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22)
회귀해서 건물주-322화(322/740)
322
무사히 강연을 마치고 현성과 박영진은 복덕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복덕방에 들어서자마자 박영진이 큰 소리로 물었다.
“김 사장, 어떻게 된 거야?”
“네? 뭐가 말입니까?”
“강연 말이야. 처음엔 조금 긴장하는 듯하더니 조금 지나니까 말이 아주 청산유수야. 강연 내내 잠시도 다른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 자네도 봤지,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자네 강연을 듣는 거.”
놀란 건 현성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당연히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하려니 쉽게 말이 안 나왔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자신도 모르게 말이 자연스럽게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건 처음부터 자신의 접근 방법이 유효했는지도 모른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괜한 뻘짓은 하지 말자는 거였다.
강연이랍시고 괜히 멋을 부리거나 주제넘게 어려운 말로 하려고 하기보다는 전생에서의 경험을 살려 최대한 쉽게 설명하자는 거였다.
장사를 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사례들을 주로 뽑아서 예를 들었고, 부족한 부분은 머릿속에 있던 성공 사례들을 추가하는 걸로 보충했다.
그러다 보니 강연을 듣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억양에 신경을 썼다. 아무리 재미있는 얘기도 목소리의 높낮이 없이 말하다 보면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핵심은 상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거였다.
현성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들 저를 생각해서 일부러 열심히 들어주신 덕분입니다.”
“허허, 이 친구 겸손하고는……, 어쨌건 내용도 너무 좋았고 말하는 기술도 정말 훌륭했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 말이야, 혹시 다른 데서 강연 섭외가 들어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네? 아니 그럴 일 없습니다. 제가 무슨…….”
“허허, 이 친구야, 세상이 어디 내 마음대로만 되는 줄 아는가? 살다 보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도 또한 인생일세. 하여튼 이대로 썩히기엔 아까운 재주야.”
“사장님도 참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하하…….”
현성은 그저 웃고 말았다.
그때였다.
복덕방 문이 열리면서 최성필이 들어왔다.
박영진이 바로 물었다.
“최 의원이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은 뭐가 어쩐 일입니까? 귀한 분 모셔다드리려고 왔지요.”
“귀한 분? 아, 혹시 김 사장을 집까지 데려다주려고 왔는가?”
“네, 우리 동네를 위해서 이렇게 늦게까지 고생했는데 버스를 태워 보내는 건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니지요. 안 그렇습니까?”
“옳거니! 역시 우리 최 의원이 예의가 참 밝아. 당연히 그래야지. 그렇지 않아도 이 시간에 버스로 보내기는 미안했는데 잘 생각했네. 김 사장, 늦었네. 어서 최 의원 차를 타고 가게. 조만간에 또 보자고.”
박영진은 현성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성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아니야, 자네가 우리 마을에 세운 공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세. 어찌 됐건 최 의원 덕분에 그나마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네. 사양하지 말고 어서 타고 가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현성은 인사를 건네고 최성필과 함께 복덕방을 나왔다.
두 사람이 나가자 박영진이 씨익 웃었다.
“아직은 포기 못 하겠다 이거지!”
박영진은 알고 있었다. 최성필이 왜 현성을 집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는지. 물론 자신도 이대로 포기하기엔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 현성이 산 중턱 앞으로 도로가 뚫린다고 말했을 때 분명히 그 눈빛은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그냥 막연히 언젠가 뚫릴 거라고 기대하는 그런 눈빛이 아니었다. 분명 이 꼬맹이는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게 자신의 판단이었다.
그건 아마 최성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필아, 너만 믿는다.”
박영진도 아직 포기하기엔 아쉬운 듯 눈빛이 반짝였다.
***
5분쯤 달렸을까.
최성필은 현성이 앉은 조수석을 힐긋 바라봤다. 마치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듯.
피식.
현성은 그런 최성필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지금 최성필은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최성필은 대놓고 자신을 뒷조사했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일산에 산 땅까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한두 푼도 아니고 5억 원어치나 샀으니 그 궁금증은 당연히 최고조에 달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또 대놓고 왜 그 땅을 샀느냐고 물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현성 자신이 낮에 뒷조사를 한 것에 대해서 최성필한테 혼쭐을 내줬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뒷조사보다도 자신 앞에서 대놓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사람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불쾌함을 드러냈었다.
결국, 정식으로 고개까지 숙이며 사과를 하게끔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일산에 산 땅이 궁금하다고 하더라도 대놓고 다시 묻기에는 최성필도 한번 호되게 당한 이상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까 산 중턱 앞으로 길이 뚫린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 속내는 이미 다 드러나고 말았다. 그래서 일부러 약을 올려주기도 했었고.
지금도 자신을 집까지 데려다준다는 건 한낱 핑계일 테고, 그의 목적은 오로지 어떡하든 일산의 땅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하긴, 신도시가 들어서는 걸 미리 알게만 된다면 최소 100배인데 그걸 모른 척 지나간다는 건 사람인 이상 불가능할 것이다.
현성은 모르는 척 물었다.
“왜요?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음, 그게…….”
“편하게 말씀하세요. 이렇게 집까지 데려다주시는데 저도 최대한 성의껏 답변 드리겠습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아까 낮에 얘기했던 산 중턱에 짓는다는 식당 말인데…….”
역시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 최성필이었다.
하지만 직구로는 못 던지고 변화구로 유인하겠다는 듯, 산 중턱의 식당으로 다시 접근하는 최성필이었다.
물론, 최종 목적은 일산의 땅일 것이고.
“식당이 왜요?”
“진짜 거기다 식당을 할 생각인가?”
“물론입니다. 아저씨도 인정했다시피 그곳이 경관 하나만큼은 그 동네에서 최고 아닙니까?”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그래, 규모는 대충 어느 정도로 생각하는가?”
“200평이요.”
“뭐? 200평?”
최성필은 입이 떡 벌어졌다. 말이 200평이지 그 정도 건물을 짓고 유지하려면 돈이 한두 푼 필요한 게 아니다. 물론 지금 꼬맹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도 가능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 배포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때 현성의 입에서 또 다른 말이 나왔다.
“5층으로 건물을 올릴 겁니다.”
“5층?”
“네, 그것도 단순하게 H빔으로 짓는 게 아니라 철골조로 제대로 올릴 겁니다. 당연히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할 거고요.”
현성은 일부러 구체적인 기획까지 언급했다.
그러자 최성필은 현성을 힐긋 바라보고는 잠시 할 말이 없는 듯 조용히 앞만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최성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가능해?”
“물론입니다. 앞으로 2년 후부터 슬슬 준비할 겁니다.”
“지금 2년이라고 했는가?”
“네, 2년 후부터 움직일 겁니다. 기본 공사부터 시작해야 하니까요.”
최성필은 다른 말보다 ‘2’라는 숫자가 귀에 꽂혔다. 2년 뒤에는 그쪽으로 4차선이 뚫리기 때문이다.
만약 이 꼬맹이가 2년이라고 말하는 이유만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자신이 알고자 하는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하기 때문이다.
최성필은 애써 태연한 척 물었다.
“왜, 하필 2년이야?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거야?”
“감이요.”
“감? 그게 무슨 소리야?”
최성필은 갑갑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기껏 2년이라는 말에 혹시나 기대를 하고 물었는데 기껏 한다는 말이 감이라고 하니 은근히 화도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는 입장이고 억지로 감정을 삭이려니 얼굴에 열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때 현성이 말했다.
“아저씨는 제 일에 왜 이렇게 민감하세요?”
“내가?”
“네, 아까 낮에도 그러시더니 지금도 그렇잖아요. 얼굴까지 벌게지시고 말입니다. 혹시 다른 목적이 있는 거 아닙니까?”
현성은 일부러 최성필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정곡을 찔렀다.
하지만 최성필도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글쎄, 내가 그랬는가? 난 그저 내가 관심 있던 땅에 식당을 짓겠다고 하니 그게 궁금해서 그랬던 건데.”
“아, 그래요? 저는 또 다른 목적이 있는지 알고…….”
“다른 목적이 있을 게 뭐가 있겠어? 그냥 김 사장이 하도 대차게 나오니까 궁금해서 그런 거지. 그럼 이왕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더 물어도 되겠는가?”
“네, 얼마든지요.”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최성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5층이라고 그랬지?”
“네, 5층이요. 1층은 중식, 2층은 한식, 3층은 양식으로 운영할 겁니다.”
“한식, 중식, 양식을 다 하겠다고?”
“네, 물론입니다. 이왕 하는 거 아저씨 말씀처럼 대차게 해볼 작정입니다.”
“허허, 이건 뭐…….”
최성필은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허세라고 하기엔 그 계획이 너무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최성필은 다시 물었다.
“그럼 4층과 5층은?”
“4층은 고기만 팔 겁니다. 그리도 5층과 옥상은 카페로 만들 겁니다. 마을이 다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고 생각하면 황홀할 거 같지 않습니까?”
“고깃집에 카페까지! 후…….”
최성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그곳에 150평짜리 가든 식당을 오픈할 계획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남들이 생각할 수 없는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꼬맹이는 그 정도 차원이 아니라 아예 종합 선물 세트처럼 모든 음식을 다 팔겠다는 것이다.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하나다.
돈.
진짜 그 모든 계획을 이루려면 자본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한낱 꿈으로 끝날 뿐이다. 과연 진짜 이것도 계획이 있는 것일까?
지금 이 꼬맹이가 가지고 있는 건 일산의 땅과 시골의 건물 그리고 통장에 있는 3억 3천이 다다. 그 금액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방법은 하나다. 일산의 땅이 오르는 것, 그것도 한두 푼이 아니라 최소한 10배는 올라야 가능하다.
최성필은 조용히 물었다.
“그 정도로 완벽 세팅하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갈 텐데 그게 가능하겠는가?”
“제 예상은 50억 정도면 기본 세팅은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일대의 환경 조성까지 풀 세팅을 말하는 겁니다.”
“50억? 근데 그게 지금 가능하다는 거야? 내가 알기론…….”
차마 자신의 입으로 일산의 땅을 언급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이 꼬맹이의 입에서 또 어떤 말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현성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도 아시지 않습니까? 어차피 제 뒷조사를 하셨으니 말입니다.”
“혹시 그 땅…….”
“네, 맞습니다. 일산의 그 땅입니다. 그게 바로 저의 돈줄입니다. 그리고 저의 미래죠.”
반짝.
최성필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최종 목적, 일산의 땅이 당사자인 꼬맹이의 입에서 나왔다. 이제 그 정보의 출처만 검증하면 되는 것이다. 은근히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최성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은 그 땅이 틀림없이 오른다는 얘기지? 혹시 그게 신……도시?”
꿀꺽.
긴장한 탓인지 마른침까지 삼키는 최성필이었다.
그런 최성필을 보며 현성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최성필이 바로 물었다.
“언제?”
“2년이요.”
“2년? 정말 2년 이내에 일산이 신도시로 확정된다는 거야?”
핸들을 잡은 최성필의 양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저 앞에 세워주시면 됩니다.”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현성의 가게까지 도착한 것이다.
끼이익.
딸깍.
차를 세우자 현성이 조수석 문을 열었다.
이제 급한 건 최성필이었다. 이대로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1억만 묻어도 100억이 되는 것이다. 체면? 이 상황에 체면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저, 저, 저, 저기 김 사장! 잠깐만!”
“네? 왜요?”
“신도시, 그거 확실한 거지?”
“네, 제 생각에는요.”
“뭐? 생각? 그게 무슨 말이야? 생각이라니? 이건 아니지…….”
최성필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자그마치 100억이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자신의 막연한 생각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자신이 원했던 대답은 이게 아니었다.
그때 현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저씨, 그거 아세요?”
“어? 뭐?”
“자고로 사람은 믿는 만큼 보이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잘 생각해 보세요.”
쾅!
현성은 그 말을 끝으로 조수석 문을 닫았다. 그리곤 최성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차피 모든 건 다 얘기했다. 이제 선택은 최성필의 몫.
목적이야 어떻든 최성필 덕분에 집에까지 편하게 왔다. 차비? 이미 줬다. 그것도 많이. 이제 선택은 최성필이 할 것이다.
현성은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