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27)
회귀해서 건물주-27화(27/740)
세 사람이 웃으며 육회를 먹는 사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 박희철은 머리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박희철이다.
차라리 처음에 못 이기는 척하고 한 점이라도 먹었으면 이렇게 초라하지는 않았을 텐데 모양새가 옹색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런데 어쩐다?
조금 전 저 자식이 안 먹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요즘 하는 짓으로 봐서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싸가지는 말 할 것도 없고 이젠 유치하게 사람을 괴롭히기까지 한다.
볼수록 징글징글하게 재수 없는 놈이다.
그런데 아쉬운 사람은 저놈이 아닌 자신이라는 게 문제였다.
후우.
어쩔 수 없다. 치사하지만 목마른 놈이 우물 팔 수밖에.
‘지금이라도…….’
박희철은 곁눈질로 슬쩍 봤다.
헉!
띠웅!
하필, 현성 어머니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아우! 개망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찌 자꾸 일이 꼬이기만 하는지…….
그렇다고 도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살면서 이렇게 난감한 상황은 또 처음이었다.
그나저나 이젠 육회도 날아간 듯하고, 어쩔 수 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휴우!
느는 건 주름과 한숨뿐이었다.
픽!
어머니는 갑자기 웃더니 소주잔을 비웠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물었다.
“왜?”
“그냥요.”
“사람이 싱겁기는…….”
어머니는 뭐가 좋은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일어나 부엌으로 사라졌다.
육회도 다 먹었고, 현성은 아버지와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박희철도 얼떨결에 벌떡 일어났다. 아직 확인할 게 있는데 물어보지도 못했으니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박희철의 사정이었고, 아쉬울 게 없는 현성은 박희철을 무시한 채 보란 듯이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쁜 새끼!’
박희철은 당장이라도 현성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었다.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도 뻔히 알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러 무시를 한다. 사람을 아주 너덜너덜 걸레짝으로 만드는 놈이다.
하지만 어쩌랴.
아쉬운 건 여전히 자신이었다.
현성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더욱 난처한 상황이 되고 만다.
저벅.
어쩔 수 없이 박희철은 움직였다.
“저기, 잠깐만…….”
“…….”
현성이 대답이 없자, 박희철은 현성을 따라가며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어떻게 알았는가?”
“…….”
여전히 말이 없는 현성이다. 그러자 박희철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금방이라고 주먹이 날아갈 판이었기 때문이다.
홱.
그때, 현성이 뒤돌아섰다. 그리곤 박희철을 보며 말했다.
“어차피 제 말 안 믿으실 거잖아요?”
“일단, 들어는 보고…….”
“됐습니다. 굳이 말해도 안 믿을 거 입 아프게 뭐 하러 말합니까?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가 뭐 중요한가요?”
아무리 얘기해봐야 어차피 믿지 않을 것이고, 신경이야 조금 쓰이겠지만, 분명히 관광을 가고 말 인간이다.
남의 인생에 끼어드는 것도 어느 정도다.
여기까지다. 마지막으로 양심에 걸려 말을 하기는 했다마는 부질없는 짓이었다.
“관광 잘 다녀오세요.”
현성의 마지막 인사였다.
“…….”
집으로 돌아온 박희철은 방 안에 불도 안 켠 채 앉아있었다. 여전히 이 자식은 거의 확정적이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무시하고 싶은데, 자꾸 손톱 밑에 가시처럼 거슬린다.
따르릉.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 박 회장님, 저 구 실장입니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어 그래, 구 실장, 어쩐 일이야?”
– 행사 때문에 확인 차 마지막으로 전화 드렸습니다.
“모레라고 했지?”
– 네, 맞습니다. 변동사항 없으신 거죠?
“…… 그럼, 변동사항 있을 게 뭐 있겠나?”
– 네, 알겠습니다. 그럼 모레 아침에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도 박희철의 머리는 터질 것만 같았다.
당연히 기분 좋게 다녀올 관광이었다.
내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의원 측에서 1년에 한 번씩 연례행사처럼 보내줬던 관광이다.
군(郡) 전체에서 해마다 30명만 가는 행사다. 실컷 구경하고, 먹고 놀다가, 마지막에 최 의원하고 악수 한 번 하고 오면 끝나는 행사다.
게다가 일당까지 두둑하게 넣어주니 콧바람 쐬고 이만한 관광이 없었다.
그런데…….
“김현성, 갔다 와서 보자.”
박희철은 결국 관광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
다음날 새벽.
후! 후!
새벽 공기를 가르는 일정한 호흡 소리, 현성이 달리면서 내는 소리다.
회귀한 지 거의 한 달이 됐다.
전생에선 어머니가 사고를 당했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그 대상이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바뀌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평생 아버지 어머니의 짐이었던 빚도 정리했다. 그 덕분에 외양간에 송아지도 지켜냈다.
“이 정도면 됐고…….”
일단 급한 데로 할 수 있는 건 끝냈다.
그렇다면 이젠 앞으로의 생활이 문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쩌면 많은 일들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고, 과거로 돌아온 만큼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것이란 게 현성의 판단이었다.
헛!
현성은 달리던 속도를 조금 높였다.
전생에서 가장 문제가 있었다면 자신의 체력이었다. 체력이 약하나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된 생활이 힘들었었다.
공부도 친구도 그리고 사회생활까지도.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산삼을 찾아 헤맸던 시간이 오히려 현성에겐 득이 된 것이다. 예상컨대 물찬 더덕과 산삼의 약성이 체력증진에 상당한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에는 의심이 없었다.
“오케이!”
체력도 이 정도면 됐다.
그렇다면 이제 가장 급한 건 하나, 학생의 본분인 공분데……. 물론 돈도 벌수만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건 일단 차후 문제다.
그런데 공부라…….
‘될까?’
피식.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샜다.
될 리가 없지 않겠는가. 세월이 얼만데…….
쩝.
어차피 보나마나 바닥부터 시작해야 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해보는 거지 뭐.”
두 번째 기회다. 설마 첫 번째 보다야 낫지 않겠나 싶었다. 그나저나 머리가 잘 돌아 가려나 모르겠다.
현성은 방향을 틀어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후…, 후….
집이 가까워지자 현성은 천천히 걸으며 호흡부터 챙겼다.
“그런데 그건 뭐였지?”
현성은 갑자기 원주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자주색 추리닝이 칼을 휘두를 때였다. 신기하게도 현성의 눈에 그 칼끝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방어를 하며 공격까지.
“신기하단 말이야.”
자신이 해놓고도 신기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더 두고 보는 수밖에…….”
일단 검증할 방법이 없으니 뒤로 미루는 현성이었다.
현성이 집에 도착하자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 이유는 어이없게도 멧돼지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현성을 보자마자 아침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글쎄 말이야…….”
아침 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려다 뭔가를 발견했다고 했다. 처음엔 강아지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멧돼지 새끼였다고 했다.
신기한 건 여기저기 돌아치더니 어느 순간 현성의 방으로 향했다고 했다. 그리곤 그 방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성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새끼 멧돼지를 보는 순간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야! 준치!”
그 난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준치였다. 물론 생선이 아니고 현성이 산에 있으면서 새끼 멧돼지한테 붙여준 이름이다.
거의 죽을 뻔한 목숨을 구해줬고 며칠 같이 있었다. 헤어질 때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자연의 섭리를 위해 혼자 내버려 두고 산에서 내려왔었다.
그런데 지금 현성을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때 어머니가 현성을 보며 물었다.
“아는 놈이야?”
어째 질문이 좀 그렇다. 알아봐야 멧돼지하고 얼마나 알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그 말도 틀리지 않으니 일단 대답을 했다.
“다 죽어가는 걸 구해줬는데…….”
“그럼 책임져야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새끼잖아.”
허!
할 말이 없었다.
보통 소설에서는 은빛 늑대가 등장한다. 왠지 신비스럽고 뭔가 있어 보이니까.
그런데 이건 뭔가?
은빛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갈색 늑대도 그런대로 괜찮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앞에 있는 녀석은 주둥이가 툭 튀어나온 멧돼지가 틀림없다.
현성은 앞에 있는 녀석을 바라봤다.
피곤했나 보다.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하긴 거기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인가. 그것도 저 짧은 다리로 말이다.
현성은 자고 있는 준치를 다시 한 번 바라봤다.
“준치!”
현성이 불렀지만, 기척도 없었다.
“그래, 일단 자라.”
현성은 이 또한 연(緣)이라 생각했다. 어머니 말씀처럼 책임지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손을 내민 건 자신이니 말이다.
그렇게 모든 상황이 정리되는 듯했다.
“안 된다!”
현성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아버지!”
“행여 집에 들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
“그럼 어린 새낀데 어떡합니까?”
“그건 내 알바 아니고, 무조건 안 된다. 더군다나 이놈은 수컷이다. 나중에 감당할 수가 없단 말이다.”
아버지의 뜻은 완고했다.
물론 아버지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멧돼지의 습성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고 현성도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스윽.
현성은 준치를 바라봤다. 지금 상황을 알 리 없는 준치는 새근새근 잘도 자고 있었다.
이번엔 아버지를 바라봤다.
준치의 평화로움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눈빛이었다.
끙.
답이 안 보였다.
그때 어머니가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당신은 그럼 방법이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생각해봐요. 지금 저놈을 돌려보낼 방법이 있냐고요? 그 깊은 산에서 여기까지 저 짧은 다리로 내려온 놈인데, 지금 쫓는다고 가겠냐고요?”“그거야 내 알바 아니지.”
어머니는 조금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무책임하게…, 그것도 애 앞에서.”
“뭐 무책임?”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죠. 방법을 알려주고 안 된다고 해야지, 아버지가 돼가지고 그건 어른으로서 비겁한 거예욧!”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어머니는 세게 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현성으로선 불안 불안했다. 아버지의 고집도 만만치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그래도 안 돼. 무조건 안 돼. 이유 없어. 방법은 알아서 찾고 무조건 돌려보내.”
“하여간 똥고집은…….”
“이 사람이….”
현성은 머리가 아팠다. 어머니 말씀처럼 돌려보내봐야 다시 또 내려올 게 뻔했다. 그렇다고 집에서 키우기엔 아버지가 우려하는 것처럼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자식은 왜 내려와 가지고…….
허!
명색이 회귀잔데 멧돼지 때문에 고민하는 자신이 한심할 뿐이었다.
서로 말이 없는 세 사람.
하지만 그 침묵을 깬 건 현성이었다. 그것도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하면서 말이다.
“된장 바를까요?”
“뭐?”
“미친놈!”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시에 현성을 째려봤다.
현성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어차피 일부러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일단 살생의 의도가 없다는 건 확인됐다.
그리고 아무리 돌려보내봐야 다시 돌아오리란 건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조건부(條件附).
현성은 아버지를 바라봤다.
“한 달만 키우겠습니다.”
“한 달?”
“네, 그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입니다. 저 어린 걸 무작정 쫓아내기엔 제 마음이 너무 불편합니다.”
아버지는 현성을 빤히 쳐다봤다.
이건 또 무슨 소리?
그저 산짐승일 뿐이다. 그런데 불편한 마음이라니…….
아버지는 현성을 보며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설명해 보라는 얘기였다.
그러자 현성의 입이 다시 열렸다.
“처음 저 녀석을 …….”
현성은 산속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준치를 처음 구해줄 때부터 시작해서 준치에게 아름도 붙여주고, 또 준치 덕분에 절벽위에 있는 산삼을 캔 얘기까지.
“……, 그렇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입었다, 이 말이지?”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한 달 뒤에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가서 다시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현성은 솔직히 말했다. 지금으로선 뭐라 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설픈 거짓말로 둘러대기는 더욱 싫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허! 그런 무책임한 말이 …….”
하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중간에서 사정없이 말을 끊었기 때문이다.
“여보!”
“이 사람이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설마 당신이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뭐…….”
결국, 아버지는 어머니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그 후로도 좀 더 고민을 해봤지만, 누구도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는 사람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준치 문제는 일단 한 달 뒤로 미루기로 합의했다.
준치와의 어색한 동거의 시작이었다.
한 달 뒤에 그 답을 준 건 윗집에 사는 반장 오진수였다. 준치의 사명이 주어진 것이다.
씨내리!
충분히 능력(?)이 됐을 때 마을 소득 증대를 위해서 최선을 다 하기로.
조건도 붙었다.
새끼를 낳게 되면 한 마리씩 아버지한테 가져오기로.
***
다음 날 아침.
시계를 보니 거의 7시가 다 됐다. 분명히 알람을 5시에 맞추고 잤는데 미쳐 못 들었나 보다.
아무래도 어제 준치의 집을 짓느라 무리를 해서일 것이다.
온몸이 뻐근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일을 벌여놓고 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지붕을 만드는 게 제일 어려웠다.
결국, 아버지의 도움까지 받고 나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
“시작해 볼까.”
현성은 집을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체력이 좋아졌다고 해서 그냥 있다가는 언제 또다시 저질 체력으로 돌아갈지 모르기 때문에 꾸준히 단련하기로 했다.
체력은 국력, 아니 체력은 노력이라는 걸 아는 현성이다.
5분쯤 달렸을까.
첫 버스가 저 멀리서 내려오고 있었다. 워낙 시골이라 하루에 버스는 세 번만 다닌다.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
나중에야 집마다 차가 있으니 별문제 없었지만, 이때만 해도 차가 워낙 귀한 탓에 어쩔 수 없었다.
내일부터는 개학이니 버스 안이 가득 찰 것이다.
버스가 중간에 섰다. 그러자 누군가 올라탔다.
아마도 박희철일 것이다.
“기어코 관광을 가겠다?”
현성은 중얼거리며 계속 달렸다.
부웅.
버스가 현성 옆을 지나갔다. 비포장이라 버스가 지나가자 흙먼지가 자욱했다.
현성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잠깐 서 있었다.
흙먼지가 가라앉자 현성은 다시 움직였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현성의 시선은 이미 저만치 멀어진 버스의 뒤꽁무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마음인가?
머리로는 애써 무시하려 하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어차피 박희철은 오늘 죽는다.
전생의 행실로만 봐서는 그래도 싸다. 오죽했으면 마을 사람들도 사람이 죽었는데 나 몰라라 했을까.
사람이 바뀔까?
절레절레.
현성의 머리가 저절로 좌우로 움직였다.
좀 더 살아보니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겠더라. 오죽했으면 세 살 버릇이 어쩌고저쩌고 했을까.
물론 아주 간혹, 바뀌는 경우는 들었다. 솔직히 직접 본 적은 없다.
TV나 영화 아니면 책에서 본 적은 있다.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죽음을 겪은 경우였다.
진짜 0.00001%다.
현성은 머리가 복잡했다.
만약 자신이 나서서 박희철을 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데 이렇게 마구잡이로 남의 운명에 끼어들어도 될지는 솔직히 망설여졌다.
지난번만 하더라도 어머니 사고가 아버지 사고로 바뀌었었다. 그땐 자신이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사고를 막기 위해 그 장소에 갔을 뿐이다. 그런데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운명이 바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