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09)
회귀해서 건물주-309화(309/740)
309
“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쪽 상권에 전체적인 월세 조정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조건인가?”
“그렇습니다.”
“이유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거. 이 조건에서는 저도 이곳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상권이 살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다는 겁니다. 부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마지막 기회 말인데…….”
박영진은 말을 하다 말고 잠깐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내 생각엔 자네의 도움 없이는 안 될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먼저 하나 묻겠네.”
박영진의 표정이 조금 전과 다르게 진중해졌다.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영진이 바로 입을 열었다.
“자네 생각에는 월세만 내린다고 해서 여기 상권이 살아날 거라고 믿는가?”
“아무래도 월세가 내려가게 되면…….”
“아니, 그건 아닐 거라고 보네.”
현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영진이 먼저 현성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물었다.
“지금 그 말씀은 월세만 내려서는 여기 상권이 살아나지 않을 거라는 말씀이죠?”
“난 그렇게 생각하네.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여기 사람들은 이미 타성에 젖어버렸네. 스스로 변화할 생각을 못 한다는 거지. 월세를 내려주면 그만큼 더 노력해서 여기 상권을 더 키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든 월세만큼 수익이 늘어났다고 좋아하고 말 거라는 거지.”
“…….”
현성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어쩌면 박영진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타성에 젖게 되면 변화 자체를 싫어한다. 그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그 생활에 안주하려는 습성, 그게 바로 인간의 모습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가 있다고 했다.
아까 버스에서 내렸을 때 처음 시야에 들어온 모습은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인도에 널려 있는 담배꽁초와 휴지들, 그리고 버스정류장 옆에는 수북이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까지, 얼핏 봐도 이건 도저히 시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모습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가 건물들이 너무 오래되다 보니 페인트는 다 벗겨지고 군데군데 파손된 벽, 그리고 그 위에 걸려있는 오래된 간판들.
더 놀라운 건 돌출 간판의 위치였다. 각 상가마다 더 돋보이게 하려고 서로 위에다 달다 보니 멀리서 보이는 모습은 간판이라기보다는 기형적인 흉물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쓰레기 더미였다. 새벽에 치워가는 쓰레기를 어두워지기도 전에 내놓았으니 그 모습이 오죽했겠는가 말이다.
현성이 말을 못 하자 박영진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와 내가 일을 분담하는 건 어떻겠는가?”
“분담이요?”
“그렇다네. 나는 건물주들을 상대로 설득을 하겠네. 그러니 자네는 세입자들을 상대로 어떻게 하면 여기 상권을 키울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주게. 아니지, 이미 자네는 그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은가?”
“네? 제가요?”
“그래, 아까 자네가 직접 한 말이 있지 않은가? 명순이 누님이 물었을 때 자네가 얘기했잖아. 청소부터 하라고. 그리고 간판과 선팅에 관해서도 얘기했고 말이야.”
“아, 그거요…….”
그건 사실이다. 아까 김명순이 상가를 위해서 세입자들이 할 일이 뭐가 있냐고 물었을 때 자신의 입으로 분명히 말했었다.
우선은 기본적인 청소, 그리고 얘기했던 게 간판이다.
어찌 보면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입자들이 하려고 마음만 먹으며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문제는 하려고 하는 마음을 먹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것만 찾으면 된다는 얘긴데…….
현성의 생각이 길어지자 박영진이 다시 말했다.
“내 말이 틀렸는가?”
“그건 아닙니다만…….”
“뭐 다른 문제가 있는가?”
“문제가 아니라 타지에서 온 제가 과연 여기 계신 분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그게 걱정이 돼서요.”
“이 친구야, 그런 걱정을 왜 하는가? 자네는 이미 두 사람을 설득시키지 않았는가?”
“두 사람이요?”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박영진이 바로 말을 이었다.
“나와 명순이 누님 말일세. 자네가 가장 먼저 설득시킨 사람은 나라는 거 잊지 말게.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임대료를 50%나 깎아주지 않았는가?”
“아,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나라고 돈이 걸린 문젠데 왜 갈등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네. 혹시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글쎄요, 그건 저도…….”
사실 아까 박영진의 행동을 보고 놀랐던 건 사실이다. 그건 바로 금액 때문이다. 처음에 월세 조정의 필요성에 관해서 얘기를 할 때만 해도 금액 부분은 정확히 얘기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박영진은 과감하게 50%를 깎아준 것이다.
처음에 예상하기로는 월세를 조정을 한다고 해도 30% 정도만 돼도 대단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건물주가 월세를 깎아준다는 것 자체가 거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박영진의 말이 이어졌다.
“자네 때문일세.”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는 다른 사람하고 달랐거든. 자네는 처음부터 어느 한쪽의 이익만을 대변한 것이 아니라 구성원 전체, 즉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를 위한 접근이었다는 거지. 만약 자네가 처음부터 임대료만을 깎을 목적으로 얘기했다면 나도 그냥 무시했을 거네. 그런데 자네는 처음부터 어느 한쪽이 아닌 상권 전체를 살리자는 목적이었기에 나도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거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전체가 살아야 부분도 사는 것이니까요. 굳이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부분보다는 전체가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네가 다른 사람하고는 다르다는 것이네. 보통은 전체를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의 이득부터 생각하는 게 사람의 심리거든. 그런데 자네는 처음 접근 방법부터 다른 사람하고는 확실히 달랐네. 그게 내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네.”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영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박영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아까 자네도 들었겠지만 명순이 누님이 한 달 전에 월세를 단 만 원이라도 깎아달라고 말을 했었네.”
“네, 저도 아까 얼핏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안 깎아줬는지 아는가?”
“글쎄요, 그건 …….”
현성은 박영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바로 알아챘다. 그것은 바로 조금 전에 얘기했던 것을 다시 부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자신이 먼저 얘기하는 건 박영진의 말을 끊는 것이기에 일부러 모른 척 말을 아꼈다.
그러자 박영진이 바로 말했다.
“만 원을 깎아주는 거야 어려운 건 아니었네. 하지만 그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네. 물론 그 돈만큼 명순이 누님이 약간의 경제적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상권 전체로 봐서는 오히려 혼란만 초래할 거라고 생각했네.”
“다른 상가에서 불만이 나올 테니까요.”
“맞는 말이네. 소문은 금방 퍼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만 다른 건물주들로부터 공공의 적이 되는 거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는 결과가 되는 거야. 그래서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던 거네.”
“그때 답변이 다른 가게와의 형평성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거고요.”
“그렇다네. 물론 그 말이 임차인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핑계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라도 나로서는 명분을 찾을 수밖에 없었네.”
“그게 오히려 상권의 혼란을 막는 거라고 생각하셨을 테니까요.”
박영진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바로 말을 이었다.
“역시 자네하고는 대화가 통하는구먼. 내 말이 그 말이야. 괜히 어설픈 동정으로 상권의 혼란을 초래하고 싶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는 거죠?”
“그렇지, 이제는 명분이 확실히 생겼거든. 아마도 조만간, 아니, 어쩌면 오늘 저녁에라도 다른 건물주들이 나를 찾아올지 모르네.”
“아무래도 그렇겠죠. 한두 푼도 아니고 50%나 월세를 깎아주셨으니 말입니다. 제가 보기엔 오히려 그것을 노리신 듯한데 맞습니까?”
현성의 말에 박영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역시 자네는 보통이 아니야. 맞네, 내가 노리는 게 바로 그거네. 자네가 그랬잖은가. 건물주들을 설득하라고 말이야.”
“그분들이 알아서 찾아오실 거라는 말씀이죠?”
“바로 그거네, 내가 굳이 힘들게 찾아가지 않아도 제 발로 알아서 올 테니까 나로서는 최상의 방법이 아닌가 말일세. 더군다나 이제는 상권을 살리기 위한 거라는 명분까지 확실히 얻었으니 그들을 설득시키는 건 시간문제일 걸세. 자고로 무슨 일이든 명분이 서지 않으면 나서기 힘들지만 그와 반대로 명분만 확실하다면 못 할 게 뭐가 있겠는가, 안 그런가?”
맞는 말이다.
특히 한 개인이 아닌 다수의 이익이 연관된 일이라면 그 명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상권을 살린다는 명분은 당연히 최고의 명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만한 명분이 없지요.”
“그러니까 말이야. 그런데 그 명분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는가?”
“…….”
“바로 자네란 말이야. 아무도 못 하던 일을 자네가 오늘 처음으로 오자마자 바로 만들었단 얘기네. 자, 이제는 자네가 답변을 해주게. 나랑 같이 이 상권을 살려보겠는가?”
“그게…….”
현성은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두 개도 아니고 상가만 25개다. 한 상가당 4인 가족으로만 따져도 기본 100명이다. 그것도 최소한으로 잡았을 때다. 거기다 건물주까지.
전체를 계산하면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이다.
현성이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다.
현성의 대답이 늦어지자 박영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자네 말고는 이 일을 해줄 사람이 없네.”
“…….”
“이대로 있다가는 여기 사람들 다 죽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최소한 10년씩은 다 넘게 장사를 하던 사람들일세. 이대로 쓰러지기엔 너무 가엽지 않은가? 부디 자네가…….”
“네, 알겠습니다.”
박영진의 말이 끝나기 전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박영진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정말인가?”
“네, 물론 제가 능력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상황에 그냥 모른 척하기엔 양심상 도저히 허락이 안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어찌 됐건 제 입으로 먼저 뱉은 말이고요. 최소한 시작을 했으니 끝은 봐야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가장 많이 신경이 쓰였던 건 이곳 세입자들의 반응이다.
– 과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고민은 깊었지만 짧은 시간에 그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답을 찾는다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을 것이다.
대신 고민 끝에 찾은 건 사람들과 직접 부딪히자는 거였다.
어차피 처음부터 신미숙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이미 숙명처럼 기다리고 있었던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세입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어찌 됐건 전생에서 20년을 넘게 장사를 한 경험이 있다. 세입자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마지막 결정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건 전생의 경험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박영진의 말이 이어졌다.
“그럼 앞으로 내가 어찌하면 되겠는가?”
“아까 말씀하신 대로 사장님은 건물주들을 설득해 주십시오. 물론 어렵겠지만 목표는 월세를 50% 줄이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이 상권에서는 그게 맞습니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각오는 하고 있네. 그런데 말이야 무조건 건물주들한테만 희생을 강요하기엔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는데, 건물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는가?”
“2년입니다.”
“2년?”
박영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2년 후부터는 20%씩 인상할 겁니다.”
“지금 그 말은…….”
“네, 당연히 건물주한테만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죠. 그건 너무 이기적인 겁니다. 서로가 좋자고 하는 일인데 한쪽만 양보를 하라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허허, 역시 자네는 모든 계획이 있었구먼?”
박영진의 표정이 한층 밝아지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말했다.
“2년마다 20%씩 인상하면 10년 후에는 정상적인 임대료가 정착이 될 겁니다. 물론 그때는 여기 상권도 그만큼 살아났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곳 건물값도 그만큼 오르지 않겠습니까?”
“그때 건물주들도 지금 양보한 월세에 대한 보상을 받는 셈이 되겠구먼?”
“바로 그겁니다. 그렇게 되면 세입자나 건물주나 모두가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게 바로 상생이고 공생이 아니겠습니까?”
그때였다.
짝짝짝…….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미숙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와! 우리 사장님 대단합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덥석.
박영진은 현성의 손을 양손으로 잡고는 한참이나 말없이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