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7)
회귀해서 건물주-37화(37/740)
이대로 15년을 기다리다가는 숨넘어갈 거 같기 때문이다. 처음 회귀해서는 정신없어 잘 모르겠더니 요즘 들어서는 자꾸 생각이 난다.
어떤 기분일까?
당연히 윤지수는 자신을 못 알아 볼 테고.
어리다고 만나주기나 하려나 모르겠다.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승용차는 목적지에 도착한 듯했다.
승용차가 도착한 곳은 면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송정’이라는 고깃집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위아래로 개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종업원이 두 사람을 맞았다.
“이쪽으로 오시죠.”
종업원은 몇 발짝 앞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자리를 잡고 앉자 종업원이 박희철을 보며 살짝 웃었다.
“손주분이 회장님을 닮아서 그런지 너무 잘 생겼어요.”
“손주요?”
“네, 꼭 서울 사람 같아요.”
서울사람?
굳이 의미를 설명할 것도 없이 최고의 칭찬임에는 틀림없었다. 당시 시골에서는 서울에 대한 동경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현성은 종업원을 슬쩍 바라봤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종업원. 본분에 충실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었다.
“허허, 우리 아가씨가 보는 눈이 아주 뛰어나구먼. 그래, 우리가 많이 닮았는가?”
신이 난 박희철.
아주 입이 귀에 걸렸다.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오히려 분위기가 적절치 않았다.
종업원이 다시 말했다.
“그럼요! 회장님이랑 똑같아요.”
“하하, 하하하…. 역시 여자 말을 들어야 된다니까. 오늘 고기 먹으러 안 왔으면 억울해서 어쩔 뻔했노?”
박희철의 웃음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룸이라 다행이지 홀에서 그랬다가는 다른 사람들 보기 무안할 정도였다.
그때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와 박희철을 보며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어, 윤 사장. 사업은 여전하시지?”
“네, 회장님 덕분에요. 그런데 오늘 좋은 일 있으신가 봅니다. 웃음소리가 아주 우렁차십니다.”
“좋은 일…? 있지 있어. 오늘 기분 최고네. 참, 여기 우리 손주가 먹을 거니까 등심 중에서도 제일 좋은 놈으로 가져오게.”
이젠 현성의 성(姓)까지 바꾸는 박희철이었다.
윤 사장과 종업원이 물러가자, 묘한 분위기가 방안에 흘렀다.
그러기를 잠깐.
현성이 먼저 물었다.
“뭡니까?”
“보다시피.”
“그렇다고 남의 성까지 그렇게 막 바꾸셔도 되는 겁니까?”
“오늘은 그냥 봐 주게. 오죽하면 내가…….”
박희철은 중간에서 말을 끊었다.
현성도 그런 박희철을 보며 더는 말하지 않았다. 전생에서 박희철이 죽은 후 남은 자식들이 보여준 행태만으로도 가족사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삼일장이 끝나기도 전에 형제간에 유산 때문에 난리가 났으니 말이다.
잠깐 생각하던 박희철이 서류 봉투를 현성 앞으로 내밀었다.
“사실은 이것 때문에 오늘 보자고 한 거네.”“이게 뭡니까?”
“열어 보게.”
“이거 혹시…….”
현성은 순간 아침에 박희철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침에 봤던 그 땅에 대한 명의 이전에 관한 얘기였다. 최대한 서두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성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그냥 흘려버렸다.
진짜로 그 땅을 자신에게 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순간의 감정에 도취되어 하는 말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박희철의 분위기로 봐서는 그게 아니었다.
서류봉투에서 서류를 천천히 끄집어냈다.
설마 했는데…….
서류는 아까 낮에 아버지가 보여줬던 논문서와 똑같이 생겼다. 내용만 다를 뿐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표제부, 갑구, 을구로 구성된 토지와 건물에 대한 등기부 등본이었다.
현성은 박희철을 바라봤다.
“아저씨!”“모든 세금 문제까지 다 끝냈으니 자네는 그냥 받기만 하면 되네.”
“…….”
당연히 할 말이 없는 현성이었다.
그러자 박희철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침에도 말했지만 지금 당장으로서는 별 도움은 안 될 걸세. 하지만 내가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땅일세. 난 그 가치를 알거든.”
“…….”
“예상컨대, 앞으로 늦어도 10년 안에는 분명 뒤집어질 걸세. 기다리면 틀림없이 좋은 일이 생길 걸세. 땅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지.”
10년?
정확히는 앞으로 2년 후, 88올림픽이 끝난 직후 식당 공사가 들어갔던 자리다. 그리고 6개월 후에는 대형 고깃집이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다시 1년 후에는 국도의 도로확장과 함께 아스팔트로 포장이 끝난다.
지금이야 산 중턱에 위치한 터라 아마도 평당 2천 원도 안 갈 것이다. 하지만 도로 공사가 끝난 3년 후에는 최소 지금과는 20배, 아니 그 이상도 차이가 날 것이다.
박희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마지막 꿈이었는데, 이젠 자네에게 넘기겠네. 난 여기까지네.”
“…….”
“나중에 땅을 팔든 아니면 거기다 뭐를 하든 이제부턴 자네가 결정하면 되네.”
“…….”
여전히 아무 말이 없는 현성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땅을 주겠다고 하길래 믿지도 않았다. 그런데 진짜 명의 이전까지 해서 그 문서를 들고 왔다.
고민이 안 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잠깐 고민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눈앞에 문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단순히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 무게감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잠깐 생각하던 현성은 박희철을 바라봤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현성은 그 말과 함께 서류 봉투를 다시 박희철에게 내밀었다.
짧게나마 생각을 해봤지만 이런 식으로 이렇게 아무 생각도 없이 덥석 받을 수는 없다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욕심이 안 났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번의 인생을 더 살아본 현성으로서는 그 욕심대로 단순하게 움직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현성이 서류봉투를 다시 내밀자 박희철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이건 또 뭐지…….’
아침에 고민하는 모습에서 말은 안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적어도 생각이 없는 놈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명의를 넘겨주고 싶었다.
주겠다는데 그것을 고민했던 녀석이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갔었다.
그런데 본인의 명의로 된 서류를 보면서도 또 고민을 한다?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거는 잘 모르겠다.
‘내가 감당할 그릇이 아니란 건가.’
박희철은 현성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결정되면 언제든 말하게.”
“그러죠.”
생각이 많은 두 사람이었다.
그때 주문한 고기가 나왔다.
음식 앞에 두고 고민 때문에 분위기 망칠 현성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그 고민 또한 행복한 고민이 아니던가 말이다.
현성은 고기를 보자마자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와! 죽입니다.”
말로만 듣던 꽃등심이다. 어쩌면 그렇게 사이사이 꽃송이처럼 지방질의 침착이 잘되어 대리석 무늬가 고루 퍼져 있는지 보면서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현성이 좋아하자 박희철이 물었다.
“고기 좋아하는가?”
“새삼스럽게 무슨 그런 실례되는 질문을 그렇게 하시고 그러십니까?”
“허허…, 뭐 실례? 하여간 자네 보면 볼수록 연구대상이란 말이야.”
그때 옆에서 고기를 굽던 종업원이 박희철을 보며 물었다.
“회장님, 아까 손주분이라고 그러지 않으셨어요?”
“그랬지. 그런데 왜?”
“아니, 손주보고 자네라고 부르시기에…….”
“그 그거야…….”
역시 거짓말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보다. 박희철은 괜히 죄 없는 젓가락만 들었다 놨다 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이 종업원을 보며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가끔 그렇게 부르세요.”
“네?”
“저는 아저씨라고도 부르는데요, 뭐……. 그죠 아저씨?”
푸, 푸하하, 하하하…….
잠깐 망설이던 박희철은 이가 다 들어날 정도로 유쾌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도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러자 여종업원만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집에 도착한 박희철.
그의 앞에는 누런 서류봉투가 놓여있었다. 식당에서 현성에게 내밀었던 그 땅 문서다.
어째 예상과 다르게 자꾸 방향이 틀어진다.
그 말은 자신이 뭔가를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그 판단 기준의 잣대는 자신이 살아온 삶속에서 나온 것일 테고.
“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박희철은 턱을 쓸었다. 생각이 많을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띠릭 띠릭.
덜컹.
번호를 눌러 금고를 열었다. 오래돼서 그런지 언젠가부터 열고 닫을 때마다 소리가 난다.
금고 안에는 시커먼 장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박희철은 장부를 하나씩 다 꺼내기 시작했다. 뭐가 이렇게 많은지 꺼내는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하긴 30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툭툭.
한 권 한 권 꺼내 쌓다보니 어느새 한쪽 벽에 가득했다. 세월의 흔적이라 대부분이 누렇게 색깔이 변한 상태였다.
이까짓 게 뭐라고 그동안 이렇게 고이 간직하고 있었나 싶었다.
박희철은 장부 하나를 손에 집어 들었다.
장부를 펼치자 종이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오늘따라 그 냄새가 유독 지독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어쩌면 곰팡이 냄새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 삶에서 풍기는 썩은 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겹겹이 쌓인 세월을 들추자 악랄했던 과거의 망령이 하나씩 살아나 방안을 온통 휘젓기 시작하는 듯했다.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지난날들.
박희철은 눈을 감았다.
얼마 후.
박희철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젠 정리하자.”
한쪽 벽에 수북이 쌓여있는 장부들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장부를 챙긴 박희철은 안방에서 부엌으로 통하는 문을 밀었다.
그렇게 여러 번에 걸쳐 장부를 부엌으로 옮겼다.
북!
미련 없이 장부를 찢어서 아궁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곤 성냥을 켜 불을 붙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부엌이 환해질 정도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나온 세월이 60년이다.
박희철은 지금 지난날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내년이면 환갑(還甲), 육십갑자(六十甲子)의 ‘갑’으로 되돌아온다는 환갑이다.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황천에 갔어야 할 운명이 다시 시작이라…….”
박희철은 방으로 들어왔다.
한쪽 벽에 수북이 쌓여있던 장부들을 치우자 방안은 훨씬 넓게 보였다.
그리고 텅 빈 금고가 눈에 들어왔다.
피식.
마치 자신이 살아온 인생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금고를 바라보며 박희철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제 이 금고를 채우는 일은 없을 거다.”
박희철은 금고문을 닫아버렸다.
쿵!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그 시각.
잠 못 이루는 또 한 사람, 현성이다.
오기가 났다.
수학 때문이다.
그래도 그나마 제일 자신 있던 과목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사라진 기억이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어떤 놈들은 사시 문제에 주식 차트까지도 기억하던데, 이건 뭐 어찌 된 게 근의 공식도 생각이 안 나니 미칠 노릇이었다.
하지만 원망만 하는 사람치고 잘 되는 사람 못 봤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했다. 살아본 세월이 있는데 그 정도에 주저앉을 현성이 아니었다.
그나마 나이를 먹으니 좋은 점은 막히면 돌아갈 줄 안다는 것이었다.
현성이 찾은 방법은 간단하다.
되지도 않는 고2 수학책과 씨름할 것이 아니라 역으로 내려가는 방법이었다.
고1 과정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 또한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다시 중3…….
그렇게 밤새 씩씩거리며 싸우다 마지막으로 펼친 수학 참고서가 중1 과정이다. 그나마도 버리지 않고 침대 밑에 보관하고 있던 터라 다행이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밤새 피곤할 법도 할 텐데 현성의 눈에선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땡땡…….
마루 벽에 매달린 괘종시계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새벽 5시다.
안방 문이 열리면서 아버지가 마루로 나왔다.
“이 녀석이…….”
아버지는 현성의 방에 불이 켜져 있기에 그것을 끄기 위해 현성의 방 쪽으로 향했다.
그리곤 살며시 미닫이문을 옆으로 조심스럽게 밀었다. 행여나 현성이 잠에서 깨어나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음?’
문을 열던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얼른 문을 다시 닫았다.
당연히 잠자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문을 열어도 모를 정도로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현성을 보며 놀랐던 것이다.
아버지는 조용히 부엌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