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00)
회귀해서 건물주-300화(300/740)
300
신영훈이 현성을 찾아온 건 이틀 후 늦은 밤이었다.
“아니, 이 시간에 웬일입니까?”
현성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시각이 11시가 넘었다. 이 시각에 신영훈이 자신을 찾아올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영훈이 현성 앞으로 검은 봉지 하나를 내밀었다.
“우선 이것부터 받으세요.”
“이게 뭡니까?”
“별건 아니고 소고기 조금 사 왔습니다.”
“소고기요?”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신영훈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영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네, 감사한 마음에 뭐라도 드리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게 없더라고요.”
“갑자기 무슨 말씀인지……?”
“사실은…….”
신영훈은 자신이 이 늦은 시간에 왜 찾아왔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픈한 이후 오늘 최고로 많은 매출을 올렸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원인은 현성이 알려준 대패삼겹살 샤부샤부 버섯칼국수 때문이라고 했다.
신영훈의 설명이 끝나자 현성이 바로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올랐습니까?”
“자그마치 5만 원이나 올랐습니다.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신메뉴를 팔기 시작한 지 이제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사장님 말씀처럼 얼마 안 가서 10만 원도 금방 오를 거 같습니다.”
“손님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환장을 합니다.”
“하하, 환장이요?”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러자 신영훈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진짜 거짓말 안 보태고 먹어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합니다.”
“뭐라고 하는데요?”
“태어나서 이런 맛은 처음이라고 말입니다.”
“그 정돕니까?”
“저도 그 정도까지 반응이 폭발적일지는 미처 예상을 못 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건 또 있습니다.”
현성은 신영훈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신영훈이 바로 말했다.
“바로 가격입니다. 사장님의 말씀이 딱 맞았습니다.”
“그 말씀은…….”
“네, 사장님이 말씀하셨던 ‘10원의 미학’입니다. 비록 가격은 10원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손님들이 느끼는 어감의 차이는 상당했습니다. 저는 혹시나 10원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냐고 뭐라 그럴까 봐 걱정을 했었는데 역시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다행이네요.”
“참! 그리고 또 있습니다.”
신영훈은 갑자기 생각난 듯 무릎까지 치며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현성은 씩 웃었다.
“또 뭡니까?”
“술입니다.”
“술이요?”
“네, 사장님 말씀대로 대패삼겹살을 먹으면서 손님들이 술을 먹는다는 겁니다. 오늘만 해도 술값만 만 원이 넘었습니다.”
역시 예상한 대로였다. 칼국수만 먹을 때는 반주로 한두 잔씩 하겠지만 삼겹살을 먹다 보니 당연히 술의 소비가 늘어난 것이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음식 장사하면서 너무 인색하면 안 됩니다. 넉넉히 퍼주신다고 생각 하시고 항상 여유를 가지고 손님을 대하기 바랍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씀하신 대로 면도 넉넉히 드리고 야채랑 버섯도 더 달라고 하면 더 드리고 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앞으로 그렇게만 하시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 나올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신영훈은 현성 앞으로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밀린 월세입니다. 오늘 하루에 번 돈입니다. 제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게 다 사장님 덕분입니다.”
봉투를 받아든 현성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것 때문에 이 늦은 시간에 오신 거군요?”
“물론 그 이유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네? 진짜 이유요?”
현성은 당연히 밀린 월세 때문에 신영훈이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선 엉뚱한 말이 나왔다.
궁금한 마음에 현성이 다시 물었다.
“지금 진짜 이유라고 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씀이신데, 과연 그게 뭘까요?”
“양심 고백입니다. 사장님한테 제가 큰 죄를 저질렀거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이렇게 늦은 시간에 달려왔습니다.”
“지금 양심 고백이라고 하셨습니까?”
현성은 지금 신영훈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양심 고백이라니? 도대체 신영훈이 자신한테 고백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때 신영훈의 말이 이어졌다.
“저는 처음부터 사장님을 이용하려고만 했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처음부터 이용을 하다니요?”
“사실은…….”
신영훈의 설명이 길어졌다. 신영훈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현성의 표정은 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신영훈의 설명이 끝나자 현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허…….”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제가 어리다는 이유로 접근을 했다는 거죠?”
“……네.”
신영훈은 간신히 대답을 한 후 고개를 숙였다.
현성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신영훈의 말에 의하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 이유는 자신이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게 무슨…….
현성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죠.”
“네.”
“그럼 처음에 저에게 보여줬던 그 열정과 패기는 뭡니까? 혹시 그것도 다 쇼였습니까?”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땐 정말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순간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닌 건 그때가 처음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시장조사를 하면서도 전혀 피곤한 걸 몰랐으니까요.”
신영훈의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졌다. 그것만은 거짓이 아니라고 강조하듯 말이다.
그런 신영훈을 보며 현성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다시 묻죠. 처음에 저를 선택한 이유가 어려서 선택했다고 했는데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겁니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능이요? 뭐가요?”
“설득 말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가진 돈은 없고 남의 밑에는 들어가기 싫고 한 가게의 사장은 되고 싶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사장님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어리니까 이성보다는 감성이 우선일 거라는 생각을 했던 거고요?”
“네, 맞습니다.”
피식.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따지고 보면 신영훈과는 20년도 훨씬 더 차이가 난다. 그런데 그런 신영훈한테 이런 식으로 당했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현성은 신영훈을 바라봤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열정과 패기를 보여주는 것이었고요?”
“네, 그거면 사장님이 받아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확신이요?”
확신이라는 말에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어느 정도는 그 사람에 대해서 예상할 수는 있다. 그런데 지금 신영훈은 분명히 확신이라고 했다. 그 말은 그렇게 생각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현성은 신영훈이 대답하기 전에 다시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어떤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던 겁니까? 그렇지 않으면 말이 안 되는데…….”
“기억 안 나십니까?”
“네? 무슨 기억을 말하는 겁니까?”
“사장님이 TV에 나와서 그랬잖아요. 자신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떤 일을 하든 열정과 패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입니다.”
“아, 그 말이요…….”
현성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 작년에 맛집 프로그램을 촬영할 때 마지막으로 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느냐고 리포터가 물었을 때 현성 자신이 대답했던 말이다.
열정과 패기라고 말이다.
신영훈의 말이 이어졌다.
“그때 그걸 보고 용기를 냈던 겁니다. 비록 가진 돈은 없지만 열정과 패기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거든요.”
“하아, 참…….”
특별히 할 말이 없는 현성이었다.
물론 평상시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말이긴 하지만 그 말이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용기를 줬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잠깐!
현성은 순간 다른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신영훈이 자신을 이용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말은 기본이고 사기도 서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가 아닌가 말이다.
그에 비하면 신영훈의 의도적인 접근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는가.
현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잠깐만요.”
“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사장님의 행동이 양심 고백을 할 정도로 나쁜 건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람은 누구나 목적을 위해서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현성의 말을 끊은 건 신영훈이었다. 그리곤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네? 시작이요? 그게 무슨…….”
현성은 언뜻 이해가 안 갔다.
시작일 뿐이다? 그 말은 다른 게 또 있다는 얘긴데 도대체 다른 게 있을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때 신영훈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은 엊그제까지도 저는 사장님을 속이고 있었습니다.”
“저를 속여요? 도대체 뭐를 속였다는 말입니까?”
“사실은 …….”
신영훈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한 건 신영훈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현성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신영훈의 설명이 끝나자 현성은 바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사장님 말은 어떡하든 장사가 좀 되면 가게를 넘기고 빠질 생각이었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장님의 도움이 필요했던 거고요.”
“그 이유가 여기는 시골이기 때문이었고요?”
“어차피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여기는 그냥 더 큰 곳으로 나가기 위한 발판으로만 생각했었습니다.”
현성은 신영훈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었다.
신영훈이 말한 게 모두 사실이라고 해도 그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것이다. 어쩌면 장사를 하는 사람 대부분이 얼마든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말이다.
현성이 말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악의적이잖아요.”
“악의적이요?”
“네, 저는 처음부터 악의로 사장님께 접근했고 엊그제까지도 어떡하든 사장님을 이용해서 가게를 살릴 생각만 했었습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어느 순간 사장님이 저한테 하는 걸 보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성으로선 쉽게 이해가 안 가는 말이었지만 더 들어보기로 했다.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신영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순간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어느 순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엊그제 시식회를 하려고 노인 분들을 초대했을 때 말입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현성은 기억나는 게 없었다.
신영훈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음식도 대부분 사장님이 준비하셨고 노인정에 전화를 한 것도 사장님 아닙니까?”
“그거야 어쩔 수 없이…….”
“네, 그런데 사장님이 딱 한순간 소극적일 때가 있었습니다. 그게 언제인지 아십니까?”
“글쎄요, 그런 적이 있었나요?”
“바로 노인정 어르신들이 가게에 막 들어왔을 때입니다. 저는 그때도 당연히 사장님이 그분들을 먼저 맞이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사장님은 한발 뒤로 물러나시더군요.”
“그거야 가게 주인은 엄연히 사장님이라…….”
“바로 그겁니다!”
현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영훈의 목소리가 커졌다.
황당한 건 현성이었다.
“네? 그게 무슨…….”
“사장님은 그런 사람이라는 겁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상대를 먼저 배려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요. 그게 아무나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저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런 사람한테 그동안 거짓말을 하고 이용만 하려는 마음을 먹은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말입니다.”
“…….”
“그래서 고민 끝에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
“그리고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요?”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신영훈이 바로 말을 이었다.
“저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사장님과 오랜 인연을 맺고 싶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장기 계약을 해주십시오.”
“장기 계약이요? 얼마나…….”
“10년입니다. 어디 가도 사장님 같은 건물주는 없을 거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신영훈은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숙였다.
“10년이요? 하하, 하하하…….”
현성은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자신의 행동이 배려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저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한발 뒤로 물러났을 뿐이다. 그런데 신영훈은 그 작은 행동에 감동을 해서 양심 고백을 하고 장기 계약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세상을 움직이는 건 거창하게 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