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56)
회귀해서 건물주-356화(356/740)
356
다음 날.
현성이 향한 곳은 강상대 학장실이었다. 이유는 자신과 학장과의 면담이 잡혀있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전체수석자와 학장과의 면담이었다.
[학장실]학장실 앞에 선 현성은 잠시 발길을 멈췄다. 전생에서는 이곳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학생으로서는 개인적으로 학장을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솔직히 학장 얼굴도 잘 몰랐었다.
그런데 이번엔 대학 생활 시작 자체를 학장과의 면담으로 시작을 하니 그 기분 또한 묘한 건 사실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상대는 종합대학이 아니라 단과대학이었다.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려면 앞으로 3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 보니 지금은 총장이 아니라 학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가자 여직원이 현성을 맞았다.
“어서 오세요. 김현성 학생이죠?”
“네, 그렇습니다.”
“학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시죠.”
현성은 여직원의 안내를 받아 학장실로 들어갔다.
현성이 들어가자 앉아있던 이학성 학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현성을 반겼다.
“어서 오게! 현성 군.”
“안녕하십니까? 학장님, 김현성입니다.”
“그래, 자네 얼굴이야 이미 사진으로 봐서 알고 있네. 자, 이쪽으로 앉게.”
자리를 잡고 앉자 여직원이 이학성을 보며 물었다.
“학장님, 차는 어떻게 준비할까요?”
“어? 잠깐만. 현성 군, 차는 뭐로 할까? 주스도 있고 커피도 괜찮고, 자네가 원하는 걸로 주문하게.”
“주스로 하겠습니다.”
“그래, 알았네. 여기 주스 두 잔 부탁해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여직원은 바로 주스 두 잔을 가져왔고, 여직원이 나가자 이학성 학장은 현성을 보며 바로 입을 열었다.
“현성 군, 어서 들게.”
“네, 학장님.”
현성이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자 이학성 학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고맙네!”
“네?”
현성은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웠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이학성 학장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현성이 놀란 건 단순히 이학성 학장의 말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이학성 학장의 말에서 느껴지는 마음이었다.
진중함!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고맙네’라는 말 한마디였지만, 오히려 그 말 한마디에서 느껴지는 묵직함과 진지함에 현성은 놀랐던 것이다.
솔직히 학장실에 들어오면서도 별 기대는 없었다. 어차피 관례상 거치는 형식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저 잠시 들렀다가 시간만 때우다 가면 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이학성 학장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학성 학장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우리 학교에 와줘서 진심으로 고맙네. 그리고 영광일세.”
진심엔 진심이 답이다.
현성은 말에 마음을 담았다.
“학장님! 이렇게 반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닐세. 우리가 고맙지. 한국대도 포기하고 우리 학교를 선택했는데, 그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아, 그리고 혹시라도 기분 나빠하지는 말게. 자네 점수가 너무 높아서 혹시나 해서 모교에 알아봤었네. 그랬더니 한국대에도 합격을 했더군. 그래서 더 고맙다는 거네.”
이학성 학장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주스를 한 모금 마신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만 물어도 되겠는가?”
“네? 아, 네. 말씀하십시오.”
이학성 학장의 조심스러운 모습에 잠깐 의아해했지만, 왜 그런 행동을 보이는지 어느 정도 예상이 됐기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에서 예상했던 질문이 바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말이야. 혹시 한국대를 포기하고 우리 학교에 온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특별한 이유요?”
“그래, 특별한 이유.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될 거 같아서 말이야. 미안하지만 그 특별한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겠는가?”
“그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직접 그 대답을 요구하니 난감한 건 현성이었다.
물론, 이학성 학장이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를 하고도 남는다. 한국대에 합격을 하고도 등록을 포기하고 강상대로 왔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이 강상대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전생의 인연 때문이다.
오정수.
같은 88학번인 오정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이 상황에서 전생의 인연 때문에 강상대에 왔다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대답을 안 할 수도 없는 입장이고.
현성의 고민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홀짝.
현성은 잠깐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 앞에 놓인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 현성의 침묵이 길어지자 이학성 학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말하기 곤란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그게 좀…….”
여전히 곤란한 건 현성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대답을 회피할 수는 없었다.
물론, 전생의 인연 때문에 강상대를 선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강상대에 대한 애착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강상대의 가장 큰 장점은 입지 조건이다.
차를 타고 10분만 나가면 바로 푸른 바다가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조건을 갖춘 대학이 몇 개나 되겠는가.
사실, 전생에서도 강상대를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건 바다가 가깝다는 것이었다. 특히 바다를 좋아하는 자신으로서는 더욱 그랬다. 어쩌다 비오는 날이면 친구들과 바닷가 주점에 들러 김치전에 막걸리 한 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자 이학성 학장이 바로 물었다.
“그 미소는 뭔가?”
“혹시 막걸리 좋아하십니까?”
“막걸리? 갑자기 막걸리는 왜?”
“혹시 비 오는 날 바다를 보면서 김치전에 막걸리를 드신 적 있으십니까?”
“강릉에 살면서 그 정도 호사는 기본 아닌가?”
“그게 제 이유입니다.”
현성은 말끝에 빙긋 웃었다. 어쩌면 대학 시절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다른 곳에선 절대 경험할 수 없었던 낭만과 추억.
이학성 학장이 미처 현성의 말귀를 못 알아듣고 되물었다.
“이유? 무슨 이유?”
“제가 강상대에 온 특별한 이유 말입니다.”
“뭐라고?”
이학성 학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한국대를 포기하고 강상대에 온 이유가 다른 것도 아니고 비 오는 날 바닷가에서 막걸리를 마시기 위한 것이라니 말이다.
이학성 학장은 다시 물었다.
“그게 정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대에선 그런 낭만을 찾을 수가 없을 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여기 강상대에선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거야 그렇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이학성 학장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때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이런 학교가 몇 개나 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물론 그렇기야 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바다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 비 오는 날도, 그러니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국은 비 오는 날 바다를 보면서 막걸리를 먹기 위해 강상대를 선택했다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허허, 참…….”
이학성 학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현성을 바라봤다. 반면, 현성은 속으로 가볍게 웃었다. 전생의 인연 때문에 이곳으로 왔다고 할 수는 없어 다른 이유를 얘기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전혀 거짓말은 아니었다.
잠시 후.
이학성 학장이 현성을 보며 말했다.
“좀 황당하긴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선택을 한 자네가 부럽네.”
“하하, 그렇습니까?”
“왜 그렇지 않겠는가. 요즘 같은 세상에 어느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말이야. 다들 한국대에 못 가서 안달인데 바다가 좋다고 이곳으로 왔으니 말일세. 그런데 말이야……, 자네 얘기를 듣고 나니까 한 가지 의문이 드는데, 그럴 거면 무엇 때문에 처음부터 한국대에 원서를 넣었는지 궁금해진단 말이야. 혹시 그 이유도 설명해줄 수 있겠는가?”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말을 이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두 가지?”
“네, 그 첫째가 교장 선생님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이셨거든요.”
“마지막?”
“네, 정년이요. 올봄에 정년퇴직하셨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현성은 교장 박상현의 얘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성의 설명이 이어지자 이학성 학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느 순간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현성의 설명이 끝나자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교장 선생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준 셈이네.”
“소원까지는 아니고…….”
“아니지, 교장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값진 게 어디 있겠는가. 교장 선생님이 마지막에 큰 선물을 받으셨구먼. 그건 그렇고 두 번째 이유는?”
“후배들입니다.”
“후배들?”
이학성 학장은 현성을 빤히 쳐다봤다. 무슨 의미인지 설명을 하라는 얘기다.
현성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희망을 주고 싶었으니까요.”
“희망?”
“네, 아무리 시골 학교이지만 하면 된다는 희망 말입니다.”
“옳거니!”
탁!
이학성 학장은 자신의 무릎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리곤 웃으며 바로 말을 이었다.
“하하, 결국은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구먼?”
“세 마리요?”
“그래! 일단 한국대에 합격을 했으니 교장 선생님한테는 마지막 선물을 한 셈이고 후배들한테도 희망을 줬지 않은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다가 보이는 캠퍼스에도 이렇게 전체 수석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고 말이야. 그러니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얘길세.”
“아, 네……. 그게 또 그렇게 되는군요.”
현성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학성 학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기분 좋구먼.”
“네?”
“솔직히 300점을 넘었기에 이렇게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었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만나 보니 낭만을 아는 친구라 기분이 좋다는 얘길세.”
“하하, 낭만이요?”
“그래, 비 오는 날 바닷가에서 김치전에 막걸리 한잔 먹을 정도면 된 거 아닌가.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나와 약속 하나 할 수 있겠는가?”
“약속이요?”
“그래, 다른 게 아니고 비 오는 날 나와 막걸리 한잔하세.”
“네?”
현성은 갑작스러운 이학성 학장의 말에 깜짝 놀랐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한 대학의 대표인 학장이란 사람이 일개 학생한테 막걸리를 먹자고 하니 말이다. 전생에서는 얼굴도 제대로 모르던 사람이다. 그런데 막걸리라니…….
이학성 학장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날짜는 정하지 않겠네. 대신 비 오는 일요일이네. 평일엔 수업이 있으니까 안 될 테고 말이야.”
“정해진 날짜가 아니라 비 오는 일요일 말입니까?”
“그래, 혹시 아는지 모르겠지만, 경포대에 유리집이라고 있네. 거기서 만나세.”
물론 현성도 잘 알고 있는 곳이다. 카페 겸 주점이다. 나중에는 그곳이 횟집으로 변하지만, 이때만 해도 약속 장소로 유명했던 곳이다.
“시간은 언제로 하시겠습니까?”
“정하지 않겠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비가 언제 올지 모르니 정할 필요가 없겠지. 아침, 점심, 저녁 중의 하나가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밤이 될 수도 있겠지. 그냥 비 오는 시간에 만나는 걸로 하세. 어떤가?”
“그러니까 날짜도 안 정하고 시간도 안 정하고 그냥 비 오는 일요일에 만나자는 말씀인 거죠?”
“그래, 재밌을 거 같지 않은가?”
이학성 학장의 얼굴에 왠지 장난기가 가득해 보였다.
현성은 그런 이학성 학장을 보며 물었다.
“혹시 누군가 사정이 생겨서 못 나가게 되면 어떡합니까?”
“그만이지. 그 또한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하늘의 뜻이요?”
“그래, 모든 건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니까 말이야. 그렇다고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네. 그리고 비 오는 일요일이 하루 이틀도 아닐 테고 말이야.”
“그 말씀은…….”
“부담 갖지 말고 그저 비 오는 일요일에 술 생각나거든 거기서 보자는 얘길세. 한국대까지 포기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그 정도 술친구는 돼줘야 하지 않겠는가? 비 오는 날 막걸리 한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구먼.”
이학성 학장은 뭐가 좋은지 얼굴에 미소가 만연하게 퍼졌다.
그런 이학성 학장을 보며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죠.”
막걸리 한잔의 약속으로 두 사람의 인연이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