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65)
회귀해서 건물주-365화(365/740)
365
-교내식당에서 중국집으로.
손민호가 보여준 변화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짜장면을 먹고 학교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손민호가 현성을 보며 말했다.
“나랑 어디 좀 갈까?”
“네? 어디를 말입니까?”
“가보면 알아.”
손민호가 자신의 차에 현성을 태우고 데리고 간 곳은 강릉 시내에 있는 한 서점이었다.
현성이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
“여기는 명동서점이 아닙니까?”
요즘이야 서점이 별로 없지만, 그 당시만 해도 서점이 꽤 많았었다. 그중에서도 명동서점의 규모는 강릉에서 최고였다. 그렇다 보니 많은 학생들이 약속 장소를 명동서점으로 정하곤 했었다.
서점에 들어선 손민호는 익숙한 듯, 한 코너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공무원 시험을 비롯해 각종 고시를 위한 수험서들이 진열돼 있는 곳이었다.
“여기는 왜요?”
현성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손민호는 현성을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투자 좀 하려고.”
“투자요?”
“응, 그래.”
손민호의 대답은 그게 끝이었다. 그리곤 바로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현성은 손민호가 말한 ‘투자’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25만 원입니다.”
“여기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종업원에게 카드를 건네는 손민호를 보며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평상시 돈에 관해서 만큼은 유독 인색함을 보이는 그였다. 오늘만 해도 교내식당이 아닌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으면서도 마치 큰마음이라도 먹었다는 듯 내색을 했던 그다. 그 정도로 그의 씀씀이는 교수들 사이에서도 알아줄 정도였다.
그런데 조금 전 책값을 계산할 때 그의 표정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평상시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이유를 물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그저 계산하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열심히 해라!”
계산을 끝낸 손민호가 현성을 보며 말했다. 그런 그의 앞에는 커다란 종이박스가 3개 쌓여있었다. 구매한 책들이 하나같이 두꺼운 것들이다 보니 부피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성이 놀란 건 책의 부피 때문이 아니라 손민호의 말 때문이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열심히 하라고.”
“그러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마 이 책들이…….”
“아까 얘기했잖아. 투자를 하겠다고.”
현성은 그제야 서점에 처음 들어와서 손민호가 투자를 하겠다고 했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교수님!”
차에 탄 현성은 출발하기 전에 손민호를 진중하게 불렀다.
그러자 손민호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목소리에 너무 힘이 들어간 거 아닌가?”
“안 들어가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허허…….”
손민호는 가볍게 웃었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말을 이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굳이 다른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많은 말이 불필요할 때가 있다. 말이라는 게 하다 보면 오히려 마음을 전달하는 데 방해할 수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이제 갓 입학한 학생이 1년 후에 공인회계사 시험을 보겠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더 말이 안 되는 건 그런 학생의 말을 믿고 바로 서점으로 데려와 그 시험에 필요한 모든 수험서를 사줬다는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절대적인 신뢰가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 그 일을 지금 옆에 앉아 있는 손민호가 현성 자신에게 한 것이다.
꾸벅.
현성은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톡톡!
손민호가 현성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부르릉!
명동서점을 빠져나온 승용차는 강상대를 향해 힘차게 달렸다.
***
며칠 후.
과 사무실에서 막 나왔을 때였다.
지나가던 과대표 김명우가 현성을 보며 말했다.
“현성아, 잘 만났다.”“왜, 무슨 일 있어?”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좀 내라.”
“토요일?”
그 순간 현성의 머릿속에 뭔가 스치고 지나갔다.
‘미팅?’
정확한 날짜까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맘때쯤 미팅을 나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현성은 모르는 척 일단 물었다.
“무슨 일인데?”
“독문과 애들이랑 미팅하려고, 너도 나갈 거지?”
역시 기억이 맞았다.
‘어쩌지?’
현성은 순간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미팅 또한 대학 생활의 일부분이고 그 시기에만 즐길 수 있는 특권이다. 아무리 회귀를 했지만 그 특권을 포기할 이유가 굳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오케이, 그러면 진행한다.”
“혹시 5대 5 맞아?”
현성은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러자 김명우는 놀랍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
“알긴 뭘 알아? 그냥 찍은 거지.”
“난 또 진짜 미리 알았나 하고 깜짝 놀랐잖아. 알았어, 시간과 장소는 정해지면 바로 알려줄게.”
그 말을 끝으로 김명우는 사라졌다.
사라진 김명우의 뒷모습을 보며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기억이 맞는다면 시간은 토요일 12시일 테고, 장소는 ‘비체’라는 커피숍일 것이다. 대학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미팅이라 그런지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이은지.
미팅에서 파트너로 만났던 독문과 여학생이다.
“이렇게 다시 만나는 건가?”
현성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번졌다.
꼬르륵.
시계를 보니 12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어쩐지 배가 고프다 했다.”
현성은 교내식당으로 향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현성아.”
돌아보니 조영민이었다.
“어, 영민아. 점심 먹었냐?”
“아니, 아직. 그렇지 않아도 너랑 점심 먹으려고 찾고 있던 중이었어.”
“그래? 잘됐다. 어서 가자.”
“오늘은 교내식당 말고 짜장면 먹으러 가자. 매일 얻어먹었으니까 오늘은 내가 쏠게.”
“무슨 말이 그래? 얻어먹긴 뭘 얻어먹어? 그냥 같이 먹은 거지.”
“아니야,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사실 그동안 내가 많이 얻어먹었잖아.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고…….”
“야, 그만하고 뭘 먹든 얼른 가자. 배고프다.”
현성은 일부러 조영민의 말을 끊었다. 그렇지 않으면 듣기에 낯간지러운 말들이 계속 들릴 거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일부러 조영민을 챙겼던 건 사실이다.
그때 당시 강상대에 온 학생들의 이유는 거의 비슷했다. 물론 현성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건 바로 국립대이기 때문이었다.
사립대에 비해 등록금이 1/3 정도였다. 그만큼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중 조영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특별히 하나라도 더 신경을 썼던 것이다.
두 사람이 인문사회학관을 나와 중국집으로 향할 때였다.
“현성아.”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돌아보니 최민용이었다. 개강 파티 때 조교인 민수연에게 까불다가 된통 당했던 그 녀석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김수용이 서 있었다.
쌍빈대.
그땐 그 두 사람을 그렇게 불렀었다.
“어, 왜?”
“어디 가냐?”
“점심 먹으러.”
“고뤠!”
아니나 다를까, 최민용과 김수용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점심때만 되면 하이에나처럼 어떡하든 공짜 점심을 먹으려고 어슬렁거리는 녀석들이다.
전생에서도 똑같았다.
그땐 그 정도인지 몰랐기에 많이 당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본모습을 알고 있는 지금은 예전처럼 순둥이처럼 당할 일은 없을 거라는 거다.
역시나 최민용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도 같이 가도 되지?”
“물론!”
현성은 웃으며 고개까지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최민용과 김수용이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을 열었다.
“고마워!”
“응? 뭐가?”
“어? 그, 그게…….”
“뭐가 고맙다는 거야?”
현성은 일부러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다시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반응이 재밌었다.
먼저 입을 연 건 항상 말이 많은 최민용이었다.
“어? 우리도 같이 가도 된다며?”
“물론이지, 식당을 우리가 전세 낸 것도 아니고 자기 발로 자기가 간다는데 그걸 내가 무슨 재주로 말려, 안 그래?”
“어? 그런 거였어. 난 또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면 뭐? 다른 게 있을 게 뭐가 있어?”
“응? 아, 아니야…….”
말 많은 최민용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옆에 있던 김수용이 바로 나섰다.
“오늘 우리가 점심값이 없어서…….”
노골적이었다. 이게 바로 김수용의 방식이다. 철면피. 굳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그땐 이상하게도 이 방법이 통했었다.
그리고 이 방법은 대상을 바꿔가면서 1학년을 마칠 때까지 계속된다는 거다. 처음엔 과 친구, 그다음은 선배, 그리고 동아리 선배들까지.
“오늘만?”
어차피 작정을 한 이상 현성도 물러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버릇을 들이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 녀석들의 추접스러운 요구는 계속될 테니까.
현성의 돌직구에 김수용이 움찔했다.
“어?”
“오늘만 없냐고?”
“어? 그건…….”
“내일도 없을 거잖아. 모레도, 그리고 또 그다음 날도, 안 그래?”
현성은 작정한 듯 몰아붙였다. 사실 이 녀석들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더 지독한 건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자취방을 순회 공연하듯 돌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빈대도 이런 빈대가 없을 정도로 상 빈대였다.
그렇다고 다른 학생들처럼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신발부터 시작해서 온몸을 메이커로 도배를 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나중엔 다른 과에서도 이 두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때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두 녀석이다.
현성은 두 사람을 한 번씩 바라본 후 말했다.
“이젠 그러지 마라.”
“어? 어…….”
“영민아 가자.”
“어? 어, 그래.”
조영민은 고개를 갸웃하며 현성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현성과 조영민이 떠나고 남은 두 사람.
최민용이 김수용을 보며 말했다.
“야, 저 새끼 뭐야?”“그러니까 말이야. 무슨 저딴 새끼가 다 있냐?”
“벌써 우리 정체를 알아차린 거야?”
“말이 안 되잖아? 이제 시작인데, 어떻게…….”
“저 새끼 전체 수석이라고 하더니 독심술도 배운 거 아냐?”
“에이 설마…….”
그때였다.
2학년 과대표가 저만치 지나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곳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선배니임~~~.”
중국집에 도착한 두 사람.
주문을 끝내자마자 조영민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
“평상시 네 모습하고는 너무 다르잖아?”
“너 이런 말 들어봤지? 한번 당하면 상대방이 나쁜 놈이지만, 두 번 당하면 당한 놈이 병신이라는 말.”
“어? 그거야…… 근데 그게 왜?”
“그냥 그렇다고…….”
현성은 그저 피식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