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31)
회귀해서 건물주-331화(331/740)
331
이정우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박희철.
그의 얼굴은 약간 붉은빛으로 상기돼있었다.
술 때문에? 그건 아니다. 어차피 맥주 몇 잔을 마셨을 뿐이다. 그 정도야 고기 먹기 전에 간단히 입가심 정도밖에 안 된다.
얼굴이 상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오로지 하나, 이정우의 말 때문이었다.
-아버지!
그의 입에서 설마 ‘아버지’란 말을 들을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저 신명순과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고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축하해주겠다는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아니, 그 얘기를 오늘 아침에 신명순으로부터 전해 듣는 순간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새 가정을 갖는다는 것, 그것도 60을 넘어서. 어쩌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런데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사랑하는 여인의 아들로부터 ‘아버지’란 말까지 들었으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후우…….”
박희철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렇게 해서 진정될 감정이 아니었다.
‘그렇지!’
그때 박희철의 머릿속에 한 여인이 떠올랐다.
굳이 감정을 가라앉힐 게 아니라 오히려 이 행복한 순간을 함께하고 싶은 여인, 바로 신명순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이?
역시 사랑의 감정에 나이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후후!”
심호흡을 한 박희철은 빠르게 전화기 다이얼을 돌렸다.
신호가 두 번 울리자 그녀의 목소리가 바로 들렸다.
-여보세요.
“명순 씨! 접니다!”
박희철은 아이처럼 감정을 숨기지 않은 채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듣는 신명순의 입장에서는 놀라는 게 당연했다.
-어? 오빠.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요? 혹시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이요? 암요! 있고말고요! 저 오늘 너무 행복합니다!”
-무슨 일인데 우리 오빠가 이렇게 목소리에 힘이 넘칠까요?
신명순은 물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사실, 오늘 아침에 통화를 하면서 아들을 만날 거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은근히 신경이 쓰였던 건 사실이다. 물론 박희철의 인성을 믿지만 그래도 두 사람만의 대면은 처음이다 보니 어미의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금 전 아들 이정우가 웃으면서 들어와 ‘서명 가든’에서 박희철을 만났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서명 가든’이 갖는 상징성이었다. 이 마을에서만큼은 최고의 식당이다. 그런 식당에서 아들을 만났다는 자체가 이미 최고의 예우를 갖췄다는 의미이기에 기분이 저절로 좋아졌던 것이다.
그때 수화가 너머에서 박희철의 힘찬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버지랍니다!”
-아버지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버지라니…….
“정우가 글쎄 나보고 아버지랍니다. 정우가 나보고 아버지라고 불렀단 말입니다. 명순 씨!”
-그게 정말이에요?
신명순은 박희철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식인 만큼 이정우의 성격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언젠가부터 현성이와 어울리면서 예전보다는 외향적으로 성격이 바뀐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신체의 불편함 때문인지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쉽게 표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이정우가 아무리 얼마 후면 새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알지만,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서 박희철을 보고 ‘아버지’라고 불렀을 거라는 생각은 쉽게 들지 않았다.
신명순은 급한 마음에 박희철이 대답하기 전에 다시 물었다.
-우리 정우가 진짜 오빠한테 아버지라고 불렀단 말이에요?
“그렇다니까요! 내가 오죽했으면 그 순간에 너무 놀라서 한참 동안 말을 못 하고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
신명순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사실, 결혼식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던 건 사실이다. 그건 바로 이정우 때문이었다.
물론, 결혼을 반대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자꾸 눈치를 보게 됐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학교에 가기 전에 어미의 심정을 알기라도 한 듯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사실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그 어떤 사람보다도 아들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길 바랐던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또 박희철로부터 더 놀라운 말을 들었다.
솔직히 박희철이 호적상 새아버지가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을 보고 ‘아버지’라고 부를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었다.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고 내년이면 스물이다. 그런 녀석이 아무리 어미가 결혼할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쉽게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불렀다는 건 그만큼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일 것이다. 물론 그 고민의 중심에는 이 어미를 생각하는 마음이 가장 컸을 것이다.
뚝.
신명순의 눈에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 박희철이 뭔가 눈치를 챘는지 다정한 목소리로 신명순을 불렀다.
“명순 씨!”
-네, 오빠.
“혹시 지금 울어요?”
-너무 기쁘고, 고마워서요. 솔직히 그 말까지는 욕심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우리 정우가 그걸 또 해주네요. 고맙게도…….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오늘 정말 감동했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네, 아무래도 전화 끊고 나면 정우 방에 가봐야 할 거 같네요.
“네, 그러세요.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사실은 제가…….”
박희철은 조심스러운 듯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러자 신명순이 바로 물었다.
-왜요? 무슨 일인데 말씀을 하다가 마세요?
“저기 그게…… 사실은 제가 정우에 대해서 좀 알아봤습니다.”
-알아봐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알아보다니요?
“일주일 전에 한국대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네? 병원이요? 우리 정우 때문에요?
신명순은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박희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박희철의 설명이 바로 이어졌다.
“정우 다리 때문입니다. 잘하면 어느 정도는 교정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확실한 답변은 2, 3주 더 기다려 봐야 한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알아본 바로는 거의 긍정적입니다.”
-긍정적이요? 그 말씀은 우리 정우의 다리를 고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네, 맞아요. 휜 다리를 교정하면서 동시에 뼈를 늘리는 수술 방법이 있답니다. 그렇게 하면 물론 100%는 아니지만 거의 양쪽 다리 길이를 같게 맞출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다리 길이 때문에 틀어졌던 골반까지도 어느 정도 교정이 가능해서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정말이에요?
“네, 그런데 문제는 치료 기간이 좀 오래 걸린답니다. 미리 말씀드릴까 하다가 최 박사님이 다른 사례를 좀 더 연구한 다음에 2, 3주 후 확답을 주신다고 하셔서 말씀을 안 드렸던 겁니다. 그런데 오늘 정우한테 아버지 소리를 듣고 나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알려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아까 정우한테 얘기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명순 씨가 직접 얘기하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참았던 거고요.”
-오빠…….
신명순은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평생 불편한 몸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걷는 아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은 항상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금 전 박희철로부터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어느 정도는 교정이 가능하고 그와 동시에 뼈를 늘려 다리 길이를 맞출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은 거의 정상인과 마찬가지로 걸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더 이상은 걷는 데 있어 흔들리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신명순은 울음을 참고 간신히 말을 이었다.
-오빠! 이 은혜를 어떻게…….
“은혜는 무슨……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그리고 정우 내 아들입니다. 내가 우리 정우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똑바로 걷게 만들 겁니다. 최 박사님한테 연락 오면 바로 서울로 데리고 가서 정밀 검사를 받을 겁니다. 아무리 늦어도 수술은 올해를 넘기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빨리하는 게 그만큼 회복이 빠르답니다.”
-…….
“그러고 나면 내년 여름쯤이면 똑바로 걸을 수 있을 겁니다. 그땐 정우와 같이 우리 세 사람 가족여행 한번 갑시다. 명순 씨 제주도 가보고 싶다고 했지요? 내년 여름에 우리 셋이서 같이 제주도 갑시다.”
-그래요, 오빠. 우리 같이 제주도 가요. 꼭…….
신명순의 눈에선 참았던 눈물이 다시 흐르고 있었다.
어찌 알았는지 수화기 너머에서 박희철의 목소리가 바로 들렸다.
“명순 씨, 오늘까지만 울어요. 그리고 앞으론 울지 말아요. 당신이 울면 내 마음이 아파서 못 견뎌요.”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참, 보고는 끝냈어요.”
-보고요? 그게 무슨…….
“당신 데리고 간다고 인사는 해야지요. 이젠 걱정하지 말라고 인사드리고 왔습니다.”
-아! 산소에 다녀간 분이 바로…….
혹시나 했었다.
어제 이정우한테 산소에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있다고 들었을 때 문득 떠오는 사람이 박희철이었다.
하지만 직접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그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짐작이 맞았다.
고마운 사람. 세상 어느 누가 산소까지 찾아가 인사를 전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신명순은 목소리에 마음을 담았다.
-오빠, 고마워요!
“고마운 걸로 따지면 내가 더 고맙지요. 내 남은 인생 명순 씨와 정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도요, 부족하지만 민수와 범수한테도 좋은 엄마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고마워요, 진짜 고마워요. 오늘 밤도 잘 자고, 내일 봐요.”
사랑합니다.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만 같은 시간이다.
박희철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같은 시각.
이정우의 손에는 사진 한 장이 들려있었다.
“아버지!”
사진 속의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스윽.
아버지의 사진을 손으로 슥 닦았다.
“아버지, 저 정우에요.”
“…….”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오늘 저한테 아버지가 한 분 생겼어요. 엄마가 많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괜찮아 보여요. 그래서 오늘은 큰맘 먹고 아버지라고 불러드렸어요. 저 잘했지요?”
“…….”
“혹시 삐진 건 아니지요?”
사진 속의 아버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우리 아버지가 그런 일로 삐질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아버지도 그 아저씨 만나 보면 마음에 드실 거예요. 그리고 오늘은 그 아저씨 덕분에 고급 식당에서 소고기도 실컷 먹었어요. 근데 그 아저씨가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니까 처음엔 막 울려고 했었어요. 그래서 모른 척하고 그냥 얼른 고기만 몇 개 집어 먹었어요.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뭐라고 그러는지 알아요?”
이정우는 사진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리곤 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아저씨가 글쎄 먹는 모습이 너무 예쁘대요. 저는 남잔데 저보고 예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요? 히히.”
이정우는 혼자 웃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남자한테는 예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했더니 그래도 당신 눈에는 너무 예쁘다는 거예요.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까 그 말도 나쁜 건 아닌 거 같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다시 또 이상한 말은 하더라고요. 그게 뭐냐 하면…….”
이정우는 쑥스럽다는 듯 사진을 가까이 대고 조용히 말했다.
“내 새끼 입에 들어가는 건 다 예쁘다는 거예요. 처음엔 그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이상했는데 조금 지나니까 그 말이 진신인 거 같더라고요. 그런 아저씨예요. 오늘 처음 단둘이서 같이 있었는데 그렇게 어색하지도 않았어요.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더 이상 엄마도 그렇고 저도 마찬가지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셨죠?”
이정우는 혼잣말을 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전혀 없다. 자신이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사진과 대화를 하면서도 왠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피웠는데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정우는 다시 사진을 들었다.
“아버지, 그래서 말인데요, 저 이제부터라도 그 아저씨한테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친해지려고 해요.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자꾸 노력하다 보면 괜찮을 거 같아서요. 이젠 우리가 가족이니까요. 그리고 엄마를 위해서도 제가 더 잘해야 할 거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래야 엄마가 많이 웃을 거 같기도 하고요. 아버지가 그랬잖아요. 제가 이제부턴 엄마 보호자라고.”
이정우는 그 말을 하고 자신이 생각해도 부끄러운지 히죽 웃었다.
그때 지금까지 문밖에서 이정우의 말을 듣던 신명순이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