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59)
회귀해서 건물주-359화(359/740)
359
그날 저녁.
강릉 시내 한 식당. 식당 간판은 ‘풍년식당’이었다. 경영과 선배들부터 대대로 행사 때마다 찾는 식당이었다.
민수연 조교는 물론이고 지도교수 손민호까지도 모두 참석한 자리였다.
현성은 일부러 안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전생에선 어쩌다 보니 지도교수 손민호 옆에 앉는 바람에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 번은 멋모르고 당했지만 두 번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자, 지금부터 강상대 경영학과 88학번…….”
과대표 김명우의 사회로 개강 파티가 시작됐다.
전생에서는 이 시간에 이미 김명우는 취한 상태였었다. 낮부터 마셨으니 어찌 멀쩡할 수가 있었겠는가. 말은 꼬이고 몸은 흔들리고 가관도 아니었다.
결국, 지도교수 손민호는 10분도 안 돼 인상을 쓰며 자리를 뜨고 말았었다. 물론, 그 후유증은 두고두고 모두가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그렇다 보니 1년 동안 김명우의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그해 마지막 종강 파티에서 그는 결국 과 친구들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지도교수님 인사말이…….”
이어 김명우의 소개로 지도교수 손민호의 인사말이 시작되었다.
확실히 전생과는 비교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인사말이 길어졌다. 전생에서는 간단하게 끝냈지만, 오늘은 벌써 5분이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지겹다기보다는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10분이 지나서야 그의 인사말은 끝이 났고 곧이어 바로 민수연 조교의 인사말이 시작되었다. 민수연의 인사말은 전생과 같이 ‘다 같이 하나 되는 경영학과가 되자’라는 말로 깔끔하게 끝을 맺었다.
그러자 바로 김명우의 자기소개가 이루어졌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각자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끝으로 현성이 막 자기소개를 끝냈을 때였다.
지도교수 손민호가 갑자기 손짓을 하며 물었다.
“자네가 김현성인가?”
“네.”
지도교수 손민호의 관심에 모두의 시선이 현성한테로 쏠렸다.
사실 이런 분위기는 현성도 원하지 않았다. 쑥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불편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듯, 이 또한 현성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바로 과대표 김명우 때문이었다.
김명우가 갑자기 자리에 앉은 현성을 호명한 것이다.
“김현성 씨, 잠깐만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존댓말까지 써가며 격식을 차리는 김명우였다.
현성은 자리가 자리인 만큼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현성이 일어나자 김명우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여러분도 다들 아시다시피…….”
김명우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런저런 얘기로 말은 길어졌지만, 말의 핵심은 현성이 강상대 전체 수석인 만큼, 과의 자랑이라는 것이다. 시기나 질투가 아닌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오늘 점심도 잘 먹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다 같이 박수!”
짝짝짝…….
김명우가 마지막으로 박수를 요구하자 기다렸다는 듯 과 친구들은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난감한 건 이제 현성의 몫이었다.
전생과 너무나 다른 분위기에 현성은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침묵으로 대변할 수는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분위기였다.
현성은 우선 고개부터 숙였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황당하고 부끄러워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현성은 간단하게 몇 마디를 더 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자리에 앉았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노. 래. 해.”
처음엔 한 사람의 목소리였는데 금세 두세 사람으로 늘어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조교 민수연에 이어 지도교수인 손민호까지도 재미있다는 듯 장단에 맞춰 손뼉을 치고 있었다.
허!
그 모습을 본 현성은 순간적으로 황당할 뿐이었다.
전생이었다면 신민호는 화가 나서 이미 이 자리에 없었을 사람이다. 그런 그가 지금 현성 자신의 노래를 듣겠다고 박수를 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어떡하지?’
현성은 일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현성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벌떡!
현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차피 이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본인 자신이다. 그렇다면 이 분위기를 살리는 것 또한 자신의 몫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짝짝짝짝짝짝짝~~~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수 소리가 넓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현성을 제외한 학생 39명, 그리고 민수연과 손민호까지, 41명의 박수 소리는 상상을 초월하고도 남았다.
번쩍!
현성은 먼저 앞에 있는 막걸릿잔을 높이 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갈 때까지 가볼 참이었다.
“괜찮다면 다 같이 건배 제의를 하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현성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들 앞에 놓인 막걸릿잔을 들기 시작했다.
그리곤 모든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바로 현성의 입이었다. 건배사를 외치라는 얘기다. 하지만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여기서 자신이 나서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현성이었다.
스윽.
현성은 고개를 돌려 한 사람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을 바라보던 모든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한 곳으로 향했다.
휙!
모든 시선의 끝에 앉아있던 손민호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현성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교수님! 멋진 건배사 선창 부탁드립니다!”
“내가 말인가?”
손민호는 예상을 못 했다는 듯 놀라운 표정이었지만,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손민호는 왼손으로 입을 슬쩍 닦았다. 하지만 입가에 번진 웃음을 감추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현성은 얼른 말을 추가했다.
“건배 후 술은 파도타기입니다. 그리고 위하여는 3번을 복창합니다.”
맞다. 바로 강상대 경영학과의 전통이다. 건배사가 끝나면 잔을 부딪치며 위하여를 세 번 복창한 후 건배사를 한 사람이 술을 마시고 나면 시계 방향으로 한 사람씩 순서대로 마시는 것이다.
다른 학생들이야 당연히 모르겠지만 세 사람은 알고 있었다. 손민호와 민수연, 그리고 현성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손민호 옆에 앉아있던 민수연이 현성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모든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척!
손민호가 잔을 높이 들었다.
“술잔 들고 길게 말하면 술에 대한 모독이다. 강상대 경영학과 88학번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42명이 외치는 소리에 주방에 있던 아주머니들까지 뛰어나와 구경을 하는 진풍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휙!
손민호가 술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그러자 바로 옆에 있던 조교 민수연이 그 리듬에 맞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목을 젖혔다.
휙!
그다음부턴 자동이었다.
휙! 휙! 휙!………….
휙!
마지막으로 과대표인 김명우까지 원샷을 끝내자 갑자기 박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짝짝짝짝짝짝짝~~~
바로 조금 전에 주방에서 나와 구경을 하던 아주머니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새 식당 사장도 함박웃음을 띠며 같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피식.
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피어났다.
전생에선 엉망이었던 개강 파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 방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의 표정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비록, 건배를 하고 술을 한잔 마시는 행위였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군무를 추듯 단체 행동을 했다는 자부심에 그들의 표정은 한껏 고무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만족스럽다는 듯 큰 웃음을 짓는 김명우의 모습이 현성의 눈에 들어왔다.
불명예스러운 첫 단추의 낙인,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그가 다시 분위기를 잡았다.
“자, 자, 이제 흥분들 가라앉히시고 이제 우리의 영웅 김현성 군의 노래를 들어보겠습니다.”
짝짝짝~~~
김명우의 말이 끝나자 다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고 현성은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들었다. 마이크를 대신하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노래방 기계도 없던 시대다. 오직 생목소리로만 이 분위기를 이끌어 가야 하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음음!”
간단히 목부터 풀었다. 부를 노래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전생에서도 애창곡이었던 노래,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노래는 또 한 사람의 애창곡이었다.
바로 조교 민수연.
현성은 민수연을 힐긋 바라본 후 바로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휙!
그리곤 왼손을 높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손을 흔들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아리아라~~ 쓰리쓰리~~ 아라리오~~~~~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현성이 ‘강원도 아리랑’ 전주를 막 끝났을 때였다.
전혀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민수연이 벌떡 일어나 방 가운데로 튀어나온 것이다.
체면?
애초에 그녀에건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전생에서도 그녀는 매 순간의 감정에 충실할 뿐이었다. 그게 그녀의 최고의 매력이었다.
현성은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주까리~~ 정자는~~ 구경자리~~~~~ 살구나무~~ 정자로만~~ 만나보세~~~~~”
민수연의 춤사위는 보통 사람의 춤과 확실히 달랐다. 이 또한 그녀의 특기다. 대학 시절 탈춤 동아리 회장을 맡을 정도로 춤에 대해선 또 일가견이 있었던 것이다.
몸 전체에서 그녀의 흥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덩실덩실!
그 순간, 또 한 사람이 민수연의 옆자리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바로 과대표 김명우였다. 전생에서는 낮술로 개가 됐던 그가 오늘은 과를 대표해서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노래를 부르는 현성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소절을 남겼을 때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니, 한 사람만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로 지도교수인 손민호였다.
저벅.
현성은 노래를 부르며 손민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손민호는 절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마지막 자신의 체면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살아보니 알겠더라. 때로는 그 체면이 오히려 쓸데없는 자존심이라는 것을 말이다.
스윽.
다가간 현성은 손민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피식.
현성의 손을 바라본 손민호는 가볍게 웃었다. 마지막 고민의 순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고민을 한다는 건 이미 반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일 터.
덥석.
이미 그의 마음을 확인한 현성은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손민호의 손을 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손민호는 그 순간 현성의 손을 꽉 잡았다.
나란히 선 두 사람.
갑자기 방안에 박수가 두 사람을 향해 울려 퍼졌다.
이제 남은 마지막 소절을 부를 차례였다.
그때 오른쪽 어깨 위로 뭔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지도교수인 손민호의 팔이었다. 순간 현성은 잠깐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현성은 바로 왼팔을 손민호의 어깨에 걸쳤다. 어깨동무를 한 것이다. 그러자 손민호가 현성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현성은 바로 오른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두 사람 가운데로 가져왔다.
그리곤 큰 소리로 마지막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손민호도 같이.
“아리랑~~ 고개다~~ 주막집을~~ 짓고~~ 정든님~~ 오기만~~ 기다린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오~~~~~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후렴구에 들어서자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한목소리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모두의 얼굴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쁨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툭툭.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물론 그 누군가는 바로 옆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손민호였다.
기분이 묘했다. 전생에선 항상 차갑고 권위로만 가득 찼던 손민호였다. 그런 그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린 것이다.
그런데 그의 새로운 모습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1시간 뒤.
자리에서 일어난 손민호가 김명우를 불렀다.
“과대표!”
“네, 교수님~~임!”
술기운 탓인지 김명우의 목소리가 약간 늘어졌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손민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씩 웃으며 안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이거 받아. 술 조금 먹고, 애들 끝까지 잘 챙기고, 난 이만 간다.”
“넵! 교수님!”
김명우는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손민호가 내민 봉투를 받았다.
금일봉이다.
전생에서는 구경도 못 했던 금일봉. 결국, 전생에서도 손민호의 안주머니에는 봉투가 들어있었다는 얘기다. 단지, 그걸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준비를 했는데 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렇다 보니 봉투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에 대한 마음까지도 닫아버렸던 것이다.
손민호가 떠나고 2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다들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오르자 옆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기에 바빴다.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현성의 상대는 오정수였다. 자신을 한국대가 아닌 강상대로 오도록 만든 장본인.
두 사람이 한참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 저 자식들…….”
현성의 눈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 개강 파티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세 명 중의 두 명이었다. 한 사람은 과대표인 김명우니, 오늘은 일단 제외다.
술만 먹으면 개가 되는 김수용과 최민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깜빡하고 있었다. 과대표인 김명우만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향한 곳은 조교 민수연이 앉아있는 자리였다.
어슬렁!
걸어가는 모습이 딱 봐도 개를 닮은 듯했다.
피식.
현성은 그런 그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지금 저들은 민수연의 진가를 모른다. 그러니 술기운에 민수연이 만만해 보였을 테고.
현성의 시선은 웃고 있는 민수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잠시 후면 민수연이 개를 어찌 다룰지 잘 알고 있는 현성으로서는 그저 웃음밖에 안 나올 뿐이었다.
“하하,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