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25)
회귀해서 건물주-325화(325/740)
325
“아들 녀석들 때문이네.”
“…….”
현성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던 일이다. 지난번에도 박희철은 비슷한 말을 했었다. 아들들이 자신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웃긴 건 그 이유였다.
올해 박희철이 환갑이다. 그런 사람이 무슨 결혼을 이제 또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결국, 나이가 많다는 이유다.
아니, 어쩌면 그건 단지 이유를 만들기 위한 구실일 지도 모른다.
사실 박희철이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이는 건 아니다. 물론, 실제 나이가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현재 그 사람의 신체나이다.
박희철 같은 경우는 얼핏 봐서는 50대 중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자식들은 단지 나이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스윽.
현성은 말 대신 앞에 놓인 고기 한 점을 집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쨌건 제삼자인 자신의 입장에서는 딱히 할 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물우물.
고기를 씹긴 했지만 어두운 박희철의 표정 때문인지 고기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박희철이 진중하게 현성을 불렀다.
“김 사장!”
“네, 아저씨.”
“자네 생각에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무시하라고 하고 싶었다. 어차피 아무리 자식이라고 하지만 몇 년째 얼굴 한 번 보이지 않는 자식들이라고 했다. 그런 자식들이 무슨 명분으로 반대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성 자신의 생각일 것이다.
박희철이 지금 이렇게 심각하게 묻는다는 건, 그런 자식들의 반대가 신경이 쓰여서 묻는 것일 것이다. 그런 상항에서 냉정하게 무시하라고 말하기엔 또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요…….”
일단은 박희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박희철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만큼 고민이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럴 땐 그저 가만히 상대가 말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게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설프게 위로한답시고 섣불리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박희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나도 몇 년째 얼굴도 못 본 자식들 그냥 무시할 수는 있어. 그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는 것도 알고. 그런데 말이야…….”
박희철은 중간에 말을 끊고 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만큼 생각이 많다는 것일 것이다.
“그랬다가는 진짜 이 녀석들하고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놓고 무시할 수도 없네.”
“…….”
“그런데 중요한 건 이제 그 고민할 시간도 별로 없다는 거야. 이제 2주 후면 식을 올려야 하니까 말이야.”
“…….”
여전히 할 말이 없는 현성이었다.
그때 박희철이 다시 현성을 불렀다.
“김 사장!”
“네…….”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는가? 자네라면 어찌하겠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박희철의 말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 쉽게 말이 안 나오는 건 당연했다.
그러자 박희철이 다시 물었다.
“어려운 문제지?”
“네, 솔직히 저로서는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그렇다고 내가 그 녀석들한테 축하를 바라는 건 아니네. 그냥 단지…….”
역시 한 번에 말을 못 잇는 박희철이었다.
현성은 그런 박희철을 보며 슬쩍 물었다.
“참석이라도 바라시는 거죠?”
“맞네. 그냥 단지 가족사진을 찍을 때 뒤에 서 있기만 하면 그걸로 족하네.”
“가족사진이요?”
“그래, 명순 씨와 새로운 가족이 되는 순간이잖아. 그게 명순 씨한테도 내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고 말이야.”
“아, 네…….”
현성은 그제야 박희철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박희철은 신명순과 새로운 가족을 이루면서 그 자리에 두 아들이 참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게 신명순한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 것이고.
그때 박희철이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자네가 작년에 했던 말 기억하는가?”
“작년에요? 무슨…….”
“작년에 일산의 땅을 사면서 3년 후에는 현금화가 가능하다고 했잖은가? 그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 거네. 물론 작년에 한 얘기니까 이젠 2년이 남았겠지. 혹시 아직도 그 말이 유효한 거냐고?”
“물론입니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당당하게 말했다. 어차피 앞으로 2년 후, 정확히는 1989년 4월 27일에 정부에서 일산을 신도시로 발표한다. 그렇게 되면 현금화하는 건 어차피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박희철은 재차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다시 물었다.
“그 말 틀림없는 거지?”
“물론입니다. 어차피 제가 처음에 일산의 땅을 살 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틀림없이 3년 후에는 개발이 확정된다고요. 그러고 보니 이제 채 2년도 안 남았네요.”
“음…… 틀림없다 이거지!”
혼잣말로 곱씹기까지 하는 박희철.
그 모습을 보며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봐도 평상시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그 땅을 가지고 당장이라도 무엇을 하려는 듯 확인을 거듭하는 모습에서 낯선 느낌이 들 정도였다.
현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그 땅은 갑자기 왜요?”
“마지막 카드를 써볼까 하네.”
“마지막 카드요?”
“그래, 어차피 이 녀석들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밖에 없을 거 같아서 말이야.”
현성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박희철이 생각하는 마지막 카드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감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현성은 다시 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결국은 돈일세.”
“돈이요?”
“그래, 이 녀석들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돈이라는 얘기야. 그래서 그 땅을 써먹겠다는 거고.”
현성으로선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물론 그 땅이 2년 후에는 엄청난 가치를 갖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2년 후의 얘기다. 지금으로선 그 땅은 그저 야산일 뿐이다.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 박희철은 그 땅을 써먹겠다고 한다. 현성으로선 당연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현성은 다시 물었다.
“지금 그 땅은 그저 하찮은 야산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걸 지금 써먹겠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음.”
“어음이요?”
“그래, 그 녀석들한테 미리 어음을 끊어줄 생각이네. 물론 땅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을 걸세. 그저 땅이 있는데 2년 후엔 그곳이 개발된다고만 말할 걸세. 그리고선 이번에 결혼식에 참석하면 2년 후에 2억씩 준다고 미리 어음을 끊어주겠다는 얘기네.”
현성은 자칫하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그건 박희철이 생각한 발상 때문이었다.
결혼식에 참석하면 2억을 주겠다?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땅 얘기다. 2년 후에 개발이 된다? 현성 자신이야 전생의 기억으로 알고 있으니까 아무 문제가 안 되지만 보통 일반 사람들이 그 말을 믿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어느 누가 2년 후에 개발된다는 그 말을 믿겠는가 말이다.
박희철 같은 경우는 자신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믿는다고 치지만, 그 아들들 같은 경우는 절대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까지 하면서 결혼식에 아들들을 참석하게 하려는 박희철의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성의 생각인 듯, 박희철의 표정은 의외로 자신만만했다.
현성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말을 자제분들이 믿을까요?”
“당연히!”
박희철은 고개까지 끄덕이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현성으로선 여전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자신감을 보인다는 건 현성이 알지 못하는 다른 뭔가가 있다는 얘기일 터.
현성은 다시 물었다.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데, 무슨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는 겁니까?”
“단순하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자식들한테 거짓말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네.”
“거짓말이요?”
“그래, 걔들이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아무리 작은 약속이라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단 말일세. 특히 돈에 관해서는 말이야.”
현성은 박희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듯했다.
현성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박희철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 방법을 써먹겠다는 거네.”
“그래도 이건 좀 다른 문젠데, 그게 통할까요?”
“통한다니까!”
“확신하시는 거군요?”
“당연하지, 아무리 그 녀석들이 이젠 대가리가 컸다고 하지만 어차피 내 자식들일세. 그 녀석들의 속은 내가 더 잘 알지. 어차피 돈밖에 모르는 녀석들이야. 돈만 준다고 하면 내가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들을 녀석들이네.”
쩝.
현성으로선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조금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본인 당사자가 그렇다고 하는데 거기다 대고 다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때 박희철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왔다.
“그런데 말이야, 이번엔 나도 약속 안 지킬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음은 끊어주겠지만 돈은 안 주겠다는 얘기야.”
“네?”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러자 멀리 있는 식당 종업원까지 이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현성은 웃으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손을 들어 보이고는 박희철을 바라봤다.
그러자 박희철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뭘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놀라고 그러는가?”
“제가 안 놀라게 생겼습니까? 조금 전에 아저씨가 분명히 지금까지 사시면서 자제분들한테 거짓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어음은 끊어주고 돈을 안 주겠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더 이상은 실패하지 않겠다는 얘기야.”
“네? 실패요?”
“그래, 지금까지는 실패했지만 더 이상 똑같은 실수는 안 하겠다는 얘기야.”
현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전히 박희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박희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식 농사 말일세.”
“자식 농사요?”
“그래, 내가 예전에도 한 번 얘기했지만 자식 농사는 실패작이거든. 그래서 이번 기회에 마지막으로 그 녀석들을 인간으로 만들어볼 생각이네. 물론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기회가 없으니 어쩌겠나, 이렇게라도 해서 시도를 해볼 수밖에.”
“하하, 그런 거였습니까?”
현성은 웃고 말았다.
잠시 후.
현성은 다시 물었다.
“그래서 2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까?”
“그렇지, 너무 길면 이 녀석들도 미끼를 안 물 거란 얘기야. 하지만 2년 후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어? 그리고 아무리 어음이지만 그 금액이 한두 푼도 아니고 자그마치 2억을 준다는데 귀가 솔깃하지 않겠느냐고?”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2년 뒤에는 어차피 현금을 쥐게 되니까 그때부턴…….”
현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희철의 말이 빨랐다.
“바로 그거야. 손에 현금을 쥐게 되면 그때부턴 내가 그 녀석들을 움직일 수가 있거든. 어차피 돈이라면 환장을 하는 녀석들이니까 말이야.”
“결국은 자제분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현금이 필요했다는 말씀이네요?”
“맞아. 그래서 아까 2년 후에는 정말 그 땅을 현금으로 만들 수 있냐고 물었던 거네.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 녀석들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영원히 없는 거니까 말이야. 어쨌든 자네 덕분에 내가 죽기 전에 한 번 더 힘을 가질 수 있게 됐네. 이번엔 제대로 돈의 힘을 이용할 생각이네.”
박희철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박희철을 보며 현성이 슬쩍 물었다.
“돈의 힘이요? 그건 또 어떤 의미인가요?”
“흐흐흐…….”
현성의 질문에 박희철은 갑자기 음흉한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깐.
웃음을 멈춘 박희철의 입에서 전혀 예상 밖의 말이 툭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