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4)
회귀해서 건물주-34화(34/740)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개학날이라 그런지 교실 안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음…, 실감 나는군.”
“뭐라고?”
“아니야. 그런 게 있다. 그런데 내 자리가 어디냐?”
현성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자리가 헷갈렸다.
이정우는 그런 현성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자식, 개학 첫날부터 웬 농담을 그렇게 다발로 하냐?”
“오랜만이라 그런다, 인마. 너도 나이 먹어 봐라. 어디냐? 내 자리.”
“어쭈, 연기도 자연스러운데, 좋다! 그 정도면 속아 넘어가 주는 게 또 예의지. 저기.”
이정우는 턱으로 창가 쪽을 가리켰다.
탁탁.
현성은 자리에 앉아 책상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투박한 나무 책상의 느낌이 그대로 손을 타고 온몸으로 전달됐다.
“이번엔 좀 제대로…….”
현성은 혼자 중얼거렸다.
툭.
그때 누군가 현성을 살짝 쳤다.
돌아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녀석이었다.
“너는…… 영민이 맞지?”
이영민.
반장이다. 담임 신민호의 충복.
현성이 놀라며 이름을 부르자 이영민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 자식이 너 오늘 뭐 잘못 먹었냐?”
“인마, 반가워서 그러지. 잘 지냈어?”
“어쭈, 점점… 됐고, 담임 선생님한테 가봐. 부르시더라.”
이영민은 돌아서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굴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어딘지 모르게 방학 전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의외였다. 교무실에서 특별히 자신을 부를 이유가 없었다.
‘개학 첫날부터 무슨 일이지?’
현성은 교무실로 향했다.
나이를 먹어도 교무실은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 무게감이 예전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잘못한 것도 없기에 당당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교무실에 들어선 현성은 담임 신민호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미우나 고우나 담임이었다. 반갑게 일단 인사를 건넸다.
“그래.”
현성의 반가운 마음과는 달리 담임 신민호의 대답은 간결했다. 그렇다고 거기서 넉살 좋게 더 인사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가볍게 물었다.
“부르셨다고요?”
“한 건 했다며?”
말본새하고는, 담임만 아니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현성은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최미연 선생님한테 다 들었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연락도 왔고.”
“아, 네.”
현성은 그제야 담임 신민호가 왜 불렀는지 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원주 터미널에서 있었던 소매치기 건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신민호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전체 조회시간에 상장 수여가 있을 거다.”
“상장이요?”
“그래, 그렇게 알고, 이따 호명하면 나와. 가봐.”
원래 정이 없는 인간이긴 하지만 참으로 이해 못할 성격이었다. 어차피 아쉬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왠지 기분이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찌됐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지 않은가? 그것도 자기가 가르치는 제자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
절레절레.
더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그렇게 담임 신민호와의 재회는 찝찝한 기분으로 끝냈다.
“김현성!”
교무실을 나와 몇 발자국 걷는데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 목소리만으로도 알 거 같았다.
돌아보니 역시나 최미연 수학 선생이었다.
“안녕하세요?”
“이거.”
최미연 선생은 현성에게 예쁘게 포장된 뭔가를 내밀었다. 딱 봐도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께로 봐서는 시집인 듯했다.
“시집입니까?”
“응, 유안진 님의 시집이야, 지란지교를 꿈꾸며.”
아!
설명이 필요 없는 전설의 시집.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로 그 시집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잊고 있었다.
자리로 돌아온 현성은 포장지를 뜯었다.
영학출판사에서 나온 초판이었다.
샤락.
첫 장을 넘기자 하얀 종이위에 최미연 선생이 쓴 짧은 메모가 나왔다.
고마웠다는 인사말과 함께 학교생활 잘하라는 글이었다. 또 몇 장을 넘기자 시가 나왔다.
–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
어느새 시속에 빠져든 현성이었다. 세월이 그토록 지났건만 역시 명작은 가슴에 그대로 전달됐다. 아니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살아온 세월의 경험이 더해지니 예전에 느꼈던 감정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현성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드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뭐해?”
이정우였다.
“어, 왜?”
“인마 왜긴, 종소리 못 들었어? 조회하러 운동장으로 나가야지.”
그러고 보니 종소리도 못 들었다. 그만큼 시속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현성은 이정우와 함께 교실을 나갔다.
전체 조회에서 현성은 용감한 시민상을 받았다.
교장 선생의 칭찬 일색에 무안할 정도였다. 교장 선생도 입이 귀에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현성의 그 공이 어디로 가겠는가?
결국, 교장 선생한테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1년 후엔 정년이다. 그래서 더 귀한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건, 회귀해서 학교생활 시작은 상으로 시작했다.
1교시는 국어 시간이었다.
개학 첫날이라 그런지 국어 선생은 교과서 내용이 아닌 이런저런 얘기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꿈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한다고.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분명히 다르다고 했다. 현성은 국어 선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꿈이라…….
좋은 얘기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꿈에 대한 원론적인 얘기야 얼마든지 침을 튀겨가며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환경을 무시한 일방적인 저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서명고에서 대학에 가는 숫자는 많아야 5명을 넘지 못했다. 수도권 대학? 언감생심이다. 현실이 그 정도라는 얘기다.
물론 꿈과 대학이 정비례 관계는 아니다. 하지만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때, 국어 선생이 반장을 호명했다.
“반장.”
“네.”
“자네는 꿈이 있는가?”
“넵, 있습니다.”
반장 이영민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러자 국어 선생은 교단을 내려와 이영민에게 다가갔다.
“그래, 그 꿈 얘기 좀 들어볼까?”
“네, 저는 일단 연대를 갈 겁니다. 그리고 법을 전공해 검사가 될 겁니다. 그래서…….”
역시 교과서적인 대답이었다.
픽.
이영민의 말에 현성은 피식 웃고 말았다.
미안하지만 이영민은 대학을 못 간다. 전기대 시험에서 떨어지고 재수한다는 말만 들었다.
그다음엔 어떻게 됐는지 현성도 모른다.
국어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다시 이었다.
“좋다. 그 꿈 꼭 이루도록.”
입술에 춤이나 바르고 말할 것이지. 의미 없는 시간 때우기였다.
국어 선생은 다시 말했다.
“자 그럼 이번엔 누가 얘기해 볼까?”
당연히 다들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한 사람은 예외였다. 나름 고민에 빠졌는지 눈까지 지그시 감고 생각 중인 듯했다.
바로 반에서 1등 하는 녀석, 우종규였다.
국어 선생이 다시 우종규 옆으로 걸어갔다.
“고민 끝났으면 이제 자네의 꿈 얘기를 들어볼까?”
“저는 총신대 갈 겁니다. 그래서 목사가 될 겁니다.”
빙고, 이 녀석은 된다. 노력의 결과다. 정말 노력 하나만큼은 최고였던 친구다.
오죽하면 수학도 이 녀석은 외워 버린다. 머리 구조가 그런지 다른 과목은 다 되는데 수학만큼은 젬병이었다.
그러더니 어는 순간 수학 문제 자체를 유형별로 외워버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또 어느 정도는 먹혔다.
정말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녀석이다.
다시 생각해도 대단하다 싶어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런데 그게 하필 국어 선생의 눈에 띄었다.
“자네는 오늘 상 받은 친구가 아닌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아니야, 그거 아무나 나설 수 있는 일이 아니지. 하여간 그 용기가 대단하네.”
“고맙습니다.”
담임한테도 못 들었던 얘기를 국어 선생한테 들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꿈이 뭔가?”
꿈이라…….
현성은 순간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꿈……?
그런 게 있었나?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없었구나……. 현성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적어도 지금은 예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
그런데 너무 갑자기라 그런지 생각나는 게 없었다.
꿈이란 말이 너무 추상적이라 생각이 안 나는가 싶었다.
현성은 말을 살짝 바꿔봤다.
목표.
꿈이란 말을 목표로 바꾸고 나니 머릿속에 뭔가 잡힐 듯했다.
그렇게 잠깐 시간이 흐르고.
‘그렇지!’
그때 현성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는 게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건물주’라는 단어였다.
죽기 전 현성의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들었던 그 인간도 바로 건물주였다.
조물주 위에 있다는 건물주 말이다.
개천에서 용?
진짜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할 수만 있다면 건물주가 최고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현성이 입을 열었다.
“저는 건물주가 꿈입니다!”
보통은 의사, 변호사, 검사 등등이 일반적인 대답이다. 물론 그 대답도 아무 의미가 없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갑자기 현성이 건물주라고 대답하자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아가들아 웃어라.
나중에 살아보면 알게 될 거다.
히히….
현성도 친구들과 같이 웃었다. 물론 그 웃음의 의미는 정 반대였지만.
그렇게 현성에게도 꿈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래!
건물주다! 이제부터 목표는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