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6)
회귀해서 건물주-36화(36/740)
“어머니가 땅주인 된 기념으로 쏘셨거든. 하하…….”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다. 궁금하면 어머니한테 여쭤보고, 어쨌거나 오늘 기분은 최고다.”
김지연은 어이가 없었다. 이유야 어찌됐건 학생이 술이나 먹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렇다고 잔소리하기도 귀찮았다.
그래서인지 김지연의 말이 짧게 나왔다.
“뭐야?”
“말이 짧다?”
“본론만 말해.”
현성은 김지연을 힐긋 바라보고는 통장을 내밀었다. 지금은 백 마디 말보다 행동이 먼저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마음이 앞서 실수를 했지만, 두 번 실수할 현성이 아니었다.
그러자 김지연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이게 뭐야?”
“내 대답!”
김지연은 얼떨결에 통장을 받아 들었다. 그리곤 천천히 통장을 넘겼다. 통장엔 100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 들어있었다.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이었다.
김지연은 급하게 다시 물었다.
“이게 뭐냐고?”
“내 대답이라고.”
“오빠, 장난치지 말고 똑바로 말해.”
“저번엔 오빠가 미안했고, 그래서 이번엔 확실히 준비한 거야.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번거니까 행여나 걱정은 하지 말고.”
새삼 아버지가 고맙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남겨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 상황은 있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현성의 어깨는 여전히 무거웠을 것이다.
김지연은 여전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자그마치 백만 원이다. 이 많은 돈을 어떻게 오빠가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은근 화가 날 정도였다.
김지연은 다시 물었다.
“그렇게 대충 둘러대지 말고 알아듣게 좀 자세히 말해 봐.”
“오빠가 번 거라니까.”
“진짜 그럴 거야?”
김지연의 눈총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냥 어물쩍 넘어가기는 틀린 듯했다.
“사실은 오빠가…….”
현성은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김지연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꿈을 꿔서 산삼을 캐러 산으로 갔던 얘기부터 시작해서 오늘 아버지가 돈을 남겨준 얘기까지.
물론 중간에 적당히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해서 짧게 마무리를 했다.
현성의 말이 끝나자 김지연이 물었다.
“그게 사실이야?”
“그럼, 당연하지. 그러니까 이젠 그 얼굴 좀 펴라.”
“그래서 지금, 이 많은 돈을 나한테 준다는 거고?”
“그 정도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비는 충분할 거야. 생활비도 어느 정도는 될 거고. 나중에 모자라면 그건 그때 해결하자고. 그러니까 이젠 오빠 때문에 고민하지 말고 진로 문제 결정하라고.”
김지연은 현성의 말을 들으며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고민이 많았다. 공부는 하고 싶은데 오빠가 신경 쓰였었다. 가정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정 형편상 두 사람이 함께 고등학교에 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현성이 혹시라도 대학에 갈 경우였다. 그렇게 되면 도저히 감당이 안 될 게 뻔히 보였다.
그래서 생각했던 게 차라리 자신이 실업계로 가는 방법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학교에서 추천서를 써줄 경우, 학비며 기숙사까지 모든 게 무료이기 때문이다. 물론 담임과 상담해서 가능하다는 답변도 들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 모든 고민을 오빠가 어찌 알았을까?
누구한테도 말한 적이 없다.
혼자만 끙끙 앓던 고민이다.
어떻게…….
“오빠, 어떻게 알았어?”
“어? 그게……, 눈치를 보니까 그런 거 같아서.”
“진짜?”
“당연하지, 오빠가 원래 한 눈치하거든.”
현성은 살짝 당황했었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빛나는 건 살아본 세월이었다. 검증할 방법이 없을 땐 슬쩍 밀어붙이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김지연은 통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틀림없다.
이 돈이면 고등학교는 문제없다.
대학?
그건 일단 차후 문제다. 우선은 고등학교가 먼저다.
꿈이 있었다.
그런데 꿈을 포기했었다.
오빠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 오빠 때문에 다시 꿈을 꿀 수도 있게 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미 모든 건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마지막 불씨마저 꺼졌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그 불씨를 다시 끄집어냈다.
그리곤 그 불씨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었다.
김지연은 손을 가슴에 살포시 대보았다.
그러자 심장의 힘찬 박동소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분명 조금 전의 느낌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이 넘쳤다.
김지연은 현성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빠, 진짜 이거 받아도 돼?”
순간 불안하고 초조한 기분이 엄습했다.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만에 하나라도 안 된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었다.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현성의 대답은 시원했다.
“당연하지!”
하아!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현성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지연아,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앞으론 원 없이 다해. 앞으론 이 오빠가 내 동생 지연이만큼은 책임질 테니까.”
“히히…, 말만이라도 고맙네.”
“자식, 안 믿는다 이거지?”
피식.
김지연이 현성을 보며 웃었다.
‘너 같으면 믿겠냐?’ 이 눈빛이었다. 하긴 김지연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고등학생이 동생을 책임지겠다는데 어느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현성도 굳이 더는 강요하고 싶지도 않았다. 강요해서 될 문제도 아니고 말이다.
어차피 결과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김지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빠, 나 그럼 이거 진짜로 받는다.”
“이미 받았잖아.”
“그런가, 호호…….”
포기했던 꿈을 다시 꿀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느낌이었다. 고민도 많이 했었고,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그런데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너무 기뻤던 탓일까.
눈시울이 화끈거렸다.
김지연은 얼른 이 방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현성이 뭔가를 또 내밀었다. 만 원짜리 지폐였다.
“이건 또 뭐야?”
“용돈.”
“용돈?”
“처음으로 동생한테 주는 용돈이다. 대신 조건이 있다.”
조건이라는 말에 김지연은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남기지 마라.”
“뭐?”
현성은 대답 대신 그저 웃기만 했다.
방을 나온 김지연은 다시 통장을 확인했다. 그리곤 통장을 가슴에 꼭 안았다.
지금 통장 안에는 단순한 돈이 아닌 자신의 꿈이 담겨있다.
마당으로 나온 김지연은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새 수많은 별이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대로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하늘의 별도 잊고 살았다.
아마도 반년쯤 된 듯싶다.
중3이 되면서부터 고민이 점점 많아졌고, 어느 순간 꿈을 접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부터일 것이다.
꿈보다는 현실을 바라봤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 아빠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면서부터였다.
그 후론 꿈도, 하늘의 별도 차츰 잊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 다시 하늘을 보니 별은 그대로 있었다.
어두울수록 더 빛난다는 별이다.
그런데 나는?
너무 일찍 꿈을 포기했던 건 아닐까?
나보단 오빠가 먼저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랬었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그 부분은 후회 없다. 그저 슬픈 현실일 뿐이었으니까.
“힘내자!”
어쨌거나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됐다. 이제부턴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나만의 인생이니까.
소중한 나를 위해서!
김지연은 하늘의 별을 보며 반짝이는 내일을 다시 꿈꾸기로 했다.
동생 김지연이 방을 나가고 혼자 남은 현성은 다시 누웠다.
일단 동생의 진로 문제는 해결됐다. 그 어린 것이 현성 때문에 자신을 희생했다고는 전혀 생
각하지도 못 했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 후론 동생을 볼 때마다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다행이다.”
오늘에서야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홀가분해진 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공부.
어차피 해야 한다.
이왕 할 거라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하자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후후.
우선 호흡부터 다진 현성은 호기롭게 고2 수학 교과서를 책꽂이에서 끄집어냈다. 수학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 고2 때부터 가장 자신 있었던 과목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유는 최미연 선생 때문이기도 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어디보자.”
샤락.
현성은 수학 교과서를 넘기기 시작했다.
방안은 조용했다. 대신 가끔 한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휴우!
한숨소리가 조금 전보다 더 깊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탁!
현성은 수학책을 덮었다.
“모르겠다.”
처음엔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겠지 싶었다. 그래도 가장 자신 있었던 과목이라 아무리 세월이 지났어도 어느 정도는 기억이 남아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모든 건 현성의 착각이었다.
그때였다.
“현성이 있는가?”
밖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누군지 알 거 같았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현성.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은, 집으로 오라 했는데 안 오니 내가 올 수밖에.”
물론 현성도 알고 있다.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박희철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하지만 굳이 갈 필요성이 없었기에 현성은 가지 않았던 것이다.
박희철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잠깐 나오게.”
“지금이요?”
“그려, 나하고 잠깐 어디 좀 가세나.”
역시 아침에 소고기를 받은 것이 실수였다. 냉정하게 끝까지 거절하지 못한 자신이 후회될 뿐이었다.
어째 한 번 엮이고 나니 줄줄이 자꾸 엮인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후회야 아무리 빨리해도 늦는 법.
“잠깐만요.”
그 말과 함께 옷을 챙겨 입는 현성이다.
누구를 원망하랴.
어쩌면 버스에서 박희철을 끄집어 내릴 때, 이미 운명의 수레바퀴는 새롭게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하긴, 두 사람 다 이미 유명(幽明)을 달리했어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난 것이다.
박희철이 저녁 준비를 하던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제수씨, 현성이 좀 잠깐…….”
“아, ……네.”
현성과 박희철이 마당을 막 벗어나려할 때 어머니의 말이 뒤에서 들렸다.
“우리 현성이 고기 좋아하는데…….”
데리고 나갔으니 알아서 사 먹이라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고기가 참 귀했던 시기다. 소고기는 거의 구경도 못 했었고, 돼지고기도 어쩌다 장날이나 돼야 아버지가 조금 끊어왔던 기억이 났다.
현성과 박희철이 탄 승용차는 마을을 벗어나고 있었다.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고기 먹으러.”
“네?”
“조금 전 어머니 말씀 못 들었는가? 자고로 남자는 여자 말을 잘 들어야 되네. 그러면 뒤탈이 없어.”
아내 윤지수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윤지수도 비슷한 말을 항상 했었다.
– 여자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살아보니 또 꼭 그렇지 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어찌됐건 조만간에 아내 윤지수를 만나러 가긴 가야 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