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286)
회귀해서 건물주-286화(286/740)
286
며칠 후.
농협에 도착한 현성은 여직원에게 통장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통장 정리 좀 부탁할게요.”
요즘 같음이야 스마트폰 하나로 그때그때 통장 내역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입금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은행 창구로 직접 갈 수밖에 없었다.
“네, 잠깐만요. 어? 안녕하세요. 누구신가 했더니 라면 가게 사장님이시군요.”
뒤늦게 현성을 알아본 여직원 신미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요즘 퇴근길에 거의 매일 들르다시피 하는 손님이라 현성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누나. 그리고 말씀 편하게 놓으세요. 제가 불편합니다.”
“우리 고객님이신데 그럴 수야 없죠. 그리고 한 가게의 어엿한 사장님이신데…….”
“누나도 참…….”
현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빙긋 웃었다.
그러자 신미애가 바로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 번 찾아뵙고 상의 드릴 게 있었는데 혹시 조만간에 찾아가도 괜찮을까요?”
“네? 저한테요?”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얼핏 생각해도 농협 직원인 신미애가 자신한테 상의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신미애가 바로 입을 열었다.
“자세한 건 찾아뵙고 말씀드릴게요. 며칠 내로 영업 끝나신 후 언니랑 찾아뵙도록 할게요.”
“언니요?”
“네, 요즘 저랑 같이 라면 먹으러 갔던 사람이 바로 우리 친언니거든요.”
“아, 네…… 그런데 언니는 왜?”
물론 그 친언니란 사람이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다. 요즘 며칠째 신미애와 함께 하루도 안 빠지고 가게에 왔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성이 궁금한 건 친언니와 함께 온다는 신미애의 말이었다. 그 말은 현성한테 볼 일이 있는 사람이 신미애가 아니라 그녀의 친언니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신미애가 말했다.
“자세한 얘기는 그때 다 말할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현성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자꾸 물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통장을 받아든 현성은 우선 통장 내역을 확인했다.
‘이상하네.’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이유는 통장에 들어와야 할 돈이 입금이 안 됐기 때문이다. 바로 월세다. 오늘로 보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월세가 입금이 안 된 것이다.
신영훈.
얼마 전 현성의 건물에 칼국수 장사를 하겠다고 하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불과 3개월도 안 돼서 월세가 보름이나 밀린 것이다.
‘무슨 일이지?’
현성이 지금 걱정하는 건 단순히 월세 때문만이 아니다. 월세가 밀린다는 얘기는 신영훈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잠깐 ‘개인적으로 무슨 사정이 있겠지’하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 통장 내역을 확인하자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현성이 농협을 막 나가려 할 때였다.
“이보게, 현성 군!”
누군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조합장인 이만수였다.
현성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볼일은 다 봤고?”
“네, 뭐 좀 확인할 게 있었거든요.”
“혹시 바쁘지 않으면 잠깐 시간 좀 내주겠는가? 내가 할 말이 있어서 그러네.”
“네, 알겠습니다.”
현성은 이만수를 따라 조합장실로 향했다.
조합장실로 들어가자마자 이만수가 현성을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차 한잔하겠는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성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만수는 커피포트에 전원을 켜며 다시 물었다.
“커피는 어떻게?”
“그냥 블랙으로 연하게 주십시오.”
“블랙? 난 그건 써서 못 마시겠던데. 커피는 그저 크림이랑 설탕이 듬뿍 들어가야 제맛이던데.”
“습관이 돼서요.”
전생의 습관이다. 현성 자신도 처음엔 주로 믹스를 마셨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크림과 설탕이 건강에 안 좋다고 많은 사람들이 유행처럼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몇 번 마시다 보니 오히려 그 깔끔한 맛에 자연스럽게 길들여졌던 것이다.
더군다나 하루에 적당한 커피는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 하루에 서너 잔은 습관처럼 마시게 됐었다.
이만수가 찻잔을 현성 앞으로 내밀었다.
“자, 마시게.”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는 게 무엇인지요?”
“혹시 요즘 우리 수혁이랑 얘기를 나눠봤는가?”
“아니요, 아무래도 반이 다르다 보니까 자주는 못 보고 그냥 지나가다가 가끔 보는 정도입니다.”
2학년까지는 같은 반이었다. 그런데 3학년 올라가면서 반이 갈렸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나는 시간도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현성의 대답에 이만수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음…… 그렇군. 반이 다르다 보니 당연하겠지.”
“혹시 수혁이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그게 말이야……, 휴우!”
이만수는 말을 하다 말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현성은 순간적으로 이수혁한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만수가 이렇게까지 심각한 표정을 짓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현성의 머릿속에는 며칠 전에 봤던 모의고사가 생각났다.
3학년 들어서 처음으로 실시한 모의고사인 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번 시험이 앞으로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기본 점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수혁의 점수였다.
320점 만점에 198점. 200점도 못 넘은 것이다. 이수혁이 자신의 입으로 항상 했던 말이 연대에 가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점수로는 연대는 고사하고 지방 국립대도 갈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이수혁은 전생에서 대학을 가지 못했다. 나중에 재수하다가 군대에 갔다는 얘기까지만 들었다. 그 후로는 어떻게 됐는지 현성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이수혁에게 문제가 있다면 분명히 성적 때문일 것이다.
현성은 일단 모르는 척 이만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혁이한테 무슨 일이 있군요?”
“글쎄, 이 녀석이 갑자기 집에서 나가겠다고 하니……, 이 일을 어쩌는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현성은 이만수의 대답에 황당할 뿐이었다.
지금 이수혁한테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성적 문제일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만수의 입에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이 나왔다.
현성은 급한 마음에 다시 물었다.
“수혁이가 집을 나가겠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나도 너무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네.”
“언제 그런 말을 했습니까?”
“이틀 전이었네. 밤중에 갑자기 할 말이 있다고 하더니 글쎄 그런 말을 하더라고. 나도 나지만 수혁이 엄마는 지금 그것 때문에…….”
이만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하지만 무슨 상황인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을 듯싶었다.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지금까지 학교 잘 다니다가 갑자기 집을 나가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것도 제일 중요한 고3이라는 이 시기에.
그런데 왜 하필 이틀 전일까?
이틀 전이라면 모의고사를 치른 바로 그다음 날이다. 성적은 이미 나왔을 테고, 그렇다면 이수혁의 어머니인 유수민도 성적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골에서 과외까지 시켰던 분이다. 그런 분이라면 이수혁의 그 점수로는 지방 국립대도 못 갈 것이라는 건 바로 알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유수민과 이수혁,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
현성은 이만수를 보며 다시 물었다.
“혹시 집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까?”
“그게…….”
이만수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말은 예상대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일 터.
하지만 현성은 이번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만수가 말하기를 머뭇거린다는 것은 나름대로 말 못 할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럴 땐 그저 잠시 기다려주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러자 이만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이번에 우리 수혁이 모의고사 점수를 알고 있는가?”
“네, 대충은…….”
“정확히는 198점이네.”
현성은 이만수의 입에서 모의고사 점수가 나오는 순간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이수혁이 집을 나가겠다고 한 이유와 이번 모의고사 성적이 별개가 아닐 것이라는 거다.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이 없자 이만수가 다시 말했다.
“혹시 자네는 그 점수로 어디를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
현성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그 점수로는 지방 국립대 어디라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자네도 알고 있구먼. 어차피 그 점수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네. 재수밖에…….”
“…….”
“그렇다 보니 수혁이 엄마가 가만히 있었겠는가?”
역시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법은 없는 것이다.
이제 원인은 밝혀졌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건 이수혁의 행동이다. 첫 모의고사에서 그 성적을 받았다면 어머니인 유수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건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집을 나가겠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말이다.
현성이 말했다.
“저로서는 쉽게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라 뭐라고 말씀드리기엔…….”
“자네가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
“그게…….”
현성은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 이수혁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이수혁의 입장은 전혀 듣지를 못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만수의 말에 무조건 동의할 수는 없었다.
현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 말입니다…….”
“그래, 뭔가?”
“수혁이가 왜 집을 나가겠다고 하는지 그 이유는 들어보셨습니까?”
“이유?”
“네, 아버님도 아시다시피 수혁이가 그렇게 아무 생각이 없는 녀석은 아니지 않습니까? 걔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을 안 해.”
“네?”
현성은 이만수를 바라봤다.
그러자 이만수가 바로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에 내가 물어봤는데 이 녀석이 나한테는 말을 안 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 엄마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 같긴 같은데 …….”
이만수는 갑갑하다는 듯 남은 커피를 단숨에 마신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집사람한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는데 집사람 말로는 별말을 안 했다는 거야.”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렇다네. 그러니 나로서는 갑갑한 노릇이라는 거지.”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모의고사 성적에 가장 실망한 건 이수혁 본인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충격을 받은 사람이 바로 이수혁의 어머니인 유수민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 별말을 안 했다는 말에 현성은 쉽게 동의를 할 수가 없었다.
현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어머니가 진짜 별말씀을 안 하셨을까요?”
“사실 나도 그게 좀 불안하긴 해. 한편으론 오죽했으면 수혁이가 집을 나가겠다고 했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야.”
“음…….”
현성은 뭐라 말하기가 애매한 상황이었다.
지금으로선 모른다. 이수혁의 어머니인 유수민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그리고 이수혁이 무엇 때문에 집을 나가겠다고 했는지.
우선은 이수혁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는 게 우선일 것이다.
그때 이만수가 현성을 보며 말했다.
“현성 군, 나 좀 도와주게.”
“글쎄요, 수혁이가 저한테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지 모르겠네요.”
“아니야, 틀림없이 자네한테는 얘기할 걸세. 지난번에 그 녀석이 자네에 대해서 한 말이 있거든.”
“수혁이가 저에 대해서 말입니까?”
이만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말을 이었다.
“자네를 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