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3)
회귀해서 건물주-33화(33/740)
현성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아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신 거 같은데요.”
“있지!”
박희철은 고개까지 끄덕이며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중대 발표라도 하려는 분위기였다.
무슨 말이기에…….
현성은 말하지 않고 박희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박희철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값을 치르려고 하네.”
“값이요? 무슨…….”
“자네가 말했던 100억 말일세. 내가 자네 뺨을 때린 후 자네가 요구했던 금액이네.”
“네?”
미친…….
현성은 박희철을 바라봤다.
말도 안 된다.
그저 박희철이 얄미워서 골탕 먹이려고 그 순간에 생각나는 대로 했던 말이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지금 박희철은 저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 아니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박희철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라도 한 듯 강한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박희철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물론 지금 이 땅이 그만한 가치는 없네. 하지만 땅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또 땅의 매력이지.”
“…….”
당연히 이 상황에 대꾸할 말은 없었다.
박희철이 또 말했다.
“물론 죽었다 깨도 이 땅이 100억이 될 일은 없을 걸세. 하지만 앞으로 10년 혹은 20년 뒤쯤이면 지금보다 최소 10배 아니 100배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걸세.
“…….”
“이 땅을 자네에게 주겠네. 이 늙은이를 살려준 보답일세.”
“…….”
현성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박희철도 그냥 해보는 소린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박희철은 지금 이 땅을 주겠다고 한다.
그게 말이 되는가?
상식적으론 당연히 말이 안 된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지금 바로 앞에 있는 박희철이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이상한 건 현성 자신이었다.
‘어?’
머리로는 애써 침착하려 하는데 가슴은 이미 나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콩닥.
본성인건가…….
욕심이 났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내면 어디서부턴가 스멀스멀 본성이 깨어나는 듯했다.
박희철의 말처럼 10년, 아니 5년도 필요 없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가든 식당이 유행을 타게 되면 말이다.
전생에서 여기 식당이 들어선 건 88올림픽이 끝난 다음 해였다. 군대 갔다가 첫 휴가 나왔을 때 한창 공사 중이었으니까. 그래 봐야 앞으로 3년 남았다.
그때 박희철이 현성을 보며 다시 말했다.
“내 꿈을 자네가 이루어 주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차피 자네가 없었다면 난 이 자리에 없었을 몸이네. 내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이네. 그래야 계산이 맞지 않겠는가?”
“계산이요?”
어떤 거래를 한 것도 아닌데 박희철은 갑자기 계산이란 말을 끄집어냈다.
박희철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물론 그래도 나는 남는 장사네.”
“뭐가 남고? 뭐가 계산이란 겁니까?”
박희철은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현성이 못 알아듣자 박희철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내 목숨에 대한 계산일세. 목숨에 대한 대가로 돈이 아닌,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끝까지 지키려했던 이 땅을 주고 싶네.”
“아니 무슨…….”
“내 마음을 받아 주겠는가?”
“네?”
아침엔 소고기, 그리고 지금은 또 땅.
소고기와 땅.
박희철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마음을 받아 달라고.
분명 아침에도 느낀 거지만 박희철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서 결국 소고기도 받았던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은?
마찬가지다.
아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는 것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을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받아 달란다. 그런데 그 말이 또 진심이라는 거다.
떨린다.
아!
잔잔한 호수에 누군가 돌을 던졌고, 그 파문은 점점 커지는 듯했다.
‘어찌할까?’
이성과 감성, 용호상박(龍虎相搏)이다.
소고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넙죽 받아서 국 끓여먹을 게 아니란 거다.
더군다나 처음부터 어떤 대가를 바라고 박희철에게 손을 내민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긴 것뿐이다.
그렇다면 이건 아니다.
머리로는 답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성의 입은 끝까지 열리지 않았다.
여전히 내면에서는 끝없는 전쟁 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꽤 지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사람.
박희철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드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의외였다.
당연히 넙죽 받아먹을 줄 알았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그렇지, 주겠다는데 싫다는 놈이 있겠나 싶었다.
물론 받을 명분도 충분했다. 어찌 보면 목숨값으론 적을 수도 있다. 이 말은 현성이 박희철이 말한 땅을 넙죽 받아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는 아직까지도 아무 말이 없다.
이렇게 되면 그림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박희철은 처음 예상하기를 현성이 바로 받을 줄 알았다. 그러면 모든 게 깔끔하게 정리된다고 생각했었다.
자신도 최선을 다했으니 목숨의 빚은 갚은 거고, 현성도 나름 그 대가를 얻었으니 됐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그렇게 되면 그림을 다시 그려야한다는 말이 된다.
‘좀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얘긴데…….’
박희철의 머리가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왠지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박희철은 현성을 바라봤다.
여전히 고민이 많은 듯했다.
현성을 바라보던 박희철의 입가에 미소가 퍼지는가 싶더니, 그의 입이 열렸다.
“거기까지!”
“네?”
현성은 깜짝 놀랐다. 뭐라 대답을 하기는 해야겠는데 도저히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사람의 욕심이 이렇게 무섭다는 걸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박희철이 다시 말했다.
“고민은 거기까지라는 얘기네. 그만하면 합격일세.”
“네?”
박희철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왔다.
합격?
합격이라니…….
지금 이 말은 지금까지 이 모든 게 자신을 시험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허!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그것도 모르고 그 장단에 춤을 췄다고 생각하니 은근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뭡니까?”
“솔직히 그렇게 고민할 줄은 몰랐네. 내가 자네를 잘못 판단했다는 거지.”
“네?”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이젠 판단까지…….
박희철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일이 좀 복잡하게 됐어.”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좀 알아듣게 말하면 어디가 덧납니까? 진짜 이러실 겁니까?”
현성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현성의 그런 모습이 박희철한테는 또 대수롭지 않게 보였나 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박희철은 씩 웃으며 말했다.
“이제 학교 가세.”
“…….”
할 말이 없는 현성이었다.
***
“또 왜요?”
현성을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떠났던 박희철이 얼마 못 가 다시 돌아왔다.
“이걸 깜박했지 뭔가.”
“이게 뭔데요?”
“용돈. 그리고 이따 끝나고 집으로 오는 거 잊지 말고.”
부릉.
박희철은 그 말을 끝으로 왔던 길로 사라졌다.
현성의 손에는 하얀 봉투가 들려 있었다.
이젠 용돈까지 받았다.
아침엔 소고기, 그리고 지금은 용돈.
하지만 이것들은 조금 전에 받은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 새 발의 피다.
결국, 차 안에서 땅을 받았다.
조금 전 학교로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박희철이 말했다.
– 내 마음이니 받게.
– …….
– 고맙네!
그게 다였다. 박희철에게 현성의 대답은 굳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땅의 활용도에 대해서는 오늘 수업 끝나고 만나서 차차 얘기하자고 했다. 그래서 조금 전에 박희철이 떠나면서 집으로 오라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가지 않을 테니 말이다.
머리로 이해가 안 되는데 몸이 따라줄 리가 없는 현성이었다.
***
저벅.
현성은 멈췄던 발길을 다시 옮겼다.
[서명고등학교]정문을 막 지나치려는데 세로로 양각된 학교 이름이 유독 크게 현성의 눈에 들어왔다.
“여길 다시 오다니…….”
생각할수록 묘한 일이다.
다른 학생들은 정문을 지나 교실 쪽으로 사라지기 바빴다.
잠깐 학교 이름을 쳐다보던 현성이 발길을 막 떼려 할 때였다.
“현성아.”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이정우였다. 저 멀리서 이정우가 자신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역시나 뛰어오는 이정우의 모습은 다른 학생들과는 어딘가 달랐다.
어렸을 적, 열이 많이 나면서 아팠다고 했고, 그 후로 한쪽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고 했다. 무균성 뇌막염, 흔히 말하는 소아마비다.
그 때만해도 한 학교에 한두 명은 꼭 그런 불편한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만일 이 질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주사 한방이면 끝날 정도로 가벼운 질병이 됐다.
언젠가 이정우가 말했었다.
마음껏 달려보는 게 꿈이라고 말이다.
현성은 뛰어오는 이정우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곤 이정우를 향해 발길을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뛰어오는 거리를 줄여주기 위함이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좁혀지자 이정우가 현성을 보며 말했다.
“거기 그냥 있지, 어차피 그리로 갈 건데…….”
“내 친구 빨리 보고 싶어서 그런다, 인마! 됐냐?”
현성은 기분 좋게 웃으며 이정우를 맞았다. 전생의 마음까지 보태져서 그런지 이정우에 대한 감정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현성의 대답에 이정우가 놀리듯 말했다.
“뭐야, 갑자기 웬 닭살? 징그럽게.”
“자식, 징그럽긴 뭐가 징그럽냐. 어쨌든 반갑다. 내 친구 이정우!”
현성은 말과 함께 이정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 이정우가 현성을 힐긋 바라봤다. 그리곤 그의 시선이 현성의 얼굴에 꽂혔다.
이정우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어?”
“갑자기 왜 놀라고 그래?”
“얼굴이 변했어…….”
이정우는 현성과 거리를 두고 유심히 현성의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깐.
이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뀐 건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키도 좀 커진 거 같고 전체적으로 몸 자체가 여름방학 시작할 때와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키야 성장 시기이니 그렇다 쳐도, 체격 자체가 이렇게 변할 수 있나…….
이정우는 현성을 보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방학 내내 산속에 들어가 수련 좀 했지, 어때 봐 줄 만하냐? 하하…….”
현성은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부분이기에 당황하지 않고 대충 둘러댔다. 사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고 말이다.
처음엔 현성 자신도 거울을 보고 놀랐었다. 원인은 정확히 모른다. 더덕 때문인지 아니면 산삼 때문인지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변했다는 것, 그 사실이었다.
현성의 대답에 이정우는 어이가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 어찌 됐건 아무리 봐도 변한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정우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서명고에 인물 났네.”
“그 정도야?”
“자식, 그렇다고 그렇게 좋아하기는….”
“티 났냐? 킥킥…….”
현성이 생각해도 유치한 상황이라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정문을 통과해 교실로 향했다. 그렇게 33년 만에 현성의 학창시절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