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85)
회귀해서 건물주-385화(385/740)
385
신대방동 농씸 본사.
“벌써 8월도 이제 며칠 안 남았군. 그래, 김 군은 요즘도 고시반에서 산다고 하던가?”
신춘오 회장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러자 김영우 실장이 바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일요일만 빼고 6일은 고시반에서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잠을 세 시간밖에 안 잔답니다.”
“세 시간? 그러고도 버틸 수 있다는 거야?”
“대신 일요일에는 종일 잠만 잔다고 합니다.”
“일요일에 잠을 몰아 잔다는 얘기네. 하여간 생각할수록 대단해. 어린 친구가 어떻게 그렇게 독하게 마음을 먹을 수 있는지 말이야.”
신춘오 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처음 방학을 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 보고를 받았다. 자취방에도 안 가고 고시반에서 자면서 공부를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주일 정도 하다가 그만두겠지 했는데 한 달 반이 넘도록 그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고작 1학년인 현성이다. 한참 놀기 좋아할 나이가 아닌가 말이다. 흔한 말로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까짓 공인회계사가 뭐라고 하루에 세 시간만 자면서 그렇게까지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신춘오 회장은 다시 물었다.
“김 실장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네? 뭐를 말입니까?”
“김 군이 공부하는 거 말이야. 내가 볼 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서 말이야. 사람이란 원래 동기 유발이 안 되면 무슨 일이든 그렇게까지 할 수 없는 거거든. 근데 내가 생각할 때 지금 김 군은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단 말이야. 막말로 김 군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솔직히 공인회계사라는 자격증이 그렇게까지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저도 그게 궁금해서 좀 더 알아보라고 지시를 했었습니다. 근데 드디어 조금 전에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신춘오 회장의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그 이유를 찾기라도 했다는 건가?”
“100%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제 판단으로는 그거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그거? 그게 뭔가?”
“희망입니다.”
“희망?”
신춘오 회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얼핏 들어도 ‘희망’이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그때 김영우 실장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혹시 여름 방학 시작하기 전에 경포에서 현성 군과 학장 두 사람이 만났다고 말씀드렸던 거 기억하십니까?”
“물론이지. 비 오는 날 두 사람이 막걸리 먹었던 거 말이지?”
당연히 기억한다. 그 보고를 받던 날은 당장이라도 강릉으로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술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비 오는 날 마시는 술 한 잔의 의미가 어떻다는 걸 너무도 잘 알 것이다. 오죽했으면 예전 학창 시절에 강의까지 빠지면서 주점을 찾았던 자신이다.
“네, 맞습니다. 그날 두 사람이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약속? 무슨 약속?”
“강상대에 희망을 만들자고 말입니다.”
“희망을 만들어?”
“네, 알고 보니 학장인 이학성 씨가 학교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많았더군요. 사실 5년 전에 고시반을 운영하면서 나름대로 욕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학교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김영우 실장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학장은 처음부터 고시반 운영에 대해서 기대를 상당히 많이 했다고 했다. 왜냐하면, 학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고시에 패스한 학생이 많을수록 학교 지명도가 올라갈 것이라는 거였다. 그게 앞으로 경쟁에서 강상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대가 무너지기 시작한 건 불과 2년이 지나면서부터 라고 했다. 1년이 지나면서부터 고시반을 이탈하기 시작한 숫자가 2년이 지나면서 2/3로 줄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기대감은 5년이 되던 작년 가을에 완전히 무너졌다고 했다. 남은 학생이 한 명인 상황에서 더 이상 고시반을 운영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그의 기대감과 희망은 5년 만에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더 이상의 그런 기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1월에 신입생 입학시험이 있었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건 바로 전체 수석의 점수였다.
330점.
그 점수를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고 했다. 어쩌면 다시 꿈을 꿀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손민호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했다. 다시 한번 도전해 보자는 거였다.
그렇게 고시반을 다시 운영하기 시작했고 어느 날 손민호 교수로부터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건 바로 현성이 내년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을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말이 안 되는 경우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고 했다.
그러다 방학을 시작하기 일주일 전에 비 오는 날 경포대에 있는 한 주점에서 그를 만났다고 했다.
물론 별 기대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 번쯤은 확인이 필요했기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고 했다.
그런데 의외의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그건 바로 공인회계사 1차 시험과목 중에서 두 과목은 이미 끝냈고 한 과목도 반 정도는 끝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과목도 방학 동안에 끝내리라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신춘오 회장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로 물었다.
“이번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1차 과목을 끝낸다고 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게 가능해?”
신춘오 회장은 믿을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어디까지나 4학년까지 마쳐야 이수할 수 있는 과목들이다. 그런데 한 학기 만에 그 모든 과목을 끝내겠다니, 이건 도저히…….
그때 김영우 실장의 말이 이어졌다.
“가능합니다. 아니, 이미 증명을 했습니다. 앞으로 하루 이틀이면 세법까지 끝낸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1차 과목은 모두 끝내는 겁니다.”
“그게 정말인가?”
“네, 저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런데 그 일을 현성 군이 해냈다고 합니다.”
“허허……이거야 원…….”
신춘오 회장은 할 말이 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
잠시 후.
웃음을 그친 신춘오 회장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결국 김 군이 그렇게까지 공인회계사 시험에 올인하는 이유가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라 강상대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는 건가?”
“네, 저의 판단으로는 그렇습니다. 회장님 말씀처럼 공인회계사란 자격증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가치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강상대 학생들한테는 그렇지 않을 거란 얘깁니다.”
“음…….”
신춘오 회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치라는 건 어차피 상대적인 개념이다. 같은 물건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필요성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배가 고픈 사람과 배가 부른 사람에게 있어 밥 한 공기의 가치는 다르게 느껴지듯이 말이다.
“아직 강상대에선 어느 누구도 그 시험에 패스한 전례가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네. 결국은 김 군이 그 길을 내겠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네, 맞습니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거니까요. 지도교수는 물론 학장까지도 현성 군에게 부탁을 했던 것이 바로 그거랍니다. 스타트! 일단 뚫리면 그다음부터는 쉬운데 그 첫 시작이 어려웠던 거죠. 그런데 드디어 그 적임자가 나타난 겁니다. 그게 바로 현성 군이었던 겁니다.”
“그렇지! 그 정도의 명분이라면 김 군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그래서 잠까지 줄이면서까지 그토록 열심히 하는 거구먼. 그렇다면…….”
신춘오 회장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기를 잠깐.
그런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 실장, 내일이 일요일이지?”
“네, 그렇습니다.”
“혹시 내일 약속 있는가?”
잠시 말이 없던 김영우 실장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어? 준비……?”
“네, 서울에서 밤 12시쯤 출발하면 될 겁니다. 보통 현성 군이 일요일이면 새벽 5시에 자취방에 가니까 그 전에 도착하면 볼 수 있을 겁니다. 해장국이라도 한 그릇 먹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
신춘오 회장은 말 대신 김영우 실장을 바라봤다. 그리곤 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하하하…….”
한참 웃던 신춘오 회장은 지갑에서 수표 두 장을 꺼내 김영우 실장에게 건넸다.
“김 실장, 일요일 특근 수당일세. 한 장은 최 기사 주고.”
“아니, 회장님…….”
“이래서 사람은 오래된 사람이 좋단 말이야. 해장국만 먹고 바로 올라오면 오후엔 쉴 수 있을 걸세. 그럼 미안하지만 부탁하네.”
김영우 실장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정중히 숙였다.
2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하지만 현성을 만나면서부터 사람이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젠 ‘부탁’이란 말까지 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통용되는 건 아닌가 보다.
***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두 사람.
조영민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현성아, 오늘도 잘 먹었다.”
“또 그 소리, 우리 그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잖아.”
“그건 아니야.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물론 말뿐이지만 이렇게 마음이라도 전해야 내 마음이 편해. 그건 그렇고 그게 사실이야?”
“뭐가?”
“오늘까지만 하면 세법까지 마스터한다는 게 말이야.”
조영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설마 했는데……, 야, 근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한 학기 동안 어떻게 1차 과목을 다 끝낼 수가 있는 거야?”
“어쩌다 보니…….”
현성은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사실 현성도 전생에서 이미 한 번씩 배웠던 것이라 가능했던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당연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조영민의 이런 질문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경영학 때도 마찬가지고 상법 때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과목을 끝낼 때마다 하던 질문이라 오늘도 편하게 대답할 수가 있었다.
조영민의 질문이 다시 이어졌다.
“그럼 내일부터는 2차 과목 준비하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어차피 시험과목은 1차와 2차 과목이 별개가 아니야. 거의 비슷하거든. 단지 문제 유형만 달라. 1차는 객관식이고 2차는 주관식이야.”
“그래?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기출문제로 가야지. 인제부턴 그동안 나왔던 문제를 중심으로 접근할 거야.”
어느새 도서관 옆 해람지(연못)에 도착한 두 사람의 손에는 자판기 커피가 한 잔씩 들려 있었다.
“진짜 내년에 합격할 수 있는 거야?”
조영민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엔 확실히 의구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런 그를 힐끔 바라본 현성의 얼굴엔 미소가 살짝 번졌다. 당연한 반응이기에 그저 웃음이 낫던 것이다.
현성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최선을 다해보려고. 혹시 아냐? 미친 척하고 붙을지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
현성은 지도교수나 학장한테 자신 있게 말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소극적으로 답했다. 어차피 모든 건 결과로 입증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구심이 가득한 친구 앞에서 굳이 허세를 부린다는 것도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조영민의 입에서 예상 밖의 말이 나왔다.
“너는 할 수 있을 거다.”
“어? 내가?”
“그래,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너같이 독한 놈은 처음 본다. 어떻게 하루에 세 시간을 자면서 버티냐?”
솔직히 처음엔 며칠 그러다 말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그의 수면 시간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이 녀석은 보통의 우리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거였다.
조영민은 바로 말을 이었다.
“넌 확실히 보통의 우리와는 다르다는 걸 알았어. 하긴 그러니 그 점수로 우리 학교에 왔지. 이제야 말이지만 처음 너를 봤을 땐 또라이인 줄 알았어.”
“뭐 또라이?”
“그래, 또라이가 아니라면 330점을 맞은 놈이 미쳤다고 여기로 오냐? 하여간 너는 확실히 연구대상임에는 틀림없어.”
“흠, 연구대상이라…….”
현성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럴 땐 그저 입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란 걸 잘 알고 있는 현성이었다.
그때 조영민의 입에서 또다시 이상한 말이 나왔다.
“야, 부탁 하나 하자.”
“부탁?”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꼭 합격해라.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너라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왜?”
“내가 말했잖아, 또라이라고. 보통 사람은 죽었다가 깨도 못 해. 하지만 너는 우리랑은 다르단 말이야. 우리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또라이 짓 한 번 부탁하마. 고시반에서 첫 번째 합격자가 나와야 한다면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
“…….”
현성은 대답 대신 조영민을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전생에서도 보지 못했던 그의 모습이었다. 투박한 말속에서 느껴지는 그의 마음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는 순간이었다.
***
새벽 2시를 막 지날 때였다.
톡톡.
조영민이 조용히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오늘도 5시까지냐?”
“응, 오늘 이거 끝내야지.”
현성의 책상에는 ‘세법개론’ 책이 펼쳐져 있었다.
“결국, 끝내는구나. 수고했다. 그리고 오늘은 자취방에 가서 잘 거지?”
“응, 일요일이니까 가서 푹 자야지. 그리고 이따 저녁때 방으로 와, 삼겹살 먹자.”
“오케이, 이따 저녁 때 보자.”
두 사람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영민이 나가고 현성은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샤락!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 가끔 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탁!
“휴우!”
책을 덮는 소리와 함께 현성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1차 과목을 모두 끝내는 순간이었다.
“벌써 시간이…….”
어느새 시간은 5시 10분을 지나고 있었다.
우두둑 우두둑.
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몇 번 돌린 후 고시반을 나왔다.
도서관 건물을 나오자 상쾌한 아침 공기가 훅 들어왔다.
그때였다.
“이제 끝났는가?”
뒤에서 친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이 목소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