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79)
회귀해서 건물주-379화(379/740)
379
“뭐야? 2주째 왔는데 오늘도 없는 거야?”
“아까 여기서 일하는 아저씨한테 물어보니까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5, 6개월씩 지리산으로 기도를 하러 간다고 하더라고.”
“그렇게나 길게?”
“응, 그래서 여기가 그만큼 유명한 거래. 한 번 산에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말이야. 기도가 끝나야 나온다고 하더라고.”
이상우와 박민석 두 사람은 어느 한옥 앞에서 힘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까지 연 2주째 이곳을 찾아왔었다.
이유는 졸업여행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현성의 말을 무시하고 그냥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기엔 왠지 어딘가 찝찝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포남동 박수무당이란 사람이 이미 한 달 전부터 지리산으로 기도하기 위해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두 사람은 대화를 하면서도 힘이 없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어떡하냐?”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냥 가는 거지. 처음부터 여기를 찾아온 우리가 바보였던 거야. 세상에 예지몽이란 게 어디 있어? 안 그래?”
이상우가 박민석을 보며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박민석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상우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 우리가 괜히 겁먹고 졸았던 거 같아. 그러지 말고 저기 포남시장에 가서 순댓국에 소주나 한잔 먹고 들어가자.”
“그래, 그러자. 도대체 우리가 2주 동안 뭐한 건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여기를 온 것부터가 문제였어. 그 돈으로 가서 소주나 마시자.”
“오케이, 출발!”
박민석은 찝찝함을 털어 내기라도 하려는 듯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그건 이상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포남동 박수무당 집을 뒤로한 채 포남시장으로 향했다.
20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포남시장 입구에 도착한 두 사람.
“민석아, 저기 …….”
이상우가 턱으로 어느 상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박민석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이상우가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부채도사]그곳의 간판을 확인한 박민석은 피식 웃었다.
전면 유리 전체에 노란색으로 선팅이 되어 있었고 그 위에 부채를 든 남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사주, 운세, 궁합이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 있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조금 전 큰소리치던 두 사람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왜 이제 왔어?”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부채를 든 남자가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기한 건 외모를 봐서는 분명히 남자가 틀림없는데 목소리는 가는 여자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었다.
“왔으면 앉아!”
두 사람이 쭈뼛쭈뼛 서성이자 이번에도 부채를 든 남자가 먼저 말했다. 두 사람이 엉거주춤 자리를 잡고 앉자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애가 탔구먼?”
“네?”
“어린놈들이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아?”
“네? 혹시 저희가 무엇 때문에 왔는지…….”
“너!”
이상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박민석을 부채로 가리켰다.
“저 말입니까?”
“그래, 너. 하늘이 도왔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끓어질 줄이 다시 이어졌어.”
“끓어질 줄이요? 그게 무슨…….”
“됐고, 앞으론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살아야 될 거야.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그분께 보답하는 길은 열심히 사는 거야. 내 말 명심해! 그리고 너!”
남자가 이번엔 이상우를 부채로 가리켰다.
“네, 도사님!”
“너도 마찬가지야. 너는 이 친구 덕분인 줄 알아.”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긴말할 거 없어. 넌 평생 이 친구한테 보답한다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 특히 혼자 잘났다고 설치지 말고. 항상 겸손하게. 내 말 명심해!”
“저기…… 도사님, 제가 궁금한 건…….”
“그만 가봐. 아무 걱정 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 어차피 그분이 알아서 할 테니까 말이야.”
“네? 그분이요?”
이상우는 더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남자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으로 사라진 후였기 때문이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온 두 사람.
“뭐야? 이 돌팔이?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물어보지도 못하고 말이야. 괜히 돈만 삼천 원 날렸잖아.”
이상우가 박민석을 보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박민석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누굴까? 그분이 도대체 누군데 알아서 한다는 거야?”
“그분은 무슨 개뿔, 그런 거 없어. 내가 처음부터 부채 들고 설칠 때부터 알아봤어.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부채 하나 들고 설쳐? 하여간 남의 돈 먹는 것도 여러 가지라니까.”
“어쨌거나 우리 둘 다 문제없다니까 다행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 갈 수 있게 됐잖아. 안 그래?”
“넌 그 말을 믿어?”
“그래도 나쁘다는 것보단 낫지. 하여튼 여행 문제는 해결됐으니까 어서 순댓국이나 먹으러 가자.”
“알았어, 근데 생각할수록 돈이 아깝네. 무슨 도사가 자기 말만 하고 손님은 말도 못 하게 하냐? 그리고 사내새끼가 목소리는 또 왜 그래? 하여간 오늘 완전히 똥 밟았네. 야, 어서 가자.”
두 사람은 순댓국을 먹기 위해 포남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그날 밤.
고시반에서 공부를 하던 현성은 시계를 확인했다.
시계는 이제 막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깐 생각하던 현성은 책을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평상시라면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하겠지만 오늘은 확인할 게 있었기 때문이다.
현성이 고시반을 막 나서려 할 때였다.
휴식을 취하고 들어오던 조영민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벌써 가려고?”
“응, 누구 좀 만나서 확인할 게 있어서.”
“이 시간에?”
“응, 그건 그렇고 요즘 공부는 좀 어때? 내가 보기엔 이젠 어느 정도 감을 잡은 거 같던데?”
“그게 다 네 덕분이야. 처음엔 좀 헤맸는데 네 말처럼 그날그날 목표를 정해서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몸에 적응도 되고 감도 잡히더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 목표했던 양을 끝내고 나면 성취감이 있어서 좋아. 어쨌든 이제야 좀 공부하는 맛이 난다.”
“다행이네, 그리고 공부 못지않게 휴식도 중요하다는 거 잊지 말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에 정수랑 같이 1박 2일로 소금강 어때?”
“소금강? 좋지. 모처럼 가서 삼겹살도 구워 먹고 소주 한잔하자.”
두 사람은 그 후로 몇 마디를 더 나누고 헤어졌다.
고시반을 나온 현성은 바로 자취방으로 향했다.
“민석이 형.”
자췻집에 도착한 현성은 바로 박민석의 방 앞으로 가서 그를 불렀다.
“어? 현성아, 들어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형한테 확인할 게 있어서요.”
“확인?”
“네, 며칠 전에 물었을 때도 아직 결정을 못 했다고 했잖아요.”
“아, 그거…….”
박민석은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며칠 전에도 현성이 와서 물었었다. 그건 바로 졸업여행에 관한 얘기였다.
“그래서 이 시간에 일부러 찾아온 거야?”
“저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요. 아무리 꿈이라고 하지만 그냥 넘기기엔 너무 찝찝하잖아요. 안 그래요?”
말은 이렇게 순하게 하지만 속마음은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어 꿈을 꿨다고 했지만, 사실은 꿈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제 내일이면 일어날 일이다. 그러니 어찌 속이 타지 않겠는가 말이다.
현성은 박민석을 보며 물었다.
“과 대표 형은 뭐래요?”
“상우한테 얘기는 했는데 걔도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고. 친구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는 거야. 다른 것도 아니고 꿈꾼 걸 가지고 설득시키기에는 자신이 없었던 거지.”
현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부분이다. 욕심 같아서는 졸업여행 자체를 막고 싶었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들려온 답변은 그대로 졸업여행을 가겠다는 것이다.
“휴우!”
현성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그러자 박민석이 바로 물었다.
“너는 진짜 그 꿈을 믿고 있는 거지?”
“형, 그 질문의 의미는 뭡니까? 형도 아직 못 믿겠다는 거예요?”
“어? 그게…….”
박민석은 대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물론 찝찝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꿈을 진짜로 믿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성의 질문이 바로 이어졌다.
“그래서 형은 내일 어떻게 할 거예요?”
“그게…….”
“설마 제가 그렇게까지 얘기했는데 제 말 무시하고 졸업여행을 가겠다는 건 아니지요?”
박민석은 순간적으로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졸업여행은 갈 것이다. 낮에 이미 과 대표와 그렇게 결정을 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지금이다. 만약 여기서 가겠다고 하면 이 녀석은 난리를 칠 것이다. 하지만 순순히 안 가겠다고 하면 순한 양처럼 그냥 물러갈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졸업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오면 되는 것이다. 굳이 지금 솔직히 말해서 피곤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결심을 한 박민석은 현성을 보며 빙긋 웃었다.
“안 가!”
“진짜죠?”
“그래, 네가 이렇게까지 걱정하는데 가면 안 되지. 그까짓 졸업여행이 뭐라고. 안 그래?”
“고마워 형!”
“고마운 걸로 따지면 내가 더 고맙지. 다 나를 위해서 그러는 건데.”
박민석은 말을 하면서도 미안한 감정이 앞섰다. 물론 현성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하는 얘기지만 어차피 내일 아침에 여행을 떠나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때 현성이 느낄 배신감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미안하다, 현성아! 여행 갔다 와서 맛있는 거 사줄게.’
박민석은 마음속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현성.
“다행이다.”
현성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어쩌면 자신의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무리 총선 결과를 끌어들여 꿈의 신뢰도를 높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꿈은 꿈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 꿈을 믿고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하니 현성으로선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던 것이다.
***
다음 날 아침.
삐비빅 삐비빅.
꾹!
알람시계의 버튼을 누른 현성은 바로 일어났다. 혹시나 몰라 어젯밤에 자기 전에 알람을 맞혀놓고 잤다. 만일을 위한 대비였다.
물론 박민석이 졸업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렇다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정도로 순진한 현성이 아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다. 박민석의 말만 믿고 태평하게 있기에는 그가 살아온 세월이 절대 짧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밖으로 나온 현성이 향한 곳은 공터에 주차해 놓은 트럭이었다.
어차피 박민석이 여행을 가든 안 가든 그는 집에서 나올 것이다. 그의 말처럼 여행을 안 간다고 하더라도 친구들을 배웅하기 위해서는 집을 나올 거라는 게 현성의 판단이었다. 일단은 끝까지 지켜보고 만약 그가 한 말이 거짓이라면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방법을 쓸 요량이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5시 20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어느새 어둠도 걷히고 있었다. 흔한 말로 여행 가기 딱 좋은 날이었다.
그때였다.
덜컹.
대문이 열리면서 박민석이 나왔다.
“어? 뭐야?”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문을 열고 나온 박민석 뒤에 또 한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박민석의 어머니 한수진이었다.
“어머니가 왜?”
분명히 박민석은 어젯밤에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대문 앞의 장면은 누가 봐도 한수진이 박민석을 배웅하는 모습이었다.
박민석이 어젯밤에 말했던 것처럼 여행을 안 간다면 굳이 한수진이 대문까지 나와 배웅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말은 결국 박민석이 여행을 간다는 얘기가 아닌가.
“요놈 봐라?”
현성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결국은 어젯밤에 거짓말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유는 뻔할 것이고. 어차피 여행을 간다고 했으면 현성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니 결국은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거짓말을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을 한 박민석이 예쁘게 보일 리는 없었다.
박민석이 대문에서 점점 멀어지자 한수진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유독 손을 흔들고 있는 한수진의 모습이 현성의 눈에 들어왔다. 전생에선 저 모습이 박민석을 보는 마지막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리곤 평생 아들을 그리워했을 것이고.
그래서였을까.
전생에서 박민석의 얘기를 하면서 울던 한수진의 모습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어머니, 이번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한수진이 집으로 들어가고 박민석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현성은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그리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요놈을 어떻게 못 가게 한다? 그냥 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