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287)
회귀해서 건물주-287화(287/740)
287
“형이요?”
“그렇다네. 우리 수혁이는 자네가 가끔 형처럼 느껴진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자네가 우리 수혁이를 좀 만나주게.”
“하하, 참…….”
현성은 웃음밖에 안 나왔다.
어쩌면 수혁이가 느끼는 감정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어쨌거나 현성은 50을 넘게 살았으니 말이다.
이만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인데 우리 수혁이가 끝까지 집을 나가겠다고 하면 어찌해야 하는지 그것도 고민이네.”
“설마 진짜 집을 나가기야 하겠습니까?”
“아닐세, 엊그제 얘기할 때 분위기로 봐서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네.”
“나가면 어쩌겠다는 겁니까?”
“자취를 하겠다고 하더군.”
“자취요? 수혁이가요?”
현성은 피식 웃었다. 물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수혁같이 곱게 자란 녀석이 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자네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
“지난번에 보니까 라면도 제대로 못 끓이던데 어떻게 자취를 하려고 그런 말을…….”
“내 말이 그 말일세. 하여간 자네가 어떡하든 우리 수혁이 만나서 꼭 좀 설득시켜 주게.”
“알겠습니다. 어떤 게 수혁이를 위한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만나서 얘기는 들어보겠습니다. 이따 영업 끝나고 집으로 가겠습니다.”
우선은 이수혁의 얘기를 듣는 게 우선일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 집을 나가겠다고 할 녀석은 아니니까 말이다.
농협을 나온 현성은 잠깐 망설였다.
‘어쩌지?’
현성이 고민하는 이유는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신영훈 때문이다.
보름 동안이나 월세가 밀렸단 얘기는 분명히 무슨 일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런데도 전화 한 통화 없다는 것이다.
보통은 그렇게 되면 건물주한테 최소한 전화라도 하는 게 기본이다.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고 경우를 모르는 사람도 아닌 거 같았는데……, 무슨 일일까?
잠깐 고민하던 현성은 칼국수 가게가 있는 터미널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우선은 신영훈을 만나보는 게 순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멈칫.
칼국수 가게 앞에 도착한 현성은 발걸음을 멈췄다. 막상 가게로 들어가려니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혹시나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생에서 장사를 하면서도 가장 불편했던 게 건물주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아무 죄지은 것도 없는데도 건물주가 나타나면 그냥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지금 신영훈 같은 경우는 어쨌거나 월세가 밀려있는 상태다. 이 상황에서 현성이 가게로 들어가면 당연히 부담을 느낄 것이다.
잠깐 고민하던 현성은 발길을 다시 돌렸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며칠 더 기다려 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때였다.
“사장님!”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칼국수 사장인 신영훈이었다.
“어? 안녕하세요.”
“여기는 어떻게…….”
“잠깐 볼일이 있어서 지나가는 길이었습니다. 별일은 없으시죠?”
현성은 일부러 아무 일도 없는 척 물었다.
그러자 신영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찾아뵈려고 했습니다. 시간 괜찮으면 잠깐 들어오시겠습니까?”
“지금이요?”
“네, 드릴 말씀도 있고…….”
“그러죠.”
현성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신영훈을 따라 칼국수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선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이유는 가게 안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저녁 시간인 이때쯤이면 최소한 몇 팀은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한 명도 없다는 얘기는 분명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현성이 자리를 잡고 앉자 신영훈이 현성을 보며 말했다.
“혹시 차 한잔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조금 전에 마시고 왔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는 게 뭔지요?”
“그게…….”
신영훈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현성은 그런 신영훈을 힐긋 바라봤다. 오픈할 당시만 해도 의욕과 패기가 넘치던 신영훈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에서는 그때의 의욕과 패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불과 3개월밖에 안 지났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변한 걸까?
잠깐 생각하던 현성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현성이 묻자 신영훈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현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우선, 죄송합니다.”
“네? 뭐가요?”
“월세가 많이 밀렸습니다. 전화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요, 그런데…….”
현성은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그건 신영훈이 갑자기 현성 앞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현성은 깜짝 놀라 무릎을 꿇은 신영훈의 양쪽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신영훈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는 듯 요지부동이었다.
황당한 건 현성이었다.
신영훈의 나이 올해로 스물여섯이다. 그런 그가 고등학생인 자신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물론 현성이 건물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신영훈이 자신 앞에 무릎을 꿇을 이유는 당연히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란 말인가?
현성은 다급한 목소리로 신영훈을 불렀다.
“신 사장님, 왜 이러십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살려 주십시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신영훈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왔다.
현성으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신영훈은 지금 살려달라고 했다. 이게 지금 무슨 말인가?
현성이 다시 말했다.
“일단 일어나세요. 이건 아닙니다. 사장님이 왜 저한테 무릎을 꿇습니까?”
“아닙니다. 도와주신다는 약속을 하기 전까지 저는 못 일어납니다.”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여전히 이상한 말을 하고 있는 신영훈이었다. 조금 전에는 살려달라고 하더니 이번엔 도와주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겠다고 한다.
그때 신영훈이 다시 말했다.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해주십시오.”
“아니, 제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이런…….”
“아닙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를 도와줄 사람은 사장님밖에 없습니다.”
“무슨 그런…… 네, 좋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일단 그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분명히 약속을 하신 겁니다.”
“네, 알았습니다. 그러니 어서…….”
현성이 두 번이나 알았다고 하자 그제야 신영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현성은 여전히 난감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신영훈이 현성을 보며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안 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좀 더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그게 그러니까…….”
신영훈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영훈의 설명이 길게 이어지자 현성은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침내 신영훈의 설명이 끝나자 바로 물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장사가 안된다는 얘기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유는 찾았습니까?”
“그런데 그게…….”
신영훈은 제대로 말을 못 하고 입만 달싹이고 있었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물었다.
“이유를 못 찾은 겁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저로서는…….”
신영훈은 여전히 제대로 말을 못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현성은 잠깐 생각하더니 신영훈을 보며 다시 물었다.
“혹시 요리 학원에 다녔습니까?”
“그건 아니고, 제가 취사병 출신이라…….”
“취사병이요?”
“네, 장교 식당에서 3년 동안 근무했었거든요. 그런데 요리를 하다 보니까 제 적성에 맞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현성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처음 칼국수 가게를 오픈하겠다고 찾아왔을 때만 해도 그런 사실까지는 몰랐었다.
잠깐 생각하던 현성은 신영훈을 보며 말했다.
“칼국수 한 그릇 주세요.”
“네?”
신영훈은 현성의 갑작스러운 주문에 황당하다는 듯 현성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현성은 바로 말했다.
“원인을 찾아야 할 거 아닙니까?”
현성의 생각은 단순했다.
어차피 음식점의 생명은 맛이다. 물론 장사가 안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중의 가장 큰 원인은 음식의 맛일 거라는 게 현성의 판단이었다.
“아! 네…….”
신영훈은 그제야 현성이 왜 칼국수를 주문했는지 알았다는 듯 바로 주방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신영훈은 쟁반에 칼국수 한 그릇을 들고나왔다.
“여기요. 드셔 보세요.”
“네.”
현성은 신영훈이 내민 칼국수를 맛보기 시작했다.
후릅.
국물부터 맛을 본 현성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것을 눈치라도 챈 걸까.
신영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이상한가요?”
“혹시 다시다로 육수를 대신한 겁니까?”
“네, 그게 간편하고 맛도 구수한 게 최고인 거 같아서 처음부터 육수 대신 다시다로 맛을 내고 있습니다. 근데 그걸 한 번 맛보고 바로 압니까?”
“…….”
현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굳이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조금 전 신영훈과 약속했던 자신의 말이 있기에 한 번 더 참기로 했다.
후!
현성은 짧게 심호흡을 한 후 젓가락을 들었다.
이번엔 면을 입으로 가져갔다.
오물오물.
잠깐 면을 먹던 현성은 젓가락을 내려놨다.
탁.
젓가락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소리에 놀란 신영훈이 바로 물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신 사장님!”
현성의 목소리가 조금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자 신영훈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제가 무슨 말을 하든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거야 물론이죠. 다 저를 위해서 하는 말씀일 텐데요.”
“그만두세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만두라니…….”
신영훈은 황당하다는 듯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했다.
“이런 식으로 장사하실 거면 그만두라는 얘깁니다. 굳이 더 이상 장사할 필요 없습니다.”
“아니, 무슨…….”
신영훈은 황당 그 자체였다. 물론 도움을 받고자 조언을 구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심한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그때 현성이 다시 말했다.
“왜, 제 말이 너무 황당합니까?”
“…….”
“저는 지금 더 황당합니다. 지금까지 신 사장님이 이런 칼국수를 가지고 장사를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걸 500원씩이나 받고 팔 수가 있습니까? 저 같으면 그냥 공짜로 먹으라고 해도 안 먹겠습니다.”
“…….”
신영훈은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뇌가 마비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충격적인 말은 처음이었다.
그때였다.
현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가게 정리하세요. 사장님 같은 분은 음식 장사하면 안 됩니다.”
현성은 그 말을 끝으로 가게를 나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사장님!”
한 발을 떼는 순간 신영훈이 현성의 옷자락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