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32)
회귀해서 건물주-332화(332/740)
332
“엄마?”
문을 연 이정우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사실, 조금 전에 비록 사진 속의 아버지였지만 대화를 나누듯 혼자 얘기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심취한 나머지 마지막 순간에 울컥했었다.
전혀 기억에는 없는 아버지이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그래서 더 그립고 애틋한지도 모른다.
그렇다 보니 눈가가 자신도 모르게 촉촉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쩐 일이에요?”
이정우는 자신의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신명순의 말 한마디에 바로 무색해지고 말았다.
“울었니?”
“네? 아, 그게…….”
“괜찮아. 그게 어때서. 사람이 감정이 메마르면 그것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는 거야.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실컷 웃을 줄 알아야 사람이 마음에 병이 없는 거야. 그걸 참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여기 가슴이 아프게 되는 거야.”
신명순은 자신의 가슴을 살짝 두드렸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눈가도 촉촉이 젖어 있었다.
신명순이 바로 말을 이었다.
“듣고 싶어서 들은 게 아니라 문 앞에 왔는데 너의 목소리가 들리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듣게 됐어. 처음엔 솔직히 호기심에 듣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
“…….”
“아들, 고마워.”
“네? 제가 뭘…….”
“아들 덕분에 오늘 엄마는 너무 행복하단다. 난 우리 아들이 엄마를 이렇게 많이 생각하는지 몰랐네. 물론 생각이 깊은 거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 정도인지 솔직히 몰랐어. 진짜 감동이야.”
조금 전 문 앞에 왔을 때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발길을 돌리려 하는데 ‘아버지’란 말이 들려서 잠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아들에게 있어 아버지란 단어는 특별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세 살 때 하늘나라에 갔으니 아들로서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전혀 없다. 그래서 당연히 아버지에 대한 애착이 남들에 비해 당연히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자신만의 착각이었다는 걸 조금 전 알았다.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없다 보니 더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이젠 새아버지와 추억을 더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힘들겠지만 더 많이 노력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갖는 이유가 엄마를 위해서 그런다는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어찌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신명순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많이 힘들었지?”
“그냥 조금…….”
“아니야, 우리 아들이 많이 힘들었을 거야. 그래도 이렇게 씩씩하게 이겨내 줘서 엄마는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사실 현성이가 많이 도와줬어요. 그 녀석이 나이는 같은데 하는 짓은 애늙은이라 도움이 많이 됐어요.”
“뭐? 애늙은이? 호호…….”
신명순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항상 조숙하다는 느낌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애늙은이라고 하니 오히려 그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신명순이 웃자 이정우도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이 어떨 때는 꼭 형 같고 그리고 또 어떨 때는 아…….”
이정우는 마지막 말을 끝까지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애늙은이라고 하지만 차마 자신의 입으로 친구 녀석을 아버지라고 부를 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의미를 바로 알아챈 신명순의 입에서 다음 말이 바로 튀어나왔다.
“아버지? 혹시 마지막 말이 이거 아니야?”
“헤헤…….”
“맞구나? 진짜 현성이가 그렇단 말이야?”
“네, 말도 안 되는 얘긴데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사실 죄송한 얘기지만 처음 엄마랑 그 아저씨랑 처음 만날 때 제가 많이 힘들어했었거든요.”
“그랬어? 난 몰랐는데…….”
“이제야 말이지만 제 딴에는 심각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저를 설득시키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녀석이에요. 만약 그때 현성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도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처음 듣는 얘기다.
나름 조심한다고 했는데 이정우가 심적으로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은 몰랐다.
“그렇게 힘들었으면 엄마한테 얘기하지 그랬어?”
“그게 말처럼 안 되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엄마가 또 힘들어할 테니까요.”
“그 와중에도 엄마를 걱정했던 거야?”
“그거야 당연한 거잖아요. 저한테 최우선은 무조건 엄마니까요.”
“…….”
신명순은 순간적으로 할 말이 없었다.
최우선!
이 말이 갖는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명순이 쉽게 말을 잇지 못하자 이정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현성이가 그러더라고요. 엄마는 저의 소유가 아니라고요.”
“……소유?”
“네, 그러면서 엄마는 엄마로서의 인생이 있는 거라고. 아무리 자식이지만 엄마의 인생에 함부로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거라고 말입니다.”
“현성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신명순은 고개를 약간 갸웃했다.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딱 잘라 말한다는 것도 어딘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모자지간이 아닌가 말이다.
끼어든다고 표현하기엔 왠지…….
신명순이 고개를 다시 살짝 저었다.
그때, 이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네, 엄마. 그리고 또 이런 말도 했어요.”
“무슨…….”
“엄마가 혼자 살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가혹하다고 말입니다. 여자로서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그 말은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돼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하지만 얼핏 생각하면 또 이해도 될 거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그 말은 저한테는 좀 어려웠어요.”
“가혹하다……?”
신명순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핏 생각해도 고등학생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말에 왠지 자신도 모르게 공감이 간다는 것이었다.
그때 이정우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결정적인 건 마지막 말이었어요.”
“마지막? 또 무슨 말을 했는데?”
“제가 너무 이기적이라는 겁니다. 엄마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만 너무 생각한다는 거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말이 딱 맞더라고요. 저는 그때까지도 엄마의 입장이 아닌 오로지 저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날 현성이와 밤늦게까지 그 얘기를 나누면서 제 생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까지 온 거고요. 어쨌거나 저한테 현성이는 그런 존재예요. 친구이면서 가끔은 형 같기도 하고 그리고 또 어떨 때는 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쨌거나 고마운 녀석이에요.”
이정우의 긴 얘기가 끝나자 신명순의 입가에는 어느새 옅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만큼 이정우의 말이 사실이라는 얘기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들뿐만이 아니고 자신 또한 현성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우선은 현성이 덕분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처음 건물주로부터 쫓겨날 때만 해도 앞이 막막했었다.
그런데 그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이가 바로 어린 현성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보란 듯이 라면 가게를 성공시킨 이가 바로 현성이다. 그 덕분에 든든한 직장도 얻게 되었고.
그리고 이제는 박희철이라는 새로운 배우자까지도 인연이 닿았다.
그 또한 현성의 공이 컸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신명순이 잠깐 생각에 잠길 때였다.
“이거 커피예요?”
이정우가 갑자기 쟁반에 있는 컵 두 개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신명순이 웃으며 바로 말을 이었다.
“호호, 내 정신 좀 봐. 우리 정우랑 커피 마시려고 왔는데 얘기하다가 깜빡했네. 다 식었겠다. 어서 마셔.”
“헤헤, 그래요? 저도 모처럼 엄마랑 이런 얘기 하다보니까 커피 들고 들어오신 것도 깜빡했네요. 우리 엄마가 타 주는 커피가 달달한 게 참 맛있는데.”
이정우는 그 말을 마치고 바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호로록.
그러자 신명순도 웃으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신명순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정우야, 매우 기쁜 소식이 있어.”
“기쁜 소식이요?”
“응, 그래. 사실은 그 얘기 전해주려고 왔다가 네가 다른 얘기 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그만.”
“그게 뭔데요?”
기쁜 소식이라는 말에 이정우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러자 신명순이 바로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 전화가 왔었어.”
“전화요? 누구한테요?”
“회장님한테.”
“회장님이요? 아, 그 아저씨요. 그런데요?”
“어쩌면 올겨울 방학에 수술할 거 같다.”
이정우는 갑자기 수술이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히 기쁜 소식이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수술 얘기를 하니 놀라는 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이정우는 바로 물었다.
“수술이요? 제가요?”
“응, 그래. 그게 사실은 …….”
신명순은 조금 전 박희철로부터 들은 얘기를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명순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이정우의 눈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신명순의 설명이 끝나자 이정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로 물었다.
“그게 정말이에요?”
“그렇다니까. 나도 조금 전에 회장님한테 들었어.”
“그러니까 제가 수술을 받으면 발 길이가 똑같아질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되면 당연히…….”
“그래, 정우야. 더 이상은 걷는 데 크게 불편하지는 않을 거래. 물론 100%는 안 되겠지만. 그리고 다리 길이 때문에 틀어졌던 골반도 교정이 가능하다고 하더라. 대신 치료 기간은 길어질 거라고.”
“어쨌든 중요한 건 제가 똑바로 걸을 수 있다는 거지요?”
“응, 그래.”
“아니, 어떻게…….”
이정우의 눈가엔 어느새 이채가 서려 있었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당연히 평생을 불구의 몸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그래서 항상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애써 담담한 척 내색 안 하고 꿋꿋하게 살았었다.
괜히 약한 척 해봐야 내 자신만 초라해지니까 말이다.
그런데 조금 전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
교정이 가능하다고. 물론 100%는 아니지만 걷는 데 있어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사실 요즘 들어 허리 통증을 가끔 느끼곤 했다. 그래서 며칠 전에 엄마 몰래 병원에 가서 물어보니 역시 예상했던 대로 원인은 다리 길이의 차이 때문이었다.
다리 길이가 차이가 나다 보니 골반이 틀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다 보니 당연히 허리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였다.
지금이야 그나마 나이가 어리니까 상관없는데, 문제는 앞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그 고통은 점점 심해질 거라는 거였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그래도 막상 의사로부터 직접 그 얘기를 들으니까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아는 의학으로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뼈를 늘리는 기술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강제로 늘릴 수는 있지만 오히려 그 역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다니…….
이정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국대병원에서는 그게 가능하다는 거지요?”
“회장님 말로는 그렇게 말씀하셨어. 거기 최 박사라는 분이 있는데 이번에 외국의 사례를 연구하면서 국내에서도 소아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할 거래. 그래서 앞으로 2, 3주 더 기다리면 확답을 주신다고 했대. 그런데 그게 거의 확정적이라고.”
“아저씨가 저 때문에 일부러 한국대병원에 알아본 거고요?”
“응, 그래. 일주일 전에 다녀오셨다고 하더라. 엄마도 조금 전에 알았어.”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이정우는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물론, 엄마와 결혼할 사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감사하다는 마음밖에 안 들었다.
그때 신명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은 최 박사님으로부터 확답을 받은 다음에 말하려고 하다가 오늘 너 때문에 미리 말씀하신 거라고 하더라.”
“저 때문에요?”
“그래, 네가 아까 아버지라고 불러서 말이야.”
“아, 그거요…….”
“회장님이 또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
이정우는 대답 대신 신명순을 빤히 바라봤다.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신명순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자식이니까 내가 꼭 똑바로 걷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더라.”
“…….”
이정우는 할 말이 없었다.
뚝.
그때 이정우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러자 신명순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고맙다. 쉽지 않았을 텐데 아버지라고 불러줘서.”
“…….”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게 살면 돌아가신 네 아버지도 좋아하실 거야.”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아버지한테 이제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어요. 아버지도 분명히 축하해 주실 거예요.”
“그래, 우리 정우가 이젠 다 컸구나. 고맙고, 사랑한다.”
신명순은 이정우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그러자 이정우도 그런 신명순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조용히 읊조렸다.
“저도 사랑합니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