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18)
회귀해서 건물주-318화(318/740)
318
현성의 눈에 들어온 건 하얀 봉투였다.
그게 뭔지 모를 정도로 순진한 현성이 아니었다.
24개 상가의 간판과 선팅 작업, 그리고 신미숙의 가게 인테리어까지, 이 모든 공사에서 얻어지는 총 수입금액은 대략 420만 원을 조금 넘을 거란 계산이 나온다.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다. 특히 이런 시골에서 일거리가 많지 않은 지역에서 그 금액의 가치는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민철 또한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런 식으로 봉투를 준비했을 것이고. 물론, 이건 공사를 하기 전에 인사 차원에서 약간의 성의를 보이는 것이고 나중에 공사가 끝나면 또 다른 보상을 준비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유민철의 입에서 자신이 예상했던 말이 바로 나왔다.
“이건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고, 공사가 끝나면 총 수입금액의 5%를 …….”
“유민철 씨!”
유민철은 말을 하다 말고 깜짝 놀랐다. 현성이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진중하게 불렀기 때문이다. 보통은 ‘형님’이란 말로 친근하게 부른다. 그런데 갑자기 이름을 부른다?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는 유민철이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어? 왜? 혹시 내가 무슨 실수라도…….”
유민철은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사실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현성 또한 비록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거라는 게 자신의 판단이었다.
세상에 돈 줘서 싫어할 사람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현성의 분위기다. 그저 모른 척 봉투를 받아주면 되는 일이다. 그게 부당한 것도 아니고 이쪽 업계에서는 관례처럼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위기는 뭐란 말인가.
현성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며칠 전에도 말씀드렸던 거 같은데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런데요?”
“아니, 내 말은 그게 부당한 것도 아니고 우리 업계에서는 당연한 거라, 그리고 내 입장에서는 어떡하든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그냥 모른 척…….”
“그만 하세요.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그런 거 싫다고 말입니다.”
일주일 전이다.
박영진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유민철에게 전화를 했었다.
혹시나 일이 잘 풀리면 큰 공사가 하나 생길 거 같다고 말이다. 미리 전화를 했던 이유는 간판 디자인을 미리 준비시키기 위함이었다.
박영진으로부터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기에 만반의 준비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끝에 유민철이 리베이트 얘기를 얼핏 내비쳤다. 섭섭하지 않게 공사가 끝나면 일정 비율을 챙겨주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었다.
양심상 도저히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상권이 무너져 암담한 미래 속에서 살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돕기 위하여 시작한 일이다.
그런 사람들을 팔아서 금전적인 이득을 취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강하게 거절을 했던 거고, 그걸로 충분히 자신의 생각이 전달이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현성은 유민철을 다시 불렀다.
“형님!”
“어? 어, 그래.”
“물론 형님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이용해서 저의 개인적인 이익을 챙길 정도로 파렴치한은 아닙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파렴치한이라니, 동생 인품이야 익히 알고 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 생각이 짧았어. 난 솔직히 동생이 이렇게까지 불편해할 줄 몰랐어. 난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단순하게…….”
유민철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그다음은 현성의 말로 채워졌다.
“네, 알겠습니다. 형님의 그 마음 충분히 압니다. 물론 어떤 악의도 없다는 것도. 그래서 말인데요, 부탁을 한 가지 드릴까 합니다.”
“부탁? 무슨 부탁? 얼마든지 말해!”
유민철의 말이 빨라졌다. 그만큼 지금의 분위기가 심적으로 불편했던 것이다. 지금 현성이 부탁을 한다는 건 이쯤에서 이 얘기는 마무리를 하겠다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현성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공사비 말인데요.”
“공사비?”
“네, 그 공사비에서 형님이 저에게 주겠다고 생각했던 금액만큼 빼줄 수 있겠습니까?”
“뭐, 공사비를 빼?”
유민철은 잽싸게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신미숙의 인테리어 공사비까지 포함하면 대략적으로 420만 원 정도 나온다. 거기서 현성에게 주려고 했던 금액이 5%인 약 20만 원, 거기다 오늘 봉투에 넣은 10만 원까지 포함하면 총 30만 원이다. 지금 현성이 요구하는 건 이 30만 원을 공사비에서 빼자는 얘기다. 그 말은 곧 상가 사람들에게 그 금액만큼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의미다.
“네, 가능하시겠습니까?”
“뭐 어차피 동생한테 주려고 했던 거니까 동생이 그걸 원한다면 못 할 거야 없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솔직히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서 말이야.”
유민철은 지금 현성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현성이 이 동네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직접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여기 상가 사람들을 만난 것도 이제 겨우 일주일 전에 한 번 만났을 뿐이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상가 사람들을 챙겨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현성의 말이 이어졌다.
“마음을 보태고 싶습니다.”
“마음?”
“네, 물론 제가 여기서 산 것도 아니고 장사를 직접 할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 사람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습니다.”
“진심이라? 음……, 단순히 그냥 그런 생각이 든 건 아닐 테고,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거야?”
“상가 사람들의 열망과 열정 때문입니다.”
오늘 이곳에 와서 처음 만난 사람이 식당을 운영하는 김명순 사장이었다.
우선 처음 놀란 건 김명순 사장의 표정이었다. 일주일 전에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그땐 한눈에 보더라도 지친 모습이었다. 물로 그 이유는 상권의 이동으로 인한 매출의 급감이 원인이라는 걸 얼마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미래가 없는 오늘.
그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모른다. 하지만 현성으로선 전생에서 20년을 넘게 장사하면서 많은 어려운 시간들을 겪었기에 누구보다도 그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김명순 사장의 깊은 한숨이 유독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오늘.
김명순 사장의 표정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삶의 무게에 억눌리고 찌든 모습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그녀의 표정이었다.
비록 세월의 흔적으로 인해 깊게 파인 주름이지만 그 주름마저 무색할 정도로 밝은 모습으로 현성 자신을 맞이하던 그녀.
그 모습에선 일주일 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서 바로 알 수 있었다.
희망, 그리고 그 희망에 대한 열망과 열정.
지금까지 어쩔 수 없는 현실에 포기하고 지쳐있던 모습에서 다시 희망을 찾고 그 희망을 현실로 이루려는 열망과 열정이 그녀의 말과 표정에서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순간 생각했던 것이 이 사람들이 희망을 꼭 이루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울러 그 마음까지도 함께 하고 싶었다.
유민철이 물었다.
“열망과 열정이라고 했어?”
“네, 지금 여기 상가 사람들은 이제 다시 시작하려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을 꼭 이루겠다는 열망 또한 강하고요. 그뿐 아니라 …….”
현성은 자신의 생각을 유민철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김명순 사장의 얘기, 간판과 선팅 작업을 하게 된 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이우석 사장과 있었던 얘기까지 빼놓지 않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현성의 설명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유민철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좀 더 얘기가 진행되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까지 지었다.
그리고 마침내 현성의 설명이 끝나자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그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만들고 싶다는 거지?”
“네, 인연이란 게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물론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의 인연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새로운 인연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인연?”
“그렇죠. 우리는 끝없는 삶 속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거잖아요. 그게 또 우리네…….”
‘인생이고요.’
마지막 말은 속으로 하고 말았다.
차마 그 말까지는 입으로 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현실적으론 유민철이 자신보다 20년은 더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는 유민철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게 우리 인생이란 얘기지?”
“하하, 뭐 그렇죠.”
“야, 김현성!”
유민철이 갑자기 현성을 빤히 쳐다보며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러자 빈 상가라 그런지 유민철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네? 왜요?”
“너 오늘부터 내 형님 해라.”
“형님이요?”
“그래, 인마. 아무리 봐도 너는 19살이 아니야. 최소한 50살, 아니, 환갑은 넘은 거 같아. 그러니 앞으론 형님이라고 불러야겠다.”
“하하, 형님도 참…….”
현성은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그러자 유민철도 큰 소리로 따라 웃기 시작했다.
잠시 후.
웃음을 그친 유민철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30만 원만 빼면 되는 거지?”
“그러지 마시고 한 상가당 만 원씩만 빼세요. 형님도 그 정도 고생하시는데 그 이상은 안 됩니다. 사실 만 원도 빼면 안 되는 건데, 형님이 저한테 주신다고 하니까 말씀드렸던 겁니다.”
사실이다.
처음 간판 건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 유민철이 한 상가당 15만 원이라는 얘기를 했을 때 적잖게 놀랐었다.
물론, 상가가 한두 개도 아니고 24곳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팅 작업까지 하는데 15만 원이라는 금액은 너무 적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유민철이 했던 말이 재료비보다도 어차피 인건비 싸움이니까 자신이 최대한 이윤을 줄이면 된다고 했다.
그 말속에는 현성 자신에 대한 배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다른 간판 업자들과 가격 면에서 비교될 수가 있다.
만약, 그렇게 됐을 때 조금이라도 더 비싸다는 말이 나오게 되면 서로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구설에 오를 수도 있다.
유민철은 처음부터 그런 빌미 자체를 주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그만큼 지금 제시한 금액은 최소의 견적가라는 얘기다. 그런 금액에서 한 상가당 만 원이면 총 24만 원이다.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다. 결국, 그만큼 유민철이 자신의 몫을 양보했다는 결론이다.
현성은 바로 말을 이었다.
“형님이 이번에 많이 양보하신 거 압니다. 그래서 더 고맙고요. 그 마음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다 저를 위해서 그랬다는 것도요.”
“뭘 또 그렇게까지…….”
유민철은 현성을 보며 빙긋 웃었다.
솔직히 처음 현성으로부터 견적을 의뢰받았을 때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돈에 대해서 욕심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욕심을 얼마나 내려놓느냐 하는 것이다.
보통 이 정도 간판 정비 사업이면 한 상가당 17만 원에서 많게는 20만 원까지 부르는 게 정상이다. 그 이유는 단순히 간판뿐이 아니고 선팅 작업 때문이다.
선팅 작업이 의외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붙이는 것도 붙이는 거지만 오래된 건물이라 기존의 선팅을 벗겨내는데도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린다. 결국, 그게 다 인건비로 계산되기 때문에 작업비용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인건비를 줄이는 것. 물론 그러기 위해선 사람을 덜 쓰고 자신이 그만큼 노농으로 대신하는 수밖에 없다.
현성의 말이 이어졌다.
“어쨌거나 형님이 이번에 고생이 많을 겁니다.”
“괜찮아, 이미 각오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동생 덕분에 일거리가 많다는 게 행복해.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저 일 많은 게 최고거든.”
“형님도 가만히 보면 참 긍정적인 면이 많습니다. 그래서 더 좋아 보이고요.”
“아무리 그래도 누구만 할까?”
유민철은 현성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런 유민철을 보며 현성도 결국은 웃고 말았다.
그 후 두 사람은 몇 마디를 더 나눈 후 상가를 빠져나왔다.
***
신미숙이 계약을 마치고 유민철과 함께 서명면으로 떠난 후 현성은 복덕방에 남아서 박영진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검은색 양복 차림이었다. 머리엔 무스를 바른 탓에 검은 머리가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시골에선 보기 드문 깔끔한 모습이었다.
“형님, 저 왔습니다.”
“어, 그래. 최 의원. 어서 와. 그렇지 않아도 소개해 줄 사람이 있었거든.”
박영진의 시선이 현성이한테 향했다.
‘최 의원?’
현성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지금 박영진 말대로라면 앞에 있는 이 남자는 최성필이라는 얘기다.
얼마 전에 자신의 뒷조사까지 마친 그 최성필.
최성필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