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36)
회귀해서 건물주-336화(336/740)
336
박희철이 현성을 다시 찾아온 건 이틀 후였다.
“아니, 아저씨, 내일이 결혼식인데 오늘 여길 왜 오신 겁니까?”
“자네가 궁금해할 거 같아서.”
“제가요?”
“그래, 내가 엊그제 우리 애들을 군기 잡는다고 했잖은가? 그래서 그 결과를 알려주려고 이렇게 일부러 왔네.”
“아, 네…….”
물론 궁금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박희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 정도로 많이 궁금했던 건 아니다.
그 이유야 간단하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제삼자이기 때문이다. 박희철과 그의 두 아들, 세 사람이 해결할 문제였다. 그런 데까지 끼어들 정도로 호기심을 가지기엔 현성 자신이 살아온 세월이 짧지 않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성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박희철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한 듯했다.
박희철이 갑자기 옷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먼저 이것 좀 보게.”
“네? 뭐를…… 아니, 이건 내복 아닙니까?”
현성은 황당했다. 아무리 강원도가 추운 곳이긴 하지만 5월 중순 날씨에 내복이라니,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였다.
현성은 바로 물었다.
“아니, 입하가 지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내복을 입으신 겁니까?”
“이게 보통 내복이 아니거든.”
“네? 보통 내복이 아니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작은 녀석이 엊그제 오면서 사 온 거란 말일세.”
“둘째 아드님이요? 아니, 5월에 무슨 내복을…….”
현성은 중간에서 말을 멈췄다. 그 이유는 지금 박희철의 행동이 얼핏 생각해도 어딘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5월에 내복을 입은 것도 그렇고 그걸 또 일부러 보여주면서 작은아들이 사 왔다고 얘기하는 표정이 너무 밝다는 것이었다.
현성의 입가에 갑자기 웃음이 번졌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대충 감을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 저한테 자랑을 하시러 오신 거죠?”
“허허, 눈치챘는가? 사실 아들 녀석한테 선물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거든.”
“그래서 일부러 지금 그 옷을 입고 저한테 오신 거란 말씀인 거죠?”
“솔직히 좀 창피하긴 한데 그래도 자랑을 하고 싶은데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명순 씨한테 이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고 말이야. 그래서 이 시간에 이렇게…….”
“하하……, 잘하셨습니다.”
현성은 기분 좋게 웃었다.
박희철의 심정을 백번 이해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자식들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런 자식이 선물을 사 왔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 내복일까? 그 많은 선물 중에, 왜 하필……, 그것도 5월에.
현성은 바로 물었다.
“그런데 아드님은 어떻게 내복을 사 올 생각을 했을까요? 그것도 5월에 말입니다.”
“히히…….”
박희철이 갑자기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올해 환갑인 사람의 행동치고는 너무 해맑은 모습이었다.
현성은 피식 웃었다.
“혹시 아저씨가…….”
“맞네, 내가 시켰네.”
“그랬던 거군요. 그런데 왜 하필 내복입니까?”
“혹시 자네 기억하는가? 작년에 나한테 내복을 선물한 거 말일세.”
“아, 네. 물론입니다. 작년에 가게를 오픈하고 첫 달 정산을 끝낸 기념으로 사 드렸지요. 근데 그게 왜요?”
“그때 기분이 최고였거든. 내복이라는 선물의 의미가 특별하니까 말이야.”
맞는 말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첫 월급을 타면 빨간 내복을 부모님께 선물한다. 그 의미는 빨간 내복이 따뜻한 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물론 보다 더 깊은 의미를 찾으려면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만 하더라도 염색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염색한 옷들은 다른 옷에 비해 굉장히 비쌌다고 한다. 빨간 내복도 그중 하나였다.
그렇다 보니 첫 월급을 타면 비싼 빨간 양복을 사서 부모님께 선물했다고 한다. 그게 시간이 흐르면서 ‘첫 월급=빨간 내복=따뜻한 마음’이란 의미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 그렇죠. 그래서 아드님한테 내복을 사 오라고 하신 겁니까?”
“물론, 그 녀석이 그런 의미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아들 녀석한테 처음으로 받는 선물이다 보니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내복이었네.”
“하하, 꿈보다 해몽이네요. 어쨌든 좋으시겠습니다.”
“오죽했으면 내가 자네한테 내복을 입고 찾아왔겠는가. 늙은이 주책이라고 놀려도 어쩔 수 없네.”
“아닙니다. 잘하셨습니다. 이유를 알고 나니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아는 박희철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잠깐!’
그 순간 현성의 머릿속에 또 다른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작은아들한테 내복을 사 오라고 했다면 당연히 큰아들한테도 뭔가를 주문했을 것이다.
당연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큰아드님은요?”
“허허, 그렇지 않아도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먼저 물어봐 주니 고맙네. 바로 이거네.”
박희철은 발을 살짝 들어 올렸다.
반짝반짝.
마치 파리가 앉으면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정도로 반짝이는 구두가 현성의 눈에 들어왔다.
“오! 금광 구두네요?”
“구두는 역시 금광 아닌가? 그래서 일부러 금광 구두로 사오라고 했네. 어때 괜찮은가?”
현성은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질 뻔했다.
박희철이 발을 요리조리 흔들면서 자신 앞에서 자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처음에는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왠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자식에 대한 정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이렇게까지 어린아이처럼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색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럴 땐 그저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라는 걸 알고 있는 현성이었다.
현성은 일부러 다른 질문을 가볍게 던졌다.
“구두는 또 무슨 의미인가요?”
현성이 묻자 박희철은 미리 답변을 준비라도 한 것처럼 바로 말했다.
“새 출발!”
“새 출발이요?”
“그래, 결혼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있겠는가. 안 그런가?”
“아, 네…….”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자고로 의미라는 건 부여하기 나름이다. 박희철이 말한 것처럼 구두에 새 출발이라는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이제부터 저 구두는 단순한 구두가 아니고 특별한 의미가 될 것이다.
더군다나 그동안 아쉬움만 남던 큰아들이 사 준 것이니 그 의미는 더욱 클 것이다.
‘잠깐!’
현성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박희철은 조금 전에 들어오면서 군기를 잡겠다고 한 자신의 말에 대한 결과를 알려주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식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자랑하기에 바쁘지 않은가 말이다.
현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조금 전에 저한테는 군기를 잡겠다고 하신 거…….”
“아, 그거.”
박희철이 손을 들며 현성의 말을 끊었다. 그리곤 바로 다시 말을 이었다.
“우선 자랑할 건 자랑하고.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자식들한테 선물을 받은 게 이번이 처음이라서 말이야. 물론 내가 반강제적으로 사 오라고 시키긴 했지만 어쨌거나 선물은 선물이니까 말이야.”
“그렇죠! 당연히 선물이죠.”
현성은 일부러 박희철이 원하는 대답을 골랐다.
그러자 박희철의 목소리에 힘이 더 들어갔다.
“하하, 역시 자네는 뭔가를 안다니까.”
“그래서 군기는 어떻게 잡으셨는데요?”
“그게 말이야…….”
박희철의 분위기가 왠지 조금 전과는 달라지는 듯했다.
현성은 바로 물었다.
“뭡니까?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나도 처음엔 독하게 마음먹고 요 녀석들 군기를 잡으려고 했는데…….”
“그런데요?”
“그런데 막상 얼굴을 보니까 그게 쉽지 않더라고. 사실 6년 만에 이 녀석들을 본 거거든.”
피식.
현성은 웃고 말았다.
하긴, 부자지간이 아닌가 말이다. 아무리 그동안 섭섭하고 괘씸하다고 하지만 막상 얼굴을 보면 서운함보다는 반가운 게 먼저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군기를 잡겠다고 억지를 부린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일 것이다.
“결국은 아저씨가 또 양보하신 거군요?”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건 다 했네.”“하고 싶은 거요?”
“그래, 가장 먼저 큰절을 받았거든.”
“지금 큰절이라고 하셨습니까?”
현성으로선 조금 의외였다. 그동안 박희철이 자식들에 관해서 얘기할 때면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입에선 가장 먼저 나온 말이 ‘큰절’이다.
‘음…….’
내복, 구두, 그리고 큰절.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생각한다면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소중할 수 있는 것들이다.
현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박희철이 바라는 것은 그 어떤 거창하고 화려한 것보다도 비록 작은 물건이지만 그 물건이 가지는 의미에 더 가치를 두겠다는 얘기다.
박희철의 말이 이어졌다.
“처음이었네.”
“큰절을 받은 게 말이죠?”
“내복도 구두도 그리고 큰절도 말이야. 남들이야 그까짓 게 뭐 대수냐고 하겠지만 나한테는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것들이었네.”
“네…….”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박희철이 큰절을 얘기할 때 그게 의미하는 게 뭔지 대충 감을 잡았기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러자 박희철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네.”
“뭐를 말입니까?”
“앞으로는 내가 원하는 건 직접 얘기하는 게 맞는다는 것을 말이야. 그전에는 그냥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기만 했는데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더라고.”
“말 안 하면 모르니까요.”
“맞아. 괜히 말 안 하고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기다렸다가 안 해주면 섭섭해하고 그랬거든. 근데 그게 바보 같은 짓이었더라고. 말 안 하면 자식들은 절대 모르더라고.”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희철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 이상 바보짓은 안 하려고. 이제부턴 원하는 건 무조건 얘기하기로 작정을 했네.”
“잘하셨어요. 입이 장식도 아니고 말하면 서로 편하잖아요. 괜히 말도 안 하고 안 해준다고 꽁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겪어보고 나서야 이제 깨달았네. 그리고 내가 지난 이틀 동안 아들들하고 뭘 했는지 아는가?”
박희철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는 현성이었다.
예의상 바로 물었다.
“뭘 하셨는데요?”
“첫날은 목욕탕에 갔었네.”
“아, 목욕탕이요. 드디어 소원을 푸셨군요? 그런데 자제분들이 순순히 목욕탕에 가던가요?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요.”
“말도 말게. 당연히 죽어도 안 가겠다고 하더군.”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나한테는 확실한 무기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번에 제대로 그 무기를 써먹었지.”
현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기요?”
“일산의 땅 말이야. 50억.”
“하하, 결국은 돈입니까?”
“어차피 이 녀석들이 이번에 결혼식에 온 것도 그 돈 때문이 아닌가. 내가 얘기했잖아. 앞으로 시간과 돈은 내 편이라고 말이야. 이제 이 녀석들은 이미 미끼를 물었기 때문에 절대 못 빠져나갈 거란 얘기지.”
“제대로 물었군요?”
“그렇다니까. 눈앞에 50억이 있는데 자기들이 어쩔 거야. 이제부턴 꼼짝 마야.”
박희철의 표정엔 여유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현성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목욕탕엔 다 같이 들어갔겠군요?”
“당연하지. 그렇지 않으면 돈 안 주겠다는데 안 들어오고 배겨?”
“하하, 아저씨도 참…….”
“목욕탕 끝나고 소머리도 먹었네.”
“소머리요?”
“국밥 말이야. 소머리국밥.”
“아, 네. 근데 자제분들이 그걸 먹어요? 외국에서 산 지가 오래돼서 쉽지 않을 텐데요?”
“또 얘기해? 안 먹으면 얄짤없다니까.”
“아니, 무슨 깡패도 아니고…….”
현성은 어이가 없었지만 박희철은 신이 난 듯했다.
“소머리국밥에 소주도 한잔하고, 그다음 날은 낚시도 갔다 왔네. 그뿐만이 아니고…….”
박희철의 말은 그 이후로도 계속됐다.
마침내 그의 얘기가 끝나자 현성의 말이 이어졌다.
“혹시라도 2년 뒤에 그 돈 생기거든 끝까지 그 돈 가지고 계십시오.”
“죽을 때까지 말인가?”
“네, 행여나 정에 이끌려 그 돈 나눠주지 말고요.”
“그래야겠지?”
“물론입니다. 그 돈이 아저씨를 끝까지 지켜줄 겁니다. 그 돈 없어지면 끈 떨어진 연이 되는 겁니다. 마지막까지 꼭 움켜쥐고 계십시오.”
“허허, 하여간 말하는 거 보면…….”
박희철은 현성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