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2)
회귀해서 건물주-32화(32/740)
그러자 박희철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갔다 오니 알겠더군. 이제부턴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새 삶을 살 것이네. 지켜봐 주게. 그러니 비록 작은 거지만 이 늙은이 마음이라 생각하고 받아주게.”
현성은 박희철을 바라봤다.
사람은 눈빛을 보면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최소한 지금 박희철의 눈에선 어떤 악의나 가식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에 비해 안 어울릴 정도로 순수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만큼 박희철의 태도는 진중했고 진심으로 다가왔다.
지금, 이 소고기?
박희철이 말한 것처럼 단순한 고깃덩어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진심이 담긴 마음!
바로 박희철의 진심(眞心)이다.
현성은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구차하게 이런 저런 핑계를 찾고 싶지도 않았다. 사람이 진심으로 말하는데 거기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현성은 박희철이 내민 검은 봉지를 받았다.
“그럼…….”
“고맙네, 받아줘서. 난 혹시나 끝까지 거절할까봐 걱정했지 뭔가.”
“진심이 보였으니까요.”
“진심이라…….”
박희철은 현성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분명히 어린 친구가 맞는데 말과 행동은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모습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소고기 한 덩이 주는데 이렇게 온 힘을 다 뺄 줄은 몰랐다.
그것도 진심으로 마음을 다했기에 가능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기준과는 너무도 다른 현성의 태도에 의아스럽긴 했지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러고 나니 가슴은 왠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 뭔지…….
그리고 그때 박희철의 머릿속에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건……, 100억.
현성이 싸대기를 맞은 후 그 대가로 말했던 금액이다. 물론 생명의 은인이 될 경우라는 단서가 붙었었다.
박희철 자신도 흔쾌히 동의했던 일이었다.
거래성사.
웃기지도 않지만 어찌 됐건 거래에 하자는 없다. 물론 객관적인 증빙은 없지만 서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다.
박희철은 현성을 바라봤다.
‘어쩐다?’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말을 하자니 좀 유치하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자니 그 또한 왠지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이유야 뻔했다.
현성이 맞았다는 것이다.
맞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살려주려고 끌고 내려왔는데, 돌아온 건 싸대기니 말이다.
최소한 사과라도 하는 게 어른으로서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희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뭐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다름이 아니고…….”
순간 100억이란 숫자가 머리에 떠올랐다. 아무리 농담인건 알지만 역시 돈 문제라 그런지 예민할 수밖에 없는 박희철이었다.
그러다보니 다음 말이 늦어졌다.
그러자 현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살펴 가세요. 저는 오늘 개학이라 좀 바빠서…….”
현성은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더 얘기해봐야 할 말도 없고 혹시라도 여기서 박희철과 더 엮이는 건 바라지 않기 때문이었다.
홀로 남은 박희철.
방으로 향하는 현성을 바라보며 잡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을 더 하기엔 분위기가 파장분위기 였기 때문이다.
잠시 후, 박희철도 슬금슬금 현성이네 집에서 사라졌다.
결국, 100억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방으로 들어온 현성은 학교 갈 준비를 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가?
모든 게 어색할 뿐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보고 싶은 녀석들도 있고, 그 반대인 녀석들도 있겠지만, 살아온 세월 탓인지 이젠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먹질할 생각은 없다. 나이 먹고 할 짓도 아니고 말이다.
그럴 능력도 없고…….
사실 원주에서 소매치기의 칼을 막아낸 후 혹시나 싶었다. 소설에서처럼 능력치라도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어떤 능력치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체력만큼은 확실히 좋아졌음은 틀림없었다.
“그럼 된 거지.”
드르륵.
현성은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왔다.
다행히도 교복은 안 입어도 됐다. 제5공화국의 유화정책에 따른 교복 자율화 세대이기 때문이다.
물론 3년 뒤에는 다시 학교장의 재량으로 바뀌긴 한다. 자율화에 대한 문제점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끼익.
웬 은색 승용차가 현성 옆에 섰다.
이 동네에서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인데…….
그때,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면서 차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타게.”
얼굴을 보니 역시 예상대로 박희철이었다.
어째 자꾸 엮이는 듯하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목소리도 퉁명스러웠다.
“뭡니까?”
“일단 타라니까.”
“됐습니다.”
현성은 여전히 박희철의 호의를 거절했다.
아침에 소고기야 어쩔 수 없었다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자꾸 엮이는 건 정말 싫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소고기도 받지 말았어야 했다.
진심이니 뭐니 지껄였던 자신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딸깍.
현성이 꿈쩍도 하지 앉자 박희철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곤 뒤로 돌아와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
“일단 타게.”
“아니, 아저씨…….”
설마 문까지 열어주며 타라고 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박희철의 표정이었다.
미쳤나보다.
박희철은 웃고 있었다.
어린 현성을 위해서 문까지 열어주면서 말이다. 지금까지 현성이 알던 박희철이 아니었다.
아무리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다하더라도 그렇지,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변할 수 있나 싶었다.
그런 박희철을 보며 현성은 어쩔 수 없이 조수석에 올라탔다.
“자, 그럼 출발하네.”
박희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현성을 바라보고는 가속페달을 밟았다.
현성은 그런 박희철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예전의 박희철이 아니었다.
“그러다 얼굴 달겠어? 허허…….”
여유가 넘치는 박희철이었다. 예전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별일은 별일이다.
‘일단 두고 보면 알겠지.’
현성이 아무런 말이 없자 박희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살려줬는가?”
어떻게 알았는가에서 왜 살려준 건가로 질문이 바뀌었다.
그렇지 않아도 후회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 집요한 성격인 줄은 몰랐다.
현성은 그저 바라보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박희철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더라고. 자네가 나에 대한 감정이 지금도 이 정도인데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저도 지금 심각하게 후회하는 중입니다.”
“허!”
박희철은 현성의 대답에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10분쯤 달렸을까.
삼거리가 나왔다. 왼쪽 방향이 학교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박희철은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현성이 뭐라 말하려 하자 박희철은 예상이라도 한 듯 먼저 입을 열었다.
“잠깐 얘기 좀 하세.”
박희철은 이미 모든 각본을 준비한 듯싶었다. 어차피 학교 수업을 시작하려면 여유가 많았기에 현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0분쯤 더 달려 승용차는 언덕길을 올라가더니 산 밑에 있는 어느 집 앞에서 멈췄다.
그 집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박희철은 마당 끝에 주차를 한 후 현성을 보며 말했다.
“내리게.”
현성도 승용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린 박희철은 이미 마당을 가로질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 있었다. 그러더니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었다.
후우…….
길게 내뿜는 담배 연기에서 생각이 꽤나 많은 듯 보였다.
현성은 일단 박희철과 거리를 어느 정도 둔 채로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곳은?’
현성도 아는 곳이었다. 지금이야 그저 불모지처럼 버려져 있는 곳이지만, 나중엔 여기에 커다란 가든 식당이 들어섰던 자리다.
면(面) 내에서는 가장 큰 고깃집이었다.
전생에 딱 한 번 와봤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소외감.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동떨어진 것 같은 느낌, 다른 세상의 다른 사람들 같았다.
웃고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었다.
쩝.
다시 생각해도 씁쓸한 기분은 여전했다.
현성은 시선을 돌려 언덕 아래를 내려다 봤다.
마을보다 높은 곳이라 일단 시야가 탁 트인 게 매력이었다. 게다가 바로 뒤에는 산이고 좀 떨어졌지만 옆쪽에는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경관이 뛰어나 식당자리로는 역시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전원주택 단지로도 최적의 장소였다.
그때 박희철이 현성을 보며 가볍게 손짓을 했다. 현성이 다가가자 먼 산을 바라보며 박희철이 물었다.
“내 꿈이 뭐였는지 아는가?”
당연히 알 턱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지금 여기 박희철과 같이 있다는 자체가 불편하기만 한 현성이었다. 묵은 감정이 아직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무슨 말을 한들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물으니 대답은 해야 했다.
“글쎄요.”
당연히 말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희철은 상관없다는 듯 자신의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여기다 집을 근사하게 짓고 마지막 생을 여기서 보내는 거였네.”
허!
학교 가는 사람 끌고 와서는 한다는 말이 고작 자신의 꿈 타령이나 하고, 하여간 타인에 대한 배려는 이 인간의 뇌엔 아예 없나보다.
그리고 뭐, 근사하게 집을 짓고?
웃기지도 않았다.
남의 눈에선 피눈물 나게 해놓고, 그 돈으로 노후를 준비하려 했었다? 아주 현대판 놀부가 따라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성의 시선이 예리하게 박희철을 훑을 때였다.
‘잠깐!’
여기다 집을 짓고 마지막 생을 보내려고 했다고…….
지금, 이 말은 이곳이 박희철의 소유라는 얘기가 아닌가?
뭔가 이상했다.
전생에서 이곳 식당의 주인은 박희철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박희철이 죽고 다른 사람이 이 땅을 샀다는 얘기고, 그 사람이 식당을 열었다는 말이 된다.
‘그랬구나.’
이제야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그리고 현성은 궁금증이 또 하나 있었다.
지금 박희철의 말을 들어보면 다 과거형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그 얘기는 결국, 지금은 아니라는 말과 같다.
‘뭐지?’
궁금증이 일었다.
현성은 박희철을 보며 바로 물었다.
“지금은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그게 다 부질없다는 걸 알았네.”
“왜요?”
“왜라니, 자네가 아니었으면 어차피 나는 이미 죽었을 목숨이네. 사람이 아무리 내일 일을 모른다고 하지만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박희철의 설명은 그 이후에도 쭉 이어졌다.
선산까지는 포기했지만, 이곳만큼은 끝까지 팔지 않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돌아올 자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지켰던 이곳인데 막상 죽었더라면, 그 한 때문에라도 구천을 헤맸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젠 알겠다고 했다.
오늘 없는 내일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이제부턴 내일이 아닌 오늘 하루하루에 충실하게 살겠다는 얘기였다.
즉, 후회 없는 오늘을 살겠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현성도 죽음을 겪으면서 느꼈던 감정이었기에 충분히 공감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