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398)
회귀해서 건물주-398화(398/740)
399
고시반에서 나온 현성이 자취방으로 가기 위해 도서관 계단을 막 내려설 때였다.
“현성아.”
누군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과대표인 김명우였다.
“어?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야?”
“너 기다렸지.”
“나를? 이 시각에?”
지금 시각이 밤 12시다. 보통은 새벽 4시까지 공부를 하다 고시반에서 잠을 잤지만, 오늘은 모레 시험을 위해서 내일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고시반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김명우가 밖에서 무작정 기다렸다고 하니 현성으로선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성이 다시 물었다.
“내가 언제 나올 줄 알고 여기서 기다려?”
“어차피 시험을 보기 위해 내일 서울로 올라갈 테니 오늘은 빨리 나올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나와서 다행이다.”
“뭐야? 그 말은 내가 더 늦게 나오더라도 여기서 계속 기다릴 생각이었던 거야?”
김명우는 대답 대신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을 이었다.
“고시반에 와서 노크하면 되잖아?”
“공부하는 데 방해 되잖아.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방해해서는 안 되지. 안 그래?”
“야, 그게 무슨 방해야? 친구가 잠깐 보자는 건데.”
“그건 네 생각이고. 밖에 있는 우리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우리?”
김명우는 방금 ‘우리’라고 했다. 그 말은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김명우 혼자가 아니었다는 얘기가 된다.
현성은 바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라니? 너 혼자가 아니었단 얘기야?”
“응, 사실은 7명이 기다리다가 조금 전에 막차 때문에 갔어.”
“…….”
현성은 순간적으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지금 휴학 기간이라 친구들을 자주 보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지난번 1차 시험에 합격했을 때도 많은 친구들이 일부러 나와 축하를 해줬었다. 그리고 이번엔 또 시험 잘 보라고 격려 차원에서 일부러……
현성은 생각을 하다 말고 김명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맙다. 이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내일 친구들한테 고맙다고 꼭 전해줘라.”
“그래, 알았다. 그리고 이거.”
김명우는 현성 앞으로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우리가 조금씩 걷었다. 많지는 않지만, 차비에 보태고 밥이라도 사 먹으라고.”
“아…….”
현성은 차마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이라 솔직히 황당하고 미안할 뿐이었다.
“애들이 시험 잘 보라고 그러더라. 시험 끝나고 얼굴 한번 보자고.”
“그래, 그러자. 꼭!”
덥석.
현성은 김명우의 손을 잡았다. 지금, 이 순간 어떤 다른 말로도 고마움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그의 손을 잡는 것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때 김명우가 현성의 이름을 진중하게 불렀다.
“현성아!”
“어? 어, 왜?”
“고마운 걸로 따지면 우리가 너한테 더 고마워. 특히 나는 더 그렇고.”
“야, 무슨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내가 뭘 어쨌다고?”
“너는 모르겠지만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 다들 너한테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우리 학번이 다른 과보다 단합이 잘 되는 것도 모두가 다 네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뿐만이 아니라 자긍심도 우리 학교에서는 우리가 제일 세고 말이야.”
“야, 김명우. 지금 사람 앞에 놓고 무슨 그런 금칠을…….”
현성은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 막차 때문에 떠났다고 했던 친구들이 다시 도서관 쪽으로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친구들과 헤어지고 자취방에 도착했을 때였다.
“이제 오는 거야?”
대문에서 현성을 맞은 건 주인아주머니인 한수진이었다.
“혹시 저를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까?”
“그건 아니고 잠도 안 오고 해서…….”
“또 거짓말하신다. 어머니, 그거 모르시죠? 어머닌 거짓말하시면 눈썹이 떨리는 거.”
“어? 그걸 현성이가 안단 말이야?”
“물론이죠.”
현성은 대답을 하며 빙긋 웃었다.
사실은 전생에서 한수진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한 말이다.
그때가 아마도 3학년 겨울 방학 한 달 전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한수진이 옷을 사가지고 온 것이다. 오리털 점퍼였다. 그때 당시만 해도 가난했던 현성으로선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옷이다.
그 옷을 건네면서 한수진이 말하길 선물로 받았는데 입을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자신보고 입으라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수진에게 박민석이라는 자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그 사실을 안 건 4학년 종강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서야 한수진이 말했었다.
사실은 추운 겨울에 하늘나라에 먼저 간 아들이 생각나서 점퍼를 사 온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때 자신은 거짓말을 하면 이상하게 눈썹이 떨린다는 말을 했었다.
조금 전 한수진이 자신한테 말을 하는 순간 그녀의 눈썹이 떨리는 것을 봤다. 그래서 그녀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한수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은 내일 아침에 밥 먹으러 건너오라고 말하려고 기다렸어.”
“밥이요?”
“그래, 내일 서울 간다고 했잖아. 모레가 2차 시험 보는 날이라고 하면서 말이야. 다른 건 내가 해줄 게 없고 따뜻한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한 달 전에 한수진이 지나가는 길에 묻기에 아무 생각 없이 말했던 얘기다. 그런데 그걸 또 한수진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성은 한수진을 보며 물었다.
“아니, 그냥 했던 말인데 그 말을 또 기억하고 계셨던 겁니까?”
“내가 잊으면 안 되지. 현성이가 나한테는 은인인데. 우리 민석이만 생각하면 지금도 이렇게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식이 사고를 당할 뻔했는데 말이다. 전생에 아들 때문에 가슴을 두드리며 슬피 울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럴 땐 그저 기쁜 마음으로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오히려 그녀를 위한 길이라는 걸 알고 있는 현성이었다.
“네, 어머니. 내일 아침에 넘어갈게요. 대신 제가 밥을 좀 많이 먹습니다.”
“호호, 그래, 알았어. 밥 많이 할 테니까 많이 먹고 시험 잘 봐.”
“네, 알았어요. 그럼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그리고 참, 민석이한테 아까 전화 왔었는데 시험 잘 보라고 하더라. 다음 달에 한 번 온다고 그때 보자고.”
“네, 형한테도 고맙다고 전해줘요.”
두 사람은 그 후로 몇 마디를 더 나누고 헤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수진은 저녁 9시부터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거의 4시간 동안을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빙긋.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현성의 입가에는 저절로 기분 좋은 미소가 번졌다.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막차를 타기 위해 떠났던 친구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는 순간 감동 그 자체였다.
막차를 탈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다 결국은 버스가 아닌 친구를 선택하고 발길을 돌리기로 했을 때 그 순간의 감정,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 고마움이 더욱 크게 느껴졌었다.
툭.
가방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아까 김명우로부터 받은 봉투였다. 과 친구들이 자신을 위해서 조금씩 걷었다는 돈.
52,000원. 모두가 천 원짜리였다. 자신을 제외하면 39명. 누구는 천 원, 누구는 또 이천 원씩 자발적으로 냈을 것이다.
“고맙다!”
돈이라고 다 같은 돈이 아니다.
예전에는 이런 감정을 몰랐다. 하지만 세월을 좀 더 산 덕분인지 지금은 이 돈의 가치가 그 어떤 돈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였을까.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봉투를 꼭 잡았다.
***
시험 당일 아침.
한양대 정문에 도착한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야!”
정문에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친구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김일수와 이정우 그리고 이수혁, 세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와락.
현성은 반가운 나머지 세 사람을 한꺼번에 끌어안았다.
고등학교 졸업을 한 후 어쩌다 통화만 몇 번 했을 뿐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현성은 어깨를 풀며 물었다.
“야, 너희들이 여기까지 어떻게…….”
“우리니까 와야지.”
김일수가 현성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학교 다닐 때와는 얼굴부터 많이 변해 있었다.
하지만 현성의 시선이 향한 곳은 김일수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이정우였다.
“정우야, 다리는 어때?”
물론 수술이 잘 됐다는 건 처음 수술 후 병문안 당시 확인은 했었다. 하지만 수술도 수술이지만 정우 같은 경우는 재활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상태였다.
그 당시 의사 말로도 최소한 2년 정도는 열심히 재활을 해야 정상인의 80% 정도까지 회복할 수 있다고 했었다. 그 정도는 돼야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불편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좋아. 보다시피 아주 좋아졌어.”
“진짜야?”
“그래, 인마. 봐봐.”
탁탁.
이정우는 보란 듯이 두 발을 번갈아 가며 땅을 두드렸다. 확실히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리에 힘이 넘쳐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때였다.
저벅저벅.
이정우가 이번엔 걷기 시작했다. 저만치 걸어갔던 이정우가 다시 되돌아 걸어오고 있었다. 예전엔 걸을 때마다 두 다리의 길이 차이 때문에 몸이 심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달랐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 차이를 모를 정도로 걸음걸이가 완벽했다.
이정우가 다시 자신의 앞에까지 걸어오자 현성은 그를 다시 껴안으며 말했다.
“정우야, 고맙다!”
“고마운 걸로 따지면 내가 더 고맙지. 네가 준 돈으로 마음 편하게 수술하고 재활할 수 있었잖아. 현성아 진짜 고맙다!”
“그런 말을 왜…… 됐고, 어쨌건 정말 다행이다.”
“선생님이 앞으로 6개월 정도만 더 재활하면 거의 완벽할 거래. 그땐 나도 뛸 수도 있다고 그랬어.”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이정우를 바라보다 현성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거 같았기 때문이다.
“말도 마, 의사 선생이 이렇게 지독한 놈은 처음이라고 하더라.”
옆에 있던 김일수가 이정우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현성이 바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병원에 갔더니 소문났더라고.”
“소문?”
“그래, 이 자식이 악바리라고 말이야. 남들은 한두 달만 해도 하기 싫어서 꾀를 낸다는데 얘는 1년이 넘어도 하루도 안 빠지고 시간 꽉꽉 채워서 운동한다고 말이야.”
현성은 빙긋 웃으며 이정우를 다시 바라봤다.
“야, 악바리. 6개월만 더 참자. 응?”
“당연하지. 6개월 후엔 내가 진짜 뛰고 말 거야.”
이정우는 다짐이라도 하듯 양손에 힘을 잔뜩 줬다.
그러자 현성은 김일수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고맙다. 네가 그래도 열심히 정우 챙겼구나?”
“누구의 명령이라고 거부하겠냐?”
“자식, 잘했어. 그건 그렇고 요리사 일은 할 만해?”
“솔직히 자격증 따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시작이었어.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까 이건 뭐 완전 전쟁이야. 특히 점심시간이면…….”
김일수의 투정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현성이 그의 말이 끝나자 바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 몇 년만 더 고생해라. 내가 군대 갔다 오면 부를 테니까.”
“오케이. 내가 그때까지 진짜 열심히 할게.”
“좋아, 그때 총주방장은 네 몫이다. 할 수 있지?”
“총……주방장?”
“그래, 인마. 2층 한식은 네가 책임져. 월급은 달라는 대로 줄 테니까.”
“…….”
김일수는 잠시 말없이 현성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자 현성이 이번에 옆에 있는 이수혁을 보며 말했다.
“연대는 다닐 만해?”
“처음엔 좀 딸렸는데 이젠 괜찮아. 네 말대로 확실히 다르긴 다르더라. 그래서 남들 놀 때도 진짜 열심히 했다.”
“잘했어. 자고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니까. 이왕 하는 거 탑 한 번 찍어야지.”
“내가?”
“당연하지. 촌놈이 한 번 하면 한다는 거 보여줘. 우리가 학력고사 준비할 때처럼만 하면 못할 게 뭐 있겠냐? 이왕 연대 들어갔으니까 나올 땐 탑으로 나와야지. 오케이?”
이수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야, 이거 가지고 얼른 들어가라. 시험시간 다 됐다.”
김일수였다. 그가 내민 건 누가 봐도 도시락이었다.
“고맙다!”
현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서는 졸업을 하고도 친구들한테 옥장판을 팔면서 사기를 쳤던 그다. 그런 그가 지금은 요리사가 되어 도시락을 직접 싸서 들고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서 웃고 있는 이정우, 평생을 불편한 몸으로 힘들게 살던 그가 지금은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재수까지 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 후론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이수혁. 지금은 또 이렇게 당당하게 연대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현성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야, 다들 파이팅 하자.”
그 말이 떨어지자 네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손을 한곳으로 모았다.
“하나, 둘.”
“파이팅!!!!”
네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한양대 앞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