술 한 잔으로 제 마음을 대신하겠습니다.”
백 마디 말보다 차라리 한 잔의 술이 더 위로가 될 것이란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그 마음이 전달이라도 된 것일까.
김명식은 술잔을 내밀며 빙긋 웃었다.
“제법이구나.”
“가끔은 이 술이 어떤 말보다도 좋을 때가 있더라고요.”
“고등학생 맞지?”
“맞을 겁니다.”
현성은 씩 웃으며 술을 따랐다.
쪼르륵.
이번엔 김명식이 현성을 보며 말했다.
“너도 한잔해.”
“네, 선배님과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현성은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이렇게라도 해서 김명식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전환시켰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자 김명식은 현성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고맙다. 그동안 아무한테도 하지 못했던 말인데 이렇게 할 수 있어서.”
“제가 오히려 고맙습니다.”
“우리 한잔할까?”
김명식은 그 말을 끝으로 술잔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현성도 김명식과 마찬가지로 술잔을 들어 그의 잔에 부딪혔다.
챙.
두 사람의 술잔은 가운데서 경쾌한 소리를 냈다.
두 사람이 요리를 먹기 시작한 지 20분쯤 지났을 때였다.
김명식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제 말해 봐. 나를 찾아온 이유를.”
“며칠 전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 있지요?”
“응, 그땐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어. 갑작스럽기도 하고 내가 말하지 못할 사정도 있던 터라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할 수밖에 없었어.”
“사정이요? 혹시 아까 말했던 그 친구분 때문인가요?”
현성의 질문에 김명식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답을 바로 못 한다는 얘기는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일 것이다. 현성은 김명식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김명식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게 다는 아니야.”
“역시 다른 이유가 또 있으신 거군요?”
김명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성이 말했다.
“힘드시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선배님이 힘들어하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단지…….”
현성은 중간에서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김명식이 손을 들어 현성의 말을 끊었기 때문이다.
현성은 어쩔 수 없이 하던 말을 멈추고 김명식을 바라봤다.
그러자 김명식이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다.”
“네? 어머니가요?”
“응, 작년에 수술을 받으셨어. 그리고 지금도 치료 중이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현성으로선 쉽게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보통 수술은 치료과정 중에서 마지막 과정이기 때문이다.
김명식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전이되셨거든.”
“전이요? 그 말씀은…….”
“응, 위암이야. 수술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막상 수술하려고 보니 다른 데로 전이가 되었더라고. 그래서 지금도 계속 항암 치료 중이야.”
휴우!
현성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자신도 모르게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단번에 삼켜버렸다.
탁.
술잔을 내려놓은 현성은 김명식을 보며 물었다.
“병원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일단은 더 두고 보자고 하더라고. 그런데 문제는…….”
“무슨 다른 문제가 또 있습니까?”
“그게…….”
김명식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현성은 술병을 들며 말했다.
“한잔 더 하시겠습니까?”
“아니야, 마음 같아선 더 마시고 싶지만 아직 영업 끝나려면 시간이 남아서 안 돼.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김명식의 눈빛에서 절박함이 느껴졌다.
현성은 술병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많이 힘드시군요?”
“그게 다른 건 어떻게 버티겠는데 이자가 감당이 안 돼.”
“이자요?”
현성은 순간적으로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자가 감당이 안 된다는 얘기는 일반 대출이 아닌 사채를 썼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현성은 바로 물었다.
“혹시 사채를 쓰신 겁니까?”
김명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응, 어쩔 수 없었어. 어머니 수술비 때문에.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은 없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만…….”
“그래서 지금 한 달 이자가 얼마나 나가는 겁니까?”
“이십만 원.”
김명식은 힘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현성은 놀랍다는 듯 바로 물었다.
“원금도 아니고 이자만 이십만 원이요?”
“응, 지금 원금은 갚을 생각도 못 하고 있어. 거기다 어머니 방사선 치료까지 받으려니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월세도 나갈 거 아닙니까?”
“그렇지, 그것도 이십만 원.”
“허…….”
현성은 할 말이 없었다. 단순하게 사채 이자에 월세만 따져도 사십만 원이다. 거기다 어머니 치료비와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최소 칠팔십만 원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것도 최소한으로 계산한 것이다. 종업원의 월급은 포함하지도 않았다. 그거까지 포함한다면 최소 한 달에 백만 원은 필요하다는 얘기다.
현성은 물었다.
“장사는 잘되십니까?”
“억지로 버티고는 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가게가 너무 위험해. 사채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줄은 몰랐어. 이자가 하루만 늦어도 복리 계산을 하더라고.”
“혹시 가게를 담보로 사채를 쓰신 겁니까?”
김명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성은 바로 물었다.
“원금이 얼맙니까?”
“삼백만 원.”
“원금이 삼백만 원인데 한 달 이자가 이십만 원이라는 얘기죠?”
“처음엔 급해서 쓰긴 했는데 그게 나를 이렇게 옭아맬 줄은 몰랐어. 진짜 도둑놈들이 따로 없더라고. 솔직히 지금 같아선 무섭고 두렵다.”
현성은 김명식을 바라봤다.
한계.
힘이나 책임, 능력 따위가 다다를 수 있는 범위를 말한다. 지금 김명식의 모습이 딱 그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어느 순간 무너지고 말 것이다.
현성은 조용히 김명식을 불렀다.
“선배님!”
“어? 어, 그래. 아…… 미안. 내가 너무 내 얘기만 했지?”
“삼백이면 되겠습니까?”
“삼백?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김명식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현성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현성은 다시 말을 이었다.
“삼백만 원만 있으면 지금의 고비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거야 물론이지. 지금 당장이라도 그놈들한테 원금만 갚으면 되니까. 그렇게만 되면 어머니 치료에 더 집중할 수도 있고, 그런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꺼내는 거야?”
“그 금액 제가 드리겠습니다.”
“뭐, 뭐라고?”
김명식은 말까지 더듬으며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말을 이었다.
“제가 그 돈을 드릴 테니까 우선 그 늪에서 빠져나오십시오.”
“그 말이 정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김명식은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히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엄연히 학생의 신분이다. 그런 그가 삼백은 준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또 조건을 요구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인지…….
김명식은 현성을 보며 말했다.
“솔직히 지금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선배님께 삼백을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제 조건도 간단합니다.”
“…….”
김명식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듯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말했다.
“제 조건은 무이자입니다.”
“무이자?”
김명식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현성의 말대로라면 삼백이란 돈을 아무 이자도 받지 않고 그냥 빌려주겠다는 얘기다.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김명식은 현성을 보며 말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제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아니, 학생 신분인 네가 삼백이란 돈이 어디 있으며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무이자로 빌려준다는 게 말이 돼?”
“됩니다. 설마 제가 선배님 앞에서 장난을 치겠습니까? 그리고 시간이 없으니 이제 그만 일어나시죠.”
현성은 금방이라도 일어나려는 듯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김명식이 바로 물었다.
“아니 말을 하다 말고 어디를 간단 말인가?”
“선배님 집으로 가야 할 거 같습니다.”
“우리 집에? 거기는 또 왜?”
“어머니 좀 제가 봬야 할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할 일이 또 남은 거 같습니다.”
현성은 그 말은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