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52)
회귀해서 건물주-352화(352/740)
352
부르릉!
현성은 가속페달을 신나게 밟았다.
솔직히 고민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한국대에 원서를 넣지 않았던 이유는 이미 갈 곳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강릉에 위치한 강상대학교.
전생에서 현성이 다녔던 대학이다. 회귀한 삶인데 전생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면 회귀한 의미가 없기에 강상대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한국대에 원서를 넣고 합격까지 하고 나니 사람의 마음이라 그런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바로 한국대가 가지는 상징성이었다. 최소한 대한민국 내에서 한국대가 가지는 위상과 가치에 대해서만큼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호기심도 한몫했다. 가보지 않은 길이었기에 기대감과 설렘도 있었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확실히 강상대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전생에서 다녔던 학교였기에 강상대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 이유가 다였다면 어쩌면 선택은 강상대가 아니라 한국대였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강상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오로지 하나.
그!
만날 사람, 아니,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88학번 과 친구인 오정수!
“정수야, 기다려라.”
현성은 큰 소리로 오정수의 이름을 불렀다.
부르릉!
차는 어느새 대관령 고개를 내려가고 있었다.
얼마 후.
강릉 시내에 도착하니 12시 30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어차피 강릉에 도착해 갈 곳은 이미 정해진 상태였다.
초당 순두부 마을. 점심도 점심이지만 우선 확인할 게 있었기 때문이다.
객사문사거리에서 바로 직진했다. 조금 더 가니 옥천오거리가 나왔다. 10시 방향인 강릉역 쪽으로 향했다. 오래전의 기억들이지만 강릉 지리는 거의 생각이 났다. 하긴, 전생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거의 7년을 생활한 곳이니 생각이 안 난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강릉역에서 좀 더 달리자 포남동이 나왔고 거기서 초당 순두부 마을까지는 채 10분이 안 걸렸다.
끼익.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순두부 가게로 바로 들어갔다. 역시 전생에 마지막에 탔던 차가 1톤 포터라 그런지 운전을 하면서도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 보니 면허 시험에서 만점을 맞는 건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어서 오세요.”
현성이 들어가자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사장이 가게 입구에서 반갑게 현성을 맞았다. 지난여름에 왔을 때 봤던 바로 그 여사장이었다.
그 말은 아직 장모님은 이곳에 안 왔다는 얘기다.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던 이유다.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내 윤지수의 어머니인 유복순은 아직 이곳에 오지 않은 것이다. 언제 이 가게를 인수할지는 현성도 모른다. 전생에 이곳에서 장모님을 처음 본 것은 33살 때, 앞으로 13년 뒤니까 말이다.
인천에서도 아내를 찾을 수 없고 이곳에서도 장모님을 만날 수 없으니 갑갑할 수밖에 없는 현성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언젠가는 꼭 만날 것이란 거다.
이건 희망 고문이 아니라 그 반대다. 반드시 만날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주문하는 현성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얼큰째복순두부로 주세요!”
일반 순두부보다 조금 더 비싸지만, 조개가 들어가기 때문에 맛은 훨씬 낫다. 전생에서도 여기 오면 장모님이 항상 만들어 주셨던 그 음식이다.
‘째복’은 조개 이름이다. 정식 명칭은 민들조개다. 비단조개라고 한다. 하지만 강릉에서는 흔히 째복이라고 부른다.
민들조개는 패각길이가 4~5cm 정도이며, 얕은 바다의 모래에 살며, 주로 동해안에서 볼 수 있는 식용 조개다. 껍데기가 두껍고 견고한 삼각형 모양이며, 표면은 평편하고 회백색이나 담갈색이다. 동해안에서 가장 흔하고 식감이 쫄깃해서 순두부와 궁합이 잘 맞는 음식 재료다.
“음식 나왔습니다.”
10분쯤 기다리자 뚝배기에 순두부가 나왔다. 아직도 버글버글 끓는 모습에 군침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하지만 숟가락이 처음으로 향한 곳은 순두부가 아니라 다른 음식이었다.
바로 비지장.
이곳 초당 순두부 마을의 특징이다. 순두부를 시키면 비지장이 같이 나온다. 그런데 모든 식당에서 똑같은 비지장이 나오는 건 또 아니다. 간혹 어떤 식당은 띄우지 않은 생 비지장이 나오는 곳도 있다.
후룩!
얼른 한 숟가락 입으로 가져갔다.
역시 전생에서 먹었던 그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다행인 건 현성이 찾은 이곳 ‘할머니 순두부’ 식당은 제대로 띄운 비지장이 나온다는 것이다.
비지장을 먹으니 갑자기 신춘오 회장이 생각났다.
지난여름에 비지장을 워낙 맛있게 먹던 그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잘 계시겠지…….”
솔직히 신춘오 회장한테 미안한 건 사실이다. 한국대에 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신림동에 비싼 원룸까지 계약을 했는데 그걸 무용지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그 고마움을 모르는 건 절대 아니다. 언젠가는 그 고마움을 전하는 날이 꼭 올 것이다.
“어디 먹어볼까…….”
현성은 그제야 얼큰째복순두부를 먹기 시작했다.
후릅.
“음!”
초당에서 먹는 순두부, 저절로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30분 후.
순두부 가게를 나온 현성은 주차장 옆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안한 마음을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전하는 게 맞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든 때가 있는 것이니 말이다.
디디디딕.
공중전화 카드를 넣고 바로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두 번 울리자 상대방에서 수화기 드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회장님, 접니다.”
-어? 이게 누구야! 김 군이 이 시간에 전화를 다 주고 어쩐 일인가?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
신춘오 회장의 목소리에선 반가움과 걱정하는 마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어쩌면 회귀해서 가장 큰 변화라고 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그룹의 회장이 아닌가 말이다. 전생에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현성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별일 없습니다. 그냥 안부차 전화 드렸습니다. 회장님도 별일 없으시죠?”
-그럼, 별일 없지. 그런데 자네는 지금 어딘가?
“여기, 강릉입니다.”
-강릉? 강릉은 갑자기 왜?
신춘오 회장은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모른 척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성에 관해선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받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목적이 좋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관점이다. 말이 좋아 보호차원이지 어찌 보면 감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현성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회장님, 사실은 제가 말입니다. 그동안…….”
현성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신춘오 회장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오늘 아침까지 김 실장으로부터 보고받은 내용과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추가된 것이 있다면 오늘 강릉에 간 목적이 방을 구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바람은 서울로 올라와서 같은 하늘 아래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자신의 욕심이었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품기에는 현성이라는 그릇 자체가 그 크기를 떠나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그저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본인 당사자로부터 그동안의 얘기를 들으니 다시 예전의 그 감정 탓인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티를 낼 수도 없는 법.
현성의 설명이 끝나자 신춘오 회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 결국은 한국대가 아니라 강상대란 말이지?
“네, 저한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한국대를 포기하고 강상대를 간 이유가 궁금했던 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신춘오 회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럴 만한 이유? 그게 뭔가?
“죄송합니다. 그건 말씀드릴 수가…….”
현성은 말을 하다 말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전생의 기억 때문에 한국대 대신 강상대를 선택했다고 설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수화기 너머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허허, 김 군.
“네, 회장님.”
-자네 지금 날 놀리는 겐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어떻게 감히 회장님을…….”
-지금 자네가 하는 행동이 그렇지 않은가. 기껏 다 얘기해놓고 이제 가장 중요한 그 이유는 설명할 수 없다고 하니 말이야. 안 그런가?
“네? 아닙니다. 저한테 말씀드릴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지 제가 왜 회장님을…….”
쿡쿡.
신춘오 회장은 수화기를 한 손으로 막은 채 고개를 돌린 후 웃고 말았다.
아무리 욕심을 버렸다고 하지만 서운한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현성이 당황하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신춘오 회장은 헛기침을 한 후 다시 수화기를 잡았다.
-그건 그렇고 조금 전에 비지장을 먹으면서 내 생각이 났다고 했는가?
“아, 네. 지난여름에 회장님이 비지장을 워낙 맛있게 드시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허허, 그런가.
신춘오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사람이 자고로 음식을 먹으며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신춘오 회장은 바로 현성을 나긋한 목소리로 불렀다.
-김 군!
“네, 회장님.”
-고맙네!
“네? 아니 무슨 그렇다고…….”
현성은 순간 당혹스러웠다. 비록 ‘고맙다’는 짧은 말 한마디였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신춘오 회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닐세,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서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게 아무나 하는 게 아니거든. 그런 거 보면 우리 김 군도 나를 많이 좋아하긴 하나 봐, 안 그런가?
“네?”
-그렇다고 또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는가?
“아니, 그게 아니고…….”
-허허, 하여간 이 친구 이럴 때 보면 재미있단 말이야. 그건 그렇고 오늘 방을 구한다고?
“네, 이제 가서 바로 방을 구할 겁니다.”
-내 도움은 당연히 필요 없을 테고?
“마음만 받겠습니다.”
-하여간 그 성격도 꼭 좋은 건 아니라는 거 알아두게. 사람은 말이야 자고로……아, 아닐세. 이 늙은이가 또 쓸데없는 말을 할 뻔했구먼. 아무쪼록 학교생활 잘하고…….
신춘오 회장의 말이 길어졌다. 누가 보면 친손주 멀리 유학 보내놓고 당부하는 듯 말이다.
현성은 그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신춘오 회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날 때쯤 나직이 신춘오 회장을 불렀다.
“회장님!”
-어? 그래.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가? 부탁할 거 있으면 뭐든지…….
“죄송합니다!”
-어? 갑자기 그게 무슨…….
“그리고 고맙습니다!”
-자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사실은 이 말씀 드리고 싶어서 전화 드렸던 겁니다. 원룸에 대해선 죄송합니다. 그리고 항상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허허, 이 친구 하여간…….
“그럼 건강하십시오. 이만…….”
-그래, 자네도 건강하고 다음에 내가 강릉 내려가면 그때 보세. 밥 잘 챙겨 먹고.
뚝.
전화를 끊은 신춘오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가득 퍼졌다. 어쩌다 인연이 닿았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인연이란 게 참 묘한 생각이 들었다.
***
트럭에 올라탄 현성은 다시 라디오를 켰다.
-어느새 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어 봐도~ 그래도 슬픈 마음은~~
1988년도에 대히트를 쳤던 최성수의 ‘해후’가 스피커를 통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고 보니 그땐 이 노래도 참 많이도 불렀었다.
스윽.
현성은 볼륨을 키웠다. 그러자 달콤한 최성수의 목소리가 차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다정스런 눈빛으로~ 예전에 그랬듯이~ 마주 보며 사랑하고 파~~~”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노래가 끝으로 향하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학 시절 자신을 친어머니처럼 보살펴줬던 그녀, 바로 한수진. 자취방 주인아주머니다.
최성수의 노래처럼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인연이다.
해후(邂逅).
부르릉!
현성은 바로 가속페달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