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66)
회귀해서 건물주-366화(366/740)
366
며칠 후 토요일.
현성의 기억대로 미팅 장소는 ‘비체’라는 커피숍이었다.
그 당시에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찾던 곳이다. 시내 중심가와는 조금 떨어진 뒷골목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학생들이 몰렸던 이유는 커피를 포함한 다른 음료의 가격 때문이었다.
다른 곳과 비교하면 30% 정도 차이가 나니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그곳으로 몰리는 게 당연했다.
“후후!”
커피숍 앞에 도착한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묘한 웃음이 나왔다.
그때 당시만 해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갖는 미팅이었던 만큼 그때의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뭐든 그렇듯, 처음인 만큼 부족한 게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저 미팅을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둘뿐 파트너와의 관계도 서먹서먹하게 끝나고 말았었다.
-When I find myself ~ in times of trouble ~ Mother Mary comes to me ~~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비틀즈의 ‘렛잇비’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때 당시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음악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때와는 다르게 비틀즈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고스란히 귓가를 파고들었다.
“여기!”
과대표인 김명우가 손을 번쩍 들어 현성을 반겼다.
현성도 손을 들어 반가움을 표시하며 김명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여학생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여학생들은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을 것이다. 그땐 또 그게 당연한 것처럼 여기던 때라 아무렇지도 않았다.
현성이 자리를 잡고 앉으며 말했다.
“일찍 왔냐?”
“아니, 나도 10분 전에 왔어. 근데 나 이 옷 괜찮냐?”
김명우가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얼핏 봐도 미팅을 한다고 새 옷을 사 입은 티가 났다. 어찌 보면 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예전의 순수했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해서 그런지 현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좋네, 아주 보기 좋아. 잘 어울린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난 혹시나 안 어울릴까 봐 걱정했는데…… 히히.”
김명우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는 순간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3명의 남학생이 들어왔다. 과 친구들이었다. 김명우가 다시 손을 번쩍 들어 그들을 맞았다.
그들 역시 머리에 무스까지 바르고 미팅의 설렘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김명우를 보며 물었다.
“독문과 애들은?”
“아직, 금방 오겠지, 뭐. 아직 12시 되려면 5분 남았잖아.”
“하긴, 미리 오면 좀 그렇지. 그나저나 애들은 예쁘냐?”
“나도 아직은 몰라. 하지만 한 사람은 확실히 예뻐.”
“한 사람? 그게 누군데?”
“이혜선이라고, 독문과 과대야. 키도 크고 몸매도 죽여. 특히 여기가…….”
김명우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부끄러운 듯 쿡쿡 웃었다. 그러자 다른 녀석들도 킥킥대며 웃기 시작했다.
피식.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전생에서 이 녀석들을 마지막으로 본 건 친구 아버님의 장례식에서였다. 그때가 아마 48살이 되던 해였을 것이다. 그때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잠시 후.
독문과 여학생들이 나타난 건 정확히 12시 10분이 막 지났을 때였다.
“미안해요, 우리가 조금 늦었죠?”
자리를 잡고 앉으며 독문과 과대표인 이혜선이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그저 형식적인 말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상황.
역시 전생에서처럼 과대표인 김명우가 나섰다.
“아닙니다. 우리도 조금 전에 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데 조금 늦으면 어떻습니까?”
“호호, 그래도…….”
두 사람의 형식적인 인사가 오가는 동안 현성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바로 전생에서 자신의 파트너였던 이은지였다.
그때는 부끄러운 나머지 제대로 말도 못 하고 미팅을 끝냈었다. 그러다 보니 미팅의 가장 기본인 애프터도 신청을 못 하고 오늘 만남으로 끝이었다.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던 못난 자신의 모습이었다.
“자, 지금부터 각자 자기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남학생부터…….”
이혜선과 형식적인 대화를 마친 김명우가 일어나 미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자기소개가 시작됐다. 말이 자기소개지 각자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게 전부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현성은 웃음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마치 TV 속 80년대 드라마를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나름대로 심각했는데 지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드디어 현성의 차례가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웃음을 참고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김현성입니다.”
“김현성?”
현성이 자기소개를 마치고 자리에 막 앉으려 할 때였다.
건너편에 앉은 여학생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을 되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독문과 과대표인 이혜선이었다.
‘음?’
현성은 호기심이 생겼다. 전생에서는 자신의 소개가 끝난 후 바로 여학생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졌었다. 그땐 지금과 같이 이혜선의 이런 반응은 없었다.
전생과 다르게 전개되는 지금의 상황이 은근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현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바로 물었다.
“왜요?”
“혹시…… 수석?”
“네?”
현성은 깜작 놀랐다. 이혜선의 입에서 ‘수석’이란 말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혜선의 질문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아예 손가락으로 현성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강상대 전체 수석 맞죠?”
“네? 아닙니다. 동명이인입니다.”
현성은 잠깐 고민했지만, 거짓말로 대답했다. 이런 자리에서까지 그 사실을 밝힌다는 게 왠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또 어디까지나 현성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수석 맞습니다. 전체 수석! 우리 과의 자랑이죠.”
과대표인 김명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자랑하듯 말했다.
그러자 현성이 김명우를 바라보며 인상을 썼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때 이혜선이 살짝 웃으며 바로 말을 이었다.
“어머! 뭐에요? 그런 걸 왜 거짓말을 해요?”
“아, 그게…….”
“왜 그랬어요?”
“그게 좀……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서요. 굳이 이런 자리에서까지 밝히는 게 왠지…….”
솔직한 심정이었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미팅 자리다. 이런 자리에서까지 굳이 자신이 전체 수석이란 걸 밝히고 싶지는 않았다.
이때까지도 이혜선이 왜 전체 수석이라는 타이틀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는지 현성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이혜선이 왜 김현성이란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그건 바로 이혜선이 차석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이혜선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김현성 씨!”
이혜선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해왔다.
미모만큼이나 자신감이 넘치는 그녀의 행동이었다.
전생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 전개였다.
그렇다 보니 당황스러운 건 현성의 몫이었다. 아직 서로 인사도 다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두 사람이 먼저 악수를 한다는 것도 다른 친구들한테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민 손을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네, 반갑습니다.”
현성은 어쩔 수 없이 이혜선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그때 이혜선의 입에서 황당한 말이 나왔다.
“호호, 받아주네요? 저는 안 받아 줄 줄 알았어요.”
“네?”
“샌님인 줄 알았거든요.”
“샌님이요?”
“네, 공부만 하는 샌님, 다행이네요.”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악수를 하기 위한 의도가 단순한 인사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 순간에도 사람을 테스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게 황당할 뿐이었다.
그리고 궁금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그녀가 말한 ‘다행’이라는 말의 의미였다. 무엇 때문에 다행이란 말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성이 다시 물으려고 할 때였다.
김명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두 사람의 인사는 그 정도로 끝내고 더 궁금한 게 있으면 나중에 개인적으로 만나서 더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혜선 씨 옆에 계신 분부터 다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명우의 말이 끝나자 다시 여학생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이은지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김명우가 다시 일어났다.
“자, 그럼 이번엔 남학생들은 눈 감으시고, 여학생들은 자신의 소지품을 하나씩 꺼내주시기 바랍니다.”
일명 파트너 정하기.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는 현성이었다. 마치 80년대 드라마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재밌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잠시 후.
테이블 중앙에는 립스틱, 손거울 등 다섯 개의 소지품이 놓여있었다.
김명우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여학생들은 눈 감아 주시고 남학생들은 각자 테이블에 있는 물건 중에서 하나씩 골라주시면 됩니다.”
스윽.
김명우의 말이 끝나자 다섯 명의 남학생들은 손을 뻗어 여학생들의 소지품을 하나씩 골라잡았다.
현성의 선택은 작은 손거울이었다.
문론 그게 누구의 것인지 현성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바로 이은지의 것이다. 전생에서도 현성이 선택한 것은 손거울이었다.
김명우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자, 이제 파트너도 정해졌고, 점심은 어떻게 할까요?”
“각자 알아서 하죠.”
현성의 대답이었다.
전생에선 자리만 옮겨 10명이 같이 움직였었다. 서로 어색한 분위기라 누구도 먼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간 곳이 하필 경양식집이었다. 그땐 그게 또 유행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10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다 보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왜 그랬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물론 나중에는 모두가 그때 그 결정을 후회했었다. 하지만 그땐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후였다.
똑같은 후회를 또 할 수는 없었다.
“그럼 그럴까요?”
김명우가 현성의 말을 바로 받자 다들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다음 행동을 취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모두가 아직은 경험이 없다 보니 어떻게 할 줄 몰랐던 것이다.
현성은 그런 친구들을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곤 바로 이은지 앞으로 다가갔다.
“은지 씨, 우리가 먼저 나가요.”
“네? 아, 네.”
현성은 어색해하는 이은지를 데리고 커피숍을 나왔다. 아니, 막 나오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연락할게.”
어느새 ‘요’자도 빠진 상태였다.
현성은 순간적으로 뭔가 싶었다. 돌아보니 이혜선이 자신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생글생글.
역시 그녀의 당돌함은 최강이었다.
“…….”
전혀 예상을 못 했던 상황이라 현성은 순간적으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현성의 뒤를 따라오던 이은지가 방향을 바꿔 이혜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혜선아, 이건 아니지 않니?”
“뭐가?”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그러니까 뭐가?”
“진짜 이럴 거야?”
이은지의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날카로워졌다.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두 사람도 두 사람이지만 난감한 건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이은지가 현성을 바라봤다.
“현성 씨, 현성 씨가 선택해요.”
“네?”
“현성 씨가 직접 선택하라고요. 나예요? 아니면 여기 혜선이에요?”
“…….”
현성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이은지를 바라봤다.
선택하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미팅 첫날에 나올 말은 아니었다. 무슨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선택을 자신이 해야 한다는 것이고.
현성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의 눈빛을 보니 황당할 뿐이었다.
현성은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자존심.
이건 자존심 문제였다. 이은지와 이혜선, 두 여자의 자존심 대결이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갔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끝낼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솔로몬의 선택?
그런 건 없다. 어차피 한 사람을 선택하는 순간 한 사람은 완전히 찌그러져야 한다.
“나보고 결정하라고요?”
현성은 두 사람을 보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동시에 끄덕였다. 두 사람의 표정은 이미 각오라도 한 듯 사뭇 비장할 정도였다.
덥석.
현성은 옆에 있는 이은지의 손을 잡았다.
“은지야 가자!”
현성은 친근한 목소리로 이는지를 불렀다. 일부러 존댓말도 뺐다. 어차피 손을 들어 줄 바에야 확실히 들어주고 싶었다.
그러자 이은지는 이혜선을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곤 말했다.
“그래! 현성아!”
두 사람은 가게를 빠져나갔다.
잠시 후.
“자식, 귀엽네.”
이혜선은 피식 웃으며 두 사람이 사라진 문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