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54)
회귀해서 건물주-354화(354/740)
354
‘누구지?’
방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대략 20대 중반이 조금 넘은 듯한 남자였다.
최소한 한수진의 남편은 아니다. 나이를 떠나 그 사람은 이미 10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아들.
‘아들?’
현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들도 말이 안 된다. 아들도 분명히 졸업여행 갔다가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젊은 사람은 도대체…….
현성의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지려 할 때였다.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요.”
“그래, 너무 늦지 말고.”
현성은 순간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고 말았다.
‘엄마라니?’
지금 이 말은 조금 전 방에서 나온 사람은 한수진의 아들 박민석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한수진이 죽었다고 얘기했던 그 아들, 바로 박민석.
‘뭐지? 살아 있잖아? 어떻게 된 거야?’
박민석이 대문을 나가자 현성은 한수진을 보며 천천히 물었다.
“혹시…… 아드님?”
“네, 그런데 얼굴 표정이 왜 그래요?”
틀림없이 박민석이 맞다.
현성은 전생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때가 졸업시험 일주일 전이었다.
한수진이 현성을 초대했었다. 보통은 저녁을 먹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날은 아침이었다. 아침을 다 먹은 후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아들 박민석의 생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아픈 사연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제주도로 봄에 졸업여행을 갔다가 그만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끝에 현성이 죽은 아들과 눈매가 많이 닮아서 그동안 유독 정이 많이 갔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3년 동안이나 한수진이 자신한테 친어머니처럼 잘해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현성은 한수진을 보며 다시 물었다
“혹시 아드님이 지금 몇 학년입니까?”
“올해 4학년인데, 그런데 그건 왜요?”
“아, 아닙니다.”
현성은 그제야 지금 이 상황이 얼핏 이해가 갔다.
4학년이라면 올해 졸업반이라는 얘기다.
전생에서 한수진이 말한 대로라면 올해 졸업여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한다는 얘기다. 그것도 봄에.
원래는 가을에 예정이었으나 올림픽 때문에 봄으로 날짜가 변경됐었다고 했다.
‘아! 올림픽.’
그러고 보니 올 9월에 제24회 서울올림픽이 열린다.
현성은 그제야 올림픽 생각이 났다.
조금 전 박민석을 봤을 때 현성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현성의 머릿속에 박민석은 이미 죽은 사람으로 인식돼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에서는 한수진이 아들 죽음에 대해 슬퍼하던 모습만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박민석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현성으로선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음…… 일이 또 이렇게 전개되는 건가?’
현성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이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그때 한수진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혹시 우리 민석이를 알아요?”
“아, 아니요. 그럴 리가 있나요? 제가 어떻게…….”
“그런데 그 표정은 뭐예요? 꼭 못 볼 사람을 본 것처럼.”
“그, 그게…….”
현성은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물론, 한수진 입장에서야 현성의 모습이 의아스러운 면도 있겠지만, 그건 단지 잠시뿐이다.
지금 중요한 건 박민석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그의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수진은 전생에서 아들의 죽음 때문에 평생을 슬퍼했던 그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가 된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수진에게 물었다.
“혹시 아드님이 올봄에 졸업여행 간다고 하지 않던가요?”
“봄이요? 봄은 아니고 가을에 간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요?”
“뭐 좀 확인할 게 있어서요.”
“확인이요?”
한수진은 현성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얼핏 생각해도 지금 현성의 행동이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엔 아들이 몇 학년인지 묻더니 이번엔 또 졸업여행을 물었다.
왜?
무엇 때문에?
이 학생이 여기에 온 목적은 자취방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아들에 대해서 묻는단 말인가.
한편, 현성은 다시 전생의 기억 속으로 파고들었다.
전생에서 한수진은 분명히 봄에 졸업여행을 갔다고 했었다. 원래는 가을에 예정이었으나 올림픽 때문에 봄으로 일정이 변경됐다고 했었다. 올림픽이 졸업여행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어쨌든 봄에 졸업여행을 갔었고, 하필 사고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일정이 바뀌었다는 얘기는 없다고 한다. 하긴, 다음 주가 개강이니 아직 그런 얘기가 나오긴 시기적으로 맞지 않을 것이다.
결국, 개강을 하고 나면 일정이 바뀐다는 얘기다.
봄이라고 했으니까 대충 3, 4, 5월 중 며칠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답은 나왔다. 한수진의 아들 박민석이 여행을 못 가도록 막는 것. 아니, 그보다 졸업여행 일정 자체를 바꾼다면 그 사고 자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할까?’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저었다. 절대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설득할 방법이다. 무슨 수로 박민석을 설득시킬 것인지…….
절레절레.
현성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지금으로선 어떤 방법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후!”
현성은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시간은 있다는 것이고, 박민석이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를 오늘 만났다는 것이다.
그래! 그러면 일단은 된 거다.
나중 일은 천천히 생각하자.
오늘은 여기까지!
현성은 한수진을 보며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다행?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아, 네. 그런 게 있습니다. 어쨌든 하늘이 도왔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네? 그게 무슨…….”
한수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현성을 바라봤다.
하지만 현성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할 마음이 없는 듯 다른 말을 끄집어냈다.
“방 좀 구경할 수 있을까요?”
“네? 아, 방이요. 이쪽으로…….”
한수진은 궁금한 게 있었지만 일단 궁금증은 뒤로하고 자취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한수진의 안내로 자취방으로 들어온 현성.
“이게 몇 년 만이야?”
30년을 넘게 거꾸로 거슬러 다시 이 자리에 서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마치 타임캡슐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회귀한 지 2년이 되어가는 데도 아직도 완전히 적응이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꽤 넓네.”
현성은 일단 방을 둘러봤다.
살림살이라곤 하나도 없이 깨끗한 방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방이 더 커 보였다.
“결국…….”
어찌 됐건 돌고 돌아 이 방까지 왔다. 전생에선 이 방이 아닌 바로 옆방에서 3년을 보냈었다.
그때는 방값 때문에라도 이 방은 언감생심이었다. 한 푼이 아쉬운 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 우선은 시장부터 가자.”
현성은 바로 방을 나왔다. 자취에 필요한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당장 가장 급한 건 이불과 먹을 것들이었다. 그 밖에도 준비할 게 많았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온 현성은 안채로 향했다.
“아주머니!”
큰 소리로 한수진을 불렀다. 잠깐이지만 호칭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전생에서는 한수진을 ‘어머니’라고 불렀었다. 한수진이 그렇게 부르길 원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부른다면 오히려 한수진이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민 끝에 그냥 ‘아주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게 또 현성 혼자만의 생각이었다는 걸 금방 알게 됐다.
“지금 아주머니라도 했어요?”
한수진이 방에서 나오면서 바로 물었다.
그러자 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네.”
“아까 두유를 주면서 어머니라고 부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난 분명히 그렇게 들은 거 같은데요?”
“네? 아, 네. 물론 그러긴 했는데…….”
“그런데요?”
“혹시 부담스러워하실까 봐 저는 일부러…….”
“내가요? 왜요? 난 오히려 속으로 좋아했었는데.”
한수진은 웃으며 말했다.
현성은 그제야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았다. 혹시라도 초면에 ‘어머니’라고 부르면 한수진이 부담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그때 한수진이 다시 말했다.
“왜 그랬는지 알아요?”
“네? 뭐를 말입니까?”
“내가 왜 학생이 나한테 어머니라고 부른다고 했을 때 좋아했는지 아냐고요?”
“글쎄요, 그건…….”
현성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사실 전생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한수진의 성격은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친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친근한 성격이지만 그전까지는 항상 조심스럽고 말도 편하게 못 하던 한수진이었다.
사실은 그래서 조금 전에도 일부러 어머니라고 안 부르고 아주머니라고 불렀던 이유도 한수진의 성격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때 한수진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나왔다.
“수석이잖아요!”
“네?”
“과 수석도 아니고 강상대 전체 수석! 그런 학생이 나한테 어머니라고 부르겠다는데 그걸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안 그래요? 호호…….”
한수진은 약간 부끄럽다는 듯 말끝에 웃고 말았다.
웃음이 나오는 건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한수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도 기분이 묘하게 좋다는 것이었다.
현성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그런 깊은 뜻이 있었던 겁니까?”
“깊은 뜻이요? 호호…… 맞아요. 사실 엄청 영광이잖아요. 내가 20년을 넘게 자취생을 받았지만, 우리 집에 전체 수석은 처음이니까요.”
“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제가 더 고맙습니다. 그럼 앞으로 어머니라고 부르겠습니다.”
“호호, 그래요. 사실 내가 이런 성격이 아닌데…….”
한수진은 부끄럽다는 듯 끝말을 흐렸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네, 이 시간 이후로는 어머니도 저한테 편하게 말씀을 놓는 겁니다.”
“아, 말…….”
한수진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성이 빙긋 웃으며 일부러 한수진을 불렀다.
“어머니!”
“네? 아, 아니…… 어, 그래. 왜?”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시간? 지금은 한가한데, 그런데 왜?”
“저랑 같이 시장가요. 아무래도 준비할 게 너무 많은데 혼자 가려니 잘 몰라서요. 저 좀 도와주세요.”
“어? 그럴까 그럼…….”
한수진은 알았다면 방으로 들어가 두꺼운 옷을 입고 나왔다.
사실은 전생에서도 몇 번 한수진과 시장에 같이 간 적이 있었다. 그땐 반대로 현성이 부탁했던 것이 아니라 한수진이 부탁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무거운 것을 사기 위해 가는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아들이 잘못된 후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현성 자신을 데리고 갔던 것이었다.
두 사람이 대문을 막 나섰을 때였다.
한수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은 이유가 그게 다는 아니야?”
“이유요? 무슨 이유요?”
“아까 나한테 어머니라고 부른다고 했을 때 내가 좋아했던 이유 말이야.”
“네? 수석 말고 다른 이유가 또 있다는 말씀이세요?”
현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한수진을 바라봤다.
그러자 한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말을 이었다.
“응, 많이 닮았거든.”
“닮아요?”
“응, 그래. 우리 민석이 말이야. 우리 민석이하고 눈매가 너무 많이 닮았어. 사실은 처음 현성이를 봤을 때 그래서 깜짝 놀랐었어.”
현성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 그대로 떠올랐다. 그때도 한수진은 지금과 같은 말을 했었다.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그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지금은 같은 말을 하면서도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현성은 그런 한수진을 보며 말했다.
“어머닌 웃는 모습이 참 예뻐요.”
“어? 무슨 그런 말을, 사람 부끄럽게…….”
“아닙니다. 진짭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웃는 날이 많으실 겁니다.”
“호호……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 근데 그거 알아?”
한수진은 현성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현성도 바로 물었다.
“뭐가요?”
“왠지 낯설지가 않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 같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어머니도 그러세요?”
현성은 일부러 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한수진이 반색을 하며 바로 말했다.
“어머! 현성이도 그래?”
“네! 저도 왠지 오래전부터 어머니를 꼭 알고 지낸 것처럼 친근감이 가요. 이게 무슨 조화지요?”
“그러니까…….”
한수진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성은 그런 한수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바로 트럭을 향해 리모컨을 꾹 눌렀다.
삑!
홱.
한수진의 시선이 바로 현성한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