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97)
회귀해서 건물주-397화(397/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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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박희철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자식들 얘기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조건을 내세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박희철은 다시 물었다.
“지금 조건이라고 했는가?”
“네, 저의 조건을 수락한다면 저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저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버님께선 지금 조건을 내세우는 저한테 순간적으로 섭섭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건 잠깐입니다. 진심으로 형님들이 바로 서기를 바라신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하셔야 할 겁니다.”
“음…….”
박희철은 잠시 생각하는 듯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어쩌면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30년을 해외에서 보낸 녀석들이다. 그런 녀석들을 누군가에게 부탁한다는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그런데도 현성은 그것을 무조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어떤 조건을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 조건이라는 게 뭔지는 들어봐야겠지만.
박희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욕심에 내가 너무 내 입장만 생각을 한 것 같네. 내 마음이 급해서 그랬던 것이니 그 부분은 자네한테 먼저 양해를 구하겠네.”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 자네가 얘기하는 그 조건이라는 게 뭔가?”
“아버님과 3년을 사는 겁니다.”
“나와 3년을?”
박희철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했다.
얼핏 들어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보통 조건이라고 하면 어떤 일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자격을 요구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과 살라고 하니 지금 어리둥절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도 3년씩이나…….
박희철은 바로 물었다.
“그게 조건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아니, 무슨 그런 조건이 있는가? 조건이라고 하면 보통은 …….”
박희철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조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현성은 조용히 그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설명이 끝나자 바로 입을 열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 기준이고요. 저는 그것보다 한국에 들어와서 아버님과 3년 동안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걸 조건으로 내세운 겁니다.”
“음…….”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다음 말을 잇지 못하는 박희철이었다.
하지만 현성의 생각은 단순했다.
박희철의 나이 올해로 63세다. 더 늦기 전에 그가 평생 하지 못했던 자식들과 같이 살기를 바랄 뿐이다.
일은 그다음이다. 일을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그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게 현성의 판단이었다.
박희철이 다시 물었다.
“그것뿐인가?”
“물론입니다. 단, 3년이 지난 후엔 제가 테스트를 할 겁니다.”
“테스트?”
“네, 물론 그 테스트에 통과할 때만이 저와 같이 일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테스트를 통과해야 일을 할 수 있다? 그 말은 만약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자네와 같이 일을 할 수 없다는 얘기인가?”
“물론입니다.”
“허허, 이거야 원…….”
박희철은 난감하다는 듯 표정이 굳었다.
그러자 현성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3년 동안 아버님과 잘 지내면 충분히 테스트에 통과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버님께 달렸습니다.”
“나한테?”
“네, 그렇습니다. 아버님의 만족도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테니까요.”
“내 만족도?”
“네, 아버님의 만족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결국 민수나 범수가 나한테 얼마나 잘하느냐, 이것에 달렸단 말이네?”
현성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러자 박희철이 현성을 보며 빙긋 웃었다.
“허허, 그러니까 결론은 나를 위해서 …….”
박희철은 이제야 현성이 왜 그런 조건을 내세웠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는 지금 무엇보다도 자신이 자식들과 소중한 시간을 갖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그저 어떡하든 자식들이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귀국하면 바로 일자리를 찾아주고 싶어서 부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현성은 그것보다도 자식들과 최소한 3년 정도는 함께 지내기를 바랐던 것이다.
어쩌면 평생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다.
어린 나이에 그들을 외국에 보낼 때는 그저 남들보다 낫기를 바라는 욕심에서 내보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고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그들이 이제 고국으로 돌아오는 시점에서도 정작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잊은 채 또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늦었지만,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일자리가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일 것이다.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 존재의 의미부터 알려주는 게 먼저일 것이다.
지금 현성이 말하고 싶은 게 바로 이것일 것이다.
“후!”
박희철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말았다.
똑같은 실수를 또 할 뻔했다. 이제라도 무엇이 소중한지 깨닫게 해준 현성이 고마울 뿐이었다.
“고맙네.”
“…….”
현성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한 듯싶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 뜻대로 일단은 나와 같이 함께 지내도록 하겠네.”
“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아마도 형님들한테는 아버님의 따뜻한 품이 가장 그리울 겁니다. 일은 그다음이고요.”
“무슨 말인지 알겠네. 자식들을 탓할 게 아니라 이번엔 내가 더 많이 노력하겠네. 다시 말하지만, 이제라도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깨닫게 해줘서 고맙네.”
“알겠습니다. 그럼 시험 끝나고 두 달 후에 뵙겠습니다. 그리고 참, 형님들은 언제쯤에나 돌아온다고 하셨습니까?”
“될 수 있으면 빨리 오라고 했으니까 아마 올해 안에는 올 거 같네.”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제가 군대 갔다 오면 본격적으로 산 중턱에 식당 일을 시작할 테니 그때부터 형님들과 일을 같이 하면 될 겁니다. 물론 형님들이 적성에 안 맞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알았네. 그리고 참, 그 테스트라는 거 말인데, 그건 계속 유효한 건가?”
“물론입니다. 그 테스트 통과 못 하면 어쩔 수 없이 저와는 같이 일 못 합니다.”
“허허, 이거야 원…… 혹시 그 테스트라는 게 뭔지 나한테 미리…….”
“그건 안 됩니다.”
현성은 박희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흔들었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사람이 살면서 기본적인 것들이니 큰 부담은 안 가져도 됩니다.”
“원래 그 기본이라는 게 어려운 법이라서 말이야…….”
“글쎄요, 하긴 사람이 기본을 지킨다는 게 쉬운 건 아니죠.”
“허허, 이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나보고 어쩌라고…….”
“자, 그럼 저는 갈 길이 멀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냥 이렇게 간다고?”
“진짜 갑니다. 아드님들과 잘 상의해보십시오. 기본이 뭔지 말입니다.”
현성은 그 말을 끝으로 엑셀을 밟았다.
전생에서는 박희철이 죽은 뒤 두 아들이 그의 남은 재산을 서로 갖겠다고 싸웠던 두 사람이다.
그랬던 그들이 이젠 같은 공간에서 살게 될 것이다. 과연 그 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지 그 모습 또한 궁금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거야 나중에 질문 몇 개면 그들이 얼마나 잘 살았는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렇게라도 한 번 더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것, 그게 중요한 거다. 이제부턴 또 그들이 하기 나름일 것이다.
현성이 탄 트럭은 강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
신춘오 회장이 김영우 실장을 보며 물었다.
“김 군 2차 시험이 언제라고 그랬지?”
“6월 27, 28일이라고 했으니까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시간이 정말 빠르군. 엊그제 일산 신도시 발표가 난 거 같은데 벌써 두 달이 지났단 말인가?”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들어 더욱 시간이 빨리 지난다는 느낌입니다.”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도 이렇게까지 시간이 빠르다는 느낌은 없었다.
지난번 일산 신도시 발표가 있고 며칠 후 신춘오 회장과 논의 끝에 앞으로 연말까지만 근무를 연장하기로 결정을 했었다.
신춘오 회장의 입장에서는 당장이라도 그만두기를 원했었다. 그 이유는 하루라도 빨리 비서직에서 그만두고 김영우 실장 자신만의 삶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그건 오로지 김영우 실장만을 배려한 신춘오 회장의 마지막 선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춘오 회장의 입장인 것이고 김영우 실장으로서는 그럴 수 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20년을 근무하던 직장이다.
일반 사무직도 아니고 한 사람의 하루 일과를 관리하던 비서직이다. 그만큼 두 사람 간의 유대관계는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들이 볼 때는 단순히 회장과 비서라는 수직적인 관계만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논의 끝에 선택한 방법이 신춘오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는 올 연말까지 더 근무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김영우 실장으로서는 요즘 들어 하루하루가 더욱 빨리 지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신춘오 회장의 질문이 이어졌다.
“물론 잠자리는 잡아뒀겠지?”
“네, 한양대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신영호텔로 잡았습니다.”
“음, 그래. 잘했군. 그럼 김 군은 언제 만나기로 했는가?”
“시험 전에는 시간이 없을 듯하여 시험이 끝나는 28일 오후 4시 넘어서 한양대 정문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때 회장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시험 전에는 괜히 부담될 듯하여 일부러 시험이 끝나는 시간에 약속 시간을 잡았던 것이다.
신춘오 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 아무튼 시험 보는 데 조금의 불편함도 없도록 챙기도록 하게.”
“네, 회장님.”
“그리고 참, 저번에 얘기했던 김 군 얘기 말인데, 앞으로 산 중턱에 식당을 운영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얘긴가?”
신춘오 회장으로서는 얼핏 들어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보고에 의하면 김 군은 앞으로 식당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것도 작은 규모가 아니라 지하 2층, 지상 5층으로 말이다. 물론 지하는 주차장으로 쓴다고 하지만 지상 5층을 다 식당으로 운영하겠다고 하니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그것도 도심도 아니고 면 소재지인 시골에서 말이다.
“저도 그 부분은 이해가 안 갑니다. 그 시골에서 무슨 식당을 그렇게 크게 운영을 하겠다고 하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외부 전문 업체에 분석을 의뢰했는데…….”
“그런데?”
“이상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상한 결과?”
신춘오 회장이 시선을 갑자기 돌려 김영우 실장을 바라봤다.
그러자 김영우 실장이 바로 말을 이었다.
“가능성이 있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고 했습니다.”
“전제조건?”
“네, 바로 인프라 구성입니다. 그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도로입니다.”
“도로?”
“네, 그런데 그 문제는 이미 해결이 됐습니다.”“해결이 됐다는 얘기는 이미 도로가 깔리기라도 했다는 얘긴가?”
신춘오 회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3년 전에 가보았지만, 그쪽으로는 도로가 뚫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 맞습니다. 올 10월부터 공사를 시작한답니다. 그것도 4차선 도로로 말입니다. 공사 기간을 2년으로 91년 9월이면 완공된답니다.”
“그게 사실인가?”
“네, 이미 홍천 군청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결국, 3년 전에 김 군이 얘기했던 게 사실로 된 셈이군.”
3년 전 서명면에 갔을 때 현성이 말했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1년 후에는 그쪽으로 편도 2차선으로 아스팔트가 깔릴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믿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길이 이미 다른 쪽으로 뚫려있었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그때 현성 군이 말했던 게 3년 만에 사실로 이루어졌습니다.”
“허허, 이거야 원…… 그건 그렇고 단순히 도로만 뚫렸다고 해서 그렇게 큰 식당을 운영하기에는 쉽지 않을 텐데?”
“물론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합니다.”
“새 시대?”
“네, 바로 인터넷 세상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 세계가 하나의 공간이 된다는 겁니다. 즉, 광고하기가 그만큼 수월해진다는 겁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자동차 보유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라고 합니다.”
“광고가 쉬워지고 자동차가 늘어나니 그만큼 사람들이 몰린다는 얘기지? 거기다 도로까지 넓어졌으니 말이야.”
김영우 실장은 그 이후에도 전문 업체로부터 보고 받은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김영우 실장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신춘오 회장은 그저 놀랍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김영우 실장의 설명이 끝나자 신춘오 회장의 입에서 엄청난 숫자가 흘러나왔다.
“100억?”
“네, 그렇습니다. 제대로만 식당을 오픈하고 나면 최소한 1년에 100억의 순이익이 날 거랍니다.”
“최소한? 그 말은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아닌가?”
“물론입니다. 마케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300억까지도 가능하다는 보고입니다.”
“허…….”
신춘오 회장은 할 말이 없었다. 처음 식당을 하겠다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규모가 커질 줄이야…….
이렇게 되면 그를 농씸으로 데려오려고 했던 계획은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닭 쫓던 개도 아니고 말이야…….
그때 김영우 실장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왔다.
“그런데 현성 군이 식당을 그렇게 크게 하려는 목적이 돈 때문은 아니랍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회장님도 예전에 얼핏 들으셨을 겁니다. 현성 군의 목적은 마을을 살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왜, 기억 안 나십니까?”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했던 거 같기도 하고…….”
“저도 그때는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이번에 그런 말을 또 했다고 합니다. 자기는 최우선이 농촌에서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막는 일이고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쩝.
할 말이 없는 신춘오 회장이었다. 평생 기업에서 이윤만을 추구하던 자신으로서는 쉽게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잠시 후.
신춘오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김 실장.”
“네, 회장님.”
“28일 저녁에 김 군을 만난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그날은 김 군한테 앞으로 계획을 직접 물어봐야겠네. 그리고 혹시 말이야, 내가 주차 관리하면 잘할 수 있을까?”
“네? 아니, 무슨…… 회장님 설마…….”
신춘오 회장은 무슨 생각인지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영우 실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