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15)
회귀해서 건물주-315화(315/740)
315
“밥은?”
“네? 밥이요?”
“점심 먹었냐고?”
“아직 안 먹었습니다.”
“밥해. 배고프다.”
“…….”
현성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비록 전생이지만 어쨌거나 50년을 넘게 산 현성이다. 그런 현성조차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경우, 상식 등 그밖에 어떤 단어를 떠올려도 지금의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괴팍.
마지막으로 현성이 떠올린 단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괴팍한 늙은이라는 게 현성이 짧은 시간 동안 내린 이우석에 대한 첫 평가였다.
이우석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쌀은 냉장고 옆 쌀통에 있고, 냉장고 열면 감자 몇 알 있을 거야. 그걸로 반찬 만들어 봐. 재주껏. 아, 그리고 밥은 꼭 냄비 밥으로, 이상.”
저벅.
그 말을 끝으로 거실로 사라진 이우석.
역시 괴팍한 늙은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현성의 선택만이 남았다.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그냥 이대로 돌아나가면 된다. 어차피 저런 괴팍한 늙은이하고 대화를 하겠다고 찾아온 자체가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물론 그렇게 한다면 더 이상의 일 진행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온 목적 자체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그건 안 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가장 먼저 걸리는 게 신미숙이다. 신랑 먼저 떠나고 남은 애들 둘과 살아가는 그 여자. 이대로 없던 일로 하기엔 그 가족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다.
그리고 그다음 걸리는 게 김명순을 포함한 상가 사람들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어쨌거나 그들에게 희망을 준 건 사실이다. 여기서 그 사람들의 희망을 송두리째 꺾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망설일 게 없다는 얘기다. 비록 괴팍한 늙은이지만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피식.
막상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나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벅.
현성은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으로 들어선 현성은 우선 쌀부터 씻어 냄비에 안쳤다.
냄비에 밥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쌀을 안친 다음 뚜껑을 닫지 않고 강한 불로 끓인다. 그렇게 5분 정도 끓이다 보면 냄비에서 ‘타닥’거리는 소리가 난다. 바닥에 물기가 다 말랐다는 얘기다. 그때 뚜껑을 닫고 약한 불로 10분 정도 더 뜸을 들이면 된다.
물론 이 방법은 전생에서 아내인 윤지수한테 배운 방법이다. 그걸 또 여기서 써먹을 줄은 몰랐다.
그다음은 냉장고 야채 칸에서 감자와 대파를 꺼냈다.
“풉.”
현성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자신의 행동이 너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결정한 일이다. 많은 사람의 꿈과 희망이 지금 자신한테 달려있다. 어떡하든 이우석을 설득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막상 또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힘이 나는 듯했다.
“그래, 어차피 하는 거 즐겁게 하자.”
현성은 감자를 깎기 시작했다.
30분 후.
주방 식탁에는 제법 그럴싸한 밥상이 차려졌다.
“드세요!”
현성은 맞은편에 앉은 이우석을 보며 살갑게 말했다. 이왕 어차피 하는 거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우석의 표정엔 별 변화가 없었다.
그런 이우석이 말을 던지듯 툭 물었다.
“고3이라고?”
“네.”
이우석의 질문은 그게 끝이었다. 혹시나 다른 질문이라도 할까 싶어서 좀 더 기다렸지만 이우석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조용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우석이 다시 입을 연 건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였다.
“솜씨가 좋군.”
“네? 아, 네. 감사합니다. 감잣국이 입에 맞으셨습니까?”
“음, 시원하고 담백한 게 맛있었네. 그런데 어떻게 감잣국을 끓을 생각을 했는가?”
“혹시 어젯밤에 약주를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까 감자로 요리를 하기 전에 잠깐 고민을 했었다.
감자로 할 수 있는 요리는 두 가지다. 볶음과 국. 물론 그 외에도 더 있지만 얼핏 생각나는 건 그 두 가지였다.
하지만 현성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건 바로 처음 거실문을 열었을 때 알코올 향이 이우석의 몸에서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 없이 바로 감잣국을 끓였던 것이다.
이우석이 흥미롭다는 듯 다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가?”
“미세하지만 알코올 향이 났습니다.”
“알코올 향? 아, 그래서 내가 술을 먹었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일부러 감잣국을 끓였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약주 드신 다음엔…….”
“허허, 이 친구 듣던 대로 괴물일세. 알았네, 대충 치우고 저기 커피 있으니까 그거 두 잔 타서 저쪽으로 오게. 하하, 그놈 참…….”
이우석은 기분 좋다는 듯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잠시 후.
현성은 식탁을 치운 후 커피를 타서 거실로 향했다.
현성이 다가가자 이우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커피 주고 그쪽에 앉게.”
이우석의 말투가 처음과는 다르게 많이 부드러워진 듯했다. 그런데 변한 건 말투뿐만이 아니었다.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그 차가운 인상도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현성이 자리를 잡고 앉자 이우석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합격일세.”
“합격이요? 그게 무슨 …….”
현성은 순간적으로 이우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합격이란 말속에는 시험이란 말이 내포돼있다.
일정 기준의 시험을 통과해야 합격이란 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
‘아니, 잠깐!’
현성은 순간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이우석의 행동이었다.
자신을 처음 맞았을 때 이우석의 행동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행동이었다. 자신을 보자마자 대뜸 한다는 말이 밥을 하라는 거였다.
이유야 어찌 됐든 자신은 방문객이다. 즉 손님이라는 얘기다. 손님한테 대뜸 밥을 하라고 한다? 이건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경우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이우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이우석이 경우를 모르는 사람일까?
현성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최소한 그 정도는 아니란 게 현성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이제 하나다.
고의(故意).
이우석은 일부러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 결국, 이우석은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했고, 그게 바로 자신을 시험했다는 얘기가 된다.
현성은 이우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저를 시험하셨던 겁니까?”
“맞네. 내 집을 찾아온 손님한테 보자마자 밥을 하라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했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자네를 확인하고 싶었네.”
“확인이요?”
확인이라는 말에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확인을 한다는 건 이미 자신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 경로는 예상컨대 박영진이였을 것이고.
이우석의 말이 이어졌다.
“복덕방의 박 사장으로부터 처음 자네 얘기를 들었을 때는 당연히 믿을 수가 없었네. 누가 들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경우였으니까 말이야.”
맞는 말이다. 고3짜리가 와서 뭔가를 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입장 바꿔 자신이라고 해도 그건 이우석의 생각과 같았을 것이다.
현성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이우석이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엔 신경도 안 썼었네.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박 사장이 3일을 연속으로 찾아와서 같은 말을 하는 거야.”
“3일을요?”
“그래, 그렇다 보니까 솔직히 호기심이 생기더라고. 박 사장이 그렇게까지 하는데 나로서도 어쩔 수 없더라고. 그래서 사람을 하나 시켜서 자네를 알아봤네.”
“네? 그 말씀은…….”
“그래, 미안하지만 자네의 뒷조사를 좀 했네.”
“…….”
할 말이 없는 현성이었다.
이우석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정말 놀랍더군. 그래서 자네를 보고 싶었네. 그리고 최소한 어떤 품성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거고.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를 시험할 방법이 없는 거야.”
“그래서 저한테 밥을…….”
“그래,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자네가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궁금했거든. 그게 바로 인품이고 말이야. 근데 결과는 내 기대치를 뛰어넘었네. 그것도 많이 말이야. 혹시 그 이유를 알겠는가?”
“글쎄요, 저로서는…….”
현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이우석이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음식도 훌륭했었네. 냄비 밥도 그만하면 최고였고, 감잣국도 맛이 아주 좋았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네.”
“……?”
“왜냐하면, 자네가 운영하는 그 라면 가게가 그 동네에서는 최고의 매출을 올린다는 건 음식에 대해서만큼은 이미 검증을 받은 셈이니까 말이야.”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당연하지. 아무리 라면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로 사람이 온다는 건 자네만의 특별한 맛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니까 말이야.”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얘기였다.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우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자네한테 놀란 건 두 가지였네.”
“두 가지요?”
“그래, 그 하나는 그 상황에서도 내가 전날에 술 먹은 걸 알고 해장국으로 감잣국을 끓이겠다고 생각한 그 마음이네. 난 그 기특한 마음에 감동을 했네.”
“아, 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우석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바로 말을 이었다.
“자네의 모습이었네.”
“모습이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의 요리하는 모습 말일세. 제법 잘 어울리더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자네는 요리를 하면서 표정이 밝았다는 거야.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도 인상 쓰지 않고 웃으면서 요리를 하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네.”
“그거야 이왕 할 거면 즐겁게 하자는 게 저의 생각이라…….”
“그러니까 말일세. 그게 아무나 되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런데 자네는 그걸 해내더군. 사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말이야.”
“사실은 저도…….”
사실 현성의 입장에서도 쉬웠던 건 아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별의별 경우가 다 있다. 바로 오늘처럼 말이다.
처음엔 너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 바로 돌아설 생각도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생각을 바꿨던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왕 하는 거 즐겁게 하자는 게 자신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사람이라는 게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변한다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 보면 행복해진다는 말처럼 말이다.
그때 이우석이 다시 말했다.
“대가는 내가 치르겠네.”
“대가요?”
“그래, 자네를 시험했으니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겠지. 그래서 말인데, 3개월 동안은 월세를 안 받겠네.”
“3개월이요? 그게 정말입니까?”
“대신…….”
이우석은 중간에 말을 끊었다. 잠깐 무슨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러기를 잠시.
이우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가게가 나에겐 특별한 가게네. 지금은 없지만 예전에 아내가 …….”
이우석의 말이 조금 길어졌다. 그 얘기는 바로 어제 박희철이 자신에게 말했던 이우석의 아내에 관한 얘기였다.
이우석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 가게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어 주게. 그리고 거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모두 웃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도록 자네가 만들어 주게. 그게 내 바람이고 아내의 마음일세. 할 수 있겠지?”
“네, 어르신.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거기뿐만이 아니고 상가 전체에 웃음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허허, 고맙네. 그리고 참, 저거 고맙게 잘 먹겠네. 그리고 이제야 말이지만 자네가 두유를 들고 들어오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이미 내 마음은 결정을 했었네. 사람이 자고로 기본을 지킨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이우석은 거실 한쪽에 놓여있는 두유 박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거창한 게 아니란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