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74)
회귀해서 건물주-374화(374/740)
374
“대머리?”
“그래, 여기 이 부분을 자세히 봐. 각도가 애매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대머리가 틀림없어.”
현성이 가리킨 화면에는 선명하지는 않지만, 대머리임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이은지의 시선은 어느새 화면 한쪽을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화면에서 눈을 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은 가발이 맞았다는 거지?”
“동일 인물이라는 전제가 맞는다면 가발을 썼다는 게 확인되는 거지.”
“차 번호도 끝 두 자리만 변조를 한 거고?”
“맞아. 결국, 범인은 차와 자신을 완벽하게 바꿨던 거야. 그러니까 범인의 실체는 파마머리가 아닌 대머리, 그리고 차 번호도 강원 바에 2488이 아니고 2400인 거지.”
현성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승철한테 향했다.
“아저씨, 강원 바에 2400, 이 택시를 아십니까? 그 택시를 운전하는 사람은 아마도 대머리가 틀림없을 겁니다. 나이는 대충 40대 초반에서 중반, 제 판단이 맞는다면 아저씨는 알고 있을 거 같습니다만…….”
“…….”
이승철은 대답 대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니길 바랐다. 아니,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처음 현성이 공중전화 앞에서 범인은 가까운 사람일 거라고 말하는 순간 한 사람이 떠올랐다.
최영수!
8년 전 한겨울이었다. 그날따라 손님이 없어 2층에서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넘겼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그 사람은 추운 바닷가를 계속 거닐고 있었다.
세 시간쯤 지났을 때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소주 세 병을 챙겨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자신의 느낌이 맞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의 눈빛에선 이미 세상에 대한 아무런 미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소주 한 병을 건네자 그는 아무 말 없이 단숨에 한 병을 비웠다.
다시 한 병을 건넸다.
그는 또다시 아무 말 없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병을 거의 다 마셨을 때 입을 열었다.
그의 첫마디는 어머니가 눈앞에 가려 죽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다.
다음날부터 횟집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안정을 찾게 됐고, 1년 뒤에는 택시 회사에 취직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의 인생은 강릉에서 다시 시작된 것이다.
특별한 인연인 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친동생처럼 친형처럼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유지되고 있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목욕탕도 꼭 함께 가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그런 관계다.
그게 벌써 8년의 인연이다.
[강원 바 2400]조금 전 차 번호를 듣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무래도…….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아니, 믿지 않을 것이다.
이승철은 현성을 바라봤다.
“현성 군!”
“네, 아저씨. 말씀하세요.”
“아직은 아니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인정할 수가 없네. 이틀도 필요 없네. 딱 하루만, 하루만 더 시간을 주게. 그리고 설사 그 친구가…… 아니, 아닐세. 그럴 리가 없을 걸세. 절대로, 이건 아니야.”
“…….”
현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이승철은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그거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에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침묵.
때로는 말보다 잠깐의 침묵이 일을 해결하는 데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현성이었다.
그때였다.
“식사들 하세요.”
주방에서 손미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
같은 시각.
택시에서 내린 최영수는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갔다.
병원에 계시는 어머니의 소식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제 낮부터 갑자기 어머니의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올라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머니의 치료비 때문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했지만 그것만으론 역부족이었다.
더군다나 이번에 쓰는 신약은 기존의 약값보다 5배나 비싼 약이었다.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임상시험까지 마친 신약이고 그 효과 또한 지금까지의 어떤 약보다도 뛰어나다고 했다.
고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를 위해서는 자신이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디디디딕.
최영수는 바로 번호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통화를 끝낸 최영수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표정이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힘겹게 ‘어머니’라는 세 글자가 흘러나왔다.
“어머니…….”
최영수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조금 전 9시에 유명을 달리했다고 했다. 원인은 면역력 약화로 인해 갑작스러운 패혈증 증상으로 미처 손을 치기도 전에 장기에 쇼크가 왔다는 것이었다.
“어머니!”
최영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린 그의 눈두덩이는 어느새 퉁퉁 부어있었다.
힘겹게 차에 올라탄 최영수의 눈에 들어온 건 조수석에 있는 종이가방이었다. 잠깐 고민을 하던 최영수는 차를 돌려 왔던 길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제는 쓰지도 못할 돈이다. 죗값이야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와서 받으면 되겠지만 최소한 이 물건이라도 먼저 주인한테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그나마 지금으로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승철이 누구인가.
생명의 은인이다. 살기를 포기했던 자신에게 다시 살 수 있게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배신했다.
아무리 어머니의 치료비 때문에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부르릉!
최영수는 액셀을 세게 밟았다.
***
늦은 저녁을 마친 현성은 이은지와 함께 이혜선의 방에 있었다.
이은지가 누워있는 이혜선을 보며 말했다.
“몸은 좀 어때?”
“응, 이젠 괜찮아. 그냥 푹 자고 난 느낌이야. 그나저나 너희들이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다.”
“고생은 무슨……, 어쨌든 아무 일 없이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다.”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이혜선의 방을 나왔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손미정이 종이가방을 현성한테 내밀었다.
“줄 건 없고 이거라도…….”
“이게 뭡니까?”
“자취한다고 들었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지만 김치하고 밑반찬 몇 가지 담았네.”
“아까 저녁 먹을 때 먹어보니까 반찬들이 맛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반찬이 떨어졌는데 잘 먹겠습니다.”
“입맛에 맞았다니 다행이고, 그나저나 오늘은 정말 고마웠네. 현성이 학생이 옆에 있는 바람에 우리가 그나마 잘 버틸 수 있었네. 그리고 은지 학생도 정말 고맙고.”
손미정은 몇 번씩이나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이승철도 고마움을 표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손미정이 며칠 후에 두 사람을 초대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인사를 마쳤을 때였다.
딩동!
갑자기 누군가 찾아왔는지 현관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손미정이 얼른 현관으로 다가가 물었다.
“누구세요?”
“형수님, 저 최영수입니다. 잠깐 문 좀 열어주십시오.”
손미정은 고개를 갸웃하며 고개를 돌려 이승철을 바라봤다. 그러자 이승철이 잠깐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승철의 표정이었다.
얼핏 봐도 긴장한 눈빛이 역력했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덜컹.
현관문이 열리면서 최영수가 들어왔다.
“어?”
현성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순간 놀란 건 현성뿐만이 아니었다. 손미정과 이은지도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그곳은 바로 지금 막 들어온 최영수의 손이었다. 그의 손에는 낯익은 물건이 들려있었다.
검은색 종이가방.
두 시간 전에 이승철이 직접 택시 기사한테 건넸던 바로 그 종이가방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유독 입을 굳게 다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승철이었다.
최영수와 이승철,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잠깐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털썩!
최영수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형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
이승철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끝까지 아닐 거라고 믿었다. 아니, 아니길 바랐다. 아까 차 번호를 확인했을 때도 다른 사람이 운전을 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그저 자신만의 바람이었던 걸까.
아니다. 그건 아닐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최소한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게 있다.
천륜과 인륜.
하늘의 인연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식 같은 천륜, 세상의 인연으로 맺어진 인륜.
사람인 이상 최소한 이 두 가지는 지켜야 하는 것이다.
최영수!
과연 그 정도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얘기를 듣는 게 먼저다.
한참을 고민하던 이승철이 최영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어나!”
잠시 후.
거실에 마주 앉은 두 사람.
이승철이 최영수를 나직하게 불렀다.
“최영수!”
“네, 형님!”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아니야. 이럴 순 없는 거야.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이승철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그런 그가 최영수를 보며 다시 말했다.
“이유가 뭔가?”
“이유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이미 저는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아니, 나는 그 이유를 알아야겠네.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을 도둑맞은 기분이라서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을 거 같네. 자네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도 그 이유를 꼭 알아야겠네.”
잠시 생각하던 최영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은 …….”
최영수의 설명은 길게 이어졌다. 이야기의 시작은 4년 전 처음으로 이혜선일 납치하던 그때부터 시작했다.
10분쯤 지나자 그의 설명이 끝났다. 그러자 이승철이 바로 물었다.
“그러니까 이번엔 신약을 쓰기로 했다는 거지?”
“네.”
“그런데 그 약값이 기존의 약보다 다섯 배나 비싸다는 것이고?”
“네.”
“그래서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우리 혜선일 납치했던 것이고?”
“…….”
최영수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승철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지금 왜 여기 있는 거야? 지금쯤이면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
“이 사람아 대답을 해 봐. 말이 안 되잖아. 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필요가 없어져? 그게 무슨 말이야? 필요가 없어지다니……?”
“어머니가 조금 전에…….”
뚝!
최영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승철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바로 최영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설마…… 아니지?”
“…….”
“말을 해봐. 어서! 어머닌 어떻게 되신 건가?”
“조금 전 9시에 그만…….”
“…….”
잠시 후.
이승철은 종이가방을 최영수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거 들고 가게.”
“아니, 형님…….”
“딴소리하지 말고 어서 가게. 가서 어머니부터 좋은 곳에 모시게. 지금은 어머니가 우선이네. 우리 얘기는 그다음일세.”
“형님……!”
넙죽.
최영수는 이승철을 향해 큰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승철의 표정은 처음 최영수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승철이 왜 그토록 자신의 눈으로 확인을 하겠다고 했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듯싶었다.
이승철은 끝까지 최영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예단하기 이전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고맙네!”
큰절을 끝내고 일어서는 최영수를 향해 이승철이 조용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