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50)
회귀해서 건물주-350화(350/740)
350
12월 20일.
학력고사 보기 이틀 전.
이수혁이 현성을 보며 말했다.
“미안하다.”
“뭐가?”
“네가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는데 결국은 한국대 원서도 못 넣었잖아.”
사실이다. 이수혁은 결국 한국대 대신 연수대에 원서를 넣었다. 마지막 모의고사 점수가 262점이 나왔다. 한국대에 넣기는 20점 정도가 부족한 점수였다. 무리를 한다면 넣을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연수대에 원서를 넣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발전이었다. 1학기 끝날 때까지만 해도 이 점수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점수였다. 그나마 여름방학과 2학기 동안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했기에 지금의 이 점수까지 가능했던 것이다.
현성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누구보다도 네가 열심히 한 건 내가 더 잘 알아. 그러니까 미안하다는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리고 연수대도 솔직히 세 손가락에 꼽는 대학이잖아. 전혀 미안할 상황이 아니지.”
“하긴, 내가 거기에 원서를 넣었다는 자체도 사실은 기적 같은 일이지. 물론 그게 네 덕분이긴 하지만…….”
“덕분은 무슨……, 네가 열심히 했으니까 가능했던 거지. 그건 그렇고 내가 마지막으로 다시 보라고 했던 건 다 봤지?”
“오답노트 말이지?”
“그래, 어차피 지금은 새로운 걸 공부하기보다는 그동안 공부했던 걸 점검하는 시간이야. 특히 틀린 부분을 중점적으로 말이야.”
현성의 말에 이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말했다.
“응,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부터 네가 얘기했던 데로 오답노트를 중점적으로 다시 봤어. 그리고 틀린 문제들도 다시 풀어봤고.”
“잘했어. 그럼 됐어. 그리고 이제부턴 진짜 정신력 싸움이야. 너무 긴장하면 절대 안 된다.”
“그게 좀 불안해. 내가 원래 시험 보기 전에 많이 긴장을 하거든. 그렇다 보니 지난번 모의고사 때도 긴장하는 바람에 아는 문제도 틀렸고…….”
“너 혹시 청심환 먹어본 적 있어?”
“응, 사실 지난 모의고사 때도 먹었었어. 근데 별로 효과를 못 봤어.”
“언제 먹었는데?”
“그날 아침에.”
이수혁은 당연하다는 듯 쉽게 대답했다.
그러자 현성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그러지 말고 하루 전에 먹어.”
“하루 전에?”
“응,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청심환 같은 경우는 효과가 늦게 오기 때문에 하루 전에 먹는 게 가장 효과가 좋아. 그러니까 내일 저녁 먹고 한 시간쯤 있다가 먹어. 그러면 다음 날 시험 볼 때 훨씬 도움이 될 거야.”
“진짜야?”
현성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전생에서 그걸 가르쳐준 사람은 책방의 손님이었다. 물론, 그 사람은 광동제약에 다니는 직원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바로 효과를 볼 거라고 생각하고 먹지만 약효는 느리게 나타난다고 했다. 하지만 심리적인 요소 때문에 먹고 나면 조금 안정된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10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난 이만 갈 테니까 오늘은 너무 늦게까지 공부하지 말고 12시쯤에 자.”
“그래, 알았어. 내일 10시 버스라고 했지?”
“응, 내일 터미널에서 만나자.”
1987년 대입 학력고사가 선지원 후시험이라 지원한 학교에 가서 직접 봐야 한다. 그렇다 보니 현성의 경우는 한국대, 이수혁이는 연수대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다.
현성이 나가고 방안에 혼자 남은 이수혁.
슥슥.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듯 얼굴을 몇 번 문질렀다. 긴장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항상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연수대다. 사실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일부러 입버릇처럼 얘기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언젠가 책에서 ‘사람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 그 문턱까지 와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그 문턱을 넘을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진짜 최선을 다했다. 끝까지 노력해서 그 문턱을 꼭 넘고 말 것이다.
똑똑.
‘엄만가?’
“네.”
이수혁이 대답을 하자 방문이 열렸다.
“어? 아버지!”
방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공부하고 있었냐?”
“아니, 잠깐 쉬고 있었습니다.”
“힘들지?”
“아니, 괜찮습니다. 할 만합니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어쩌면 지금 자신보다도 아버지가 더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안방에 불이 새벽 2시까지 켜져 있었다. 그 시간까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이 넘어야 불이 꺼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바로 자신이 불을 끄는 시간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처음엔 우연이겠지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거 받아라.”
“이게 뭡니까?”
아버지가 내민 건 오래된 만년필이었다. 손가락 끝이 닿는 부분은 색이 바랠 정도로 오래된 것이었다.
“글이라는 게 말이다……, 아니다, 내가 또 쓸데없는 말을 할 뻔했구나. 내일 서울 가려면 오늘은 일찍 자거라. 그리고 이건 내일 저녁때 먹고 자거라. 시험 볼 때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거다. 닮을 게 없어서…….”
아버지는 말을 하다 말고 피식 웃었다.
톡톡.
그리곤 이수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방을 나갔다.
잠시 후.
이수혁의 손에는 만년필 한 자루와 청심환 한 개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의 꿈이 작가였다는 걸 알던 날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를 닮는다는 것, 그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미처 몰랐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사실을 또 알았다.
시험 보기 전에 긴장하는 것까지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어떻게 알고 청심환까지 준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버지의 표정이었다. 조금 전 청심환을 건네면서 아버지가 보여줬던 입가의 미소. 그 미소가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고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는 것이다.
“쿡!”
이수혁은 갑자기 ‘쿡쿡’ 웃기 시작했다.
***
얼마 후.
학교 정문에는 두 개의 현수막이 걸렸다.
-김현성 한국대학교 경영학과 합격
-이수혁 연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합격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개교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면장이 나서서 마을 잔치를 벌였고, 아버지는 돼지 10마리를 마을 잔치에 기증했다.
이정우의 어머니 신명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면서 3일씩이나 라면을 공짜로 마을 사람들한테 끓여줬다. 라면을 먹겠다는 줄이 100m나 늘어졌지만 어느 누구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대병원 앞에 세 사람이 나타났다.
“오늘이 정우 수술 날짜 맞지?”
이수혁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응, 조금 전에 어머니랑 통화했어. 두 시간 전에 수술 끝나고 병실로 돌아왔다고 하니까 지금 들어가면 마취도 풀려 있을 거야.”
“물론 수술 잘 됐겠지?”
김일수가 양손에 치킨을 들고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의사 선생님이 아주 잘됐다고 그랬데. 그리고 2주 후부터는 재활치료도 시작한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빨리?”
“다행히도 아직 어려서 적응이 빠를 거래. 늦어도 5월이면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
김일수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수혁이 현성이 멘 가방을 보며 물었다.
“그 가방은 뭐야?”
“책.”
“책?”
“응, 정우가 특별히 부탁하더라고. 공무원 시험 기출 문제지 좀 사다 달라고. 그것도 5년 치를.”
“5년 치?”
“병원에 있으면서 이번에 제대로 공부를 하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걔 병실이 1인실이잖아. 아버님이 특별히 신경을 쓰셨더라고.”
이수혁이 놀랍다는 듯 바로 입을 열었다.
“와! 한국대병원 1인실이면 엄청 비쌀 텐데……, 아저씨가 대단하시네. 그러고 보면 그 아저씨는 새아버지란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잘하신단 말이야.”
“정우 수술을 알아보신 것도 아버님이야.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지. 야, 그나저나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서 정우한테 빨리 가야지.”
“그래, 그래. 이 자식 우리 안 온다고 삐질라. 빨리 가자.”
세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병실을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10분 후.
똑똑.
아무리 1인실이지만 일단 노크부터 했다.
-네.
얼핏 들어도 이정우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에 있던 이정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여기…….”
목소리는 아직 힘이 없었다. 하지만 웃고 있는 그의 표정에서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좀 어때?”
현성이 그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그러자 이정우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안 아파?”
김일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자 이정우가 다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응, 보다시피 진통제를 수액과 함께 계속 맞아서 그런지 아픈지 모르겠어. 내일 오후까지는 진통제를 계속 맞을 거라고 하더라고.”
침대 머리맡에는 수액을 비롯해 알 수 없는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먹는 건?”
이수혁이 묻자 이정우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직은 못 먹어. 간호사 누나가 가스 나오면 먹으래.”
“가스?”
“응, 수술하고 나면 가스가 나와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 이유까지는 설명 안 하고 그냥 가스 나올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말래.”
수술 시에 시야 확보를 위해서 탄산가스를 주입한다고 한다. 이 탄산가스가 수술 끝나고 체내에 남아있으면 가스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수술 후 가스 배출이 중요한 것이다.
현성이 병실을 둘러보며 물었다.
“어머니는?”
“응, 너네 온다고 아까 나가셨어. 여기 병원에는 먹을 게 없다고 큰 슈퍼에서 먹을 것 좀 사 오신다고.”
“뭘 또 그렇게까지……. 그리고 이거, 네가 부탁했던 5년 치 9급 공무원 기출문제야.”
“오! 탱큐. 어차피 병원에 있으면서 할 것도 없어서 공부나 하려고. 그리고 이번 가을에 시험 한번 보려고.”
“가을에?”
“응, 알아보니까 10월에 시험이 있더라고. 물론, 처음이라 어렵겠지만 그래도 한번 도전해 보려고!”
이정우의 눈빛에서 사뭇 진지함이 묻어났다. 말로는 어렵다고 하지만 나름 각오를 다진 듯했다.
이럴 때일수록 격려가 필요하다는 걸 알기에 현성의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좋아!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 봐! 넌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그냥 연습인데 뭘 또 그렇게까지…….”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연습은 실전같이 실전은 연습같이 하라는 말. 그러니까 이번에 제대로 해보는 거야!”
“하여간 말은…….”
이정우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곤 바로 사물함을 가리키며 말했다.
“현성아, 저 안에 있는 거 좀 가져다 줘.”
“어? 어, 그래.”
현성은 사물함에 있던 상자를 꺼내 이정우 앞으로 가져왔다.
그러자 이정우가 상자 뚜껑을 연 후 뭔가를 꺼내 김일수한테 내밀었다.
“일수야, 선물이다.”
“선물? 이게 뭔데?”
김일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포장지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포장지 안에서 나온 건 다름 아닌 앞치마였다.
김일수의 입이 자동으로 벌어졌다.
“이건…….”
“별건 아니지만 내 마음이다. 요리할 때 하고 해라. 그리고 꼭 멋진 요리사 돼라!”
이정우의 말에는 힘이 잔뜩 실렸다.
새로운 모습이었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전생에서 항상 위축되어 뒤로만 숨던 그런 이정우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김일수가 뭐라고 말을 하려 하자 이정우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은 후 상자에서 뭔가를 꺼내 이수혁에게 내밀었다.
“받아!”
“이게 뭐야?”
“만년필. 연대 들어간 거 진심으로 축하하고 좋은 글 부탁한다. 나중에라도 책 나오면 바로 연락해라. 바로 서점으로 달려갈 테니까.”
“야, 이정우!”
“됐어, 인마. 사내새끼끼리 이런 걸로 긴말하지 말자. 그리고 김현성!”
이정우가 이번엔 현성을 바라봤다.
꿀꺽.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 분위기에서 기대를 안 한다면 그 또한 실례가 아니겠는가.
이정우가 바로 입을 열었다.
“우리의 호프, 김현성! 너한테는 내가 할 말이 너무 많더라. 그래서 몇 자 적었다. 자, 받아.”
“어? 이건…….”
이정우가 내민 건 하얀 봉투였다. 그런데 의외도 두툼했다. 최소한 편지지 5장 정도는 들어간 듯했다.
현성이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이번에도 손을 들어 현성의 입을 막았다. 그리곤 바로 물었다.
“한국대 등록은 끝냈지?”
“어? 아니…….”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까지 등록 마감이라고 하던데? 너 설마…….”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나, 한국대 안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