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47)
회귀해서 건물주-347화(347/740)
347
“식사 준비됐습니다.”
그 한마디에 제일 반가워 한 사람은 현성이었다. 그렇다 보니 대답하는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었다.
“네에!”
잠시 후.
밥, 반찬 5가지, 찌개 2가지, 그리고 메밀전 한 접시.
정갈한 밥상이었다. 하지만 정갈하다는 표현은 현성의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듯했다.
현성을 뺀 나머지 세 사람의 눈빛은 하나같이 ‘이게 뭐야’하는 표정들이었다.
“식사 전에 이것부터 드셔 보세요.”
현성이 메밀전을 가리키며 신춘오 회장에게 말했다.
그러자 신춘오 회장이 젓가락도 안 든 채 물었다.
“그게 뭔가?”
“메밀전 모르십니까?”
“어? 그게 메밀전이야?”
신춘오 회장은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아마도 메밀전의 색깔이 평상시에 먹던 메밀전과 다르기 때문에 모른 듯했다.
“시내에서 드시던 것과는 색깔부터가 다를 겁니다. 이건 100% 메밀로 만든 거거든요. 맛도 확실히 다를 겁니다. 드셔 보시죠?”
현성이 재차 권하자 신춘오 회장은 그제야 젓가락을 들고 메밀전을 조금 떼어 입으로 가져갔다.
오물오물.
‘음……’
신춘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서울에서 먹던 메밀전과는 맛이 달랐다. 뭐랄까, 약간 싱겁다고나 할까, 맛으로 표현하자면 밍밍한 맛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느낌이 싫지 않다는 것이었다.
휙.
신춘오는 얼른 한 젓가락 더 메밀전을 떼어 입으로 가져갔다.
오물오물.
‘이 맛인가?’
확실히 처음 먹을 때하곤 다른 맛이 느껴졌다. 처음엔 그저 밍밍한 느낌이었는데 두 번째 먹으니 메밀 특유의 담백한 맛이 느껴지는 듯했다.
“어떻습니까?”
“음……, 처음엔 솔직히 잘 모르겠더니 두 번째 먹으니 확실히 맛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거 같네. 뭐랄까…… 강한 맛은 아닌데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라고 할까, 하여간 그 특유의 맛이 느껴지는 거 같네. 그런데 그 느낌이 좋아. 뒷맛도 깔끔하고.”
“맞습니다. 그게 바로 메밀의 맛입니다. 강하지 않고 순한 맛인데도 그 맛의 여운이 오래 남지요. 그리고 특히 이 메밀이 우리 혈관에 좋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르신들이 더 좋아하는 거고요.”
“허허, 그런가. 그런데 어린 친구가 그런 건 또 어떻게 아는가?”
“저보고 애늙은이라면서요?”
“하하,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건가.”
신춘오 회장은 가볍게 웃었다.
전생에서 현성의 관심사 중의 하나가 음식의 효능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각종 음식의 효능을 알게 됐었다. 그걸 또 이렇게 써먹을 줄은 몰랐다.
“실장님과 기사님도 드셔보세요. 서울에서 드시던 것과는 확실히 다를 겁니다.”
“어, 그래. 알았네. 현성이 덕분에 귀한 음식을 먹게 생겼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얼른 메밀전을 먹기 시작했다.
두 번 정도 젓가락이 움직이더니 김영우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회장님 말씀이 맞네요. 확실히 서울에서 먹던 메밀전과는 다르네요. 거친 맛이 은근 입맛을 돋우는데요.”
“그렇지? 부드럽지는 않은데 오히려 그 맛이 더 먹고 싶게 한다니까.”
“확실히 깊은 맛이 느껴집니다.”
최진영 기사까지 칭찬이 이어지자 신춘오 회장이 웃으며 현성을 바라봤다.
“고맙네. 이렇게 귀한 음식을 먹게 해줘서.”
“별말씀을요, 이번엔 이 나물을 메밀전에 싸서 드셔보십시오.”
“그건 또 무슨 나물인가?”
“다래순입니다.”
“다래순?”
“이 다래순은 보통 4월 말에서 5월 초에 채취를 해서…….”
현성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그러자 신춘오 회장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침내 현성의 설명이 끝나자 바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 다래순은 특히 위장에 좋다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비타민 C가 풍부해서 봄철 피로 회복에도 특히 좋습니다.”
“자네한테 이런 재주가 또 있을 줄이야……, 하여간 가만히 보면 연구 대상이라니까. 그건 그렇고 이 나물을 여기 메밀전에 싸서 먹으라는 거지?”
“네, 드셔보시면 메밀전만 드실 때와 또 다른 맛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현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메밀전에 다래순을 싸서 먹기 시작했다.
아작아작.
그리고 잠시 후.
신춘오 회장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뒷맛은 뭔가?”
“은근히 단맛이 느껴지시지요?”
“그러니까 말이야. 아까 메밀전만 먹을 때는 이런 맛이 전혀 없었거든. 근데 이번엔 뒷맛이 개운하면서 단맛까지 연하게 느껴지네. 혹시 이 다래순이 단맛을 내는 건가?”
“네, 맞습니다. 봄나물 중 드물 게 단맛이 나는 게 바로 다래순입니다. 그래서 여기 분들은 봄철에 다래순을 많이 채취합니다. 그리곤 그 다래순을 삶아서 말렸다가 1년 내내 먹는 거죠.”
“이건 뭔가?”
이번엔 김영우 실장이 질경이 나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현성의 설명이 이어졌고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신기하다는 듯 현성을 바라봤다.
그 이후에도 세 번의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면서 반찬 5가지에 대한 모든 평가가 이루어졌다.
처음 밥상을 맞았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현성의 입가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때 신춘오 회장이 찌개를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이 두부도 여기서 직접 만든 것일 테고?”
“물론입니다. 아마도 오늘 아침에 만드셨을 겁니다. 드셔보시지요? 서울의 두부와 강원도 두부 맛이 어떻게 다른지 말입니다.”
신춘오 회장은 현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두부를 뚝 잘라 입으로 가져갔다.
우물우물.
신춘오 회장은 입속에 두부를 다 삼키기도 전에 손가락으로 두부찌개를 가리키며 김영우 실장과 최진영 기사한테 웅얼거렸다.
“우우, 우우우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두부찌개를 맛보기 시작했다.
이번엔 최진영 기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
말은 그게 다였다.
그리곤 바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두부찌개를 정신없이 먹던 신춘오 회장이 이번엔 그 옆에 있는 찌개를 보며 물었다.
“이건 뭔가?”
“비지장이요.”
“비지장?”
“비지장 모르세요?”
“비지라면 두부 만들고 남은 찌꺼기 말이지?”
현성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찌꺼기가 아니라 부산물이죠. 혹시 비지장 안 드셔보셨어요?”
“아니, 언젠가 한 번 먹어본 거 같긴 한데, 그때 기억이 맛이 별로 없었던 거 같은데. 식감이 까칠까칠한 게 내 입맛엔 영…….”
“회장님이 드신 건 아마 생 비지장이었을 겁니다. 이건 그거하고는 전혀 다른 겁니다. 비지를 띄운 거거든요.”
“비지를 띄워?”
“네, 청국장 띄우듯이 비지도 발효시키면 그 맛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드셔보세요, 아마 제가 볼 땐 회장님이 제일 좋아하실 맛인데요.”
“그렇다고……?”
신춘오 회장은 조심스럽게 반 숟가락 정도 비지장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오물오물.
휙!
맛을 보던 신춘오 회장의 숟가락이 어느 순간 비지장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30분 후.
후루룩.
마지막으로 숭늉까지 마신 신춘오 회장이 자신의 배를 가볍게 두드렸다.
툭툭.
그 모습을 본 현성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떠셨습니까?”
“굳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 배를 보게.”
신춘오 회장은 볼록한 배를 슬쩍 내밀었다.
그러자 현성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입맛이 없으시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말입니다.”
“확실히 알았네.”
“네? 알다니요? 무엇을 말입니까?”
“풍요로운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란 걸 말이야. 자네 혹시 풍요 속의 빈곤이란 말을 들어봤는가?”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또 모른 척하는 게 대화의 기술이란 걸 알기에 현성은 자연스럽게 되물었다.
“풍요 속의 빈곤이요? 그게 뭡니까?”
“허허, 자네가 모르는 게 있었던가?”
“회장님도 참……, 무슨 그런 말씀을, 당연히 모르는 게 더 많습니다. 근데 그게 뭡니까?”
“그 말이 원래는 경제학에서 나온 말이긴 하지만, 요즘은 …….”
신춘오 회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현성도 전생에서 가끔 느꼈던 감정이다. 특히 뷔페에 가면 드는 생각이 바로 그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었다. 아무리 음식 종류가 많아도 정작 입맛에 맞는 게 없을 때. 그리고 TV 채널도 마찬가지였다. 수백 개의 채널이 있어도 막상 보려면 볼 게 없을 때 들던 기분이다.
신춘오 회장의 설명이 끝나자 현성이 바로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결국 그 말은 만족감의 정도를 의미하는 거군요?”
“바로 그거야. 아무리 음식의 종류가 많아도 내 입맛에 안 맞으면 의미가 없는 거야. 그와 반대로 오늘처럼 반찬 몇 개와 찌개 두 가지를 놓고도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맛있게 먹으면 그게 최고라는 거지.”
“아, 네…….”
“특히 마지막에 먹었던 이 비지장은 내가 두고두고 못 잊을 거 같네. 아무래도 가끔 내려올 거 같네. 아무튼 오늘 이렇게 훌륭한 밥상을 먹을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맙네. 그리고…….”
신춘오 회장은 말을 중간에 끊었다가 바로 이었다.
“잠깐이지만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났고.”
“어머니요?”
“그래, 바로 비지장 때문일세. 그 부드러운 맛이 어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참 좋아하셨을 거 같네. 서울에서는 이런 맛을 못 먹어봤거든.”
현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살짝 번졌다.
한 기업의 대표이기 이전에 비지장을 먹고 어머니를 생각하는 신춘오 회장의 인간다운 면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 것이다.
그때 신춘오 회장이 김영우 실장을 바라봤다.
“김 실장, 그것 좀…….”
“네, 여기 있습니다.”
김영우 실장이 가방을 신춘오 회장에게 건넸다. 그러자 신춘오 회장은 그 가방을 그대로 현성에게 내밀었다.
“이거 받게.”
“이게 뭡니까?”
“직접 확인해보게.”
딸깍.
현성은 신춘오 회장이 건네준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가방 안에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내용물이 들어있었다. 그건 바로 1988학년도 대입 시험 예상 문제였다.
“이게 뭡니까?”
“보다시피 예상 문제일세. 자네가 지난번에 통화하면서 했던 말이 생각나서 내가 특별히 준비를 했네.”
“아니, 그걸 또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아마 두 달 전쯤이었을 것이다. 신춘오 회장과 통화하면서 푸념을 잠깐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바로 시골의 열악한 교육 환경에 대한 불만이었다. 학원은 고사하고 모의고사 문제조차 구하기 힘들다고 했었다. 그런데 신춘오 회장은 그때 그 말을 기억하고 지금 예상 문제집을 뽑아가기고 온 것이다.
“실력 있는 친구들한테 부탁해서 만든 거니까 꽤 쓸만할 걸세. 부디 자네는 물론이고 자네가 안타까워하던 주위의 친구들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
“정말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제가 꼭 만들겠습니다.”
“허허, 고맙네. 자네가 그렇게 고맙게 받아주니 내가 보람이 있네. 그리고 이것도 받게.”
신춘오 회장이 이번엔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건 또 뭡니까?”
“입학 선물일세.”
“네? 입학 선물이요? 아니, 아직 시험은 보지도 않았는데…….”
현성은 말을 하다 말고 서류 봉투를 확인했다. 서류 봉투 안에는 놀랍게도 원룸 전세계약서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웃긴 건 원룸의 주소지였다.
신림동. 신림동이 상징하는 의미가 뭔지 모를 리 없는 현성이었다.
“이게 뭡니까?”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입학 선물이라고. 거기서 학교까지 몇 분 안 걸리니까 학교 늦을 일은 없을 걸세.”
현성은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신춘오 회장이 말하는 학교가 어디인지 너무도 뻔했기 때문이다.
한국대학교.
적어도 대한민국 내에서는 최고라 할 수 있는 곳.
전생에서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었던 곳이다.
이유?
이유야 아주 간단하다. 점수가 안 됐으니.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점수였다.
마의 300대 점수.
하지만 지금은……?
충분하다.
그런데 문제는 현성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거다. 전생에서는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굳이 한국대에 갈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었다.
스윽.
현성은 서류 봉투를 신춘오 회장에게 도로 건넸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저는 한국대학교 관심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