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58)
회귀해서 건물주-358화(358/740)
358
드디어 개강일.
현성은 학교 정문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어느 한 곳으로 향했다.
“여전히 높네.”
정문 중앙에 세워진 높은 탑을 바라보며 현성이 중얼거렸다. 대충 봐도 10m는 족히 넘을 조형물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었다.
전생과 마찬가지로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국 대학 중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멋진 조형물이었다.
저벅!
현성은 힘차게 정문을 통과했다.
402호.
강의실에 도착한 현성은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둘러보니 다들 아는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아는 체를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야 당연히 아는 얼굴들이지만 다른 친구들의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털썩.
그때 누군가 현성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현성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피식.
현성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묘한 웃음이 번졌다. 전생의 기억 때문인지 반가우면서도 애잔한 감정이 교차했다.
바로 그 녀석이다.
오정수.
현성이 한국대를 포기하고 강상대로 올 수밖에 없게 한 장본인. 1학년 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녀석이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친했다는 이유로 한국대를 포기한 건 아니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고.
그것도 대형사고 때문이다.
오래된 전생의 기억이지만 정확히 기억이 난다.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던 날이었다.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종강이다. 고등학교처럼 종업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1학년 과정을 마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 보통 종강 파티를 하게 된다. 그거까지는 일반적으로 있는 일이니까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종강 파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고를 당한 것이다.
접촉사고. 승용차와 오토바이의 접촉 사고였다.
오정수는 집이 강릉 사천인 관계로 통학을 오토바이로 했다. 종강 파티가 끝날 때까지도 오정수가 오토바이를 타고 종강 파티에 참석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종강 파티인 만큼 음주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정수는 오토바이를 타고 종강 파티에 참석했던 것이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서야 오정수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어찌 손을 써볼 기회조차 없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종강 파티에 참석했다는 걸 알았더라면 강제로라도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가는 걸 말렸을 텐데 그럴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 사고로 오정수는 왼쪽 다리를 잃었다.
보통 오토바이 사고가 나게 되면 둘 중의 하나라고 한다. 사망 아니면 한쪽 장애. 정면충돌이면 사망, 측면충돌이면 한쪽 다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위험한 게 오토바이 사고다.
오정수의 경우는 승용차의 범퍼 왼쪽 부분과 오토바이가 충돌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왼쪽 무릎 바로 아랫부분이 승용차와 오토바이 사이에 찍힌 것이다.
일주일 동안은 어떻게든 왼쪽 다리를 살려보려고 했지만, 문제는 끊어진 혈관이었다. 조각난 뼈는 철심을 박아 살릴 수 있다고 하지만 끊어진 혈관은 살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끊어진 혈관을 살릴 수 없었던 이유는 환자 이송에 상당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처음 사고가 나자 강릉의료원으로 실려 갔지만 역부족이었다. 다시 원주 기독교병원으로 이송을 했지만 거기서도 수술은 불가능했다. 결국 마지막 선택한 곳이 한국대병원이었다.
결국은 밤새도록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냈으니 끊어진 혈관을 이을 시간이 지체된 것이었다.
결국, 일주일이 지나고 팔 일째가 되던 날 절단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피가 제대로 순환이 안 되자 다리 끝부분부터 괴사가 시작된 것이다.
오정수는 그렇게 그날의 실수로 평생을 의족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오정수의 실수이긴 하지만 그걸 알고 있는 현성으로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현성이 한국대를 포기하고 강상대를 선택한 이유다.
현성은 오정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안녕, 난 김현성이다.”
반가운 마음에 현성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사고 전에 오정수를 다시 만났으니 당연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또 어디까지나 현성의 입장인 거고, 오정수로서는 잠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정수도 손을 내밀었다.
“어? 그래. 난 오정수.”
“반갑다, 오정수. 앞으로 잘 지내보자.”
“어? 어, 그래…….”
조금은 당황스러웠는지 오정수는 대답을 하면서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때였다.
드르륵.
앞문이 열리면서 조교 민수연이 들어왔다. 83학번 과 선배였다.
역시나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키는 좀 작은 편이었지만 짧은 커트 머리에 당찬 모습은 여전했다.
그때 당시 남학생들로부터 조교 민수연의 인기는 최고였다. 그 이유 중 첫째가 수려한 미모였다. 과 전체를 통틀어도 그녀를 따라갈 여학생은 없었다.
그다음은 주량이다. 그 작은 몸에 술이 어디로 끝없이 들어가는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그녀와 대작을 해서 이긴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쾌활한 성격이다. 그녀가 있는 곳은 항상 웃음과 활기가 넘쳤다. 그렇다 보니 그녀의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 모두 주목!”
민수연은 우선 임시 과대표부터 뽑기 시작했다.
스윽.
현성은 뒤쪽에 앉은 김명우를 바라봤다. 예전에 과대표였던 녀석이다.
“과대표 하고 싶은 사람?”
민수연이 묻자 강의실은 조용해졌다. 다들 고개를 숙이자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민수연은 강의실을 한눈에 살피더니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거기, 이름이 뭐지?”
민수연은 김명우를 가리키며 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민수연이 김명우를 택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것은 나이가 제일 많아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명우의 이마가 남들보다 워낙 넓다는 이유로 말이다.
풉.
현성은 순간적으로 입을 손으로 가렸다. 왜냐하면, 나중에 자신이 과대표가 된 이유를 알고서는 얼마나 억울함을 토로했는지 생각났기 때문이다.
결국, 김명우는 임시 과대표를 맡았다. 물론, 1학년 끝날 때까지 과대표 자리는 변동이 없었다.
민수연은 간단한 자기소개와 수강 신청 방법을 설명한 후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김명우가 교단 앞으로 나갔다.
“수강 신청 끝내고 오늘 저녁에 개강 파티 있는 거 알지?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다 참석하도록!”
드르륵.
김명우의 말이 끝나자 강의실 앞문이 열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들어왔다. 바로 2학년, 3학년 과대표였다.
현성은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 당시에야 하늘 같은 선배들이라 꽤나 근엄해 보였는데, 이제 다시 보니 파릇파릇한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두 사람의 자기소개와 인사말이 끝나자 현성은 누구보다도 세게 박수를 쳤다. 반가운 마음도 있었고, 누구보다도 과를 위해 열심히 활동했던 선배들이기 때문이었다.
수강 신청은 간단히 끝났다.
대부분이 교양과목이고 한두 과목을 제외하면 거의 공통으로 듣는 수업이었기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끝날 수 있었다.
강의실을 나온 과 친구들은 인문사회학관 앞에 모였다.
스윽.
현성은 김명우를 슬쩍 바라봤다.
전생의 기억대로라면 과대표 김명우가 나설 차례다.
김명우는 다 같이 막걸리를 먹자고 제안할 것이다. 대낮부터 막걸리를 먹는다는 게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그 당시엔 그게 또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어쩌면 그게 캠퍼스의 낭만처럼 느껴졌던 게 사실일지도 모른다.
잔디밭에는 이미 다른 과로 보이는 몇 팀이 막걸리 파티를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성의 기억대로 김명우가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저기…….”
“잠깐만!”
현성은 김명우의 말을 급히 끊었다.
그러자 김명우가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나?”
“그래, 잠깐 나하고 얘기 좀 하자.”
현성은 김명우를 데리고 친구들과 약간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바로 말하기 시작했다.
“혹시 막걸리 파티?”
“어? 어떻게 알았어?”
역시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아무리 전생의 오래된 기억이었지만 개강 첫날 일어났던 일이라 세세하게 기억이 났다.
그날의 악몽이 바로 김명우의 입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현성은 잠깐 숨을 고른 다음 말을 이었다.
“막걸리 말고 그냥 우리 다 같이 점심이나 먹자. 어때?”
“무슨 소리야? 첫날인데 막걸리 먹으면서 서로 인사도 하고 그러는 거지!”
김명우의 뜻은 확고했다.
듣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의 이 행동으로 인해 대학 생활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다는 것이다.
몰랐으면 모를까,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는데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현성이 이 자리를 말리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과대표 김명우를 비롯해 몇몇 친구들 때문이었다. 술을 워낙 좋아하던 녀석들이었다.
문제는 사람이 술을 먹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찌 실수가 없겠는가.
낮부터 시작한 술자리는 저녁까지 이어졌고 끝내는 개강 파티까지 망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날의 실수로 1년 내내 경영학과 88학번의 이미지가 도매금으로 넘어가 과 교수들한테 무시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다들 후회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현성은 김명우를 보며 다시 말했다.
“그럼 점심부터 먹고 잔디밭에 모이는 건 어때?”
“점심부터? 배부르면 술맛 떨어지는데…….”
“술맛?”
‘어린 새끼가 술맛?’
김명우의 술맛 타령에 현성은 욕부터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현성은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 다수결로 하자.”
“다수결?”
“그래, 여학생들도 생각해야지. 물어보고 결정하자고, 어때?”
무작정 밀어붙일 수도 없는 상황이라 현성은 일단 다수결로 한발 양보했다.
그러자 김명우도 어쩔 수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다수결이라…… 민주주의라 이거지? 오케이, 알았어. 그건 그렇고, 너 이름이 뭐냐?”
“나? 김현성.”
“오! 네가 김현성이냐?”
김명우는 현성의 이름을 듣자마자 놀랍다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과 친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현성한테로 쏠렸다.
황당한 건 현성이었다.
“야, 김명우. 그 반응은 뭐야?”
“몰라서 물어?”
“당연히 모르니까 묻지. 왜 그러는데?”
현성은 김명우가 왜 이토록 놀라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김명우가 바로 말했다.
“네가 그 유명한 김현성이라 이거지. 강상대 전체수석을 한 김현성. 한국대에 가고도 남을 성적인데 거기를 포기하고 우리 강상대로 온 김현성!”
“아, 난 또 뭐라고…….”
현성은 그제야 김명우가 조금 전에 자신의 이름을 듣고 그런 놀라운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과 친구들이 어느새 현성을 중심으로 삥 둘러 에워싸기 시작했다. 조금 전 김명우의 말을 듣고 보인 행동이었다.
갑작스러운 친구들의 반응에 현성은 괜히 쑥스러울 뿐이었다.
그때 김명우가 현성을 보며 물었다.
“야, 김현성. 오늘 점심은 전체수석 기념으로 네가 쏘는 게 어때?”
“점심? 내가? 이렇게 갑자기?”
“왜? 안 되냐?”
“안 될 거야 없는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말이야.”
현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명우는 과 친구들을 향해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곤 무슨 중대 발표라도 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애들아! 여기 우리 과, 아니, 우리 강상대 전체수석인 김현성이 오늘 점심을 쏜단다. 어때?”
“좋지!”
“와우!”
김명우의 말이 끝나자 과 친구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졸지에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지만 현성의 기분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만한 여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과 친구들을 위해서 그 정도는 얼마든지 지출할 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회귀해서 얻은 경제적인 풍요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 냈을 상황이다.
휙!
현성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다들 현성한테로 시선이 집중됐다.
“어쩌다 보니 분위기가 이렇게 됐는데, 이왕 먹는 거 교내식당 말고 만리장성으로 가자.”
만리장성은 체육관 뒤쪽에 자리한 중국집이었다. 나무판자로 지어진 가건물 형태의 식당이었는데, 그 당시엔 꽤나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물론, 교내식당보다는 음식값이 비쌌기에 한 푼이라도 아쉬웠던 전생에서는 현성 자신도 몇 번 가보지 못했던 곳이다.
“만리장성? 거기가 어딘데?”
“체육관 뒤쪽에 있는 중국집이야. 그리로 가자고.”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김명우가 현성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그러자 현성이 웃으며 말했다.
“모자라면 네가 책임져라.”
“내가? 미쳤냐? 너야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 면제지만, 나 같이 등록금 꼬박꼬박 다 내는 사람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이건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알았다, 알았어. 그저 농담으로 한 말인데, 죽자고 덤비는구나. 그냥 많이 먹고 1년 동안 우리 과나 잘 부탁한다.”
“1년? 무슨 소리야? 난 임시로 하는 건데?”
어차피 1년은 김명우가 과대표다. 체질에도 맞고 무난한 성격에 무사히 1년을 마치게 된다. 문제가 있었다면 바로 오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시작을 바로 잡았으니 김명우의 1년, 나아가서는 경영학과 88학번 전체가 도매금으로 과 교수들한테 무시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현성의 말이 이어졌다.
“무슨 소리야? 한 번 과대표는 영원한 과대표지. 넌 잘 해낼 거야.”
“그런 게 어디 있어?”
“됐고, 빨리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두 사람은 친구들을 따라 중국집으로 향했다.
이유야 어쨌거나 전생과 같이 대낮부터 막걸리 먹고 개가 되는 김명우의 실수는 막을 수 있었다. 그럼 일단 된 거다. 이제부턴 또 다른 일들이 벌어지겠지만 그건 그때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현성이 미처 모르는 게 있었다.
개는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