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07)
회귀해서 건물주-307화(307/740)
307
“…….”
김명순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영진이 누구인가.
불과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너무 힘들어 월세를 단 만 원만이라도 깎아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했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이 주변 상권과의 형평성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가게는 안 깎아주는데 자신만 혼자 깎아줬다가는 다른 건물주로부터 원망을 듣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웃긴 건 다른 건물주들도 똑같은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의미겠는가.
결국, 건물주들끼리 서로 입을 맞추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월세를 재조정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명순이 가만히 서 있자 박영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누님, 저 팔 떨어지겠습니다. 어서 이 돈부터 받으세요.”
“어? 그, 그래…….”
김명순은 입으로는 대답을 했지만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문 입구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만큼 지금의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얘기였다.
벌떡.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영진이 일어나 김명순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누님답지 않게 왜 이러십니까? 이쪽으로 오셔서 얘기 좀 해요.”
“어? 그게 아니고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돼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제가 천천히 설명해드릴 테니 이쪽으로 오세요.”
김명순은 그제야 박영진의 손에 이끌려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김명순이 물었다.
“박 사장, 이 돈이 무슨 의미야?”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는 월세를 5만 원만 받겠습니다. 정확히 지금의 50%만 받겠다는 얘깁니다.”
“뭐? 그게 진짜야?”
“네, 그렇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로 조금 전까지 이 친구와 많은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박영진의 말이 끝나자 김명순은 현성을 힐긋 바라본 후 바로 입을 열었다.
“무슨 얘기를 했는데?”
“우리 동네 상권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불씨가 월세라고 말입니다.”
“마지막 불씨?”
“네, 그러니까…….”
박영진은 지금까지 현성과 나눴던 내용을 김명순에게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처음 시작은 현성이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장사를 한다는 것과 TV에 나왔던 얘기, 그리고 이곳에 왜 왔는지, 그다음은 권리금과 월세만으로 이 동네 상권분석을 끝낸 얘기와 마지막으로 이 동네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는 건물주들이 나서서 월세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얘기했다.
박영진의 얘기가 계속되는 동안 김명순은 몇 번씩이나 현성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도 박영진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박영진의 설명이 끝나자 김명순은 현성을 바라보며 바로 물었다.
“지금 박 사장이 한 얘기가 모두 사실이야?”
“그게 어쩌다 보니…….”
“허! 사실인가 보네. 그나저나 학교에 다니면서 라면 가게를 한다고?”
“네.”
“장사는 어때?”
“그냥…….”
그때였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신미숙이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현성이 말하기 전에 바로 입을 열었다.
“평균 10만 원이 넘어요.”
“네? 평균 10만 원이요?”
김명순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분명히 라면 가게라고 했다. 그런데 10만 원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그때 신미숙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김 사장님 모르면 간첩이에요.”
“그 정도예요?”
“학생들 하교 시간이면 보통 3, 40분은 기다려야 라면을 먹을 수 있어요. 어떨 때는 1시간도 더 기다릴 때도 있고요.”
“아니, 무슨 라면이기에 1시간씩이나 기다린 답니까?”
김명순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라면이다. 그런데 그 라면을 먹겠다고 1시간씩이나 기다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다.
그때 신미숙이 다시 말을 이었다.
“씬라면입니다.”
“씬라면이요? 그거야 슈퍼에 흔히 있는 건데 그걸 먹겠다고 1시간씩이나 기다린다는 거예요?”
“단순한 씬라면이 아니니까요. 우리 사장님 라면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절대 모릅니다. 그 맛의 비결은 우리 사장님이 직접 만든 양념장에 있거든요.”
“양념장이요?”
“네, 매운맛이 핵심인데 그 매운맛이 단순한 매운맛이 아니라는 거죠. 그 맛을 살려주는 마지막 달콤한 맛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 양념장의 비밀입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그 맛을 알아내려고 보름 동안이나 매일 사장님 가게에 가서 먹었는데 끝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손들고 체인점을 사장님한테 부탁을 한 겁니다.”
그때였다.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박영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체인점이요?”
“네, 물론 아직 그 부분은 사장님이 어떤 식으로 운영을 할지는 확답을 안 주셨지만 틀림없이 사장님의 도움을 받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모시고 온 겁니다.”
“이거 정말 놀랍습니다. 물론 아까 김 사장이 말할 때부터 여러 가지로 놀라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네요. 이렇게 되면 얘기가 달라지는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신미숙은 박영진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박영진이 바로 말을 이었다.
“저는 솔직히 신 사장님이 조그만 분식점 정도를 생각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삼거리에 있는 작은 분식 가게를 보여드렸던 거고요. 그런데 지금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 정도로는 안 될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게 문제는 우리 김 사장님한테 일임한 상태입니다. 저는 그저 우리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할 작정입니다. 그러니 그 문제는 우리 사장님과 상의를 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그 문제는 김 사장과 추후에 논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누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박영진은 시선을 다시 김명순에게 돌렸다.
그러자 김명순이 바로 말을 이었다.
“생각할 게 뭐 있겠어?”
“그 말씀은……?”
“장사를 계속해야지. 박 사장이 월세도 50%나 깎아줬는데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어? 그건 그렇고 괜찮겠어?”
“네? 뭐가요?”
“다른 건물주들 말이야. 박 사장만 혼자 이렇게 월세를 내려도 되는 거냐고? 지난달에 나한테 뭐라고 그랬어? 다른 가게와의 형평성 때문에 단 만 원도 못 내려준다고 했었잖아. 근데 이렇게 갑자기 5만 원씩이나 내려주면 다른 건물주들이 가만히 있겠냐고?”
박영진은 김명순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김명순의 말이 사실이다.
물론, 문서로 약속을 한 것은 아니지만 불문율처럼 지켜오던 원칙이 있었다. 그건 바로 월세에 대한 약속이었다.
월세를 올리는 거야 각자 알아서 정도껏 올리는 것이었지만 그 반대로 내리는 것만큼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이 내리게 되면 상권 전체로 그 영향력이 퍼져나간다는 거였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 월세를 올린 적은 있어도 단 1원이라도 내린 적은 없었던 것이다.
지금 김명순이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박영진이 김명순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 불씨를 살려보려고 합니다.”
“마지막 불씨?”
“네, 여기 김 사장이 얘기했던 마지막 불씨 말입니다. 그나마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하니 부딪혀 보려고 합니다.”
“힘들지 않겠어?”
“물론 힘들겠지요. 건물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다 같이 공멸인데 언제까지 눈 감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박영진의 말이 끝나자 김명순은 현성을 향해 돌아섰다.
“김 사장이라고 했는가?”
“네? 아, 네…….”
“고맙네.”
“…….”
현성은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자 김명순이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은 포기하고 있었네.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자네 덕분에 다시 희망을 꿈꿀 수가 있게 되었네.”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
“그건 아니지. 여기 박 사장의 생각을 바꿔놓은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자네가 아닌가 말이야.”
“그건…….”
특별히 할 말이 없는 현성이었다.
현성이 말이 없자 김명순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하면 되겠는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물론 건물주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모르겠지만 우리 세입자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야.”
“그 말씀은…….”
“우리 세입자들도 우리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 말이야. 안 그런가?”
“아, 네.”
맞는 말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게 세입자들인지 모른다. 실질적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세입자들이니까 말이다.
김명순이 다시 말했다.
“가르쳐 주게.”
“제가 어찌…….”
“아니야, 자네는 충분히 자격이 있네. 오늘 처음으로 이 동네에 왔으면서도 여기 상권의 문제가 무엇인지 단박에 파악하지 않았는가. 그뿐인가, 건물주들이 나서서 월세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해법도 바로 제시를 했네. 내 말이 틀렸는가?”
“그거야…….”
현성이 제대로 대답을 못 하자 김명순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지 말고 편하게 얘기해주게. 자네 눈에는 우리 세입자들이 할 일이 보였을 거네. 솔직히 우리는 타성에 젖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른다네. 그러니 자네가 우리를 깨워주게.”
맞는 말이다. 사람이 자고로 한곳에 오래 있다 보면 말과 행동이 굳어지게 된다. 굳어진 습성, 그것을 우리는 타성이라고 부른다.
김명순은 지금 그 타성에 젖어 변화를 두려워하는 심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깨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이 외부의 충격이다.
잠깐 생각하던 현성은 김명순을 보며 입을 열었다.
“사장님, 주제넘지만 제가…….”
“학생!”
현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명순이 현성을 불렀다.
“네.”
“내가 성격이 급해서 그런 예의 같은 말은 질색이네. 그런 말로 괜히 아까운 시간 소비하지 말고 우리 상권을 위해서 우리 세입자들이 무엇을 하면 되는지 바로 얘기해주게. 다른 사람은 둘째치고 우선 나부터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할 테니까 말이야.”
현성은 잠깐 당황스러웠지만 김명순이 어떤 사람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러기에 판단도 빨랐다.
“알겠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은 청소부터 하십시오. 제가 오늘 이 동네에 와서 가장 먼저 느낀 게 지저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다니는 인도는 물론이고 상가 앞에도 언제 청소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 지저분했습니다.”
“인정하네. 다들 의욕들이 없다 보니…….”
“어떤 이유로도 용납이 안 되는 부분입니다. 가장 기본 아니겠습니까?”
“알았네. 그 부분은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겠네. 그리고 그다음은 또 뭔가?”
김명순은 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간판과 선팅입니다. 깨지고 벗겨지고 심지어 어느 상가는 간판 상호가 뭔지도 모를 정도로 훼손된 집도 있더군요.”
“역시 예리하군.”
“아닙니다. 그건 제 눈에만 보이는 게 아니라 누구나 처음 오는 사람들 눈에는 다 보일 겁니다. 그리고 여기 사장님들도 다 알고 계신 거고요. 단지 그냥 모른 척 외면할 뿐이죠.”
“하긴, 맞는 말이네. 우리 가게부터가 엉망이니 말이야. 그리고 밤만 되면 여기 상가들은 깜깜하네. 간판에 불 들어오는 집이 거의 없으니 오죽하겠는가. 듣고 보니 우리 세입자들도 문제가 한둘이 아니구먼.”
김명순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한심하다는 듯 한숨까지 쉬었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고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게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상권이 옮겨가면서 나타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니까요. 중요한 건 앞으로입니다. 아직 기회는 있는 거니까요. 지금부터라도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동기 유발이 필요한 거고요. 그게 바로 건물주들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 문제는 여기 박 사장한테 맡기고, 우선 나는 내일이라도 당장 돌려받은 5만 원으로 간판과 선팅부터 교체를 해야겠구먼.”
“그건 안 됩니다.”
“응? 그건 또 무슨 소린가?”
김명순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현성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말을 이었다.
“개인으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개인이 아니면…….”
“공동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최소 20% 이상은 비용이 적게 들어갈 겁니다. 그리고 디자인도 통일해야 합니다.”
그때였다.
박영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성 앞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