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283)
회귀해서 건물주-283화(283/740)
283
현성의 설명은 20분이 넘도록 계속됐다.
설명하는 데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하나였다.
감사!
비록 한쪽 다리가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그나마 다른 한쪽 다리는 멀쩡하니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현성이 이 말을 한 이유는 생각의 전환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보통 컵에 물이 반 잔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 ‘물이 반밖에 없네!’라거나, 혹은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말이다.
어떤 것이든 내가 그것을 스스로 어떻게 인정하느냐에 따라 그것의 가치에는 분명한 차이가 생기게 된다.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라는 말은 나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파악하라는 것이다. 내 존재의 가치가 바로 나의 자존감의 정도이다. 그리고 내 인생의 값어치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심이었던 걸까.
현성의 설명이 끝나자 이정우의 입에선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무슨 헛소리야?”
“어? 헛소리……?”
“그래, 지금 이 상황에서 나보고 감사하라는 마음을 가지라니, 그게 말이 돼? 내가 이 다리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는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네가 어떻게…….”
이정우는 서운하다는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난감한 건 현성이었다. 물론 이 얘기를 꺼내기 전에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건 이정우의 나이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물 반 잔의 미학’을 이정우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평상시에 보여준 이정우의 성격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얘기를 끄집어냈던 것이다.
다소 무리가 있는 시도였을지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이정우를 위한 행동이었다. 만약 이정우가 자신의 말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정우는 어쩔 수 없이 한쪽 다리의 불편함을 감수한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그럴 경우 지금처럼 한쪽 다리의 불편함을 원망만 하면서 사는 것과 오히려 반대로 건강한 다른 한쪽 다리에 감사하면서 사는 것은 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성의 바람은 바로 그것이었다.
– 원망하는 삶이 아닌 감사 하면서 사는 삶.
현성은 이정우를 바라봤다. 아직도 서운함이 덜 풀렸는지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렇게 서운하냐?”
“너 같으면 괜찮겠냐? 가장 믿었던 친구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그것도 내가 가장 아파하는 곳을 후벼파는데.”
“그건…….”
현성은 그게 아니고 다 너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닫고 말았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현성이 말이 없자 이정우가 바로 물었다.
“왜 그랬어?”
“…… 미안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현성은 미안하다는 말로 대신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욕심이었을 것이다. 현성 자신이야 어쨌건 50년을 넘게 살면서 깨달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이제 19살밖에 안 된 이정우가 받아들이길 바랐으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현성은 자신의 욕심이 과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우야, 내가 그만 욕심이 과했나 보다. 미안하다.”
“욕심? 그게 무슨 말이야?”
“설명하기는 애매한데……, 그런 게 있다. 이유야 어쨌든 내가 실수한 거니까 사과할게. 그리고 스터디 그룹 문제는…….”
“이만 갈게.”
현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정우는 돌아섰다.
딸랑.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를 나가는 이정우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현성은 씁쓸한 기분으로 이정우가 사라진 문 쪽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이정우.
“다녀왔습니다!”
이정우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신명순은 바로 물었다.
“현성이랑 무슨 일 있었어? 표정이 왜 그래?”
“아니에요. 그냥…….”
신명순은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성을 만난다고 나갔던 이정우다.
현성이 누구인가. 둘도 없는 가장 친한 친구다. 그런데 그런 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표정치고는 너무 어두웠다.
신명순은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게 사실은 …….”
이정우는 조금 전에 현성과 있었던 일을 신명순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정우의 설명이 이어지자 신명순은 그제야 표정이 왜 안 좋았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정우의 설명이 끝나자 바로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네, 그게 말이 되냐고요? 한쪽 다리가 멀쩡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라니, 내가 어이가 없어서 그냥 확…….”
이정우는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나는지 감정이 격해지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신명순은 다시 물었다.
“그게 그렇게 화가 났어?”
“당연히 화가 나지요. 나는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원망스러운데 오히려 감사하라는 말을 하니 내가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아마 현성이만 아니었어도 그 자리서 주먹을 날렸을 겁니다.”
이정우는 신명순 앞에서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그 모습은 본 신명순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건 이정우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현성이 그런 말을 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이정우를 위해서 한 말일 것이다.
어차피 평생을 불구의 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렇다면 사는 모습은 두 가지일 것이다.
그 하나는 평생 원망만 하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렵겠지만 한쪽 다리는 건강하니 그만하길 다행이라는 심정으로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원망만 하면서 사는 것과 감사하면서 사는 것,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것이 나은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당사자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본인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명순은 이정우를 조용히 불렀다.
“정우야!”
“네, 엄마.”
“네가 세 살 때였어. 어느 날 갑자기 온몸이 불덩이같이…….”
신명순은 아주 오래된 얘기, 하나를 꺼내기 시작했다. 신명순의 말이 길어질수록 이정우의 표정은 묘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들어보지 못한 자신의 어렸을 적 얘기였기 때문이다.
신명순의 얘기가 끝나자 이정우는 바로 물었다.
“3일 만에 깨어났다고요?”
“그래, 그때는 정말…….”
신명순은 그 당시 일을 회상이라도 하는 듯 힘들어했다.
그러자 이정우가 다시 물었다.
“그때부터 제 다리가 이렇게 된 건가요?”
“응, 요즘은 약이 좋아져서 치료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치료 약이 따로 없다고 하더구나. 병원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중추신경에 침투한 바이러스가 이미 뇌 신경조직을 손상시켰다고…….”
신명순은 다시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이정우도 잠시 말이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깬 건 신명순이었다.
“그땐 진짜 잘못되는 줄 알았다. 오죽했으면 네 아버지가 의사한테 우리 아들 살려내라고 멱살까지 잡았을까?”
“아버지가요?”
“그래, 그때는 오로지 너를 살리는 게 목적이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의사 선생이 그러더구나.”
“뭐라고요?”
이정우의 질문에 신명순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이야. 그때 네 아버지와 내가 의사 선생한테 매달리면서 한 말이 있었단다.”
“무슨……?”
“한쪽 다리만이라도…….”
신명순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어느새 신명순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이정우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신명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두 달 후에 의사 선생으로부터 다리 한쪽은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들었을 때 네 아버지랑 나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단다.”
“…….”
이정우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 현성으로부터 한쪽 다리가 건강한 것에 대해 감사하자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소리를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이정우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신명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우야!”
“……네.”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는 이 문제를 한 번쯤은 얘기하고 싶었다.”
“…….”
이정우가 말이 없자 신명순이 바로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원망만 하고 살 거야?”
“네?”
“너도 알다시피 앞으로 평생을 장애의 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 거야.”
“그거야…….”
이정우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신명순이 다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어차피 평생을 장애의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 말이야. 물론 …….”
신명순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이정우의 말이 빨랐다.
“엄마!”
“어? 응, 그래 말해 봐.”
“엄마도 지금 현성이랑 같은 얘기를 하는 거죠?”
“맞아. 그렇지 않아도 기회를 봐서 너한테 꼭 하고 싶었던 얘기야. 언제까지 원망만 하면서 살 수는…….”
“엄마!”
이정우가 신명순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이번엔 신명순이 작정이라도 한 듯 바로 말을 이었다.
“아니, 엄마 얘기부터 들어. 너도 이제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잖아. 언제까지 불편한 다리를 원망만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엄마로서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얘긴데 오늘은 해야겠다. 만약 두 다리가 다 불편했으면 어쩔 뻔했어?”
“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아니야, 처음에는 의사 선생님도 모른다고 했어. 그래서 네 아버지랑 내가 한쪽 다리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얼마나 애원을 했는데.”
“…….”
“우리라고 너의 아픈 다리가 왜 가슴이 아프지 않았겠니?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어떡하든 한쪽 다리라도 살리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 그리고 이제야 말이지만 네 아버지가 마지막 눈을 감으면서까지 나한테 했던 말이 뭔지 알아?”
“네? 그거야…….”
이정우는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자신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신명순의 말이 이어졌다.
“강하게 키우라는 거였다.”
“강하게요?”
“그래, 몸이 불편한 만큼 남들보다 더 강하게 키우라는 거였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시키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마지막까지 말이야.”
이정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이유는 지금 신명순이 하는 얘기는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상한 건 또 있다. 어려서부터 신명순은 자신한테 운동하라는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까지 그렇게 운동하기를 원했는데 어머니는 한마디도 없었다는 것이.
이정우는 신명순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저한테는 운동하라는 말을 안 하셨어요?”
“그게 내 실수였다.”
“네?”
“처음엔 시켰지. 그런데 운동만 시키면 다리 아프다고 매번 우는 거야. 그때 더 강하게 시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측은한 마음에 그만…….”
이정우는 그제야 어머니가 자신한테 왜 운동을 안 시켰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잠시 후.
신명순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장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맨 밑에서 뭔가를 꺼내는 듯했다.
다시 이정우 앞으로 다가온 신명순은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이거 받아라.”
“이게 뭡니까?”
신명순이 내민 것은 오래된 노트 한 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