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84)
회귀해서 건물주-384화(384/740)
384
이학성이 두 사람을 보며 소개를 시작했다.
“여기는 우리 막내 미연이 일세. 올해 우리 학교 영문과에 입학했고, 사회 경험을 위해 꼭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면서 여기서 주말에만 일하고 있네. 그리고 이쪽은 이번에…….”
“아빠, 알고 있어요. 이번에 우리 학교 전체 수석인 경영학과 김현성 씨죠? 아빠 오시기 바로 전에 확인했어요. 현성 씨 반가워요. 신문에서 보고 궁금했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네요.”
이학성의 설명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이미연이 중간에서 말을 끊으며 현성한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현성도 바로 이미연의 말을 받았다.
“네, 반가워요. 이제야 아까 이 자리를 예약한 사람이 특별한 분이라고 했던 말이 이해가 되네요.”
“호호, 맞아요. 사실은 아빠만 아니었어도 예약을 안 받았을 텐데 오늘 꼭 만날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전화를 하시기에 어쩔 수 없었어요. 근데 그게 또 현성 씨일 줄이야……, 그건 그렇고 아까는 다른 말 안 하고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사실 아까 그 상황에서 따지고 들었으면 제가 실수를 했던 터라 곤란한 상황이었거든요.”
사실이다. 여기 이곳의 특징 중의 하나가 예약을 안 받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창가 쪽의 테이블 개수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간혹 전화로 예약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일부러 발품을 팔아 찾아오는 손님들한테 불공평하다는 이유로 예약을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미연은 자신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예약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현성이 이의를 제기했더라면 이미연은 당연히 난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미연이 말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인 것이다.
그때 두 사람의 얘기를 듣던 이학성이 이미연을 보며 바로 물었다.
“여기는 예약이 안 돼?”
“네, 아빠. 여기 사장님의 방침이 먼저 직접 찾아오시는 분 위주로 영업을 하거든요. 근데 갑자기 아빠가 전화하는 바람에 제가 그만…….”
“허허, 이거 아빠가 큰 실수를 했구나. 그나마 여기 현성 군이라 다행이지 만약 다른 사람 같았으면 우리 막내 오늘 큰일 날 뻔했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서 조금 전에 현성 씨한테 고맙다고 했던 거예요.”
그때였다.
“여기요.”
다른 테이블에서 종업원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연은 대답과 함께 바로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이학성이 현성을 보며 바로 물었다.
“자네는 알고 있었는가?”
“네? 뭐를요?”
“여기가 예약이 안 된다는 걸 말이야.”
현성은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돌려 벽 쪽을 바라봤다. 그러자 이학성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저희 매장은 찾아주시는 손님들의 공평성을 위해 예약을 받지 않습니다. 이점, 이용에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안내문을 확인한 이학성은 옅은 미소를 띠며 현성을 바라봤다. 그리곤 바로 물었다.
“이유가 뭔가?”
“이유요?”
“그래, 여기가 예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가만히 있었냐는 얘기야?”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유?”
“네, 안 되는데 그렇게 했다는 건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허허…….”
이학성은 그저 가볍게 웃고 말았다. 얼핏 들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느 누가 나 아닌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서 이해하려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말이다. 더군다나 이제 대학 1학년인 학생이 말이다.
“한잔 받으시죠?”
현성이 작은 주전자를 들며 말했다. 그러자 이학성이 기분 좋게 웃으며 잔을 내밀었다.
“그래, 한 잔 주게. 어쨌거나 자네와 이렇게 비 오는 날 바다를 보면서 막걸리를 마신다는 게 꿈만 같네.”
“저야말로 학장님과 이렇게 한자리에 있다는 게 영광입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허허…… 이 친구야 그건 내가 하고 싶은 소릴세.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고, 이렇게 나와 줘서 정말 고맙네. 자, 그럼 우리 한잔하세.”
이학성은 술잔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러자 현성도 그 높이에 맞게 잔을 내밀어 부딪쳤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첫 잔을 깔끔하게 비웠다. 그렇게 두 사람의 술자리는 기분 좋게 시작됐다.
전생이라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던 터라 현성의 웃음소리도 유독 크게 들렸다.
30분쯤 지났을까.
이학성의 표정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진중하게 변하는 듯하더니 현성을 보며 물었다.
“지도교수한테 들으니까 내년에 공인회계사 시험을 보겠다고 했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네, 사실입니다.”
“음…….”
이학성은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기를 잠깐.
이학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성격상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감을 익히려고 보는 건 아닐 테고?”
“네, 물론입니다.”
“그 말은 제대로 준비를 하고 보겠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내 말이 맞는가?”
“네, 그렇습니다. 완벽하게 준비를 해서 시험에 꼭 패스할 생각입니다.”
“…….”
현성의 말이 끝나자 이학성은 다시 침묵에 빠졌다. 이번에도 깊은 고민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게 가능하겠는가?”
“가능하도록 만들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가능하냐고?”
이학성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럴 때 방법은 하나, 잠깐 생각을 하던 현성은 바로 말을 이었다.
“이번 여름 방학이 끝날 때쯤이면 1차 과목은 모두 끝날 겁니다. 지금까지 이미 경영학과 경제원론, 그리고 재무회계까지 끝냈습니다. 남은 과목은 여름 방학 동안 완벽하게 끝낼 겁니다.”
현성이 선택한 방법은 자신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었다. 아울러 현재 자신이 어디까지 공부를 했는지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냥 막연하게 할 수 있다고 하는 것보다는 믿음이 더 생길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현성의 말이 끝나자 이학성은 아무 말이 없었다.
“…….”
그러기를 잠깐.
벌컥벌컥.
이학성은 갑자기 앞에 놓인 술잔을 비우기 시작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아무리 전체 수석을 한 현성이라고 하지만 한 학기 동안 1차 과목을 끝내겠다는 게. 더군다나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독학으로 말이다.
현성이 전생에서 이미 다 배운 것이고 졸업을 한 후에도 3년씩이나 더 공부했다는 사실은 알 리 없는 이학성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쪼르륵.
현성은 그런 이학성의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학장님, 여전히 믿지를 못하시는군요?”
“그게 좀…….”
이학성의 눈빛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한 학기에 공인회계사 1차 과목을 끝내겠다는데 그걸 밀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현성으로선 굳이 답도 없는 이런 얘기로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이니 말이다.
현성의 표정이 조금 전과 다르게 진중 모드로 변했다.
“학장님!”
“어? 왜 갑자기 분위기가…….”
“학기 초에 처음으로 저와 면담할 때 학장님께서 저한테 뭐라고 하셨습니까?”
“어? 내가?”
“네, 그때 학장님께서 저한테 하신 말씀을 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한테 이 학교에도 희망을 보여 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 그래. 내가 분명히 마지막에 그런 말을 했었지.”
이학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그런 말을 했었다. 강상대에서 근무를 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게 학생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5년 전 고시반 운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5년 만에 그 기대감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런데 올해 전체 수석의 점수를 보면서 그 기대감이 다시 싹트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수석의 점수를 확인하는 순간엔 미쳤다고 생각했었다. 그 점수로 이 학교에 왔다는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담을 하면서 느낀 건 어쩌면 다시 기대를 해도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런 말을 전했었다.
현성의 말이 이어졌다.
“학장님, 그냥 저를 믿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무조건 말입니다.”
“무조건?”
“네, 믿음에는 조건 같은 게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저는 진정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이라는 게 자꾸 하다 보면 길어지게 된다. 그래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함축된 믿음이라는 말 하나로 결론을 내고 싶었다. 어차피 핵심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믿음이라…….”
현성의 말이 끝나자 이학성은 잠시 생각하는 듯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 맞는 얘기다. 자고로 사람을 믿는데 조건 같은 건 붙이는 게 아니다. 현성의 말처럼 절대적인 믿음, 그게 진짜 믿음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 그 외에는 대안이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의 말대로 모든 걸 그에게 맡기는 거다.’
이학성은 생각을 정리하자 고개를 들어 현성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 군!”
“네, 학장님!”
“자네를 믿겠네. 더 이상 토는 달지 않겠네. 이 학교에도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게.”
“네,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런 의미에서 우리 건배할까?”
이학성은 술잔을 쭉 내밀었다. 두 사람의 잔은 다시 한번 허공에서 힘차게 부딪쳤다.
탁.
술잔을 내려놓은 이학성이 김치전을 먹은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참, 희소식이 하나 있네.”
“희소식이요?”
“그래, 며칠 전에 그분으로부터 연락이 왔었다고 하네.”
“그분이요?”
현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자 이학성이 바로 말을 이었다.
“고시반을 후원하는 분 말일세.”
“아, 그분이 왜요?”
“어제 전화로 물었다고 하더군. 고시반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말이야.”
“그래서요?”
“혹시 자네 지도교수한테 여름 방학 때 고시반에서 살 거라고 했는가?”
“네, 어차피 이번 여름 방학에 1차 과목 끝내려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요.”
며칠 전에 지도교수와 나눴던 얘기다. 자취방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조차 줄여야 했기에 이번 여름 방학엔 고시반에서 아예 살기로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더위였다. 아직 고시반에 에어컨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고시반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유는 일반 학생들이 이용하는 도서관에도 에어컨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고시반에만 에어컨을 설치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학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래서 말인데, 그분이 에어컨을 고시반에 설치해 주기로 했네.”
“그건 안 됩니다.”
“안 된다고?”
“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다른 학생들보다 상당한 편의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고시반에만 에어컨을 설치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다른 학생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안 됩니다.”
당연한 얘기다. 만약 그랬다가는 다른 학생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같은 등록금을 내면서 그런 차별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지도교수가 그 말을 그분한테 그대로 전했다고 하더군. 그랬더니 그분이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설마 혹시…….”
“그 설마가 맞네. 도서관 전체에 에어컨을 설치하라고 했다는군. 덕분에 올여름부터는 시원하게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네.”
“그 비용이 엄청날 텐데, 그걸 그분이 부담하겠다는 겁니까?”
이학성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물론이네. 그뿐만이 아니고 전기료까지도 기부금 형식으로 대납을 해주겠다고 했다는군.”
“정말 대단한 분이시군요. 근데 그분이 도대체 누구십니까? 지도교수님도 절대 비밀이라고 말씀을 안 해주시던데.”
“허허, 그러게 말이야. 나한테도 비밀이라고 하더군. 그분의 뜻이라고 말이야.”
물론 거짓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대학의 총책임자인 자신에게까지 비밀은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을 한 이유는 그분이 현성이 알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비밀로 하고 있는 것이다.
현성의 말이 이어졌다.
“그분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분께 고마워서라도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군요?”
“그렇다고 너무 무리는 하지 말게. 그리고 이제부터 자네는 혼자 몸이 아니고 우리 학교의 희망인 만큼 몸 관리 잘하게.”
“아니, 그렇다고 뭘 그렇게까지…….”
피식.
현성은 가볍게 웃었다.
그때였다.
이미연이 쟁반에 뭔가를 들고 왔다.
“이거 드세요.”
이미연이 테이블에 내려놓은 건 다름 아닌 도토리묵과 오징어 물회였다.
이학성이 바로 물었다.
“어? 우린 이거 주문 안 했는데…….”
“주방장님 서비스입니다. 제가 아빠라고 하니까 주방장님이 특별히 만들어 주셨어요.”
“허허, 이렇게 고마울 때가……, 고맙다고 전해줘.”
“네, 아빠.”
이미연은 빙긋 웃으며 다른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러자 이학성이 현성을 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왜요?”
“우리 미연이 어떤가?”
“네? 뭐가요?”
“하여간 내숭은…….”
“내숭이요?”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특별히 할 말도 없었다.
그때 이학성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혹시 말이야 생각이 있으면 말만 하게. 자네 정도면 내가 중간에서 얼마든지…….”
“학장님, 저는 이미 아내가 있습니다.”
“뭐?”
“이름은 윤지수, 눈이 참 맑고 프리지어를 참 좋아하죠. 그리고 비 오는 날이면 김치전에 막걸리를 꼭 준비하는 그런 여잡니다.”
“…….”
현성은 아무 말이 없는 이학성은 향해 술잔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학성도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술잔을 부딪쳤다.
오늘따라 아내 윤지수가 유독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어디쯤에서 살고 있을지…….
현성의 시선은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