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81)
회귀해서 건물주-381화(381/740)
381
“언제야?”
한수진의 목소리는 의외로 침착했다. 보통의 경우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감정이 앞서기 마련일 텐데 한수진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그만큼 현성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것을 믿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한수진이 무엇을 묻는지 모를 리 없는 현성, 그의 대답이 바로 이어졌다.
“시간은 저도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을 넘기지는 못할 겁니다.”
“그 말은?”
“네, 오늘 사고가 나는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
한수진은 할 말이 없었다.
보통 말하는 그 사람의 눈빛을 보면 그게 거짓인지 아닌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현성의 눈빛은 아까부터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건 적어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 아니란 얘기다.
물론 그게 사실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현성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엄청난 거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엄마, 지금 이 미친 새끼가 하는 말을 믿기라도 하는 겁니까?”
아직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박민석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자 조금 전에 그를 외면했던 한수진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민석아. 너답지 않게 오늘 왜 이렇게 흥분하고 그래?”
“아니, 엄마. 내가 지금 흥분하지 않게 생겼어? 이 자식 때문에 평생에 한 번뿐인 졸업여행을 망쳤는데!”
박민석의 목소리엔 여전히 화가 잔뜩 묻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다시 현성을 향해 주먹이라도 날릴 분위기였다.
그런 그를 보며 한수진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박민석!”
“왜요?”
“졸업여행이 그렇게 중요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평생에 한 번뿐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지금 이 자식 때문에…….”
박민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으며 한수진이 먼저 물었다.
“목숨은?”
“네?”
“졸업여행은 중요하고 네 목숨은 안 중요하냐고?”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그건 말이 안 되잖아요. 엄마는 진짜 이 자식을 믿는 거예요?”
박민석은 고개를 돌려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한수진이 그런 박민석을 보며 물었다.
“너 저번에 뭐라고 그랬어?”
“네? 제가 뭘…….”
“현성이가 다른 사람하고는 다르다고 했어, 안 했어?”
“그거야…….”
박민석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분명히 자신의 입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현성이를 처음 만나고 그다음 날부터 일주일 내내 막걸리를 먹은 적이 있었다. 이상한 건 처음 만날 때부터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었다. 그러다 보니 의외로 금방 친해졌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헤어지던 마지막 날 현성이가 자신을 보고 말했었다. 혹시 앞으로 살면서 무슨 말을 했을 때 다른 사람은 믿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두 사람만큼은 상대방의 말을 먼저 믿어주자고 말이다.
그만큼 서로에 대해 존중하자는 얘기였다.
당연히 오케이를 했었고 그 얘기를 자랑삼아 그날 저녁에 어머니한테 얘기했었다.
지금 어머니는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수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왜 말을 못 해? 그래봤자 그 얘기 한 적이 얼마나 됐다고?”
“그거야…….”
“사내자식이 왜 이렇게 가벼워? 한번 말을 했으면 지켜야 하는 거 아냐?”
“…….”
할 말이 없는 박민석이었다. 어쨌거나 자신이 한 말을 자신 스스로 어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박민석이 고개를 다시 쳐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죠. 물론 꿈을 꿀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졸업여행 가는 사람을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이렇게 끌고 오는 놈이 어디 있어요?”
“왜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을 못 해?”
“네?”
“현성이가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그런 생각은 안 들어? 이게 지금 현성이가 본인을 위해서 한 일이야? 네가 한두 살 먹은 애야? 군대까지 갔다 온 녀석이 이러면 안 되지. 어쨌거나 현성이는 너를 위해서 한 일이잖아?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그리고 솔직히 아무리 걱정이 된다고 해도 어느 누가 대관령까지 쫓아가서 그런 일을 하겠어? 설사 사고가 안 난다고 해도 너는 지금 이러면 안 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아직도 몰라?”
한수진은 작정이라도 한 듯 박민석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박민석의 표정은 여전히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단지 말만 안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성이 나직한 목소리로 박민석을 불렀다.
“형!”
“왜? 인마!”
“그렇게 화가 나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평생에 한 번뿐인 졸업여행을 망쳤는데. 이게 말이 되냐고? 그것도 거짓말까지 하면서…….”
“민석이 형!”
박민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성이 다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이번엔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조금 전과 확실히 달랐다.
그래서였을까.
박민석이 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야?”
“가요.”
“뭐?”
“가자고요. 그렇게 억울하면 내가 다시 김포공항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가자고요. 어차피 지금 출발해서 쉬지 않고 밟으면 비행기 떠나기 전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어요. 그렇게 죽는 게 소원이라면 데려다줄게요.”
“진짜 이 자식이…….”
“대신, 어머니는 형 때문에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거 잊지 마세요!”
“너 진짜…….”
“가자고요, 당장 데려다줄 테니까!”
현성으로서도 짜증이 나는 건 사실이었다. 물론 박민석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황이 이 정도까지 왔으면 수긍할 줄 알았다. 그런데 끝까지 화를 풀지 못하는 모습에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때였다.
한수진이 현성을 불렀다.
“현성아!”
“네…….”
“그만하고 방으로 들어가. 고생했다. 그리고 고맙다. 그 시간에 대관령 꼭대기까지 갔다 오느라고. 그리고 오늘 점심은 내가 준비할 테니까 이따 점심 먹으러 와.”
“…….”
현성은 대답 대신 한수진을 향해 고개를 숙인 후 발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여기에 있다가는 아무래도 박민석을 향해 또 무슨 말이라도 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너도 어서 들어가고. 어차피 이따 저녁때 9시 뉴스 보면 알겠지.”
현성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자 박민석을 보며 한수진이 말했다. 그러자 박민석이 현성의 뒷모습을 바라본 후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자식, 두고 보자…….”
***
“긴급 보고? 그게 뭐야?”
신춘오 회장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김영우 실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김영우 실장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네, 조금 전 강릉에서 들어온 보곱니다.”
“강릉? 강릉이라면 김 군?”
“네, 맞습니다. 현성 군에 대해서 조금 전 긴급으로 올라온 보곱니다. 근데 그 내용이 너무 황당해서 말입니다.”
“황당? 이번엔 또 뭔가?”
“그게 다름이 아니고…….”
김영우 실장은 조금 전 보고 받은 내용을 신춘오 회장에게 그대로 보고하기 시작했다. 김영우 실장의 말이 길게 이어질수록 신춘오 회장의 표정은 점점 더 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김영우 실장의 보고가 끝나자 신춘오 회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허허…… 이거야 원.”
“저도 처음엔 너무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현성 군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이유 없는 행동을 한 적이 없기에 이렇게 긴급으로 보고를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번엔 졸업여행을 가는 자췻집 아들내미를 쫓아가서 끌고 왔다는 얘기지?”
“네, 그렇습니다.”
“이유는?”
“근데 그게…….”
김영우 실장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신춘오 회장이 바로 물었다.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김 군이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
“그건 물론입니다. 근데 그 이유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거라서 말입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뭐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가?”
“사고가 날 거랍니다. 그래서 미리 취한 행동이랍니다.”
“사고?”
신춘오 회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얼핏 생각해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그러자 바로 김영우 실장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고, 그 설명이 끝나자 신춘오 회장이 바로 물었다.
“다른 학생들은?”
“네?”
“아니, 지금 김 실장의 설명대로라면 이번 졸업여행에서 사고가 난다는 얘기잖아? 그렇게 되면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아, 그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과 대표를 통해서 설득했지만 역부족이었답니다. 아마도 과 대표 입장에서도 학생들을 설득할 명분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췻집의 그 학생만이라도 구했던 거고?”
“네, 맞습니다.”
“음…….”
신춘오 회장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물었다.
“혹시 이번에도 지난번 총선 결과처럼 꿈에서 미리 본 것이라고 하던가?”
“네, 맞습니다. 이번에도 그랬다고 합니다.”
“시간은? 사고 시간 말이네. 그건 언제라고 하던가?”
“정확한 시간까지는 모른다고 했답니다. 단지 오늘이라고만 했답니다.”
“오늘이라…….”
사실 지난번 총선 결과 때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현성 자신의 말로는 그냥 느낌으로 예상을 했다고 했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그 또한 꿈에서 미리 본 것이라고 했다.
근데 사실은 꿈 얘기가 그게 다는 아니다. 처음 씬라면에 대한 이미지도 마찬가지였다. 라면이 출시되기 한 달 전에 간판에 씬라면 이미지를 디자인할 수 있었던 것도 꿈에서 미리 보고 그 디자인을 했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난번 총선 결과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런데 이제는 또 사고란다. 황당하지만 그냥 무시하기엔 그동안 그가 보여준 결과를 생각한다면 절대 쉽게 넘길 수 없다는 것이다.
신춘오 회장은 김영우 실장을 보며 말했다.
“김 실장 생각은 어떤가? 이번에도 김 군의 예상대로 사고가 날 거라고 믿는가?”
“그게 좀 머리가 아픕니다.”
“머리가 아프다? 그 말은 무조건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내 말이 맞는가?”
“네, 그렇습니다. 저도 처음엔 황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지난번 총선도 그렇고, 그리고 그 전에 씬하면 이미지도 그렇고, 지금까지 틀린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100% 믿기에도 좀 그렇고…….”
김영우 실장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사고를 예상하고 졸업여행을 떠난 사람을 대관령까지 쫓아가서 데리고 왔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그런데 그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성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결과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신춘오 회장이 김영우 실장을 불렀다.
“김 실장.”
“네, 회장님.”
“내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왠지 김 군의 예상이 맞을 거 같네.”
“사고가 날 거란 말씀인 거죠?”
“그렇다네. 그래서 말인데……,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우리 두 사람만이라도 대비를 해야 할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네? 대비요?”
김영우 실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얼핏 생각해도 신춘오 회장이 말하는 ‘대비’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신춘오 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사고를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게 우리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학생들 또한 누군가의 귀한 자식일 테니 말일세.”
“그렇기는 합니다만, 어떻게 대비를 하시라는 말씀인지…….”
“제주에 있는 사설 구급대를 알아보게.”
“사설 구급대 말입니까?”
김영우 실장은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몰라 다시 한번 되물었다. 그러자 신춘오 회장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10대를 섭외하게. 비용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아. 사고가 언제 날지 모른다고 하니 천상 방법이 없네. 제주도 공항에서부터 숙소에 들어갈 때까지 버스를 뒤따르라고 하게. 물론 사고가 안 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사고가 날 경우 응급처치와 환자 이송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걸세.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바로 제주도에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영우 실장은 고개를 숙였다. 새삼 신춘오 회장의 마음 씀씀이에 놀랐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것에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영우 실장은 나가려다 다시 돌아섰다.
“저…… 회장님, 죄송하지만 한 가지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음? 나한테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일 같은 경우는 회장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인데 왜 굳이 그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신경을 쓰시는지 그게…….”
“이해가 안 간다? 이 말인가?”
“솔직히 그렇습니다.”
“음…….”
잠시 생각하던 신춘오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소명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겠는가?”
“네? 소명이요?”
“그렇다네. 내가 김 군을 만나고 많은 일을 겪었네. 그러면서 느낀 게 김 군을 만나게 된 것도 하늘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그렇다면 그에 따른 일들도 내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처리하는 것 또한 하늘이 내게 주신 명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네. 그게 좋은 일이든 아니면 나쁜 일이든 말이야. 그게 또 김 군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게라도 해서 김 군과의 인연을 의미 있게 만들고 싶네.”
“…….”
김영우 실장은 고개를 끄덕인 후 인사를 하고 조용히 회장실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