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96)
회귀해서 건물주-396화(396/740)
396
윤서현 시장이 강상대 1회 졸업생인지는 전생에서도 몰랐던 사실이다.
학장실에서 그를 처음 본 순간 가졌던 의문, 그리고 현성 자신의 합격 소식에 눈물까지 흘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의문, 이 두 가지 의문은 그가 강상대 1회 졸업생이라는 말 한마디로 바로 풀렸다.
1회 졸업생.
그 ‘1’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 하나만으로도 윤서현 시장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도 남을 듯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도 또 알게 됐다.
그건 바로 그동안 윤서현 시장이 개인의 자격으로 강상대 고시반에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처음 고시반이 생길 때부터 그는 매월 일정 금액을 지원하고 있었다. 비록 그 금액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그는 모교에 대한 애착을 보여줬던 것이다.
물론, 그 사실은 학장과 지도교수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그리고 2년 전에 1기 고시반이 폐쇄될 때 누구보다도 가장 마음 아파했던 사람이 바로 윤서현 시장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렇다 보니 이번에 현성의 공인회계사 1차 합격 소식에 바로 달려왔던 것이다.
어쨌거나 현성의 공인회계사 1차 합격 소식은 학교 내의 큰 이슈로 떠올랐다.
그래서였을까.
89학년도 고시반 선발 시험에 예상외로 많은 학생이 몰렸다.
놀랍게도 7명 뽑는데 무려 150명이 지원한 것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8배가 늘어난 셈이었다.
그만큼 미래의 진로를 고민하던 학생들이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고시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된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물론, 그 결과야 두고 봐야 하겠지만, 중요한 건 일단은 그 희망의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에 학생들의 눈빛이 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학기 초면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풍경이 확실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었다.
***
4월 27일.
아침부터 대한민국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정부에서 주요 발표를 한다는 방송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오전 10시.
TV 화면에 국토부 장관이 등장했다.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그러던 그가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정부는 작년 9월 13일에 1차로 산본, 중동, 평촌 등에 대규모 택지개발을 발표했으나, 집값을 잡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에 추가로 일산과 분당에 새로운 택지개발을 하기로…….
“…….”
“…….”
TV를 보던 두 사람은 서로 말없이 마주 볼 뿐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김영우 실장이 흥분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
“그래, 나도 보고 있네. 결국은 김 군의 예상대로 정확히 들어맞았네. 설마 했는데…….”
신춘오 회장은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한 달 전쯤에 이번 달 안으로 2차로 신도시 발표가 있을 거라는 보고를 받을 때만 해도 설마 했었다.
불과 7개월 전에 신도시 발표가 있었는데 또 신도시를 발표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정부에서 한 치 앞도 못 보고 졸속으로 결정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성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무조건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또 무조건 믿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솔직히 반신반의 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오늘 아침에 이상한 보고를 받았다. 정부에서 오늘 중대 발표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설마 2차로 신도시를 발표하는 내용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조금 전 국토부 장관이 나와 현성이 말한 대로 일산과 분당에 추가로 신도시를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김영우 실장의 흥분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현성 군의 예상이 100% 맞았습니다. 회장님!”
“그러게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네. 도대체 김 군은 무슨 재주로 한 달 전에, 아니지, 따지고 보면 한 달 전이 아니라 김 군이 일산의 땅을 산 게 3년 전이니까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3년 전에 신도시 발표를 미리 알았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말이야.”
신춘오 회장은 여전히 머리를 좌우로 흔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건 김영우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 전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솔직히 믿지 않았었다.
그렇다 보니 조금 전 TV를 보는 순간 기절하는 줄 알았다.
두 사람의 대화는 그 이후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믿을 수 없다는 것, 이해가 안 된다는 것.
피식.
그리고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쯤 신춘오 회장이 가볍게 웃으며 김영우 실장을 불렀다.
“김 실장.”
“네, 회장님.”
“어쨌거나 중요한 건 김 군의 말대로 일산이 신도시로 발표가 났다는 거야. 안 그런가?”
“그거야 물론입니다.”
“그러니까 그 얘기는 이제 그만 하고 우리가 할 일을 찾자고.”
“우리가 할 일이요?”
“그래, 우리가 할 일. 잠깐 기다려 보게.”
신춘오 회장은 그 말을 끝으로 책상 쪽으로 걸어가더니 잠시 후 뭔가를 들고 다시 김영우 실장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뭔지 아는가?”
“이건…….”
당연히 알고 있는 서류 봉투였다. 1년 전 신춘오 회장의 지시에 의해 일산의 땅을 사고 그 땅문서를 보관했던 바로 그 봉투였다. 봉투의 색깔이 일반 서류 봉투와 다른 흰색 봉투였기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김영우 실장이 바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 이건 1년 전에 샀던 일산의 땅문서가 아닙니까?
“맞네. 이제부턴 김 실장이 가지고 있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걸 제가 왜…….”
“벌써 잊었는가? 내가 한 달 전에도 얘기했잖은가. 이 땅의 50%는 김 실장 몫이라고 말이야. 그러니 김 실장이 보관하고 있다가 적당한 시기에 처분하게.”
“아니, 회장님…….”
파르르.
서류 봉투를 받아든 김영우 실장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물론 1년 전에도 그런 말을 했었고, 한 달 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 까지나 일산이 신도시로 발표 나기 전이었다. 신도시 발표 전과 후, 그 땅의 가치는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 자체가 안 된다.
거짓말이 아니라 기본 100배는 차이가 난다.
혹시라도 그 땅에 아파트라도 들어서는 날에는 그 땅의 가치는 100배를 훨씬 초과한다.
그렇게 되면 세금을 제한다고 해도 최소 100억, 그거에 50%면 50억이다. 신춘오 회장이 농담처럼 얘기했던 게 사실이 된다는 얘기가 된다.
50억.
말이 50억이지 이건 꿈에서조차 상상을 못 했던 금액이다. 그러니 어찌 이 상황에서 손이 떨리지 않겠는가 말이다.
신춘오 회장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김 실장, 이제부턴 말이야…… 김 군이 어떻게 그 사실을 미리 알았는지 그건 우리한테 중요하지 않네. 어차피 우리가 그걸 알아낼 방법도 없고 말이야. 안 그런가?”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러니까 이제부턴 답도 없는 그 과거 문제는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김 실장이 살아갈 미래만 생각하라고.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
김영우 실장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인지 잘 안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을 자신의 입으로 대답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일이라 입을 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춘오 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그동안 수고했네.”
“아니, 회장님 왜 그런 말씀을…….”
“20년이면 충분히 됐네. 이제부턴 김 실장도 편히 쉬어야지.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김 실장 덕분이었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세. 그리해줄 수 있겠는가?”
“회장님,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저 같은 게 어찌 감히……, 그리고 저 아직 정년이 3년 남았습니다. 그때까지는 회장님 곁에서…….”
스윽.
신춘오 회장은 손을 들어 김영우 실장의 말을 끊었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네. 오늘이라도 인사과에 얘기할 테니 그리 알게. 다시 말하지만, 이제부턴 김 실장의 미래를 설계하도록 하게. 더 이상은 내 욕심일 듯하네.”
“회장님…….”
“그리고 나도 이젠 일선에서 손을 뗄 생각이네. 언제까지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앞으로 우리 같이 낚시도 가고 김 군처럼 바닷가에서 비 오는 날 막걸리도 마시고 그러자고.”
“…….”
“왜 말이 없는가?”
“…… 네, 알겠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함께 다니자니까. 친구로 말이야. 물론 내가 자네의 친구로 자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
김영우 실장은 대답 대신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는 신춘오 회장이 한없이 고마울 뿐이었다.
자그마치 20년, 그 세월이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그 긴 시간을 주인처럼 모셨던 사람이 이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친구라고 하지 않은가. 물론 그 말이 진심임을 알기에 더욱더 고개가 숙여지는 순간이었다.
신춘오 회장이 다시 물었다.
“참, 그리고 오늘 김 군이 고향 집에 있다고 했는가?”
“네, 그렇습니다. 어제저녁에 고향 집에 도착했답니다. 현성 군의 아버님께서 오늘이 생신이라고 합니다.”
“허허, 그런가.”
“네, 그래서 선물 몇 가지 보냈습니다.”
“음, 그래. 잘했네. 이래서 내가 김 실장이 좋다니까. 고맙네.”
톡톡.
신춘오 회장은 김영우 실장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김영우 실장은 오늘따라 어깨에 닿는 신춘오 회장의 손길이 유독 따뜻하게 느껴졌다.
***
그 시각.
TV를 보고 있던 박희철.
“일산 신도시?”
박희철은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물론 현성을 믿었기에 3년 전에 일산의 땅을 샀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그곳이 신도시로 개발될지는 몰랐다.
더군다나 7개월 전에 1기 신도시가 발표됐던 터라 최소한 5년 이상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 달 전쯤에 현성이 통화 중에 이상한 말을 했었다.
이번 달 안으로 일산이 신도시로 발표될 것이란 거였다. 하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1기 신도시를 발표한 지 이제 겨우 7개월밖에 안 됐는데 또 신도시를 발표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허, 참 …….”
박희철은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꿈만 같다고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그것도 이렇게 빨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박희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바로 밖으로 나오려고 방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따르릉.
“누구야?”
박희철은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버지, 접니다. 둘째 범숩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일본에 사는 둘째 아들 박범수였다.
박희철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웃음부터 나왔다. 아마도 이 시간이면 일본에서도 한국의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화를 한 이유도 뻔할 테고.
박희철은 담담하게 물었다.
“네가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
-그냥 안부 전화했습니다.
“안부 전화?”
박희철은 어이가 없어 기가 막힐 뿐이었다.
‘안부 전화?’
언제부터 안부 전화를 했다고 이 시간에 전화를 한다는 말인가.
분명히 TV로 뉴스를 봤을 것이고 일산이 신도시로 개발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아비가 3년 전에 일산에 땅을 샀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전화를 건 이유도 100% 그 일 때문일 것이고.
하지만 노골적으로 그 일을 언급할 수 없으니 ‘안부 전화’라는 말로 돌려서 말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히죽.
박희철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번졌다.
미처 그 생각은 못 했었다. 흥분된 마음에 현성부터 찾아가려고 했었다. 어쨌거나 늘그막에 평생 만져보지도 못했던 큰돈을 만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잠깐 잊었던 자식한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입장이 바뀐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항상 먼저 연락을 했던 건 바로 자신이었다. 괘씸한 탓에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했지만, 핏줄이라 그런지 시간이 갈수록 그 그리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항상 먼저 연락을 했었다.
하지만 이젠…….
치사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요놈! 이제부턴 이 아비 차례다.’
박희철은 기분 좋게 다시 전화를 받았다.
“범수야…….”
뚝!
전화를 끊은 박희철의 입가에 미소가 만연했다.
끝내 둘째 녀석은 일산의 땅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말만 빙빙 돌리다 끊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만간에 집에 오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정을 해야 겨우 몇 분 통화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의 상황은 너무도 차이가 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게 바로 현실이다.
돈의 힘.
아무리 397부모와 자식 간이지만 어쩔 수 없는 돈의 논리.
분명한 건 이게 정상은 아니란 거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유산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입속의 혀처럼 굴던 아들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받을 유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냉정하리만큼 연락조차 끊었던 그들이다.
그런 그들 중 작은 녀석이 먼저 연락을 취해왔다.
명분은 안부 전화. 그뿐만이 아니라 조만간에 오겠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한 번이면 족하다. 두 번의 실수는 없다.
돈으로 버릇을 잘못 들였다면 이젠 그 돈으로 버릇을 다시 들일 것이다.
박희철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따르릉!
오늘따라 전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듯했다.
피식.
박희철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부터 나왔다.
예상이 맞는다면 이번엔 아마도 미국에 있는 큰 녀석 박민수일 것이다.
벨이 몇 번 더 울린 다음에야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일부러 최대한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을 늘어뜨렸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예상대로 큰 녀석이었다. 그런데 웃긴 건 그의 목소리였다. 평상시 통화하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아닌 살가운 목소리였다.
-아버지! 접니다! 전화를 늦게 받으셔서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했습니다.
“허허…….”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내 자식이지만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전화를 늦게 받아 걱정을 했단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그래, 너는 또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
-또요? 혹시 범수가 전화했었어요?
“그래, 조금 전에 전화 왔었다.”
-범수가 혹시 무슨 말 했어요?
“무슨 말? 그건 또 무슨 의미냐?”
박희철은 모른 척 물었다. 어차피 그가 묻는 것 또한 둘째 녀석이 했던 말과 같을 것이다.
두 녀석 다 지금 관심은 하나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전파 너머에서 들려온 말은 엉뚱한 말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 않던가요?
“어? 그게 무슨 말이야?”
박희철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그만큼 예상을 못 했던 말이 들렸기 때문이다.
조금 전 여유 부리던 박희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누가? 둘째가?”
-저번에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범수가 아버지한테 말씀드린 줄 알았어요.
“음…… 그래? 근데 둘째한테 무슨 일 있는 거냐?”
아까 통화할 때만 해도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저 당연히 뉴스를 보고 전화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는 아닌 듯했다.
-확실한 건 잘 모르겠지만 요즘 하던 사업이 힘든 거 같았습니다. 저번에 통화했는데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젠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
-그리고…….
“뭐야? 또 다른 게 있는 거야?”
-아, 아닙니다. 그나저나 아버진 별일 없으신 거죠?
“나야 별일 없지.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한 거냐?”
-그냥요.
“그냥?”
-네, 그냥 저도 나이를 먹다 보니까 이젠 좀…….
“혹시 뉴스 보고 전화한 거 아니고?”
박희철은 궁금한 나머지 숨기지 않고 바로 물었다. 어차피 나중에라도 알게 될 텐데 모른 척하는 것도 성격상 갑갑했기 때문이다.
-뉴스요? 왜요? 한국에 무슨 일 있어요?
“응? 아, 아니다. 난 또…….”
당연히 뉴스를 보고 전화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전혀 그게 아닌 듯했다. 최소한 그거까지 속이고 전화할 녀석은 아닐 테니 말이다.
박민수의 말이 맞았다. 그 후에도 몇 마디를 더 얘기하다 끊었지만, 끝까지 일산 얘기는 없었다. 결국은 그의 말대로 그냥 안부 전화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둘째 이 녀석은…….’
박희철의 머릿속에 조금 전에 통화했던 둘째 박범수의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
당연히 뉴스를 보고 전화를 했는지 알았는데 큰 녀석과 통화를 하다 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그의 목소리가 어딘가 이상했었다. 처음엔 그저 뉴스 본 걸 숨기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큰 녀석의 말처럼 뉴스를 본 게 아니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진짜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무슨 일일까?’
잠시 고민하던 박희철은 결심이라도 한 듯 서랍에서 노트를 펼친 후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범수야, 아비다.”
-어? 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조금 전에 통화했잖아요?
“길게 얘기하지 않으마.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게냐?”
-네?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조금 전에 네 형이랑 통화했다.”
-형이요? 왜 형이 뭐라 그랬어요?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너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거 같다고 해서 말이야.”
-아닙니다. 별일 없습니다.
“진짜지?”
-그럼요. 혹시 형이 다른 말 안 했어요?
“다른 말?”
박희철은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전 큰 녀석이 했던 질문을 이젠 작은 녀석이 똑같이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큰 녀석은 작은 녀석을, 작은 녀석은 또 큰 녀석을…….
어쩐지 아까 통화를 할 때 큰 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다 머뭇거린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뭔가 있다.’
고민을 끝낸 박희철이 바로 물었다.
“혹시 네 형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게냐?”
-그게…….
“음…….”
박희철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무리 오래 떨어져 있었지만 내 품으로 낳은 자식이다. 그 정도로 말했으면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범수야!”
-네? 네, 아버지.
“아무 걱정하지 말고 오너라.”
-네?
“너는 물론이고 네 형한테도 그렇게 전해. 굳이 힘들게 남의 나라에서 눈치 보지 말고 언제든지 들어오라고 말이야.”
-…….
“그리고 이거 하나만 기억해. 너희 둘 다 내 소중한 자식이란 걸 말이야. 그리고 이 아비 아직은 얼마든지 건재하니까…….”
박희철의 말이 길어졌다.
처음 전화 통화를 할 때만 하더라도 그동안 섭섭했던 마음에 어떤 식으로든 골탕을 먹이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두 녀석 다 어렵다는 걸 알게 되자 그동안의 섭섭한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아버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밥 잘 챙겨 먹고,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굳이 남의 나라에서…….”
,
박희철의 말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박희철도 모르는 게 있었다. 수화기 너머에 있는 박범수가 한 손으로 수화기를 막고 한없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그 시각.
현성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항상 운전 조심하고. 그리고 농씸 회장님한테 선물 고맙다고 꼭 전해주고.”
“네, 아버지.”
현성이 막 발길을 돌리려 할 때였다.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참, 2차 시험이 언제라고 그랬지?”
“네, 6월 27, 28일 양 이틀이에요. 그러니까 그전에는 집에 못 올 겁니다.”
“오늘이 4월 27일이니까 딱 두 달 남았구나. 아무쪼록 공부도 좋지만, 건강이 최고니까 항상 먹는 거 잘 챙겨 먹고 운동도 적당히 하고,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전 이제 진짜 갑니다. 아, 그리고 아버지 생신 한 번 더 축하드립니다. 다음에 시험 끝나면 낚시 한 번 가요.”
“나야 항상 좋지. 그래, 어서 가거라.”
그때였다.
어머니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며 말을 이었다.
“아! 잠깐만, 며칠 전에 지연이가 너 주라고 가져온 게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여기 이거 가지고 가라. 지연이가 아빠 생신 때 못 온다고 지난주에 미리 왔다 가면서 너한테 주라고 하더라.”
“이게 뭐예요?”
“글쎄다, 나도 궁금한데 포장이 돼 있어서.”
툭.
현성은 바로 포장지를 뜯었다.
그러자 종이 상자가 나왔고 그 안에는 동그란 유리병이 나왔다.
“이거 종이학 아니니?”
“네, 맞아요. 지연이가 제게 주려고 접었나 봅니다. 시간이 많이 걸렸을 텐데…….”
유리병 안에는 종이학이 들어있었다. 1,000마리의 종이학을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 당시에 학생들 사이에서 한참 유행하던 선물이었다.
현성은 메모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오빠.
오빠 생각하면서 매일 10마리씩 100일 동안 접었어.
남들은 남자 친구한테 접어준다고 하는데 나는 남자 친구보다 오빠가 더 좋아(이거 진심이니까 꼭 믿어야 돼…ㅎㅎ).
1,000마리 접으면서 진심으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대. 그러니까 오빠는 틀림없이 시험에 합격할 거야.
사실 이거 1차 시험 합격하기 전부터 접기 시작한 거니까 이 종이학을 받을 때쯤이면 이미 1차 시험엔 합격했을 거야.
이제 남은 건 2차 시험이니까 앞으로 아프지 말고 시험 볼 때까지 몸 관리 잘해서 꼭 합격해.
난 오빠 믿어. 그리고 이 종이학들이 오빠를 지켜줄 거야.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처럼만 하면 돼.
오빠, 항상 힘내고, 그리고 고마워. 파이팅!
-오빠 동생 지연이가.
메모지를 다 읽은 현성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가지고 갈 거야?”
어머니가 유리병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무래도 이동 중에 깨질 염려가 있다 보니 걱정스러워 물은 듯했다.
“네, 가지고 갈게요.”
“괜찮을까? 유리병이라 혹시라도…….”
“네, 괜찮아요. 제가 잘 가지고 갈게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100일씩이나…….”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이다. 더군다나 전생에서는 자신 때문에 실업계를 갈 수밖에 없었던 여동생의 선물이라 그런지 그 가치는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차에 올라탄 현성은 동생의 선물부터 운전석 뒷자리에 안전하게 고정시켰다. 혹시라도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박스들로 완벽하게 고정시킨 후 차를 출발했다.
“두 달 뒤에 올게요.”
현성은 손을 흔들며 집을 떠났다. 트럭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대로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집에서 나온 현성은 바로 박희철의 집으로 향했다.
강릉으로 가면 이제 두 달 뒤에나 올 것이기에 박희철한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오게.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자네 집으로 가려던 참이었네.”
조금 전에 일본에 있는 작은 아들과 전화를 끊은 박희철은 현성을 반갑게 맞았다.
“뉴스 봤지?”
“뉴스요? 아, 그거요.”
현성은 그제야 박희철이 무엇을 묻는지 알아챘다. 지금 그는 일산의 신도시 발표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역시나 그의 입에선 일산 신도시 얘기가 바로 나왔다.
“솔직히 자네가 한 달 전에 이달 안으로 일산이 신도시로 발표 날 거라고 할 때만 해도…….”
박희철은 현성의 말을 믿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기 신도시가 발표 난 지 겨우 7개월밖에 안 지났는데 또다시 새로운 곳에 신도시를 발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박희철의 얘기가 끝나자 현성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두 달 이후에 그 땅을 현금화할 겁니다.”
“두 달 후에?”
“네, 그쯤 되면 어차피 땅값도 오를 대로 올랐을 테니 굳이 오래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을 겁니다. 두 달 후부터 군대 가기 전까지 3개월 정도 시간이 있습니다. 그때 일산의 땅도 정리하고 산 중턱의 식당 부지도 기초 공사를 시작할 겁니다.”
“이미 계획을 다 세웠다는 얘기네?”
“네, 그러니까 아버님도 일산의 땅을 정리하면 그 돈을 어떻게 활용하실 건지 미리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대충 세금 떼고 기본 50억은 될 겁니다.”
“허허…….”
박희철은 할 말이 없었다. 말이 50억이지 그 돈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순간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아까 통화를 끝냈던 두 녀석, 큰아들과 작은아들.
“저기 말이야, 내가 부탁할 게 있는데…….”
“네? 저한테요?”
“그래, 아무래도 이 똥 덩어리 두 개를 자네가 책임지고…….”
박희철의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설명은 길었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박민수와 박범수 두 아들을 앞으로 부탁한다는 얘기였다.
박희철의 설명이 끝나자 현성이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