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8)
회귀해서 건물주-38화(38/740)
똑똑.
현성은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정신없이 수학 문제에 빠져있었다.
“누구세요?”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아버지가 보였다.
“어? 아버지?”
“그래, 이거 마시고 하거라.”
아버지는 현성에게 대접을 내밀었다.
대접에는 꿀물이 가득 담겨있었다. 아버지는 예전부터 소일거리로 토종벌을 키웠다. 그렇다 보니 집에서 먹을 정도의 꿀은 항상 보관하고 있었다.
대접을 받아든 현성은 아버지를 바라봤다.
“이건 꿀물 아닙니까?”
“피곤할 땐 이만한 게 없지.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현성이 갑자기 밤을 새우며 공부하는 것이 아버지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시험 때도 밤을 새지 않던 현성이었으니 아버지로서는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런데 현성의 입에선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다시는 후회하지 않으려고요.”
“뭐?”
갑작스러운 현성의 대답에 아버지는 순간 황당했다.
별생각 없이 가볍게 물었을 뿐인데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진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렇게 말하는 현성의 태도였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낯설 정도로 너무 진중한 모습에 아버지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던 것이다.
그때 현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후회하는 삶은 더 이상 살지 않을 겁니다.”
진심이었다.
공부든 아니면 다른 거든,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 나중에 꼭 후회한다는 걸 수없이 지켜봤고 겪어봤다.
나중에 후회해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한 번 겪었으면 됐다.
똑같은 실수?
이젠 그런 거 없다.
노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나중은 없다.
놀고 싶어도 못 논다. 노는 것도 때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땐 이미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난 후였다.
놀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기는 것도 능력이고 특권이다.
뭐든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하지 못하면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현성이 살면서 몸소 깨달은 결론이다.
츄릅.
현성은 아버지가 건네준 꿀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꿀물의 달콤함이 온몸의 피로를 싹 풀어주는 느낌이었다.
“아버지, 너무 좋은데요.”
“다행이구나. 그나저나 잠 안 자고 학교는 괜찮겠냐?”
“네, 괜찮아요. 젊잖아요. 헤헤…….”
말하면서도 조금은 왠지 어색해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는 그런 현성을 보며 씩 웃고는 방문을 닫고 나갔다. 다른 말은 없었다. 그런 아버지다. 그래서 예전엔 착각을 했었다. 무심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구보다도 그 마음속에 가족에 대한 사랑이 깊다는 것을.
아버지가 나가자 현성은 대접에 남아있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꿀물을 쪽쪽 빨아먹었다.
쩝.
조금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현성은 빈 대접을 바라봤다.
국그릇.
투박한 모양새가 꼭 아버지의 표현방법을 닮은 듯하여 더욱 정겹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현성은 추리닝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체력은 노력이다.”
이미 전생에서 저질체력의 아픔을 겪어봤었기에 그 소중함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체력 단련에 힘쓰는 것이다.
오늘은 좀 더 거리를 늘려 볼 생각이다.
어제 뛰어봤지만, 그 정도 거리는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츰 늘리다보면 그 거리만큼 체력이 좋아졌다는 것일 테니 그것도 괜찮은 검증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헛둘.
현성은 마당에서 가볍게 몸부터 풀었다.
“에취!”
그때 어디선가 재채기 소리가 들렸다.
현성은 소리가 난 쪽으로 몇 걸음 옮겼다.
그러자 아버지가 저만치 보였다. 아버지가 서 있는 곳은 논두렁이었다. 어제 아버지가 어머니 앞으로 등기 이전한 바로 그곳이었다.
비록 지금은 한 마지기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평생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 땅이다. 그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현성은 혹시라도 아버지가 눈치라도 챌까 봐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괜히 아버지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곤 조용히 마당을 벗어나 새벽 공기를 가르며 힘차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훅! 훅!
“이 정도였어?”
현성은 달리면서도 스스로 놀랐다. 벌써 1시간째다. 어제와 비교하면 두 배의 거리다. 그런데도 달리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호흡도 일정하고 속도도 거의 변함이 없었다.
처음엔 10분 정도만 더 달려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막상 10분을 달리고 보니 욕심이 났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 1시간이 지난 것이다.
“좋다!”
체력이 좋아진 건 확실했다.
확인해보고 싶었다.
더덕인지 산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것들을 먹고 체력이 좋아졌다는 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정확한 수치로야 알 수 없겠지만 대충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달리는 시간을 늘렸던 것이다.
호흡이 흐트러지거나 속도가 줄기라도 한다면 거기까지가 한계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전생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여기까지.”
현성은 방향을 틀어 집으로 향했다.
어차피 운동으로 밥 먹고 살 것도 아니고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게 현성의 판단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동생 김지연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오빠, 무슨 일이야?”
운동이라면 질색을 하던 오빠다. 그런데 지금 온몸에 땀이 흠뻑 젖을 정도로 운동을 하고 돌아온 현성이 이상하게 보이는 건 당연했다.
“좋잖아.”
김지연의 놀라움과는 반대로 너무나 태연한 현성이었다.
그러자 김지연이 다시 물었다.
“우리 오빠 김현성 맞아?”
“나도 이젠 좀 제대로 살아보려고.”
현성의 대답에 김지연은 할 말이 없었다. 요즘 들어 이해 안 되는 게 한둘이 아니다. 저번에 고등학교 진로 문제도 그렇고, 어제 돈도 그렇고, 그리고 오늘은 운동까지…….
그런데 중요한건 그런 오빠가 왠지 점점 멋있어 보인다는 거.
“고 녀석 참….”
“뭐? 김지연!”
“발끈하는 것도 귀엽네. 호호….”
“귀여워? 내가? 우리 지연이 취향도 많이 바뀌었네. 하하…….”
그저 웃음이 날뿐이었다.
그때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오며 말했다.
“학교 늦겠다. 어서 아침들 먹어.”
“어머니 저는 어차피 오늘 첫차 못 타요. 그러니까 지연이랑 먼저 드세요. 저는 좀 씻고 올게요.”
“그래 알았다. 무슨 운동을……, 좀 적당히 할 것이지.”
어머니는 알았다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현성은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을 챙겨 앞 개울로 향했다. 시골에서의 특권, 물론 예전엔 그게 특권인 줄 몰랐다.
모든 게 불편하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젠 이 모든 게 억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시골에서 만의 특권이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개울로 뛰어가는 현성의 발걸음이 유독 가벼운 이유기도 할 것이다.
***
학교에 도착한 현성은 서둘러 교실로 향했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나 시끄러웠다.
“그려, 좋을 때다.”
현성은 중얼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곤 맨 앞줄로 시선을 돌렸다.
이정우를 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이정우는 엎드려 있었다.
“어디 아픈가?”
현성은 일어나 이정우한테 다가갔다.
“정우야, 어디 아프니?”
“…….”
“이정우, 왜 그래?”
이정우는 엎드린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파르르.
미세하게 떨고 있는 이정우의 어깨를 보고 말았다.
‘설마?’
순간 아주 오래전 일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현성 자신도 숨기고 싶었던 그 일이 갑자기 머릿속을 강타했다.
개학하고 어느 날이었다.
어느 학교에나 있는 꼴통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약한 친구들만 골라 못살게 굴던 놈들. 현성의 반에도 있었다.
김일수와 그를 추종하는 두 놈이다.
아침부터 이정우한테 당연하다는 듯 돈 내놓으라고 강요했었다. 없다고 하자 세 놈이 달라붙어 이정우를 일방적으로 때렸다.
그리곤 가방까지 뒤져 돈까지 빼앗아 갔었다.
그때 현성은?
지켜보고 있었다. 진짜 지켜만 보고 있었다. 행여나 김일수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두려워 엎드린 채 몰래 지켜만 보고 있었다.
자신도 몇 번 당했던 일이었기에 더욱 두려웠던 것이다.
제일 친한 친구가 맞고, 돈까지 빼앗기는 걸 보면서도 그 친구를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비겁하다는 걸 알면서도 무섭고 두려워서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들추고 싶지 않았던 아주 오래전 기억이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왜 이 상황을 못 봤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는 아침 첫차를 타고 왔으니 일찍 학교에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버스가 아닌 자전거로 학교에 왔다. 첫차를 놓쳤을 때 어쩔 수 없이 이용하는 통학 수단이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10km 가 조금 넘는다.
그렇다 보니 첫차를 놓쳤을 경우에만 자전거를 이용하곤 했었다. 어쩔 수 없이 평상시보다 40분 정도 늦게 학교에 도착한 것이다.
아마도 2~30분 전에 이 사달이 났을 것이다. 늦게 학교에 오는 바람에 당연히 볼 수 없었던 것이고.
현성은 고개를 돌려 김일수부터 찾았다. 하지만 김일수와 그 똘마니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빼앗은 돈으로 학교 앞 매점에 갔을 것이다.
현성은 다시 이정우를 불렀다.
“이정우, 고개 좀 들어봐.”
“조용히 해라.”
“괜찮아?”
이정우의 얼굴은 멀쩡했다.
교활한 놈들이라 얼굴은 때리지 않는다. 흔적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다.
아마도 다리나 가슴 쪽을 가격했을 것이다.
“개새끼들!”
현성의 입에서 욕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놀란 듯 현성을 일제히 쳐다봤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가장 놀란 이정우였다.
“김현성!”
“정우야, 이젠 안 참을란다. 차라리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더는 비겁하게 안 살 거다.”
“갑자기 왜 그러는데?”
이정우는 현성을 바라봤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도 나섰던 적이 없었다. 물론 현성이 당할 때도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정우는 현성의 행동에 황당할 뿐이었다.
그때 현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정우야, 그동안 미안했다. 지난 일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다. 하지만 앞으론 무조건 같이할게. 설사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 혼자 두지는 않을 거다.”
빠드득.
현성의 눈빛이 변하는 순간이었다.
쾅.
그때 뒷문으로 김일수와 그 똘마니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뭘 먹는지 입을 연신 우물거리며 교실로 들어왔다.
그러자 시끄럽던 교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야! 김일수!”
조용한 교실에 외마디 고성이 울려 퍼졌다. 다름 아닌 현성의 목소리였다.
그러자 교실 안의 모든 시선이 현성에게 쏠렸다.
허!
짧게 누군가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일수였다.
톡톡.
김일수는 엄지로 자신의 가슴을 치며 현성에게 말했다.
“지금, 네가 나를 부른 거 맞지?”
“그래, 이 개만도 못한 새끼야.”
“뭐? 야! 김현성, 이 새끼가 돌았나? 나야 나, 김일수라고.”
“너 아직도 친구들한테 돈 빼앗고 못살게 굴고 그러냐? 그러니 졸업하고도 옥매트로 친구들한테 사기나 치고 다니지. 이 새끼야.”
사실이다.
언젠가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말이 돌았다. 옥매트 조심하라고. 물론 옥매트는 김일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현성의 말에 김일수는 황당할 뿐이었다.
“이 새끼가 무슨 헛소리야?”
“헛소리? 헛소리가 아니고 너의 미래다. 이 개자식아. 그러니까 정신 차려.”
현성은 말을 하며 천천히 김일수와 거리를 좁혀갔다. 어차피 말로 좋게 끝날 상황이 아니란 걸 이미 알고 있다.
이렇게 된 이상 선빵이 최선이다.
싸움에서 선빵은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했다. 그만큼 유리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싸움꾼은 역시 따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