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67)
회귀해서 건물주-367화(367/740)
367
커피숍을 나온 현성과 이은지.
현성이 먼저 말했다.
“일단 말은 편하게 놓는 걸로, 오케이?”
“응, 그래. 어차피 친군데. 그리고 우린 이미 말 놨잖아. 안 그래?”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지 않니?”
현성은 조금 전 커피숍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말했다.
그러자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은지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니!”
“아니? 그 상황이 안 웃긴단 말이야?”
“전혀. 난 심각했어. 사람이 자존심 문제잖아. 아무리 욕심이 나도 그렇지 그런 경우가 어딨어?”
“욕심?”
“너도 봤잖아, 처음부터 대놓고 꼬리 치는 거.”
“꼬리?”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핏 생각해도 이은지가 말하는 ‘꼬리’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이은지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아까 악수 청할 때 말이야. 엄연히 단체 미팅인데 그러는 경우가 어디 있어? 그건 어디까지나 반칙이잖아. 사실 혜선이니까 그나마 참았던 거야. 제일 친하거든.”
“제일 친하다고?”
현성은 조금 의아스러웠다. 제일 친한데 그런 일로 서로 자존심 싸움을 한다는 게 쉽게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원래 친할수록 더 자존심이 상하는 거거든. 우리 여자들은 그래.”
“음…….”
이해는 안 갔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성은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말했다.
“솔직히 다 이해가 가는 건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건 그렇고 점심 먹어야지? 뭐 먹을래?”
“음…… 난 비빔밥.”
“그러지 말고 우리 고기 먹으러 갈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은지는 육식을 좋아했었다. 그중에서도 매운 양념갈비를 가장 좋아했었다.
전생에서 이은지를 다시 만난 건 군대를 제대한 후 복학하고 나서였다. 그때 현성은 2학년이었고 이은지는 4학년 졸업반이었다.
시내에서 우연히 만났고 그걸 계기로 몇 번 더 만났었다. 그때 이은지가 고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이은지의 말이 이어졌다.
“비싸잖아.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내가 싼데 알고 있어. 여기서 멀지 않으니까 그리로 가자.”
“진짜? 대신 무리하기 없기다.”
현성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는 이은지였다.
현성은 골목을 빠져나와 동명극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뒷골목에 위치한 곳이라 모르는 사람들은 찾기 어려운 곳이었다.
전생에서 과 친구들과 고기를 먹고 싶으면 어쩌다 한 번씩 왔던 곳이다. 물론 다른 곳보다 고깃값이 싸긴 했지만, 그래도 고기인 만큼 다른 음식보다는 비쌌기에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었다.
10분쯤 걸었을까.
-지글지글 연탄구이!
현성이 찾던 식당이 나왔다.
“여기야.”
“지글지글 연탄구이? 간판이 딱이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네. 그런데 이렇게 구석진 곳을 어떻게 알았어?”
“과 선배님이 가르쳐줬어. 다른 데보다 30%는 싸거든. 거기다 고기 맛도 기가 막히고 말이야. 얼른 들어가자.”
토요일이라 그런지 낮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꽤 많았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자 종업원이 다가왔다.
“여기 매갈 4인분이요.”
“네, 알겠습니다.”
종업원이 물러가자 이은지가 바로 물었다.
“매갈이 뭐야?”
“매운 갈비.”
“아…… 매운 갈비!”
이은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바로 물었다.
“근데 왜 4인분이야? 너무 많잖아?”
“먹고 더 먹겠다고나 하지 마. 그리고 4인분 시키면 냉면이 서비스로 나오거든.”
“호호, 정말? 고기는 역시 냉면이랑 먹어야 제맛이지. 고기 먹을 줄 아네.”
이은지는 처음과 달리 편안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현성은 예전 생각이 났다.
단체로 밥을 먹은 후 각자 파트너끼리 헤어졌었다.
현성과 이은지가 다음 코스로 선택한 곳은 극장이었다.
그때만 해도 현성은 영화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란 곳이 시골이다 보니 영화를 볼 기회는 당연히 없었다. 그렇다고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영화도 선택해서 본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상영하는 걸 그냥 봤었다. 아마 중국영화였을 것이다. 제목은 물론이고 내용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영화도 보는 둥 마는 둥 시간만 보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서툴러도 너무 서툰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때 주문한 고기가 나왔다.
연탄불 위에 양념갈비를 올리자 ‘치이익’ 소리와 함께 고기가 익어가기 시작했다. 비주얼만으로도 식욕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였을까.
꿀꺽.
앞에 앉은 이은지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어머! 나 지금 뭐 한 거야?”
“하하, 그게 어때서?”
“아니, 창피하잖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이게 뭐야? 현성아, 오해하지 마,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니야.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이은지는 갑자기 말이 꼬이는지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현성은 그런 이은지를 보며 물었다.
“소주 한잔 어때?”
“어? 대낮부터?”
“안주가 이렇게 좋은데 술이 빠질 수야 없지. 안 그래?”
“호호, 그럴까? 그럼 많이 마시지 말고 조금만 마시기다.”
이은지는 낮술을 먹는다는 호기심 때문인지 은근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현성은 얼른 종업원을 불러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쪼르륵.
현성은 이은지의 잔에 소주를 따른 다음 자신의 잔에도 소주를 따랐다.
연탄불 위에는 이미 양념갈비가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은지야, 마시자.”
“응, 그런데 우리 오늘 처음 만난 거 맞지?”
“왜, 한 10년 만난 느낌이야?”
“맞아. 진짜 농담이 아니라 10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처음은 아닌 거 같아. 신기할 정도로 너무 편해. 내가 원래 이렇게 아무하고나 금방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거든.”
현성은 그런 이은지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전생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른 분위기였다. 그땐 맞지도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어색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뭐랄까, 마치 늘 입던 일상복을 입은 듯 편안함 그 자체였다.
현성은 소주잔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건배할까?”
“응, 그래 좋아.”
이은지가 활짝 웃으며 소주잔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러자 현성도 웃으며 이은지가 내민 소주잔에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반갑다, 은지야!”
“그래, 나도 반가워!”
쨍.
두 사람의 잔이 허공에서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와~~!”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고기를 한 점 먹던 이은지가 현성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터드렸다.
그러자 현성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어때?”
“죽여!”
“그 정도야?”
“응, 거짓말 안 보태고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먹어 본 고기 중에 최고야.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는 거야? 이건 진짜 예술이다!”
이은지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현성은 그런 이은지를 위해 집게로 고기를 짚어 그녀 앞으로 옮겨 놓았다. 그러자 그녀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툭 튀어나왔다.
“혹시 선수야?”
“뭐라고?”
“혹시 선수냐고?”
피식.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는데 두 번째는 무슨 소린지 바로 알아들었다.
웃음이 나온 이유는 하나였다. 이은지가 말한 그 ‘선수’라는 의미와 지금 자신의 감정은 전혀 다른 거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자신의 겉모습은 비록 이은지와 같은 1학년이지만 내면까지 그런 건 아니었다. 어찌 됐건 50을 넘게 산 현성이다. 그런 현성의 눈에 이제 갓 스무 살인 이은지가 여자로 느껴질 리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또 어디까지나 현성의 생각인 거고.
현성이 웃자 이은지가 다시 물었다.
“맞지? 선수.”
“글쎄다, 그걸 내 입으로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만,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너무 자연스럽잖아?”
“뭐가?”
“고기를 주는 모습이 말이야. 이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야.”
피식.
현성은 다시 한번 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전생에서 아내 윤지수와 고기를 먹을 때면 항상 챙기던 습관이다. 고기뿐만이 아니라 생선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고 조개구이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조금 전에도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챙겼던 것이다.
이은지가 다시 물었다.
“근데 왜 웃기만 해?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굳이…….”
“흥! 뭐야, 말하고 싶지 않다 이거야?”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거야?”
“솔직한 대답.”
이은지는 현성을 빤히 바라봤다.
현성은 그런 그녀를 보며 알 수 있었다. 대답을 듣기 전엔 결코 물러날 그녀가 아니란 것을.
세상을 어느 정도 살다 보니 사람이 살면서 때로는 거짓말도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게 선의의 가짓말이라면 더더욱 그렇다는 것을 말이다.
현성은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어머니가 그러셨거든.”
“어머니가? 뭘?”
“남자는 여자와 고기를 먹을 때 고기 굽는 건 기본이고 여자가 고기를 잘 먹을 수 있도록 챙기는 게 예의라고.”
“진짜야?”
현성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은지가 갑자기 웃으며 바로 말을 이었다.
“호호, 그런 거였어. 어머니가 신사임당급이시네.”
“신사임당?”
“그래, 어머니가 아주 훌륭하신 분이시네. 아들 공부만 잘 가르치신 게 아니라 예의도 제대로 가르치시고 말이야. 현성아, 고기 좀 더 줘.”
이은지는 말을 하면서도 어느새 자신 앞에 있던 고기를 다 먹은 상태였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조금 전과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진짜 4인분을 다 먹었네.”
이은지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이은지를 보며 현성이 물었다.
“혹시 안 부족해?”
“지금 나 욕하는 거지?”
“그럴 리가, 혹시나 해서 말이야. 부족하면 좀 더 먹고.”
“됐네요, 내가 아무리 고기를 좋아해도 더 이상은 아니야. 그나저나 덕분에 오늘 정말 잘 먹었어. 난 강릉에 살면서도 지금까지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네.”
“값도 값이지만 고기의 쫄깃한 식감과 매콤한 양념 그리고 연탄불이라 적당히 불맛도 나고 고기 맛은 최고인 거 같아.”
오죽했으면 졸업을 한 후에도 강릉에 올 일이 있으면 다른 곳은 못 가도 이곳만큼은 꼭 들러 갔었다. 하지만 이곳도 나중엔 개발 때문에 없어지게 된다. 몇 년 후 찾아왔다가 헛걸음을 했을 때 그 아쉬움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오늘 먹은 고기 맛은 유달리 맛있다는 느낌이었다.
“이제 어디 갈까?”
현성이 예전의 추억에서 깨어나며 물었다.
그러자 이은지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2차?”
“응, 이대로 헤어지긴 아쉽잖아?”
“바다 어때?”
“바다?”
“응, 남들이 다 가는 그런 곳 말고 내가 자주 가는 곳이 있어. 거기는 사람도 많지 않고 조용해서 좋아. 혹시 안목해변 알아?”
물론 알고 있는 곳이다. 경포해변에서 남쪽으로 쭉 내려가다 보면 작은 안목항이 있고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라서 조용한 바닷가다. 도로 바로 옆이 바다라 비 오는 날 바다를 구경하기엔 이만한 장소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도 나중엔 커피 거리로 유명해지고 작은 항도 강릉항으로 바뀌면서 여객터미널이 들어서게 된다.
“몰라, 그런 곳이 있어?”
“응, 자판기에서 커피 뽑아 마시면서 바다를 보면 최고야.”
“그래? 그럼 거기로 가자.”
현성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렇지 않아도 다시 가보고 싶던 곳 중의 하나였다.
그때 이은지의 입에서 예상 밖의 말이 나왔다.
“그리고 혹시 내일 뭐 해?”
“어? 그건 왜?”
“몰라서 물어?”
“응? 그게 무슨…….”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이은지가 웃으며 바로 말을 이었다.
“선수 아니었네.”
“뭐?”
“나 지금 애프터 신청하는 거거든.”
“…….”
현성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